가을 바람이 상쾌하고 햇빛은 따사로운 어제, 경북 예천의 삼강주막과 충주 고구려비 구경을 갔다.
삼강주막은 문경의 죽월산에서 흘러 내려온 금천이 봉화에서 시작하여 회룡표를 휘감고 내려온 내성천과 만난 다음, 안동 하회마을을 휘감고 내려온 낙동강과 마주치는 지점에 있는 우리시대 최후의 주막이다. 그러고 보니 회룡포의 내성천은 낙동강 주변에서 자연이 가장 잘 보존된 강으로, 현재 지율스님께서 4대강 사업으로 내성천까지 망가지는 것을 막기 위해 국민께 자연 보존에 동참해 달라고 마음속 깊이 호소하고 있는 바로 그 강이다.
강 셋이 만난다는 삼강(三江)엔 주막 뿐만이 아니라 인근 정씨 집성촌엔 청풍자 할아버지께서 세우신 서당이 있었다.
이름하여 삼강강당.
이 강당은 조선 선조 때 호종공신 약포 정탁 선생의 셋째 아들 청풍자 정윤목이 벼슬을 사양하고 후진을 양성키 위해 세운 사설 학원이다. 19세의 약관으로 부친을 따라 사행사절로 가던 길에 수양의 백이숙제묘를 참배하고 돌아오면서 모사해온 백세청풍 4자를 강당벽에 편액해 놓았다.
삼강강당의 백세청풍 편액
백세청풍은 오랜 후세까지 맑고 깨끗한 바람이 분다는 뜻으로 중국 은(殷)나라 고죽국(孤竹國)의 왕자 백이(伯夷)·숙제(叔齊) 형제의 곧은 절개를 상징하고 있다. 중국에 백이·숙제의 사당이 있는데 그 앞뜰에 백세청풍을 비석에 새겨놓았다는 데서 유래하며 유가(儒家)에서는 이들을 청절지사(淸節之士)로 크게 평가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백세청풍을 충신들의 고택(古宅)에 현판으로 걸거나, 혹은 거주지의 바위나 비석에 새겨 기념하였다.
- 출처: 서울시 온라인 뉴스 '서울 톡톡'
삼강강당 주변의 낙동강 풍경. 저 앞에 보이는 둑방 아래가 낙동강이다.
벼가 누렇게 익어 간다.
낙동강 주변 풍경
삼강(三江)주막 앞에 내성천과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 긴 다리는 삼강교이다.
삼강교가 지나는 길 옆의 삼강주막. 삼강교가 필요한 것이기는 했겠으나 저 옛날 길손이 지친 몸을 잠시 쉬면서 막걸리 한잔을 단숨에 걸쳤을 옛 주막의 정취를 싹~ 배려 놨다. ^^;;
삼강주막과 500년된 회화나무
삼강주막에서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잔치국수랑 파전을 시켜 먹었다. 막걸리도 한잔 들이키고 ^^;;
이곳의 현대판 주막은 이곳 정씨 집성촌의 부녀회에서 운영하는데 음식은 소박하고 맛은 좋았다.
삼강주막에서 점심을 먹고 이웃한 감천면의 석송령을 보러 갔다.
석송령은 경북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에 있는 600 년 된 반송 소나무의 이름이다. 찻길 옆에 있다. 이 나무는 마을의 동신목인데 가지를 넓고 멀리 펴져 300 평의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석송령을 구경하고 충북 제천의 의병기념관을 가는 길 옆 풍경.
예천군은 사과 마을이다. 찻길을 따라 비탈진 경사지엔 온통 사과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따사로운 햇빛을 받은 사과는 붉게 물들고 있었다.
참새 방앗간이 따로 있나? 탐스럽게 익은 사과를 사기 위해 길 옆의 어느 과수원에 잠시 들렀다. ^^
주먹만한 사과 10개를 1만원에 살 수 있었다.
자영영당
습재 이소웅과 화서학파 우림들에 의해1907년에 건립되었다. 주자, 우암 송시열,화서 이항로,성재 유중교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후에 의암 유인석과 습재 이소응의 영정을 추봉하고 매면 후손과 유림들이 모여 제향을 지내고 있다고 한다.
자영영당 바로 옆에 있는 제천의병 기념탑. 자영영당에 의병기념탑이 있는 이유는 이곳에서 의병운동을 일으키신 의암 유인석 선생 때문인 것 같다.
제천의병 기념관. 충북 제천은 조선말기 '위정척사'를 기치로 내건 의병운동의 발생지이다.
오늘의 마지막 답사지 충주 고구려비 전시관
충주 고구려비는 고구려가 점령했던 충주(중원)의 국원성에 있던 비석이다. 국원성은 평지성이고 오른쪽 산 위에는 장미산성이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고구려비는 광개토대왕비와 바로 이 충주 고구려비 딱 2개이다.
삼족오
전시관 한가운데 있는 충주 고구려비
당시 충주는 삼국 교통의 중심지이자 노천 철광이 있는 전략물자의 생산지였기 때문에 삼국 모두 이 곳을 차지하기 위해 오랜 기간에 걸쳐 치열하게 다투었다.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장수왕 때 신라를 신하국으로 복속하고 이를 기념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장수왕 손자인 문자명왕 때 바로 이 충주 고구려비를 세웠다.
첫댓글거운 여행을 하셨군요
충주는 20여년전에 근무했던곳이라서리
불과 20년 전에도 이 곳은 내륙이라 교통이 많이 불편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전국을 구석구석 다니시는 군요. 여행도 부럽지만, 사과가 10개 1만원이라니...그것이 젤 부럽습니다.^^
ㅎㅎㅎ,
지갑을 열었더니 천원짜리가 달랑 8장 밖에 없어서 못 샀슈... ㅋ
근데, 사과에 조그만 흠집도 있어도 상품성이 없다고 그냥 몇개씩 가져 가라 하시더군요. 덕분에 2개 들고 왔는데.... 와서 생각해 보니, 이런 사과를 8천원 어치 달라고 했으면 한광주리 얻었을텐데... 아쉽더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