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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나의 그림이 이 영화의 모든것을 대변해 준다.
오늘날의 영화는 다른 장르보다 더욱 보편화되어 있다.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연극이라는 장르는 배우, 관객, 무대의 연극의 3요소를
갖추고 있고 영화도 이러한 연극적 요소를 포함하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영화는 주인공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다른 관객이나 시간, 무대의
제약이 없이 철저히 주인공의 시선에서 그려내기 때문에
연극과는 다소 차이가 있으며 필름에 담겨 있으므로 극장에서 관람하는 것은 물론
비디오, CD, DVD등의 어떤 매개체로든 편하게 언제 어디서나 감상이 가능하다.
관객과 더불어 호흡을 해야 하는 연극보다는 제약요소가 현저히 줄어든 덕분에
더욱더 대중에게 친숙한 장르가 영화이다.
때문에 접하기 쉽다는 이유로 영화를 다른 장르보다 수준이 낮다고 무시할 수도 있지만
칸이나 베를린의 권위 있는 영화제에서 예술영화를 선정하여 상을 수여하고
그런 영화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을 보자면 다른 문화장르에 비해 접하기 쉽다고 해서
반드시 수준이 떨어지는 장르가 아닌것이다.
물론 그러한 상의 수여가 순수하게 영화가 예술적이냐에 따라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약간의 정치적 성향을 고려할 수 있다고 해도
그러한 영화가 가진 예술성을 쉽게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본인은 영화를 즐겨본다.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극장에서, 컴퓨터로,
아니면 TV로 볼만큼 영화를 대단히 좋아한다.
특히 요즘은 한국영화의 괄목할만한 성장으로 인하여
한국영화를 본의 아니게 많이 접하고 있다.
과거 헐리우드 영화에 비하여 규모적으로 비교가 안 되었던 우리영화는
간간히 예술영화제나 어느 정도의 이름 있는 국제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작품이 있었지만
그것이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던 듯하다.
지루하고 따분 하기만 했던(당시 어렸을 때의 나의 기준으로) 국산영화는
방화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의 관심 속에서 멀어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근 몇 년간 한국영화는 [쉬리]라는 한국영화의 흥행과 더불어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라는 호황기를 맞게 되었다.
전국 6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차후 국산 영화의 발전가능성을 한차원
끌어올렸다는 평을 들으며 한국영화는 그 후 괄목할 만한 양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하지만 다른 이면으로는 흥행 위주의 한국영화에 대한 예술성 부족이 거론되면서
비난의 도마 위에 오르게 되었다.
후에 조폭마누라, 친구, 엽기적인 그녀등의 대 히트에도 불구하고
조폭과 코미디영화는 성공하는 장르고 다른 장르는 그렇지 못하다는 인식이 팽배해져
이러한 양적인 성장은 우리영화의 발전에 도움은 커녕 암적인 존재가 될 것이라는
비관적인 관측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2003년도에는 특이한 두 한국 영화가 개봉되게 된다.
바로 [살인의 추억], [올드보이]라는 두 편의 영화가 그것이다.
평론가들의 호평과 일반 대중인 관객의 찬사를 동시에 받은 이들 영화의 등장은
한국영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는데 부족함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일 것이다.
특히 올드보이를 볼때 필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큰 기대 없이 극장에 들어섰다가
그 영화의 지나친 완성도로 인하여 영화 속에 빨려들어 가서는
영화가 끝난 다음에도 쉽사리 그 자리를 뜨기가 힘들 정도였고 모두들
우르르 극장을 빠져나갔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감독의 예술적인 감성이 작품에 아주 잘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 소재가 다소 한국의 정서에 반하는 충격적인 것이라 할지라도)
언론에서는 반윤리적이라는 영화라는 혹독한 비평을 듣기는 했지만
영화에 대한 인상은 무척 강렬한 것이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재미없다고 무시했던 한국영화를 보면서
이러한 충격을 받을 수 있으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렸을때의 우뢰매, 영구와 땡칠이 이후로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볼일을 없을거라고 장담을 했던 본인이기에 내 자신이 더욱 놀라웠다.
본인은 극장을 나오며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하면서
'이 영화는 큰일 낼 영화'라는 생각을 머리에서 도저히 지울수 없았다.
그로부터 몇 달 뒤, 금년도 칸 영화제에서는 놀랄만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비록 최고상은 수상하지 못했지만 두 번째로 큰 상인 그랑프리를 획득한 영화가
바로 한국 영화 [올드보이]라는 것이다.
2002년에는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이 세 번째 상인 감독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그것은 서양이 동양에 대한 있는 일종의 오리엔탈리즘 취향을 만족시킨 영화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필지도 어느정도 공감을 하는 부분.)
세계인들은 왜 이런 정치색을 전혀 띄지 않은,
같은 수의 경쟁작을 보유한 높은 인지도의 일본보다
로비활등도 거의 하지 않은 한국의 한 낯선 영화에 관심을 표명한 것일까?
우리는 이 사실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영화 올드보이는 사실 칸이나 여타의 다른 상을 수상하기 위한 전문적인
[예술영화]는 아니다.
오히려 국내에서 지난 9월 달에 개봉하여 330만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소위 잘나갔던 흥행 영화였으며 칸에서 작품의 출품을 종료하기 며칠 전에야
칸의 경쟁작 후보임을 통고를 받을 만큼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도 흥행작을
예술영화로 보기엔 무리가 있지 않느냐는 의견이 분분했으며
그런만큼 올드보이가 경쟁작 후보로 오른 것을 작품을 만든 박찬욱 감독도
의아해 했다고 한다.
올드보이의 박감독은 먼저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작품을 통해
작가의 이름을 영화계에 먼저 알리게 되었으며 당시 남북한 화해 분위기를
타고 2000년 최고의 흥행을 기록하게 된다.
2002년도에는 복수를 주제로한 하드 보일드한 영화 [복수는 나의 것]을
기획하게 되는데 평론가들의 극찬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흥행에서 참패를 하게 된다.
그 이유는 우리 국민의 정서에 이러한 극단적인 영화의 표현과 일반적인
영화의 흥행의 코드를 철저히 배제했다는 데 있다고 본인은 생각한다.
올드보이보다 인상깊게 보았지만 타인에게 추천하기도 다시보기도 힘든 영화는
[복수는 나의것]이 처음이다.
본격적인 하드보일드 영화 복수는 나의 것 이 시대 명작, 공동경비구역 JSA
그다음 작품인 올드보이 - 이 역시 주제는 복수이다.
남자의 복수심을 정말 잔인할 정도로 표현했으며 그로인한 인간의 증오심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 인간의 얼마나 추해질 수 있는지 필름을 통해
그 인간의 심경을 생생히 재생해 내는데 영화의 초점을 둔다.
주인공인 오대수는 자신 스스로 이름으로 삼행시를 “오늘만 대충 수습하면서 살자”라고
지을 정도로 삶에 대해 무책임한 사람이다.
남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보다는 자기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좋아하고 그로인해 타인이
마음에 상처를 받든지 어떻게 되든지 아랑곳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
술에 잔뜩 취해 경찰서에서 한바탕 난리를 치고 나온 그는 어디론가 끌려가게 되면서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이 만두가 쓰레기 만두소인걸 알았더라면 견디기가 더 쉬웠을까?"
사설감옥에 감금되어 15년 동안 그는 자신이 갇히게 된 영문도 모른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문득 자신이 타인에게 해만 끼치는 삶을 산 것이 아닐까 반문하고는
자신이 타인에게 저지른 악행을 노트에 적어내려가기 시작하자
악행의 자서전이 대여섯 권이 넘어가자 자신이 살았던 삶이 순탄치 못했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도 잠시, 하루라도 빨리 사설감옥에서 탈출을 해서 자신을 가둔 인물을 찾아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는데, 하루하루 복수를 꿈꾸는 오대수는 15년이
지나서야 그 감옥에서 어느 아파트 위로 내던져진 자신을 발견한 그는 거기서 자살하고자 아파트위에 올라온 한 남자와 조우하게 된다.
자살하고자 하는 그를 막아선 오대수는 평소의 자신이 해왔던 대로 행동을 하기
시작하는데 “내 얘기를 해주고 싶다. 조금 있다 죽어라.” 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자신이 이야기만을 일방적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대수는 자살하겠다는 남자의 이야기를 듣지도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끝내자
( 지금 생각보면 그것은 감독이 관객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이나었을까
복수는 나의것에서처럼 감독 자신의 하고 싶은 말을 오대수의 입을 빌린 듯. )
상대방의 말을 듣지도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복수의 길을 떠나고
그 남자는 끝내 옥상에서 떨어져 자살을 하고 마는데...
내가 본 영화 중 가장 강렬한 오프닝 너도 쓰레기만두 15년 먹어봐, 이씨..
"내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왜 오대수는 그 남자의 말을 듣지 않았을까? 그것은 아마도
15년이 지나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오대수의 타인에 대한 무관심 때문일 것이다.
"오대수는요, 말이 너무 많아요."
라는 이우진의 대사처럼
타인의 말보다는 자신의 말을 하는것에 익숙했던 그의 태도가 15년 동안이나
감금된 이유라는 것을 알 리가 없었다.
그 직후 미도라는 여자를 우연히 만나게 되고 그녀와 동거하게 되는데 먼저 자신을
가둔 사설 감옥의 주인에게 먼저 복수하고 잠시후에 우연한 계기로 자신을 가둔
이우진을 만나게 되는데 그는 오대수에게 자신을 가둔 이유를 생각해 내라고 한다.
결국 끝에 가서는 자신의 무관심 속에서 터져나온 말이 한 사람을 죽이고
복수심을 키워왔음을 느꼈을 때, 오대수는 자신의 혀가 모든 불행을 불러왔음을
알고 혀를 가위로 자르면서 영화 극적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르게 된다.
그 사건이 일어난 후, 이미 저지른 참담한 현실을 도피하기 위해 마지막 방법으로
최면을 걸어 자신의 기억을 지우고 오대수는 쓴 웃음을 지으며 참흑한 한 남자의
복수극이 끝나게 되는 것이 주된 스토리.
비극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도 엘리베이터안에서의 대수, 우진의 조우
영화 도중에 이우진은
“상처받은 자에게 복수심만큼 잘 드는 처방은 없다. 복수심은 건강에 좋다.
하지만 복수가 끝나고 나면 아마 숨어있던 고통이 다시 찾아올 것이다.”
라는 의미심장한 대사를 하게 된다.
오대수에게 이런 비극을 맞보게 하려는 이유진은 끝내 자신도 복수를 통한
비극의 희생양이 되고 만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데
이것은 과거 서양의 고전문학에서 주로 다루어온 비극을 통한 예술적인
감동을 표방하는 것으로써 타인의 비극을 통하여 자신도 그와 같은 비극을
간접체험한 뒤 그로인해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도록
박찬욱 감독은 자신만의 독특한 예술적인 영감을 영화 전반에 불어넣고 있다.
감독의 의도인지는 모르겠지만 영화 올드보이는 곳곳에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긴다.
간간히 나오는 클래식 음악이나 (나오는 장면은 다소 충격적이라 할지라도)
특이한 디자인의 문양이 소도구등에 활용되어 화면구성을 다소 고전적으로 포장하는데
일조하기도 하며 현세의 이야기를 다루지만 일어날 법하지 않은 약간은
추상적인 분위기가 영화 전반을 지배하는 것 등은 다소 충격적인 소재를 포함하여
중간에 별다른 특수 효과 없이 롱테이크로 촬영한 오대수의 일대 다수 장도리액션
은 다소 정적일 수도 있었던 영화에 동적인 시퀀스를 부여하고
그러한 요소들은 이 영화로 상당히 강렬한 인상을 심어준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연극에서 영화로 옮겨놓은 느낌이라고 하는 것이 적당한 표현일까?
그리고 극중 최민식의 연기는 최민식이 아니고서는 올드보이란 영화가 나올수 없었을
거라 생각될 정도로 철저히 최민식에 의한 것이었으며.
극중에서 오대수가 이우진 앞에서 분노할 때 나도 같이 분노해야 했으며
오열을 할 때 나도 같이 오열해야만 했을 정도로 ...
(다소 감정의 과잉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대단한 연기임에는 틀림없다.)
올드보이의 백미, 장도리 액션 롱테이크 샷! 왜 이러고 있는지는 직접 영화를 보도록.
(필자도 대수와 같이 오열하고 있는 중. T_T.)
올드보이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독특한 분위기, 충격적인 소재, 출중한 연기,
그에 어울리는 장중하면서도 강렬한 배경음악을 복수라는 하나의 테마에
융합 시키면서 결과적으로는 다양한 해석과 느낌을 주는 영화적 에너지를 과시한다.
이번 칸에서 8명의 심사위원 중 3 : 5의 1표 차로 [화씨911]이란 다큐멘터리 영화에
아쉽게도 영예의 1위를 내주고 말았지만 프랑스의 한 영화 관련 기자는
“어떻게 정치적인 칸 영화제에서 이런 순수한 작품으로 경쟁할 생각을 했는가?”라고
반문을 하기도 하는 등 이 영화를 본 프랑스 영화 관계자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으며
그 괘씸죄로 1위를 하지 못했다는 우스갯소리도 있다.
하여튼 동시대에 그것도 우리나라 작가의 손에서 만들어진 우리의 멋진 영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이야말로 오늘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가장 큰 행운일 것이다.
올드보이를 위시로 하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 시대”의 수식어에 걸맞게
한국영화가 더욱 발전하여 세계로 나갔으면 하는 것이 필지의 간절한 소원이다.
여운이 많이 남는 엔딩씬, 앞으로 그들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첫댓글 좋은 글 잘봤습니다~ 아직 전 올드보이 보진 못했지만...기회가 되면 한번 봐야겠네요~
연극과 영화를 이루는 요소는 많은 부분에서 비슷하지만, 영화의 경우 무대의 제약이 사라졌고 여러가지로 강조하거나 생략할 수 있는 기법이 발달해있죠. 그에 비해 연극은 강조라고 해봐야 스포트라이트 정도 이기때문에 연극에서의 감정연기는 더 강렬해야합니다.
영화에서는 클로즈업이라는 것이 있어서 미묘한 심리상태나 감정의 표현도 가능하지만 연극에서 강조하기 위해서 배우는 감정을 격하게 표현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연극배우 출신의 영화배우들이 가끔 오버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하지요^-^;
그리고 연극은 무엇보다 관객과의 호흡이 중요합니다. 관객 수준이 높고 반응이 좋으면 배우의 몰입도 또한 높아져 좋은 공연을 할 수가 있는것입니다. 뭐.. 기성 배우라면 관객을 떠나서 항상 연기에 몰입할 수 있어야하겠지만.. 더 나은 공연을 위해서는 관객과 같은 템포로 감정을 풀어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ㅡ_ㅡ;; 무대에 서면.. 관객들은 절대로 예상하고 안배해놓은 곳에서 웃지 않지요;; 심각한 분위기에서 불쑥 튀어나온 웃음은 배우의 맥이 빠지게 합니다. 그러다 배우가 웃어버리면 최악의 상황이지요;; 아무리 당황스러운 상황이어도 애드립으로 자연스럽게 넘길 수 있는 역량 또한 프로 배우가 가져야 할것 같습니다.
실제로 어느 공연(아마도 "라이어2"였을 겁니다)을 보는 도중 무대가 무너져 내린 일이 있었죠. 무대위에 있던 배우가 "이 놈의 집구석은 왜 이래?!" 한마디하고 끝나버리더군요;; 어이없게 끝났지만 인상깊은 애드립이었습니다.
괜히 헛소리만 했네요 - _-;;; 죄송. 멋진 글 잘 봤습니다 ^-^//
조만간 제가 실천한 영화네요 +_+, 참고잘했어요~[무슨소리냐;]
올드보이....대략 무서웠던...ㅎㅎ 조심해야겠습니다....-ㅅ- ;;
그럼난 미도냐?[헉!!0ㅁ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