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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공정, 이대로는 안된다
- 정부와 학계는 동북공정에 대한 근본적 대책을 수립하라 ! -
김운회(동양대 교수)
1. 우리는 왜 침묵하는가?
한국에서 해마다 벌어지는 해프닝이 있다. 일본에서, 울릉도 옆 외로운 바위섬, 독도의 ‘독’ 자만 나와도 전국민이 일어서서 규탄하고, 나라 전체가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곤 한다. 우리 정부는 유독 독도 문제에 대해서만 강경하게 대처를 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은 애국심으로 혈서를 쓰고 또 일부는 규탄데모를 하고 게으른 국회의원들조차도 비바람 몰아치는 독도를 다녀와서 독도에서 찍은 자기의 사진을 지역구민들에게 자랑스럽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우리의 역사 모두를 말살하고 우리 영토를 통째로 삼키려는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해서는 끝없는 침묵이 흐르고 있다. 움직임이 아주 없지는 않는 것 같은데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정부가 나서서 부산을 떨면서 고구려 연구재단을 만들더니 2년만에 해산하면서 “모든 사업 동북아역사재단으로 통합된다”고 한다. 이것은 정부의 일관된 방침이기도 하다고 하는데 정작 동북아재단은 1년 넘게 조직조차 구성되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도 예산도 10분의 1 규모로 축소될 것이라고 한다.
그런 가운데 동북공정의 이론을 그대로 반영하여 고구려의 선조가 중국의 옛 민족인 고이(高夷)라고 기술하는 책을 중국 100여개 대학에서 교재로 쓰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분야의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런 류의 역사해석이 곧 중고등학교 역사책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그 뿐인가? 1억 명 이상을 대상으로 발행하는 세계적인 교과서 회사(피어슨 에듀케이션)는 한국을 중국의 속국으로 규정하는가 하면, 34개 세계 유명 기관에서 53개의 세계지도가 한반도 전체 또는 일부를 중국땅으로 표기하고 있으며(연합뉴스 2005.7.10), BBC 중국어판에 북한 전역이 중국의 영토로 묘사되기도 하고 북한 전역이 ‘동북4성’이라는 말이 공공연히 유포되는 지금 상황에도 알 수 없는 침묵이 흐르고 있다. 중국에 대한 비판의 강도를 높이면 “중국을 자극하는 것은 시대의 대세와 국제정세를 모르거나”, “세계화에 역행하거나”, “어딘가 모자라는 사람”으로 치부하는 분위기가 팽배하고 있는 듯하다.
[그림 ①] BBC 중국어판(『한겨레 신문』2006.5.26)
그리고 소위 외국에서 공부를 많이 한 지식인으로 자부하는 이들은 세계화니 FTA이니 하면서 민족을 운운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고 일축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들은 극우 민족주의 계열인 중국의 후진따오 주석이나 일본의 고이즈미 총리, 미국의 부시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최대한 자제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이다.
이렇게 긴 침묵이 흐르는 동안 중국은 슬며시 신라공정, 백제공정을 건드리기도 하고(湖北日報 2004.12.10 - 湖北省 共産黨 기관지 : 경향신문 2004.12.10 참고) 일본에 있는 발해의 유물들을 반환하라고 종용하기도 하며, 고대 유적에 대한 한국인들의 접근을 철저히 금지한 가운데 자기의 구미에 맞게 유적을 복원하는 동시에 동북공정을 이론적으로 합리화 하는 논문들을 쏟아내고 있다. 최근에는 백두산에서 대규모 군사훈련을 하여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기도 한다.
우리는 동북공정이 1990년대 시작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현대 중국 공산당(한족) 정부는 일관되게 한국을 중국의 실지(失地 : 일어버린 영토) 개념으로 파악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한국전쟁(1950)은 한족의 영토를 보호하기 위해 중국이 개입했다고 볼 수도 있다.
동북공정은 사실상 한족(漢族)의 중국공산당 정부의 수립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한국전쟁으로 정신이 없었던 1950년대 당시 중국정부는 “한국은 중국의 잃어버린 영토(失地領土)”라고 하였다. 즉 『중국근대간사(中國近代簡史 : 1954)』에 실린 지도에 따르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17개 지역이 원래는 중국영토였는데(여기에는 일본은 제외), 미국과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제국주의자들이 중국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하여 실지(失地)가 되었으므로 이제 회복해야한다는 것이다[Owen N. Denny(柳永博 譯註) 『청한론(淸韓論)』(동방도서 : 1989) 64쪽]. 이 책은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교과서의 일종이다. 이런 논리대로 한다면 한반도 전체가 중국에 넘어가는 것은 피하기는 어려운 형편이다. 다만 시기가 문제일 뿐이다.
[그림 ②] 중국의 실지(『중국근대간사(1954)』)
[그림 ②]을 보면 대만(臺灣)이 중국령이 되면 그 다음 차례는 한국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미 대만이 중국이 아니라고 보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점을 감안하면 중국과 접해있는 우리도 상당히 위태롭다.
현재의 동북공정은 고구려사나 발해사의 편입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백제공정과 신라공정이 줄을 이을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대대적인 양자강 발굴사업을 통해 한반도나 일본의 벼농사 기원을 연결시키려하고 있다(日本『文藝春秋』2005년 4月號 「長江文明發掘記座談」). 그런데 재미있게도 중국의 실지에 일본은 빠져있다. 중국에 보낸 조공이라면 일본도 만만치가 않은데 중국은 아마도 일본에 대해서는 다소 주눅이 든 듯하다.
2. 청산해야할 유산, 소중화 근성
대부분 한국의 지식인으로 자처하는 사람들은 한국 문화를 아류 중화문화로 착각하고 있다. 필자가 한국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과 대담을 하다보면, 이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은 “한국 문화가 있는가? 다 중국의 아류이지”하는 자조섞인 말을 듣곤한다.
한국의 최대 공영 방송이 『논어(論語)』강좌를 편성하는가 하면, 외교부 고위인사라는 자가 한국인의 본류가 중국에서 건너왔으며 중국인과 뿌리가 같은 것은 한국인뿐이라는 논리를 펴기도 하고, 대부분 지식인들이 『삼국연의』의 제갈량을 흠모할 뿐만 아니라 『삼국연의』를 사모하는 고급 지식인 모임들도 있다.
어디 지식인 사회만 그런가? 한국인들과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 때로는 입시상담, 홈닥터, 결혼상담, 비즈니스 카운슬러 역할 등을 하는 한국 무당들이 몸주로 두는 “수준 높고 힘이 센” 외국의 귀신들은 관성제군(관우), 소열황제(유비), 와룡선생(제갈량), 옥천대사(관우 사부), 오호대장, 감부인, 미부인, 손부인, 오방신장(도교계통) 등으로 대부분 중국의 통속소설인『삼국연의(나관중 삼국지)』의 등장인물이다.
한국 귀신의 계급을 분류한 조흥윤 교수(한양대)의 연구에 따르면, 한국 귀신은 ① 천신, ② 조상신ㆍ산신, ③ 유비ㆍ관우ㆍ장비 등 전내신(殿內神 : 별도의 건물로 모신다는 의미), ④ 최영ㆍ임경업ㆍ신립 ⑤ 가택신, ⑥ 터신, ⑦ 저승관련 신 등의 서열을 가진다고 한다. 가공의 인물인 옥천대사나 실제로는 별 비중도 없는 감부인, 미부인, 손부인까지 “나라를 위해 몸바치신” 우리의 장수보다 높이 모시고 있으니 장차 이 일을 어찌할 것인가?
KBS의 유명 드라마 '왕건'의 경우에도 『삼국연의』를 그대로 답습하는가 하면 국민 드라마라고 떠드는 MBC 드라마 ‘주몽’에서도 평범한 한족(漢族)의 여인을 국모(國母)로 둔갑시키고 백제의 시조는 상단의 행수로 전락시키고 있다.
그리고 중국만 빼면 우리가 중화이고 나머지는 모두 오랑캐로 치부하면서 한국의 역사 무대를 최대한 청천강 이남 또는 압록강 이남으로 스스로 제한하려는 축소지향형의 지식인들이 주류를 형성한 사회가 바로 인조반정 이후 조선과 현재의 한국이다.
이런 상태에서 만주 몽골 한반도 북부 전체의 역사를 중화민족의 대가정이니 중화의 역사이니 하면서 하나로 묶고 범한국인의 역사를 모두 파괴하려는 책동인 동북공정이 시작되었으니 한국의 지식인 사회가 제대로 대응할 리가 만무하다.
3. 동북공정, 대비는 있는가?
현재 우리의 학계에서는 동북공정에 대한 대안(代案)으로 ① 기존의 사학계가 추진하는 ‘고구려 지키기’, ② ‘요동사(遼東史)’ 개념[요동의 역사를 중국사도 한국사도 아닌 제3의 영역으로 보려는 시도] 등이 추진되어왔다. 여기에는 정부와 민간의 막대한 인적․물적 지원이 있었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와 노력는 동북공정에 대한 대비책과는 거리가 멀다. 그 동안 고구려 연구재단을 설립하여 해왔던 일이 과연 무엇인가 ? 그저 하릴없이 중국의 동북공정의 동향을 분석․소개하고 고구려 관련 역사책들을 간행하는데 온 정력을 쏟으면서 맹목적으로 고구려의 역사를 지킨다고 허둥대고 있다. 그 뿐인가? 중국이 던져놓은 미끼인 조공-책봉 에 관한 연구로 날과 밤을 지새고 있다.
‘고구려 역사 지키기’만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1천 4백여 년 전에 없어진 나라에 대한 계승권을 주장한다거나 조공-책봉에 대한 연구를 한다한 들 궁극적인 동북공정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설령 발해(渤海)의 역사를 지킨다 해도 이미 1천년 전에 없어진 나라이니 그 또한 동북공정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1천년 전의 국가의 토지대장이 있다한들 지금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국내의 경우를 봐도, 토지는 1~20년 동안 주인이 없으면 점유권을 주장할 수 있는데 이미 1천년이 지난 이야기로 역사를 지킨다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는 일이다.
고구려 역사 자체를 지키는 것은 그동안의 연구로도 충분한 것이다. 왜냐하면 과거의 역사적 고증이나 자료들을 통해, 고구려의 역사가 한족의 역사와는 다른 갈래인 것은 이미 다 검증된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또 그것을 중화의 역사가들도 대부분 인정해왔던 일이기 때문에 설령 이와 다른 견해가 있다한들 그것은 논쟁의 차원의 문제일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고구려의 역사가 현재에 이르기까지 줄기차게 한국인들의 역사로 면연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을 밝히는 일이다.
이를 위해 중요한 일은 우리 스스로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우리는 중화사상으로 세뇌되어 있던 닫힌 사고에서 벗어나 “한국인은 과연 누구인가?”를 좀더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요동-만주와 몽골 지역 범한국인들의 역사의 실체를 밝히고 그 공통성을 찾아서 한족과는 다른 범한국인의 역사의 범주를 자각하고 이를 바로 세워 세계적으로 알리는 것만이 보다 근본적인 동북공정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즉 고조선․부여․고구려의 역사가 북으로는 발해 - 요나라․금나라 - 후금(청)으로 계승되고 남으로는 신라 - 고려 - 조선 등으로 이어졌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자각하고 그것의 이론적 토대를 굳건히 세우는 길만이 동북공정의 해결책인 것이다. 여기에 일본과 몽골의 분화를 첨가해야 한다.
우리는 거의 해마다 우리 문화의 원형을 찾아야 한다고 부산을 떨면서 바이칼과 알타이를 찾고 있지만 그 성과들이 국사교과서에 반영된 적은 한번도 없다. 도무지 사학계는 마이동풍(馬耳東風)인 상태이다. 그러면서 몽골이나 만주를 범한국인들의 역사라고 하면 ‘아마츄어리즘’으로 매도하고 아예 상대를 하지 않는 것이 고고한 학자로서의 품위를 지키는 일 쯤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는 과정에서 한국에만 나타나는 ‘재야사학자’ 그룹들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보수 사학자들이 말하는 교과서의 내용과 역사적 사실의 괴리가 심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면 이 고고한 학자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무엇인가?
동북공정(東北工程)에 맞서기 위해 이들이 개발하는 대응논리라는 것이 ① 고조선과 부여의 주민 구성 및 국가형성, ② 고구려와 발해의 계승성, ③ 한중 외교관계에 대한 연구(조공과 책봉을 중심으로), ④ 근대 동아시아 국경 획정과정 등이다.
그러나 이 논리들은 동북공정에 대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우리 스스로 소중화주의적(새끼 중국인 근성) 인식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사료를 찾으면 찾을수록 중국 측에 유리한 증거들이 나올 수밖에 없다. 수천년 동안 우리 스스로 한반도의 한국인들을 기준으로 한국인들을 하나씩 솎아왔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미 우리 형제들인 만주와 몽골의 쥬신(Jüsin : 한족들이 말하는 이른 바 동이와 북적)을 우리의 역사에서 제외시켰기 때문에 발해 이후의 만주의 역사를 우리의 역사라고 주장한 들 소용이 없는 일이다. 지금 사학계에서 추진하는 방식이 최고로 성공을 해도 고구려와 발해까지만 (그것도 지배층의 역사만) 우리의 역사고 요, 금, 몽골, 후금(청)의 역사는 당연히 범한국인의 역사에서 제외된다.
발해가 멸망한 해는 926년으로 이미 1천 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1천 년 동안 만주는 이제 우리 역사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 결국 우리의 보수 사학계는 만주사는 중화역사의 일부라는 한족(중국)의 논리를 열심히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필자가 지금까지 설명해왔듯이 요동과 만주는 한국 역사의 근원이 되는 지역일 뿐만 아니라 범한국인의 역사를 모르고서 한반도의 역사도 알 수 없거니와 진정한 우리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도 알기가 어렵다 ([특집2], [특집3], [특집4], [특집5], [특집6] 참고).
예를 들어 우리가 오랑캐로만 알고 있던 청나라의 건국(1616)을 오늘의 사정에 빗대어 쉽게 설명하면, 연변(청나라 건국세력인 건주여진의 근거지) 일대의 조선족 또는 고려인(조선도 명나라 백성도 아닌 한국인들) 10만 정도가 결집하여 세력을 형성하고 만주 - 몽골 일대의 유목민들을 모두 규합하여 큰 세력을 형성한 후 남하하여 중국을 지배한 것이다. 그들이 왜 오랑캐인가? 그들이 오랑캐라면 오늘날 중앙아시아를 떠도는 많은 고려인과 만주 일대에 흩어져 있는 조선족들도 한국인이 될 수가 없다(병자호란의 상황도 제대로 알려면 『대쥬신을 찾아서』 2권 황혼에 온 단군왕검의 편지 - 조선사 5백년 최악의 쿠데타 인조반정 참고).
[그림 ③] 명나라 때의 여진족(만주쥬신)
한국의 보수 사학계는 『삼국사기』에 나타나는 말갈도 현재의 서울 - 개성 - 경기도 남부 - 강원도 등지에 나타나는데도 이를 오랑캐로 간주하고 있다(그러면 그 후예들인 서울 경기 주민들도 오랑캐가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만주지역의 말갈과는 또 다른 집단으로 간주하고 있다. 그래서 영서말갈이니 영동말갈이니 하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자가당착(自家撞着)도 이 정도이면 혀를 내두를 정도이다. 그들이 한국인이 아니면 도대체 누구인가? 연구를 깊이 해보면 이들은 결국 고구려의 지방민이라는 결론(한규철 교수)에 도달하게 되는 데 말이다. 사실 말갈은 한국인들의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에 불과할 뿐이다.
동북공정의 또 다른 대안으로 거론되는 ‘요동사’ 개념은 더욱 의미가 없는 시도이다. 요동사 개념은 요동의 역사는 중국의 역사도 아니고 한국의 역사도 아니라는 논리이다. 지금까지 보아왔듯이 요동은 우리 민족의 주요 근거지이며 근․현대 한국인들의 시원(始原)이 되는 곳인데 이것을 한국의 역사에서 분리 한다니 도대체 납득하기 어렵다.
‘요동사’ 개념에서 말하는 한국이라는 것은 삼한(三韓)의 개념을 근거로 하는데 이것은 지나치게 중국의 사서(史書)만을 중심으로 개념화했기 때문이다.
한국이라는 개념은 한반도 남단에만 있었던 삼한(三韓)을 포함하여 북방계 유목민의 천손 사상(天孫思想)을 나타내는 용어이다. 즉 한국은 한국(韓國)이 아니라 순 우리말인 큰(한), 가운데(中), 중심의 나라 등을 의미하는 말로 한국을 한자로 표시하면 중국(中國)과도 같은 의미이다(이글의 후반부에서 다시 충분히 분석할 것이다). 이것은 국어학자들은 물론이고 신채호 선생, 정약용 선생도 지적했던 바이다. 우리의 삶의 터전을 의미하는 한국이라는 말은 오히려 칸국(汗國)과 같은 의미의 말이다(구체적인 분석은 『대쥬신을 찾아서』 1권 참고). 이들은 오직 중국 사서만을 판단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듯하다. 충고하거니와 범한국인들의 역사는 한국인들 고유의 언어와 함께 연구해야만 비밀이 풀린다.
‘요동사’ 개념이 가진 가장 심각한 문제점은 우리 민족사의 진원지 자체를 근본적으로 부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백제, 발해 등은 모두 요동을 근거지로 하거나 요동을 주요 활동무대로 한 국가이다. 특히 백제는 남부여(南扶餘)라고 하기도 하여 충실한 부여의 후손임을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들 국가들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요동의 국가라고 한다면 상식적이지 못하다.
지금 우리 정부나 사학계는 지나친 소중화 의식이 가져온 뫼비우스의 띠 속에 갇혀 있어 마치 바다에 엄청난 태풍이 몰려오고 있는데 배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지는 않고 선실(船室) 속에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같다. 이들은 고구려 역사만 방어하면 모든 일이 끝난다고 생각하는 유아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게 아닐까?
지금 우리가 해야할 일은 고구려 역사의 방어는 물론이고 만주 전역의 역사의 영속성과 우리의 역사와의 연계성을 찾아내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동북공정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범한국인의 역사 즉 쥬신(Jüsin)의 관계사를 중심으로 동아시아 역사를 다시 보는 것이다. 범한국인의 쥬신 관계사의 입장에서 보면 동북공정이라는 것이 얼마나 황당하고 무식한 논리인지를 쉽게 알 수 있다(이하는 『대쥬신을 찾아서』 2권 전면 인용).
첫째, 중국의 주변민족들이 한족(漢族)과 함께 하기에는 한족(漢族)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이 너무 뚜렷하다는 것이다. 한(漢) 나라 이후에는 중화사상이 매우 견고히 형성되어 대부분 주변민족들을 그들의 통치 및 교화 대상으로 격하되었다. 그래서 주변민족의 이름들이 모두 개․돼지․승냥이와 같은 욕설로 지칭되어있다. 애초에 한족(漢族)과 주변민족은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한족(漢族)과 그 주변민족들의 역사와 문화적인 특성이 워낙 다르고 지역적인 경계 또한 분명히 나누어져 있다. 사실 한족(漢族)과 사이(四夷)를 나눈 것은 쥬신이 아니라 바로 한족(漢族) 자신이다.
한족은 그들과 주변민족(사이 : 四夷)을 분명히 분리시켜 “결코 융합할 수 없는 물과 기름의 관계”임을 누누이 천명해 놓고서 이제와서는 그들이 결국 중화민족(中華民族)이라고 강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명나라의 변장(邊牆)이다. 1479년 명나라는 산해관(山海關) - 광녕[光寧 : 광닝(北鎭)] - 개원(開原 : 카이위안) - 압록강까지 변장을 쌓았다(『明憲宗實錄』卷35). 이변장은 한족과 쥬신의 경계가 되는 장벽으로 “사실상”의 국경이기도 했다(『明憲宗實錄』; 『明史』卷328). 이 변장은 만리장성과 현재의 랴오닝성(遼寧省)을 연결한 것으로 명나라는 대체로 만리장성 이남과 랴오뚱(요동) 반도를 한족의 영역으로 본 것이다. 즉 현재의 랴오닝성 지역은 명나라의 국경 수비 지역이었고 그 이북은 사실상 관할하기 힘든 범한국인[쥬신(Jüsin)]의 영역임을 명나라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셋째, 발해는 분명히 고구려를 계승했으며 금과 후금은 발해 또는 신라를 계승한 나라이다. 민족 구성이 그렇고 그들의 실록이 그렇게 밝히고 있는데 왜 그것이 한족의 역사에 편입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인종적 문화적으로도 한족(漢族)과 다를 뿐만 아니라 금의 건국자들은 아무르 강 유역을 근거지로 했으며 이들은 고구려와 발해의 유민들이다. 그리고 요나라나 금의 계승자인 후금(청)의 건국 세력이 흥왕(興王)의 땅이라고 부르는 지역은 장백산(태백산, 백두산)으로 명백히 한반도의 한국인들과 그 신성(神聖)함을 공유하고 있다. 산해관이 중국의 땅이듯이 장백산(태백산, 백두산)을 비롯한 요동, 만주도 쥬신의 땅이다.
현대 중국 공산당은 2차대전의 큼바구니에서 어부지리로 청나라의 영역을 고스란히 공짜로 차지하여 오늘날과 같은 거대 국가가 되었지만 현대 중국정부와 청나라 정부와는 역사적 계승관계는 전혀 없는 것이다(마치 머슴이 주인이 죽자 주인의 모든 재산을 차지하고 주인의 역사조차도 자기의 역사로 만들어 버린 것과도 같다). 한족 스스로도 자기들이 만주쥬신(만주족)의 후예라고 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다. 청나라 말기 한족들이 일관되게 추진한 것은 멸만흥한(滅滿興漢 : 만주족을 멸하고 한족을 부흥시킨다) 정책이었다.
다시 말해서 현대 중국정부가 청나라의 영토를 법적으로 계승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현대 중국정부는 단지 만리장성의 이남의 땅에서만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뿐이다. 최대 영역으로 잡더라도 명나라의 영토를 기준으로 하여 한족의 영역으로 봐야 한다. 따라서 티벳, 만주, 내몽골 등 중국의 변방의 땅은 한족의 땅과는 상관이 없는 만주쥬신이 개척한 영역일 뿐인데 무자비한 학살을 감행하여 한족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족은 주변민족 특히 쥬신의 역사는 계승할 생각이 전혀 없으면서 영토만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계승해 왔다. 그러던 가운데 만주와 몽골을 비롯한 쥬신의 역사와 민족, 문화는 철저히 말살해왔다.
네째, 중국은 조공(朝貢)을 가지고 정권의 종속성의 근거로 삼고 있는데 이것은 지금까지 본대로 황당한 논리에 불과하다. 즉 중국은 각 주변 나라들이 행했던 과거의 외교적 레짐(regime)을 그 국가들에 대한 현대의 새로운 지배권 확립의 근거로 삼고 있다는 말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도대체 한족이 조공을 받은 경우가 얼마나 되는가? 한나라 - 명나라 정도에 불과하고 북중국은 대부분 범한국인(쥬신)이 통치한 경우가 많았다(상세한 내용은『대쥬신을 찾아서』2권 15장 - 중국은 미국의 지방정권? - 참고).
원래 중국(中國)이라는 것은 국호가 아니고 한국이라는 말과 같이 세상의 중심( center of the world)이라는 보통명사인데, 이 말이 중화민국(1912)과 중화인민공화국(1949)의 성립 이후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다. 그러나 중화민국이나 중화인민공화국이라는 말의 의미에는 단순히 세계의 중심으로서 중국이 아니라 화하족(華夏族 : 한족의 고유명칭)이 중화사상에 입각하여 세계를 지배한다는 사상이 들어있다.
즉 한족들이 통치할 때는 자기 고유의 나라 이름(漢이나 明)을 사용하다가 쥬신이 통치할 때는 보통명사 중국을 들어 마치 중화의 한족이 지속적으로 세계의 중심을 통치한 듯이 떠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한족들은 몽골의 원나라도 마치 한족의 중국인처럼 보이게 유도하고 있다. 다만 안타까운 일은 칭기즈칸의 몽골은 세계적으로 워낙 많이 연구된 분야라서 이들의 시도가 성공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렇지만 대부분 서양인들이나 일반인들의 혼돈을 유발하는데는 크게 성공하고 있다. ‘교언영색 선어인(巧言令色 鮮矣仁)’이라더니 정말 중국인 답다.
현대 중국 정부는 소국에 불과했던 주(周)나라와 최초의 한족 통일왕조 한(漢)나라의 경우를 들어서 고대사를 재단하다가 남북조시대~원나라에 이르면 보통명사인 중국을 들고 나와서 현대 중국정부와 동일시하고 있다. 말을 얼마나 교묘하게 했으면 그 많은 한국인들이 농락당했겠는가? 그 잘 나고 고고한 학자들까지도 말이다. 그리고 또 명나라 때는 다시 고유명사처럼 사용하다가 청나라의 시기를 평가할 때는 보통명사 중국을 들고 나오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중국을 통치한 대부분 정권이 오히려 쥬신(Jüsin)이다. 그런 논리로 치자면 현재 대부분의 중국 땅은 몽골(몽골쥬신)이나 만주족(만주쥬신)들에게 다시 돌려줘야할 것이다.
다섯째, 만주와 요동 등은 중화의 고유 영토와는 무관한 지역이다. 산해관(山海關)을 정점으로 하여 만리장성(萬里長城)이 시작되는데 만리장성은 한족(漢族) 스스로 한족(漢族)과 쥬신(Jüsin)과의 경계를 명확히 나눈 것이다. 나아가 청나라(만주족)이 세운 유조변(柳條邊 : 한족출입 금지구역)도 쥬신(Jüsin)과 한족(漢族)을 나누는 중요한 경계선이다. 이 선은 만리장성과 거의 일치하는 선이다.
중국공산당 이전에는 요동과 만주를 한족(漢族)이 직접 지배한 적이 거의 없는데 왜 이제 와서 중국정부는 요동과 만주의 역사가 현대 중국의 역사라고 강변하는가? 현대 중국공산당 정부는 그 지역이 현대 중국의 영역이기 때문이라는 상식이하의 논리를 펴고 있다. 그러면 과거 몽골(원나라)이 중국 전토를 지배했으니 그 이전의 한족의 역사가 모두 몽골의 역사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 뿐인가? 청나라 때에는 춘추전국은 물론이고 한(漢)나라의 역사도 모두 만주족(청나라)의 역사가 되어야 한다. 또 일본이 도발하여 중국 남동부를 점령했던 시기(중일전쟁 - 2차대전)에는 동진 - 송 - 제 -양 - 진 - 남송 - 명나라 등도 모두 일본의 역사가 될 것이다. 이것이 이른 바 동북공정이라는 것이다.
이런 중국(한족)의 수준 미달의 논리를 반박하는데 돈과 힘을 낭비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대로 범한국인의 역사 즉 쥬신사(Jüsin history)를 바로 세워 국제적인 언어로 번역해서 세계에 알리고 홍보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일일 것이다.
대부분 한국인들은 한국인들의 역사가 한반도에만 고착된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데 사실은 다르다. 그것은 다만 새끼 중국인 근성에 물든 성리학자들과 보수사학계가 줄기차게 공작을 해왔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일 뿐이다.
해방 이후에도 금나라의 역사를 한국의 역사에 편입하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현재의 보수 사학계가 이를 거부한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 그것을 보수사학계만의 책임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조선 시대 특히 인조(仁祖) 이후의 지식의 주류가 소중화주의적인 사고에 깊이 빠져들었기 때문에 이병도를 위시한 보수사학계는 그런 류의 소중화주의적 전통을 고수한 것에 불과하다. 조선의 혼군(昏君) 인조 이후 우리에게는 한번도 정신 혁명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 정부와 학계에서 추진하고 있는 동북공정의 대안이라는 것이 전혀 대안의 구실을 못하는 지금 그들에게 무작정 맡겨 두어서 될 일인가? 이제 보다 근본적인 대책들이 수립되지 않으면 안 된다.
고구려 연구재단에 투입한 돈의 10분의 1만이라도 투자하여 새로운 동북공정 대안 연구 단체를 만들어 대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릴없이 고구려 관련 서적들만 봇물처럼 출판하거나 중국이 파 놓은 함정이나 미끼에 정신없이 허둥될 것이 아니라, 보다 구체적으로 한반도에 국한된 편협한 민족주의를 지양하여 ① 우리 민족사와 직접 관련이 있는 『북사』, 『요사』,『청사』『원사』등 관련된 부분을 번역하여 방대한 사료를 만들어 전문 연구자들의 자료는 물론이고 일반인들이 이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하여 쥬신의 역사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② 현대의 과학으로 검증된 수많은 자료와 관련 민속학 등을 DB화 - 네트워크화하고 이것을 신속히 교과서에 반영하며, ③ 동북공정에 보다 체계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광범위한 사료수집과 이와 관련 전문가들의 양성은 물론, ④ 해외에도 쥬신의 역사를 포괄적으로 알릴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어차피 조삼모사(朝三暮四)에 능한 중화 정부는 실질적으로는 막대한 자금을 주면서도 겉으로는 민간단체의 설전으로 동북공정을 몰아가려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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