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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는 빗 속에서의 떠남 Leaving in the rain - 스티브 행크스 作) |
간이역 부겐빌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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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아주 오래전에 나의 집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아주 자그마한 간이역이 |
있었습니다. 그 간이역에는 하루에 두 번 기차가 지나 다녔으나 이를 |
이용하는 승객이 거의 없어 거의 폐 역사나 다름 없었습니다. |
어느 늦은 가을이었습니다. |
간이역에 맞닿아 있는 산 정상이 붉은 단풍이 곱게 물들어 있고 그 산 |
그림자 위에 저녁 노을이 걸치는 어느 늦가을 날 나는 집으로 들어 |
가다가 우연히 간이역에 멈춰 서있는 객차의 유리창에 비친 예쁜 |
그녀를 처음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
그녀는 하얀 블라우스를 입고 해맑은 표정으로 긴 머리를 쓸어 올리며 |
자연스런 미소를 머금은 채 간이역 너머 밭두렁의 감나무에 주렁주렁 |
달린 누런 감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습니다. |
나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에 감사하며 그 서늘한 신비감에 묘하게 |
사로잡혀 한참을 그녀를 바라 보았습니다. 그런 나를 하늘도 감동하였 |
는지 따사로운 햇살로 흠뻑 비쳐주었습니다. 문득 전락이란 단어가 |
떠올려 졌습니다. 계속 바라보고 싶었으나 바라볼 수 없는 안타까움이 |
기차의 경적 소리와 함께 재빨리 절망감으로 바뀌었습니다. |
기차가 서서히 움직이자 그녀는 내가 잠시나마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 |
하며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는 듯 맑은 눈을 들어 보이지 |
않을 때 까지 나로부터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
나는 그 뒤로 나의 집으로 들어갈 때는 가능한 기차가 지나다닐 시간 |
에 맞춰 자주 간이역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혹시나 그녀를 다시 볼 수 |
있을까 하여 간이역에 멈춰 선 기차의 창가를 유심히 바라보곤 했지만 |
그녀를 볼 수 없어 나의 바램은 언제나 고개를 숙이게 하였습니다. |
그리고 두 해가 더 흘렀습니다. |
유난히 푸른 가을 하늘을 바라보며 그 날도 코스모스 꽃 길을 따라 집 |
으로 들어가는 길이었습니다. 날씨는 쾌청한데다 구름마저 예쁜 모습 |
을 하고 있어 왠지 그 날은 좋은 일이 꼭 일어날 것 같았습니다. |
여느 날처럼 간이역에는 기차가 멈춰 있었고 몇 몇 사람들이 기차에서 |
내리고 타는 모습을 나는 무심히 바라보다 그들 속에 그녀가 있음을 |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
갑작스런 환희와 설렘 그리고 부끄러움이 가슴을 더욱 뛰게 만들었습 |
니다. 나는 가슴을 억누르며 조심스럽게 다가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 |
습니다. |
"여보세요? 지난 두 해 동안 내 그대를 보고 싶어 그대를 얼마나 찾았 |
는지 모릅니다. 이 곳 간이역에서 당신을 처음 본 순간 그대를 좋아 |
하게 되었고 그 때부터 그대를 줄 곳 기다려 왔습니다. 꿈속에서라도 |
그대 다시 보고 싶은 생각에 매일 밤 그대 꿈을 꾸고 있었지만 안타 |
까움 가눌 길 없어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 자주 간이역을 서성거렸습니 |
다. 내 오늘에서야 비로소 예쁜 그대를 다시 만나 그 동안 못다했던 |
내 가슴속에 숨겨온 이야기를 들려 드리고자 하오니 애써 외면하지 |
마세요." |
"이보세요? 저는 당신을 정말 잘 모릅니다. |
당신과 제가 2년 전 이 간이역에서 처음 본 후 기약 없는 두 해가 이미 |
흘렀습니다. 그 동안 변함없이 제게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다려 주신 |
것에 대해 제가 진정으로 보답할 길이 없어 실로 답답한 마음을 헤아 |
릴길 없습니다 . |
하지만 저는 이미 일년 전 사랑하는 사람과 정혼을 했고 지금 그 사람 |
을 만나러 가는 길입니다. 만일 제가 그 사람과 정혼을 하지 않았다면 |
오늘 당신의 간절한 청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 들였겠지만 저는 이미 |
그 남자의 여자로 살지 않으면 안되는 사람입니다. |
아쉽지만, 하늘이 정한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 겠지요. 당신의 뜻을 |
받들지 못해 정말 미안합니다." |
2 |
가을이 가고 춥고 지루한 겨울이 왔습니다. 높고 푸르던 가을 하늘은 |
회색 빛 낮은 구름으로 자주 뒤 덮이는 날이 많았지만 눈은 오지 않았 |
습니다. 그 해 겨울은 여느 해 겨울보다 추운 겨울이었나 봅니다. |
간이역을 여러 해 동안 수없이 지나다녀도 간이역 처마 자락에 달린 |
고드름을 본 것은 그 해 겨울이 처음이었습니다. |
나는 그녀와 속절없이 헤어진 이후에도 줄 곧 간이역을 오가며 객차 |
를 바라다 보았습니다. |
표현할 수 없는 그녀의 이끌림으로부터 중독된 습관처럼 굳어진 사모 |
의 마음이 계절의 변화와 삶의 희롱에도 아랑곳 없이 자연스레 그 곳 |
을 지날 때면 그녀가 앉아 있었던 객차 자리를 바라보고는 했습니다. |
하지만 그 자리에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가끔은 빈 |
자리로 남아 있어 쓸쓸한 느낌을 주는 날도 더러 있었습니다. |
여름이 오자 나는 매일같이 반복되는 기대감의 일탈로부터 피하고자 |
집으로 들어 갈 때는 일부러 간이역을 멀리 돌아 집으로 갔습니다. |
지면으로부터 농무가 끼고 굵은 비가 종일토록 내리는 어느 오후인가 |
봅니다. 괜시리 비 오는 풍경으로부터 얻고 싶어지는 그 날의 나만의 |
센티멘털! |
그 날은 일찍 업무를 끝내고 서둘러 우산을 받쳐 들고 집으로 가려다 |
간이역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기차를 타고 내릴 시간이 아니어서인지 |
텅 빈 대합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대합실을 나서 이제 철로를 |
건너려 좌로 고개를 돌렸습니다. 시선 속에 우산을 받쳐 든 한 여인 |
이 앉아 철로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
노란 우산은 쓰고 있었으나 꽃무늬 원피스에 허리선을 강조하기 위해 |
넓은 벨트를 하고 비 오는 철길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모습이 고독해 |
보였으나 이내 더할 수 없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
나는 용기라는 이름으로 그 여인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기로 했습니다. |
"여보세요? 그대가 누구신지 모르지만 이 비 내리는 간이역 철로에서 |
외롭게 앉아 계신지 모릅니다. 바라건대, 내가 그대의 홀로 있는 시간 |
앞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 좀 내어 |
주겠습니까? |
"아닙니다. 저는 지금 혼자 이 비 오는 풍경 속에 나를 맡겨 어지러운 |
나의 마음을 가라 앉혀야 합니다. 원하건대, 혼자 하는 이 시간 괜시 |
리 방해 받기를 바라지 않으니 그대 오셨던 길 그대로 고이 가소서!". |
그러면서 그 여인은 다가온 낯선 남자에 대한 관심인지 아니면 예의 |
때문이지 살짝 고개를 들어 나를 올려다 보았습니다. |
순간 우리는 둘다 의외의 조우에 감짝 놀라 "어~" 소리를 동시에 뱉지 |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
나는 너무도 우연한 행운에 감격한 나머지 목소리도 가볍게 떨리면서 |
재빨리 그녀에게 반가운 인사와 더불어 이유를 궁금함으로 질문 던져 |
보았습니다. |
3 |
"여기는 웬일이세요? 이렇게 다시 만나다니 정말 정말 너무 반갑습니 |
다. 그리고... 저~~~ 결혼은 하셨나요?". |
"안녕하셨어요? 저는 잘 지냈습니다. 아침부터 비가 내리기에 오늘 |
여길 와보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간이역에 아무도 없길래 소녀이고 |
싶은 심정으로 돌아가 마음의 비를 맞으며 한참을 앉아 있었습니다. |
괜챦으시면, 저랑 같이 잠시 감상해 보실래요?". |
그녀는 명랑소녀처럼 활짝 웃으며 연인같은 친근감을 내보이며 자신 |
의 옆에 내가 앉아도 좋다는 싸인을 손으로 재촉하여 보냈습니다. |
나는 지난 수년 동안 내가 열열히 마음 속으로 좋아했으나 단 한번 |
밖에 가까이 다가가 보지 못한 그녀에게 예기지 못한 환한 웃음을 받 |
으며 나는 그녀의 작은 우산속으로 재빠르게 들어 갔습니다. 아니 |
그녀의 거부할 수 없는 매혹에 이끌려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
마음이 한 시도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
하지만 남녀가 유별한지라 한 쪽 어깨가 비에 다 젖는데도 그녀에게 |
바짝 다가 앉을 용기가 나에게는 없습니다. 그런 내게 그녀는 자기 옆 |
에 좀 더 가까이 다가와 앉으라고 팔을 잡아 당깁니다. |
그녀 앞으로 다가앉는 나의 얼굴이 일순간 달아오르며 붉어지는 표정 |
을 얼버무리기 위해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
"저기요? 나는 당신에 대해 너무 잘 모릅니다. 이름도, 나이도 그리고 |
무엇하며 어디서 누구와 함께 사는지? 이 밖에도 궁금한게 너무 많지 |
만 오늘은 이 중 이름만이라도 꼭 알고 싶습니다." |
"그게 그렇게 궁금하셨어요? 천천히요. 저기 보이는 저 백일홍의 붉은 |
꽃잎이 바래지기 전에 저의 이름을 알려 드릴께요. |
당신의 마음속에 오래전부터 제가 들어 있고 저의 가슴속에도 당신이 |
남긴 그리움이 숨겨 있습니다. 우리 둘만을 빼고는 아무도 없는 이 |
호젓한 간이역 철로 위 하나의 우산속에서 오늘 손을 마주 잡았으니 |
정녕 세상은 우리가 서로 사모하는 마음을 모를지언정 우리는 서로를 |
바라보는 이 애틋한 눈 빛은 나중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지요?" |
"혹시 그 동안 나를 좋아 했었나요? 우리의 인연은 믿으시나요? 내가 |
이 간이역에서 그대를 처음 본 후 그대는 나의 기억속에 영원히 지워 |
지지 않을 당신으로 온전히 남았지만 그대에게 나는 그저 낯 모르는 |
한 여인을 짝사랑한 뭇 남자에 불과합니다. |
불쌍한 이 남자를 이토록 가까이서 좋아해주시니 사뭇 감격하여 몸둘 |
바를 모르겠습니다. 지금 감사의 마음에 목이 메어 다시 집으로 돌아 |
갈 그대의 길을 편안하게 하기 위해 말이라도 되어 천리라도 달리고픈 |
나의 마음을 온전히 받아 주세요." |
그녀는 대답 대신 "우산위로 떨어지는 빗 소리가 너무 듣기 좋네요. 꼭 |
플라타너스 잎 새에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똑·똑·똑 소리가 나는게 여간 |
운치가 있는게 아니에요." |
"네. 그렇네요. 비오는 날 사람들은 저기압으로 인해 대부분 기분이 |
차분해지는데다 비는 곧 주위의 소음을 거둬들여 주위를 조용하게 |
만듭니다. 내 비록 향기나는 그대 옆에서 정신없지만 분명 우리가 느끼 |
고 있는 이 빗소리는 세찬 비바람일지라도 정감있는 빗소리로 들리게 |
될 뿐입니다." |
비는 계속하여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사람 소리가 |
들려 부득이 나는 잡고 있던 손을 놓고 일어서지 않으면 안되었습니다. |
숨막히던 시간을 벗어나는 안도감 속에 한번만이라도 그녀를 껴안아 |
보고 싶었던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
나는 우산을 펼치며 조심스럽게 그녀에게 물어 봤습니다. "휴대폰 좀 |
보여줄 수 있어요?" 그녀는 웃으면서 "저는요. 제 휴대폰은 절대로 |
남자들에게 보여주는 법이 없는데요. 그렇지만 당신은 좀 다름니다. |
제가 휴대폰을 보여주지 않으면 다시 이 간이역에서 나를 기다리실 것 |
이기에 당신에게만 보여 드릴테니 어서 이 휴대폰으로 당신에게 전화 |
를 거셨으면 합니다. 어서요." |
내 우산 속으로 그녀가 들어 왔습니다. 그녀는 자연스레 내 팔을 끼고 |
는 어디든 오래도록 비오는 거리를 걸어보고 싶다 합니다. |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습니다. 비오는 거리라도 그녀와 함께 걷는 |
것이라면 행복한 시간들로 채워질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
전나무 길을 한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 산자락 아래 개울가에 |
도착했습니다. 맑은 개울물에 내리는 빗방울이 떨어지며 여울지는 |
모습이 그날따라 무척이나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
전나무 숲 사이로 떨어지는 빗소리여서 그런지 비는 세차게 내리는 |
데도 숲은 너무나 조용했습니다. 가끔씩 산을 타고 내려오는 비바람 |
때문에 산 자락의 소나무들은 솔 잎에 머금은 물을 공중에 날리며 |
솔바람 소리를 냈습니다. |
비오는 날의 우수가 그녀의 신비와 맞물려 자꾸만 그녀에게 가까이 |
다가서려 하는 어색한 마음이 일었습니다. 그런 내 마음을 그녀는 |
읽고 있었는지 살짝 미소를 지어보이며 분위기를 일탈하는 제안을 |
했습니다. |
"저기요? 저 개울가에 가보지 않을래요? 저기 저 평평한 바윗돌에 |
앉아 잠시 쉬었다가 돌아가는 것이 좋겠네요" 하면서 그녀는 내 팔을 |
잡아당겨 그곳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
사실 우리는 서로 어떤 인연이라도 만들고 싶어했는지 모릅니다. |
그래서 비오는 날 인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곳까지 와서 차분 |
히 마음을 가자 앉히고 끝내 아무런 기억도 남기지 않고 그냥 왔던 |
길을 되돌아 간다면 지금 이 우연하고 묘한 신비감에 사로잡혀 있는 |
이 순간으로부터 마음의 빚을 깊이 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
아주 짧은 시간였지만 나의 마음이 여러 갈피로 방황하는 동안 그녀 |
는 바위 위에 손수건을 깔고 앉으며 연인처럼 자연스런 다정함으로 |
더욱 친근감을 내비쳤습니다. |
"자! 저를 보고 바윗돌에 앉아 주실래요? 제가 지금 당신의 발을 씻겨 |
주려 합니다. 웬지 그러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서요? 너무 부끄 |
러워 하시는군요. 괜챦습니다. |
"네". |
"기분이 어떤가요? 아무도 없는 이 비오는 개울가에서 당신이 그토록 |
좋아하는 제가 지금 당신의 발을 씻고 있습니다. 웃음이 저절로 나옵 |
니다". 자! 보세요. 부끄러워 고개를 돌리지 마시고 제 얼굴을 가까 |
이서 봐 주실래요? 그것도 아주 가까이요. 넘 예쁘죠?" |
순간 잠재울 수 없는 내 마음의 흔들림이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겉잡 |
을 수 없었지만 애써그녀의 매혹으로부터 벗어나려는 표정은 얼굴 |
까지 감출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그녀에게 나의 속내를 털어놓았습니 |
다. |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그대는 내게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을 안겨 |
주었습니다. 하지만 면전에서 너무 예쁜 그대를 바라보니 숨이 막혀 |
감당이 안됩니다. |
내 일찍이 그대를 좋아해서 여지껏 바라만 보며 그 손길 우연이라도 |
받을까 싶어 꿈속에서라도 그대를 기다려왔지만 지금 그대의 따뜻한 |
손길 느끼며 그대를 바라보고 있는 이 순간 비록 내 마음이 시키는 |
일이지만그대를 포옹하고 싶어 견딜수가 없습니다. 청하건데, 그대 |
지금 꼭 안아보고 싶습니다." |
"괜한 일을 가지고 너무 어려워 하시는군요. 당신은 이미 오래전부터 |
정인군자가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냥 마음 가는대로 하십시요. |
당신이 정인군자가 아니 듯 저 또한 요조숙녀는 아닙니다. 그렇다고 |
아무 남자나 좋아하고 그러다가 사랑에 빠지는 그런 천박한 여자는 |
더 더욱 아닙니다. |
네. 그렇군요. 수년전 저의 정혼에 대해 속으로는 매우 궁금해 하시 |
면서 왜 그 정혼에 대해 다시 되묻지 않는지 그 이유는 오히려 제가 |
더 궁금해 집니다. 혹시 제가 그 때 결혼이라도 하여 그 누군가에게 |
마음의 부담을 느끼는지요?" |
"그대를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그대를 포옹하니 너무 좋습니다. |
'좋아한다, 사랑한다'는 말로 이 행복을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요? |
하지만 지금 이 말은 나의 진심입니다. 비록 나중에 지키지도 못할 |
사랑의 맹세라도 지금 그 말들을 하고 싶으나 그럴 수 없어 안타까울 |
따름입니다. |
오래 전 간이역에서 그대를 두번 째 만났을 때, 이미 그대는 정혼을 |
했고 정혼자를 만나러 가던 길이었습니다. 지금껏 그대를 어떤 결과 |
를 기대하고 좋아해온 것은 아니지만 오늘 그대를 가까이서 만나고 |
보니 정말 욕심이 납니다. |
내가 들어 좋은 말이 아니라면 아니 되돌릴 수 없는 것이라면 애써 |
설명해 주지 않아도 괜챦습니다" |
"네. 그러면 그런 것들은 비밀로 해요. 오늘 우리의 이 우산속에서의 |
포옹도 우리 둘 만의 비밀입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꼭 알려드려야 |
할 게 있어요. 이것저것 당신이 물으신다면 그야 제가 가려서 대답해 |
드리겠지만 제 이름과 전화번호는 알려드려야 우리가 다음에 다시 |
만날 수 있지 않을까요?" |
그러면서 그녀는 그녀의 고운 이름을 한 번은 한자로 또 한번은 한글 |
로 또박 또박 속삭여 주었습니다. |
4 |
그녀와 포옹한 이후 그녀의 행방은 줄곧 묘연했습니다. 내게 귓속말 |
로 알려 주었던 전화번호로 그녀에게 여러 번 전화를 걸었으나 끝내 |
아무런 응답이 없는걸로 보아 분명 말 못할 곡절이 있는가 봅니다. |
여자들은 이별에 대해 이렇게 말을 합니다. 한 때 사랑했으나 헤어 |
져서 다시는 전화를 받지 않는다면, 그 의미는 '그 남자를 사랑해서 |
그 남자가 자신으로부터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하기 위한 배려가 |
숨어 있음을 알라는 신호'라고! |
그렇다고 해서 여자들의 입장에서 이별이 그리 쉬운 일도 아니라고 |
말을 합니다. 여자들은 이별이 있은 후 처음에는 눈물을 흘릴만큼 |
그 고통을 감당키 어려운 일이 되지만 곧 냉정을 되찾고 평온을 유 |
지합니다. |
하지만 남자들은 다릅니다. 처음에는 '이별이 뭐 대수인가?'하며 |
손 쉬운 감정으로 정리하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추억속에 |
연연하며 손 쉽게 지난 감정을 정리하지 못합니다. |
이것은 여자와 남자의 심리가 다른데 기인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
여자들은 이별후에도 친구들에게 자신의 감정을 쉽게 털어놓을 수 |
있어 감정의 일단을 정리할 수 있지만 남자들은 자신의 감정을 드러 |
내 놓고 마음을 정리할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하고 가슴속에 묻어 |
두며 이를 비밀로 가져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
아뭏튼 내가 늘 지나다녔던 간이역에도 낯달이 길게 드리울 만큼 |
다시 긴 겨울이 찾아 왔습니다. 녹음방초도 없는 메마른 간이역에는 |
푸른 고독만이 가득합니다. |
한 떼의 청둥오리들이 사람들이 알아듣지도 못할 훼를 치며 은하수 |
가 드리운 길을 따라 북쪽으로 북쪽으로 날아갑니다. 문득 무수히 |
많은 별들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별인 하늘색과 주황색으로 조화 |
를 이룬 '알비레오(백조자리의 이중성)'를 찾고자 서쪽 하늘을 쳐다 |
보았습니다. 하지만 '알비레오'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알비레오'는 |
없고 대신 태양을 듬뿍 머금은 만월이 옅은 구름속을 빠져나와 차가 |
운 달빛으로 어둠에 묻힌 도시를 은색으로 바꾸어 놓는 모습이 마치 |
아름다운 구상화를 그리는 화가의 붓노림을 보는 듯 합니다. |
나는 바람에 휩쓸려 도로 위를 구르는 낙엽을 발길질하는 절묘한 |
심정으로 가로수의 나무를 흔들어 안타깝게 붙어 있는 낙엽마저 털 |
어내려 해보지만 나무는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
만월이 어둠을 온전히 걷어낸 후에야 내 차로 돌아왔습니다. 오랜동 |
안 듣지 않았던 임수정의 '타인반 연인반' 노래를 들어봅니다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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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달콤한 보다는 고통의 의미에 가깝습니다. 낙천적으로 해석해봐도 |
인생은 삶의 노고가 숨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열심히 일했으면 성과 |
가 있듯이 사랑을 진실로 바란다면 이뤄질 것은 자명한 사실임을 그는 |
이해하고 있었던 듯 합니다. |
이 지방은 여름이 유난히 빨리 옵니다. 5월이면 산과 들의 경계가 없어 |
지고 6월은 진한 녹색의 삼나무 숲이 저녁 어슴프레해질 무렵에는 검푸르 |
스름 하게 변합니다. |
… |
그녀가 그에게 물었습니다. |
'내가 어떤 색깔을 좋아하는지 알고 계시나요?' |
'보라색'. |
|
'그럼, 내가 좋아하는 색은 어떤 색깔일까요?' 그가 그녀에게 묻습니다. |
'모르겠는데요'. |
'원색의 푸른색을 좋아합니다'. |
|
그러면서 그는 그녀에게 여전히 사랑한다는 말 대신 '저는 보라색을 만드 |
는 마법을 지녔는데요'. |
'치~잇! 거짓말!' |
'사실이에요. 우리가 마음이 서로 통한다면 색깔은 언제든지 만들 수 있는 |
거랍니다'. |
그는 붉은 원피스를 입은 그녀가 더 없이 예뻐 보였다. 실은 '제가 마음속 |
에 그대를 위해 두 가지 색깔을 지녔거든요. 하나는 붉은 색 또 하나는 파 |
랑색, 그대가 기뻐할 일이라면 필요할 때마다 색을 섞을게요. 그러면 항상 |
보라색이 나오잖아요'. |
세월이 두 사람을 경어를 쓰게 만들었다. '저기요. 나이가 몇이세요?' 그녀 |
가 그에게 물었다. '그 쪽은요? 33살 아니었던가요? 그가 확신에 찬 어조 |
로 그녀 말을 되받습니다. |
'아닌데요. 저는 겨우 32살 이랍니다. 저를 좋아한다면서 벌써 제 나이 |
마저 잊으셨군요'. |
'섭섭한데요' 하는 눈치로 그를 흘겨 봅니다. |
'에구! 미안. 다시 기억해 둘께. 그런데 넌 어째 하나도 안 변했니? |
정말 신기하다는 듯 그는 그녀를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본다. 믿기지 않는 |
신비를 느끼면서 경이롭게 가까이서 오래도록 바라봅니다. |
그녀가 이런 분위기를 깨려는 듯 불평한다. |
'저기요! 왜 제게 반말하는 거죠? 언제 나를 봤다고!' |
'음. 미안!' |
마음 넓은 내가 이해할게요. 어차피 나를 높힐려고 그런 것이 아닌 만큼 |
편할 대로 하세요.' |
그러면서 그녀는 그가 그 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해 했다. '그 동안 |
어떻게 지냈어요? 그러자 그는 짧은 순간에 복잡한 속내가 스쳐 지나갔다. |
잘 지냈다고 해도 잘못 지냈다고 해도 실례일터 해서 그는 중간선을 선택 |
한다. |
'대충 지냈어'. |
'너는?' |
전과 거의 같은 생활이에요. 좀 자유를 원하는 것 빼고는요'. |
'저기 B시 가지 않을래? 거기 가서 회나 먹자'. '그래요. 너무 늦지 않으 |
면 괜찮아요'. |
B시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로 시작되어 산 자락을 깊이 한참을 타고 가야 |
하는데 평소 같으면 운전에 집중해야 하지만 운전하면서 그녀의 손을 잡 |
고 싶으나 잡을 수 없는 마음이 초조를 느끼기 시작했다. |
기억나니? 아주 오래 전의 일이지만 저 아래 간이역이 있었고 그 간이역 |
에서 우리가 만났던 때의 일들을! 그리고 이렇게 묻곤 했어. 우리 어디 |
갈까? 그러면 너는 늘 같은 톤으로 '가고 싶은 데로 가세요! ' |
차 안에서는 예전 들었던 노래들이 흘러 나왔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그녀 |
에게 아무리 트랙을 이리 바꾸고 저리 바꾸어도 반도 들려주지 못하는 것 |
을 알고 있었다. |
오랜 세월 탓인지 그의 말에서 가끔씩 말을 길게 끈다. '이 노래 괜찮나요?' |
… |
가까운 데서 바다가 흐르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마음을 자주 바꾸지만 |
바다는 그 속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바람 불면 더욱 출렁일 뿐인데 사람들 |
들이 그 날의 자기 기분에 따라 여러 가지 색깔의 바다로 보여질 뿐입니다. |
'참으로 오랜만에 여기 와 본다' 그러면서 그는 여기 저기 손가락으로 가리 |
킵니다. |
이어 항구에 도착. 수 십만 톤쯤 되어 보이는 유조선이 바다를 가로막고 서 |
있습니다. 갈매기는 유조선 너머 높게 비행하려 하지만 이미 곡예비행에 |
지친 듯 저공 비행에도 그림이 그려지지 않습니다. |
물 비린내 나는 해안가 횟집들에서 때 아닌 환영. 하지만 이들을 지나치는 |
순간 환영의 표시는 진심이 아니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만으로 |
바뀐 곳에서 힘찬 뱃 고동소리 울리지 못하고 회항하여 닿을 내리기 좋은 |
곳에 기항합니다. |
술과 회를 시켜 놓고서 잠시 어색함을 털어내려고 말을 걸고 또 그 말에 |
대해 어색함을 연장하지 않으려고 그녀는 웃고 또 웃습니다. 공식 만찬 |
정처럼 정제된 언어와 절제된 행동을 요구하는 듯 술을 들면서도 한 치의 |
경계도 풀지 않으면서 말입니다. |
'J시에서는 재미가 있다면서요?' 그녀는 대뜸 그에게 가시를 드러 냅니다. |
'아! 그거? 추풍령에서…', 그 것 가지고 그러는구나' 하고 자조하지만 |
그는 실색합니다. |
'제가 그 것 때문에 얼마나 기분이 나빴는지 아세요?' 그러면서 '자유론' |
을 예찬합니다. |
해는 아직 중천에 떠 있는데 그녀가 급히 집으로 돌아갈 일이 생겼습니다. |
곧은 길을 놔두고 일부러 굽이굽이 돌아서 시간을 늘려보지만 별반 차이 |
는 없어 보입니다. |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기억할 것들은 다 기억하고 있기에 새삼 확인 할 |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다른 곳에 대해 열중합니다. |
'제가 아침에 운동하는 산이 있는데요. 거기에는 청설모도 많아요. 그리고 |
…' |
|
그녀의 재잘거림을 들으면서 그는 예전일을 떠올렸습니다. 그것도 아주 |
오래 전의! '저를 똑바로 봐 주실래요? 아주 가까이요. 넘 예쁘죠?' |
그러나 그는 지금 이 순간은 손하나 까닥할 수 없는 무거움을 깨닫습니다. |
'격의를 지켜라'하는 그녀의 마음을 이미 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문득 명나라의 운명을 결정 지은 '진윈윈'의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
'진윈윈'은 명의 명장 오삼계의 애인이었는데 명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 때 |
농민 반란군 이자성의 수하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에 분개한 오삼계는 |
분노로 얼룩집니다. |
"남자로 태어나 여자 하나를 지키지 못한다면 어찌 남자라고 할 수 있겠는 |
냐. 애들아 말을 준비하라. 내 반란군을 쳐야겠다"며 막으라는 오랑캐는 막 |
지 않고 오히려 오랑캐에게 항복하여 나중 이자성과 명나라를 칩니다. |
새삼 그녀와 '진윈윈'과 얽힌 이야기는 왜 가져 왔을까요? 그는 아마도 |
오삼계의 무모하지만 '진윈윈'의 입장에서 본 용기를 부러워하고 있었는지 |
모릅니다. |
… |
그는 말했습니다. '늘 원하던 설렘이란 이런 것이었나? 잃어버린 행복이 |
이 곳에는 있었다. 꿈꾸어 왔던 설렘의 짧은 시간 속에 이 시간들이 지나 |
고 나면 다시 뻥 뚫린 휑한 가슴에 또 다른 바다가 있을 것이라고!' |
총총히 뛰어 가는 그녀의 모습에서 애틋한 아름다움을 느꼈습니다. 그는 |
다시 행복한 D시로 다시 돌아와 있었습니다. (계속) |
첫댓글 아직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한,,,
간이역에서 하루 한두번을 오가는 기차를 기다리는 것일까?
님을 기다리는 것일까?
기적소리에 그대가 다가설 것만 같은데,
님과 손잡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엿보입니다.
빗속이라도
개울가라도
어디라도 함께라면~
흐미~~~!
그녀가 있었음 나를 위로해 줬을텐데!
달콤하고 정겨운데, nonfiction 입니까?
픽션과 논픽션을 섞어 놓은... 대부분 픽션입니다. ㅎ
@부겐빌레아 어느부분이 fiction 이고 어느부분이 nonfiction 인지? 지나친가요? ㅋㅋㅋ
@미미 어~휴! 구분을 Red Color Mark로 표시할 수도 없고... 붉은색이 non... 이랍니다. ㅎㅎ
@부겐빌레아 그러신줄 알았읍니다. 영원히 잊지못할 아쉬운 추억이군요. 이렇게 글로 표현할수있는 후배님이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