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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3927Bible 말씀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운영자 사모.
주보 글 자료 모음
참 기쁨을 얻으라
미국의 윌리암스 박사팀은 분노가 심장 병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기 위하여 118명의 법과 대학 학생들을 상대로 성 격조사를한후25년이 지난 최근 그들의 사망률을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신경질적인 학생들의 그룹은 20%가 사망을 했고, 온화한 성품을 가진 학생들의 그룹은 5%만이 사망을 했다는 연구결과 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모두 다 건강 장수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정신없이 열심히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뛰고 있습니다. 또한 사회는 모든 것이 복잡해지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만원입니다. 나를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곳은 아무 곳도 없습니다. 짜증스러운 일 뿐입니다. 스트레스 받는 일 뿐입니다. 이런 저런 이유들이 오늘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얼마나 짜증을 내게하며 분노를 터뜨리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시편37:8 말씀에 보면,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지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 말씀에는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4:4 말씀에는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했습니다.
에베소서4:26 말씀에도 보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에도 어떤 분노가 있었습니까? 주 안에서 풀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한 날의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다고 했습니다.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가십시오.
주님 예수 그리스도 안에 참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사모하는 삶의 축복
교회는 지친 입술에서 미소를 자아내는 곳입니 다. 메마른 가슴에 인정이 꽃피게 하고 나그네 의 피곤한 발걸음을 가볍게 하는 곳이 바로 교 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은혜를 공급받게 되는 축복의 샘터입니다. 이 세상은 사악하고 몰인정 하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와 같은 곳입니다. 그런 세상에서 교회만은 모든 악의를 버리게 하고, 타락된 모든 생활과 풍습을 버리게 하고, 마음에 큰 기쁨을 선사하는 축복의 보금자리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끔 비난과 질시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 세상에 교회만큼 아름다운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교회에 무슨 의도적인 악의가 있고, 의도적인 죄악이 있고, 의도적인 탈선이 있겠습니까? 교회는 의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선한 열정이 모여 있고, 그러한 선한 열정이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의 힘을 통해서 하나의 꽃과 같이 향기를 발하게 되는 곳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만큼 복된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참으로 복을 좋아합니다. 우리 민족은 어려운 생활 속에 살았기 때문인지 특히 복을 좋아합니다. 과거 우리 민족의 삶을 복된 삶보다는 고난의 삶이 연속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짧은 시일 내에 세계적으로 비교적 잘 사는 나라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이렇게 된 것이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회를 많이 세우고 하나님을 잘 섬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1917년 러시아에서 교회의 문이 닫히자 모든 것이 닫혀버렸습니다. 그후 얼마 되지 않아 이 엄청난 대국이 겨울에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나라가 되어 버렸습니다. 교회의 문이 닫힐 때 축복의 문도 닫히고, 교회의 문이 열릴 때 축복의 문도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인생은 눈물 많은 마른 골짜기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사랑하는 인생에게는 기쁨이 샘이 넘쳐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 중심적인 삶을 살 때 우리의 삶엔 마이너스가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울게 되는 경우를 당할지라도 우리의 울고 있는 그 폐허에 하나님께서 더 큰 맨션을 지어주실 것입니다.
교회를 더욱 사랑하고 더욱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십시오. 교회를 외면하면 모든 축복으로부터 외면당할 것이고, 교회를 사랑하면 갖가지 축복이 우리의 삶에 슬며시 찾아들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흔들리는 참 이유!
첫째,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마음이 작아질 때
둘째,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이 없거나 줄어들 때
셋째, 주님과의 일대일 진지한 교제가 식어질 때
넷째, 말씀을 듣는 시간을 소홀히 다룰 때
다섯째, 진정한 믿음의 사람들과 교제하지 않을 때
여섯째, 죄를 짓고 회개하지 않을 때
일곱째, 사람만 바라보고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을 때
비로소 믿음이 흔들리게 되는 것이다.
외식하는 자의 특징 10가지
1. 사람의 영광을 구한다.(마6:2)
2. 사람에게 보이려 한다. (마6:5)
3. 남을 판단하기를 좋아한다. (마7:3)
4. 겉과 속이 다르다. (마23:25)
5. 입술로만 섬긴다. (막7:6)
6. 타인을 시험하기를 좋아한다. (막12:15)
7. 시대를 분별치 못한다. (눅12:56)
8. 스스로 의롭게 여긴다. (눅18:11-12)
9. 겉모습으로 사람을 유혹한다. (갈2:13)
10. 거짓말을 한다. (딤전4:2)
그의 집은 세 자녀의 운동화도 사줄 수 없을 만큼 경제적로 어려웠다.
하루는 세탁기 마저 고장이 나서 광고를 보고 중고 세탁기를 판다는 집을 찾아 갔다.
그 집은 너무나 크고 좋은 집이었고,
그 집에 있는 최신식, 최고급 가구나 주방시설을 보면서 마음이 무척 울적하였다.
세탁기를 내어 오면서 주인 내외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었는데,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 중고 세탁기를 산다는 것, 그리고 두 아들 녀석이 얼마나 개구장이인지 신발이 너무 빨리 닳아 걱정이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갑자기 부유한 그집의 부인이 고개를 숙이면서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 버리는 것이었다.
순간 그는 자기가 무슨 잘못을 하지 않았나 당황하였다. 잠시 후, 그 부인의 남편이 말했다.
"우리에게는 딸이 하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제 딸은 태어난 후 12년 동안 한 걸음도 걸어본 적이 없는 장애아랍니다.
제 아내는 당신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우리 아이가 불쌍해서....."
그날 집에 돌아온 그는 현관에서 아이들의 낡은 운동화를 보았다.
한참동안 신발을 바라보던 그는 그자리에 엎드려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자 기의 불평에 대한 회개와 아이들의 건강함에 대한 감사의 기도를......
칭찬하면 칭찬이 돌아옵니다 !!!
사람에게 여러 재산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가 장 위대한 재산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칭찬하 는 말입니다. 칭찬의 말은 쓰면 쓸수록 부자가 되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하루의 일 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전해주는 아내의 따뜻한 한마디는 남편의 상처 난 부분을 아물게 하는 놀라운 치유의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만물 중에서 유일하게 주신 놀라운 언어능력을 사람들은 너무 남용하고 잘못 활용합니다. 그 잘못된 언어생활로 많은 아픔이 생겨납니다. 오늘날 매일 밤 인류의 3분의 1이 배고픈 채 잠자리에 든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칭찬의 말을 갈망하며 영혼이 배고픈 상태에서 잠자리에 들 것입니다.
어느 날, 한 여성이 눈이 퍼렇게 멍이 들어서 목사를 찾아와 “남편이 자기의 눈을 그렇게 만들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상담을 요청했습니다. 여러 얘기가 나오다가 목사가 물었습니다. “때리기 전에 어떤 말을 했지요?”
“그래 잘났어. 그래도 사내라고. 당신이 해 준 게 뭐가 있어. 때려 봐! 때려! 아예 죽여! 그래도 자존심은 있어서...”
그 말을 듣고 목사가 기분 나쁘지 않게 한마디 유머를 던졌습니다. “그래도 남편이 훌륭한 데가 있네요. 죽이라고 하는데 때리기만 했으니까.” 그 말을 듣고 같이 조용히 웃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그녀는 그냥 일어섰습니다. 목사가 말했습니다. “아니, 더 상담을 받지 않아도 되나요?” 그때 그녀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남편에게도 훌륭한 데가 있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아요. 저 자신이 조금 더 노력해 볼게요.”
옛말에 매도 벌어서 맞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손의 폭력도 폭력이지만 언어의 폭력도 조심해야 합니다. 옛 고사성어에 촌철살인(寸鐵殺人)이란 말이 있습니다. 비유적인 표현으로 말 한마디로 심장을 뒤집어 놓는다는 뜻입니다. 상대의 자존심을 다 무너뜨려놓고 평화와 인격을 기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부부싸움에 대한 연구가 많이 있지만 가장 확실한 결론은 100% 일방적인 희생은 없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죄도 있지만 내 죄와 허물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허물은 절제된 언어생활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절제된 언어는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초석입니다. 지금 배우자와 자녀에게 칭찬의 말을 주고 있습니까? 칭찬의 말을 주면 칭찬의 말이 돌아오고, 더 나아가 하나님이 칭찬하십니다.
ⓒ이한규 목사(http://www.john316.or.kr)
모두가 서로
모두가 서로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두가 서로 사랑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서로 위로하고 격려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서로 나누어 쓰고 나누어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서로 인정하고 칭찬하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서로의 눈에서 눈물을 닦아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서로 따뜻한 마음으로 의지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기쁨과 희망이 되어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서로 믿고 도와주고 울타리가 되어주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두가, 모두가 정말 그렇게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부터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
침 묵
때로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기 전에 하고 싶은 말들을
수없이 상상하다가도 막상 만나게 되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주님과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가끔 그저 아무 말 없이 주님과 함께 조용히 있고 싶어집니다.
그럴 때는 억지로 말을 하려 하지 말고
그저 조용히 주님과 함께 있으십시오.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간구도 감사도 어떤 탄원도 이야기도 하지 말고
그저 조용히 주님과 함께 있으십시오.
그저 가만히 있어 주님의 임재를,
그분의 하나님 되심을, 그분의 사랑을 느끼십시오.
주님의 마음을, 그분의 사랑을, 그분의 함께 계심을,
그분의 거룩함을, 그분의 고독을...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당신은 그냥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주님이 당신의 곁에서 항상 침묵으로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머리와 가슴이 분리된 현대인
분명히 머리와 가슴은 한 몸입 니다. 절대로 나뉠 수가 없고 나뉘면 그것은 죽음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지식으로 머리에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동행하게 하는 가슴까지는 내려가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알게 모르게 17세기의 철학자 데카르트와 칸트가 뿌려놓은 ‘후계몽주의’의 독초에 감염되어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사고와 경험의 분리’인데 즉,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서로 다는 별개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은 서로 다른 별개가 아니고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만드셨고, 하나님이 내 안에, 내가 하나님 안에 거하는 초자연적인 일체로 우리를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나의 이성적 개념과 지식이 있는 머리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쿵쿵 울리는 내 가슴에 계셔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생각 속에 계시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계신단 말입니다.
사 탄 의 유 혹
사탄이 어느 날 한 청년을 찾아왔습니다. 그는 열 개의 병을 보이면서 "이중 아홉 개의 병에는 꿀 물이 들었고 한 개에만 독약이 들어 있는데 열 개 중에 하나를 마시면 엄청난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청년은 고개를 가로 저었습니다. "아무리 돈이 좋지만 생명과 바꿀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계속 유혹했습니다. 청년의 눈앞에는 산더미 같은 돈이 오락가락했습니다. "그래, 딱 한 번만 하는 것이다. 이번 한 번이면 평생을 고생 안 해도 될 테니까!" 청년은 떨리는 손으로 진땀을 흘리며 한 병을 골라 마셨습니다. 아찔했습니다. "설마 이것이 독약이 들어 있는 것은 아니겠지, 다시는 이 짓을 말아야지." 중얼대던 청년이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야, 내가 살았구나! 자칫하면 죽을 뻔했어." 사탄은 청년에게 엄청난 돈을 주고 돌아섰습니다.
그러면서 다음 번에 언제라도 아홉 개 중의 하나를 마시면 돈을 곱으로 주겠다는 말과 함께 웃으며 유유히 사라졌습니다. 청년은 오랜 방탕 생활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돈이 떨어지자 사탄을 불러내기 바빴습니다.
처음에는 고민했으나 나중에는 어느 병을 골라야 할까 고민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느덧 청년은 백발 노인이 되었습니다. 이제 딱 두 병이 남았습니다. 노인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그 둘 중에 하나를 골라야 했습니다. "돈이냐, 죽음이냐!" 노인은 마침내 마지막 잔을 마셨습니다.
노인은 끝까지 살아남았습니다. 노인은 기뻤습니다. 그러나 그때, 사탄은 남은 마지막 한 잔을 훅하고 들이마셨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처음부터 독약이란 없었다. 그러나 너는 돈이 라는 나의 독약에 이미 죽어가고 있어. 나는 너의 청춘을 망가뜨렸지.
사람으로 태어나 다른 것은 아무것도 모르고 오로지 돈만 알도록 최고의 바보로 만들었지. 너는 이제 영원히 죽게 된다." 사탄은 유유히 웃으며 돌아갔습니다. 사탄은 지금도 유혹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충만하십시오.
시간의 청지기
시간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5:16) 이 말씀의 뜻은 시간을 선용하고 구제하라는 뜻이다. 시간이란 그 속에 곡식이나 나무를 심는 토지와 같아서 옥토(玉土)를 잡초로 묻히게 하기도 하고 불모의 땅도 비옥하게 가구는 농부가 있는 것처럼 어떤 사람들은 토박하고 불행한 시간들을 가꾸어 푸른 초원 같은 인생을 거둔다.
목동 다윗의 소년 시절은 우리나라로 치면 山에 나무하는 초동(樵童)인데 외롭고 삭막한 시간을 살려 신앙과 시와 음악을 배웠고 물매 던지는 연습을 해서 골리앗을 쳐죽이는 구국의 전사가 됐다.
크리스챤은 시간의 양을 질로 바꿔 쓰고 밤을 살고 새벽을 살며 남이 4년에 하는 것을 1년에 하여 시간의 순도와 농도를 높여야 겠다.
ⓒ김준곤 목사<예수칼럼/순>
할머니의 기도
백발의 할머니 한 분이 커다란 돌덩이 두개를 들고 끙끙거리며 교회에 들어와 돌덩어리를 앞에 놓고 손을 얹은 다음 기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나님!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하셨지요? 그리고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마가복음11:24)고도 하셨지요? 여기 가지고 온 자그마한 돌들이 내일 새벽에 금이 되게 해 주세요.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기도합니다. 이것들이 금이 되면 하나는 교회에 바치고 하나만 제가 쓰겠습니다. 주여! 믿씁니다!” 밤새도록 계속되는 할머니의 기도는 애절하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새벽이 지나고 아침해가 높이 떠오르도록 돌덩이는 야속하게도 금이 될 줄을 몰랐습니다. 그러자 할머니가 실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도 참 너무하슈! 나 혼자 다 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하나는 바치겠다는데...” 어떤 책에서 배꼽을 잡고 웃으며 읽었던 한 대목입니다.
그러나 한참을 웃다가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네놈도 똑같아!”하는 소리에 더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심각한 마음이 되었습니다. 돌덩이보다도 못한 온갖 것들을 다 들고 와서 이루어질 수 없는 기도를 그동안 그 할머니보다 제가 훨씬 더 많이 드렸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한 운전기의 이야기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성공하여 잘살아가는 한 그리스도인에게 존이라는 믿지 않는 자가용 운전기사가 있었습니다. 그는 운전을 하고는 있지만, 복음을 받아들이는 것만은 철저하게 ‘종교의 자유’에 해당하는 일이라며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주인은 존에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이야기 하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오시면 나는 꿈에도 그리던 주님 곁으로 가네. 그때 존 자네가 내 차를 가지게나.” 존은 기뻐하면서 정중하게 감사의 뜻을 표했습니다.
“그리고 그땐, 자네 부인과 함께 넓고 좋은 우리 집에 와서 살도록 하게. 원한다면 내 땅과 재산도 모두 주겠네” 존은 흥분한 목소리로 “감사합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존은 너무 좋아하면서 자기 아내에게 주인이 한 말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존은 그날밤 잠을 이룰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몸을 뒤척이다가 갑자기 자리를 차고 일어나 주인의 집으로 달려가서 문을 두드렸습니다.
“자네, 이 밤중에 웬일인가?”
“아, 선생님, 전 그 자동차가 싫습니다. 당신의 집도, 당신의 돈도, 그리고 당신의 넓은 땅도 다 싫습니다. 저는 구원받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저도 당신처럼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고 싶습니다.”
구경꾼
교회에도 구경꾼들이 많다
노아가 방주를 만드는 120년 동안 모든 사람
들은 구경꾼들 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으나 결국 그들은 예수를 내어주는
일에 앞장섰다. 구경꾼은 용기도, 관심도, 간절함도, 소원도 없다.
오직 보는데만 의의가 있다.
그리고 보면서 열심히 일하는 자들을 얘깃거리의 대상으로 삼을 뿐이
다.
공통점 찾기
마 6:26 공중의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마 7: 4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마10:16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마11:10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마12:18 보라 나의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마12:49 나의 모친과 나의 동생들을 보라
마24:25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마26:46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위의 예수님 말씀 가운데 공통적으로 들어 있는 단어가 무엇인지
찾으셨습니까?
오늘은 그 한 마디 말을 곰곰이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의 역사는 바로 그 한 마디에서부터 시작됩니다.
마음에 산이 있는 사람들
산은 하늘과 땅 사이에 우뚝 솟은 하나님의 조각품이다. 병풍같이 펼쳐진 산에는 나무와 꽃으로 수놓은 풍경화가 가득하다. 한겨울을 지낸 뒤 봄기운을 머금고 마른 나뭇가지에서 나오는 여린 새순은 창조의 때를 묵상하게 만든다. 푸름이 가득한 한여름의 신록은 하나님의 성실하심을 기억하게 하고, 형형색색 모자이크 벽화처럼 펼쳐지는 가을 풍경은 겨울산의 추억으로 남는다.
산은 멀리서 바라보면 그저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는 듬직함으로 우리를 품어 주고 가까이 다가가 보면 온갖 풍상을 겪어낸 인고의 흔적들이 가득하다. 지금 이 순간도 쉴새없이 진행되는 무언의 변화가 땅속 깊은 데서 일어나고 있음을 느낄 때면, 우리 인생들의 내면을 보는 것 같아 정겹기도 하고 동병상련의 교감을 주고받게 된다.
하나의 큰 산이 되기까지, 한 그루의 큰 나무가 되기까지 숱한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마는 산은 그저 침묵과 고요 속에서 단순함으로 인생들의 탐욕과 복잡함을 정화시켜 준다. 그래서인지 우리에게 큰 가르침을 주는 이들을 큰 산에 비유함이 일반적이다. 그들에게는 쉼과 여유가 있고 자유와 침묵 가운데서 재창조된 성스러운 고독과 평안함을 제공하는 향기가 있다.
그러면서도 산은 결코 자기가 가야 하는 길을 일탈하지 않는 질서정연함 속에서 동료들을 품어 주고 각자의 길을 잘 가도록 도와준다. 결국 하나님의 손길과 숨결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는 길을 찾도록 돕는 안내자의 역할을 해낸다.
온 세상을 품으신 예수님은 우리 각자에게 어떤 산으로 기억될까?
요한복음 6장 15절을 보면 사람들이 억지로 자기를 모셔다가 왕으로 삼으려 한다는 것을 예수님께서 아시고, 혼자 다시 산으로 올라가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분은 우리와 같은 인간의 형상이셨지만 그 마음의 본향은 산이었나 보다. 인생들의 광기 어린 집단의식과 억지스러움, 탐욕과 권력욕을 조용히 밀어내고, 단순함과 소박함으로 들어가시는 모습을 통해 산과 하나된 발자취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노라면 오랜 침묵과 깊은 고독의 시간을 산이라는 성스러운 공간에서 보내며 영원의 세계로 우리들을 초대하시는 그분의 음성을 듣게 된다.
산은 침묵 가운데서 하나님의 때에 순응하며 자신의 형상을 빚어내기에, 소란스럽고 변덕스러우며 욕심 많은 인생들에게 항상 큰 가르침을 주고 있다*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돈 없이도 다른 사람들을 돕는 무재칠시(無才七施)가 있습니다.
1.身施(신시):몸으로 돕는 일.
2.心施(심시):마음으로 함께 하여 주는 일
3.顔施(안시):편안한 얼굴과 웃음으로 대하는 일
4.眼施(안시):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아 주는 일
5.言施(언시):좋은 말, 격려의 말, 칭찬의 말, 따뜻한 말로 대하는 일
6.狀座施(상좌시):자리를 양보하는 일
7.房舍施(방사시):내 집 빈방에 하룻밤 편하게 재워주는 일
이중에 가장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은 5번 言施(언시)가 아닐까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갈등과 오해와 불화가 바로 言施(언시)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마음에 상처를 받는 것은 잘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 때문이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 때문입니다.
내 얼굴빛 환하게 하는 것, 말 한마디 조심하는 것, 너와 같은 마음이야! 동의해주는 것도 아주 훌륭한 도움입니다. *
가장 필수적인 신앙 덕목
사람의 정신세계를 파괴하는 가장 대 표적인 것은 ‘도피’입니다. 나라가 어려 워지면 제일 먼저 늘어나는 것이 그 나 라의 술 소비량이라고 합니다. 현실이 어려울 때 그 현실로부터 도피하려고 술과 마약, 그리고 탐닉거리를 찾는 모습은 사람의 정신을 더욱 황폐하게 만듭니다.
반면에 사람의 황폐한 정신 세계를 복구하는 가장 위대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이마에서 흐르는 땀’입니다. 현실이 어려울수록 우리는 어떻든지 땀을 흘릴 곳을 찾아 우리의 도피 심리를 극복하고 현실을 이겨야 합니다.
믿음생활에서 ‘도피’와 가장 어울리는 용어는 ‘순종이 없는 환상’이고, ‘땀’과 가장 어울리는 용어는 ‘환상을 가진 순종’입니다. 사람이 도피 심리에 빠지면 순종하는 모습은 없어지고 환상적인 삶만을 추구하게 되고, 이상한 것을 더 진짜처럼 생각하는 신기루에 빠지게 됩니다. 그처럼 ‘순종이 없는 환상’은 인생을 연약하게 만들고, 삶을 통제할 수 없게 만들고, 이기적인 사람이 되게 하고, 결국은 현실을 도피하도록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신앙생활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정신을 병들게 합니다.
믿음은 놀고먹는 것을 조장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땀과 피와 눈물을 통해서 내일을 창조하려는 자세가 없는 믿음은 기복주의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 각자에게 나름대로의 재능을 주신 이유는 그 재능을 활용해서 열매를 남기라는 뜻입니다. 놀고먹는 자에게는 틀림없이 부끄러운 날이 찾아오지만 열심히 사는 자에게는 틀림없이 즐거운 날이 찾아오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재림하시는 날은 믿는 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결산하고 평점을 주는 날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주어진 재능과 여건을 통해 하나님을 위해 일하고 무엇인가를 남긴 인생들을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충성된 인생을 하나님은 지금도 찾고 계십니다. 충성된 인생이 되려면 낙심이 없어야 합니다. 원망이 없어야 합니다. 교만도 없어야 합니다. 욕심이 없는 아름다운 마음도 구비되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땀 흘림으로 우리의 환상을 실생활에서 표출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바로 그때 우리의 삶은 가장 성스러운 삶이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한번뿐인 인생입니다. 이 소중한 인생을 위해 인본주의적 에너지를 하나님 중심적, 성경 중심적 에너지로 승화시키고, 솔개와 같은 넓은 안목과 개미와 같은 세밀한 판단을 겸비해서 힘써 땀을 흘림으로 하나님께 나머지 생애를 헌신하십시오. ‘땀 흘림’은 주님의 ‘피 흘림’의 은혜를 아는 자에게 있어야 하는 가장 필수적인 신앙 덕목입니다. * ⓒ이한규 목사
다른 말 열가지
1. 머리를 쓰지 않는 사람’을 다른 말로 ‘인간로보트’라 합니다.
2.‘지식’과 ‘상식’이 없는 것을 다른 말로 ‘무식’이라 합니다.
3.‘실천하지 않을 계획’을 다른 말로 ‘공상’이라 합니다.
4.‘근면, 성실한 사람보다 나은 사람’을 다른 말로 ‘창의력 있는 사람’이라 합니다.
5.‘실패의 원인’을 다른 말로 ‘판단력의 부족’이라 합니다.
6.‘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사람’을 다른 말로 ‘답이 없는 사람’이 라 합니다.
7.‘이렇게 안되면 저렇게 해보는 것’을 다른 말로 ‘융통성’이라 합니다.
8.‘감각이 둔한 사람’을 다른 말로 ‘바보’라 합니다.
9.‘안정’을 다른 말로 ‘정체’라 합니다.
10.‘믿음 없는 신앙생활’을 다른 말로 ‘연극’이라 합니다.
천하의 어리석은 사람
사람들은 ‘육체’보다는 ‘영혼’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압니다.
그러나 ‘육체’에 쏟는 과도한 관심에 비하면 ‘영혼’을 위해서 투자하는 비용은 너무나 미미합니다. 육체는 과식으로 비만이 되었지만 그 영혼은 메마르고 곤고 하여 이미 기아상태에 빠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천하에 어리석은 사람은 예수 믿는다 하면서도 ‘영혼’에 관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이 다음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를 상상해 보세요. “하나님! 저는 땅에 있을 때 열심히 살았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최신 유행 패션을 따라 옷을 입었고, 최첨단 장치가 달린 차를 탔고, 귀족의 품위가 느껴지는 명품 집에서 살았습니다. 사람들의 칭찬도 많이 받았고 인정도 받으며 폼 나게 살았습니다.”
“그래, ‘육체’는 참 잘 살았다. 수고했다. 그런데 너의 ‘영혼’은?”
“영혼이요? 돈 벌기도 바빴는데 무슨 놈의 영혼.... 돈으로 어떻게 안될까요?”
아...이 천하에 어리석은 사람아...
사랑의 절정
남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난 부인이 다섯 살과 세 살된 아들을 키우기 위해 철길 가에 있는 신발공장에 취직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할 때 두 아이들을 맡길 곳이 없기 때문에 안고, 업고, 공장으로 출근하여 공장 안에 조그만 방에서 놀게 하고 부인은 일을 했습니다.
따뜻한 어느 봄날, 방안이 답답하다고 두 아이들이 엄마 몰래 철길로 나갔습니다. 철길에서 조약돌 치기도 하고 가위, 바위, 보 놀이도 하면서 놀고 있을 때 기차가 달려들었습니다.
누군가가 애들이 없다는 소리에 엄마가 뛰어나가 보니 철길에서 놀고 있고 있었습니다. 쏜살같이 달려가 두 아들을 철길 밖으로 던져 낸 순간 기차가 뛰어들어 엄마를 치고 지나갔습니다.
동네 사람들이 그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두 형제는 고아원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자라서 어른이 된 후 어머니의 무덤에 조그마한 묘비를 세우고 다음과 같이 새겨 놓았습니다.
"어머니, 우리 어머니, 사랑하는 우리 어머니"라고. 그 어머니의 사랑의 절정은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일당 몇 백원을 받으며 일했던 그것이 아닙니다. 두 아들을 기르기 위해 자신이 굶고 아이들 입에 먹을 것을 넣어 주었던 그것이 아닙니다.
그 기찻길에서 놀고 있던 두 아이의 생명을 건져내고 자신의 목숨을 버렸던 그 사건에 있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절정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찬송 작사자 하버겔은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너 위해 몸을 주건만 날 위해 무엇 주느냐"라고 읊었습니다.
왜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해야 합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나를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는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까? 무엇보다도 먼저 최고의 사랑을 요구하실 것이다. 우리가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그를 사랑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다. 그는 우리의 지상의 가장 귀중한 관계들을 배제하시고 "너는 이 모든 것들을 미워해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너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인상적인 말씀을 하신다. "미워하다"라는 용어는 상대적인 용어이다. 그것은 절대적인 용어는 아니다. 그는 여러분과 나에게서 우리가 최초로 느끼는 사랑, 즉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사랑을, 우리의 가장 귀중한 사랑 즉 우리 자신의 생명에 대한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을 요구하신다. W.Y.플러튼
무엇을 위해 모이는가 ?
교회에는 여러 모임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모임을 이상한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사람들 을 종종 봅니다. 모이자마자 험담으로 시작해 서 험담으로 끝을 맺습니다. 당신이 속해 있 는 모임은 어떻습니까? 혹, 험담이 난무하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모임의 목적과 의의를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인 모임은 오직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만 존재해야 합니다. 험담은 그리스도인의 모임에서는 절대로 있어서는 안될 요소입니다. 헐뜯을 만할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그 사람을 놓고 애통하는 심령으로 함께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서로가 잘 되는 길입니다.
잘 들어 주는 친구입니까?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눈구멍 두 개, 콧구멍 두 개, 귓구멍 두 개, 그리고 입구멍은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두루 잘 살피고, 깊이 숨쉬면서, 두루 잘 듣고, 그리고 말할 때는 두루 듣고, 두루 보고, 깊이 숨쉬면서 생각한 것의 절반만큼만 말하라는 뜻으로 그렇게 만드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꼭 그 반대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잘 보지 않고, 잘 듣지 않고, 잘 생각지 않고,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합니다. 좀 더 심하게 말하면 마구 토해 냅니다. 그래서 그런지 인간 관계의 친밀도 측정은 <잘 말하기>가 아니라 <잘 듣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Say to Say Friend 가 있습니다. 그저 되는 소리 안 되는 소리 막 지껄이는 관계입니다. 연예인, 스포츠, 만화, 시시껄렁한 정치, 우스개 소리, 뭐 그렇고 그런 잡다한 소리나 하는 정도의 친구 관계를 말합니다.
Head to Head Friend 가 있습니다. 조금은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관계입니다. 사업, 사상, 생각, 자문, 상담, 뜻 깊은 책, 음악, 미술, 연극, 영화, 건강, 책임, 등 무엇인가 뜻 있는 이야기를 나눌만한 친구 관계를 말합니다.
Heart to Heart friend 가 있습니다. 한 사람은 밤새도록 제 말만 하고, 한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밤새도록 그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 때로는 둘 다 아무 말 없이 밤새도록 있어도 조금도 불편하지 않은 그런 친구 관계를 말합니다. 마음으로 말하고 마음으로 들어주는 그런 관계 말입니다.
나의 인간 관계는 어떠합니까? Say to Say Friend, Head to Head Friend는 지천에 깔렸는데 Heart to Heart Friend가 없지는 않은 지요?
많은 친구들과 어울려 별별 소리 다 하면서 질탕하게 놀고 돌아와 자리에 누었을 때 말할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반면에 단 두 셋이 모여 소박하게 지내고 돌아와 자리에 누었을 때 말 할 수 없는 든든함과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인가 하는 잔잔한 기쁨으로 마음 뜨거울 때가 있습니다.
마음을 실어 잘 들어주는 인간 관계였는가? 건성으로 들어주는 인간 관계였는가?의 차이입니다. 心在不焉이면 聽而不聞하고 見而不視하다고 하였습니다.
ⓒ 이정수 목사 <말씀의 샘물/고려서적>
정성껏 십계명
1. 무슨 일을 하든 정성껏 하세요.
2. 누구에게든 정성껏 인사하세요.
3. 작더라도 정성껏 한 선물이 마음에 닿습니다.
4. 정성이 없이 건성인 사람은 신뢰할 수 없습니다.
5. 정성이 부족한 서비스는 사람을 불쾌하게 합니다.
6. 정성 없는 만남은 시간낭비 입니다.
7. 정성껏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이 받으십니다.
8. 정성껏 돕는 손길이 따뜻한 손길입니다.
9. 정성껏 기도하면 이루어집니다.
10. 하늘을 감동시키는 것은 정성입니다.
바꾸기 십계명
1. 눈의 색깔을 바꿀 수는 없지만 눈빛은 바꿀 수 있다.
2. 귀로 나쁜 소리를 듣지 않을 수는 없지만 들은 것은 잊어버릴 수 있다.
3. 입의 크기는 바꿀 수 없지만 입의 모양은 미소로 바꿀 수 있 다.
4. 빨리 뛸 수는 없지만 씩씩하게 걸을 수는 있다.
5. 목소리는 음치이지만 휘파람은 불 수 있다.
6. 물질로 남을 도울 수는 없지만 가만히 손을 잡아 줄 수 있다.
7. 세상을 아름답게 치장 할 수는 없지만 꽃 한 송이 꽂을 수는 있다.
8. 문제를 해결 해 줄 수는 없지만 기도해 줄 수는 있다.
9. 비록 몸은 건강하지 못하다 해도 마음만은 건강할 수 있다.
10.오늘은 잘못했을 지라도 그러나 내일은 잘 할 수 있다.
주님과 휴가를
해마다 여름이면 산과 바다로 피서를 떠 난다. 요즘은 해외에서 휴가를 보내는 피 서족이 해마다 늘어나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렇게 휴가를 보내고 나면 몸과 마음이 힘을 얻어야 할 텐데 오히려 심신이 피로하고, 휴가지에서 겪은 일들로 오히려 불쾌해진다. 수많은 인파와 고속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 주차장을 찾아 몇 번씩 돌아야하고 막상 도착하면 바가지요금에 기분이 상하고 밀리는 사람들 속에서 시달림을 받는다. 이렇게 휴가를 보내는 것은 쉼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피로에 지칠 따름이다.
휴가지에서는 생각이 흐트러지기 쉽다. 그래서 들뜬 기분과 휴양지의 휘황찬란한 분위기에 마음을 빼앗긴다. 휴양지에는 우리의 영들이 죄들이 노출되기 쉽다. 세상의 쾌락과 유혹이 우리의 시각을 자극하고 구미를 당기게 한다. 거기에 마음을 빼앗기다보면 믿음의 긴장을 놓게 된다.
우리의 신앙이 성장할 때 조심스럽게 정성을 다하였고 계속해서 긴장하여 그리스도와 관계를 지속해야 하는데, 기분대로 행하다보면 전신갑주를 다 벗어 던지는 꼴이 된다. 영적 전쟁에서 지고 마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휴가는 몸과 영혼이 함께 쉼을 얻는 시간이 되어야 하며 영혼 깊은 곳에서 기쁨을 누리는 참된 휴식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지친 몸과 영혼에 쉼을 주신다고 말씀하신다.
주님의 말씀은 영육이 지쳐 있는 사람들을 부르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휴식은 단지 일을 하지 않는 육신의 쉼을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신앙적으로 갈등하는 사람은 아무리 좋은 휴가를 가져도 내면적이고 근원적인 휴식은 얻을 수 없다. 진정한 휴식은 주님과 진정한 만남이 있을 때 시작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몸과 영혼에 쉼을 주시고 가벼운 멍에를 주시기 때문이다.
올해의 휴가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며 그분께로부터 쉼을 얻는 시간이 될 것이다.
조용한 기도원에서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심신이 충만해지는 휴가는 어떨까요?
ⓒ황승재 목사 (군산성결교회)
즐겁게 살기 5계명
1.지난 일을 염려하지 마세요.
- 지난 일에 얽매여 고민하고 염려하고 후회한다고 해서 지난 일을 돌이킬수는
없습니다. ‘다 지난 일인데 뭐...' 하는 마음을 가지세요.
2.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화를 내지 마세요
- 화를 내면 이성을 잃게 되고 그 뒤에는 후회할 일을 저지르기 쉽습니다.
3.언제나 현재를 즐기세요
-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불확실할 수밖에 없습니다. 미래의 일은 미
래에 가서 생각하기로 하고, 우선은 오늘을 최선을 다 해 즐겁게 사세요.
매일 매일 즐겁게 사는 것이 평생을 즐겁게 사는 비결입니다.
4.사람을 미워하지 마세요
- 남을 미워하게 되면, 미움의 감정은 그 사람보다도
자신의 마음을 더욱 상하게 하고 괴롭게 합니다.
5.미래는 하나님께 맡기세요
- 보험에 가입해 놓으면 마음이 한결 놓이는 것처럼
미래를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겨버리세요.
축복의 조건
1. 입을 넓게 연 만큼(시81:10)
우리를 축복하시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지만 입 을 크게 벌리는 일은 우리의 일입니다. 사명을 깨닫고, 분수를 알고, 준비를 하면서 입을 크게 벌리면 벌린 만큼 채워주십니다. 특히 ?할 수 없다!?는 입에는 적게 채우시고, ?할 수 있 다!?는 입에는 많이 채우십니다. 하나님은 우 리의 꿈과 소망이 부끄럽게 되도록 결코 내버려두시지 아니하실 것입니다.
2. 부족함을 깨닫는 만큼(요15:5)
하나님은 내가 할 수 있다는 사람보다 주님 없으면 할 수 없다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아는 것이 승리의 비결입니다.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어려움은 대개 자신을 비우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자신을 비울 때 하나님은 비운만큼 복으로 채워주십니다.
3. 하나님을 붙잡는 만큼(시3:5)
기도한 후에도 여전히 불안과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믿음으로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기도한 후에 마음에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있어야 믿음으로 기도한 것입니다. 믿는 사람에게도 두려움은 밀려오지만 하나님을 굳게 붙잡으면 두려움은 곧 사라집니다. 두려워하는 마음을 떨쳐버리고 하나님을 굳게 붙잡으면 곧 복된 날을 보게 될 것입니다.
4. 손을 펴서 드리는 만큼(눅6:38)
하나님은 심는 만큼 거두게 하시고, 주님의 이름으로 남에게 드린 만큼 축복하십니다. 펌프에 물을 붓지 않으면 펌프질이 소용없듯이, 드림이 없는 신앙에는 받음도 없습니다. 축복 받고 끝나면 거기서 축복도 끝나지만 축복 받고 드리면 축복은 계속될 것입니다. 축복 받기 위해 꼭 필요한 훈련은 ?주님께서 주신 것은 주님을 위해 쓰는 훈련?입니다.
5. 억울한 일을 참는 만큼(벧전2:20)
억울한 일을 당하고 참는다는 것은 힘든 일입니다. 힘들기에 받는 축복도 클 것입니다. 자기 죄로 인한 고난은 축복을 빼앗지만, 남 때문에 대신 지는 십자가는 축복을 줍니다. 억울한 일을 당하고 그 일을 내가 처리하려고 하면 하나님께서 뒷짐을 지고 계시지만 그때 하나님께 그 일을 처리하도록 맡기면 반드시 해피엔딩의 축복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 귀 기울이기
아, 오늘은 정말 정신 없이 살았네요. 너무나 많은 일을 했습니다.
밥 먹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살았습니다.
부지런히 산 덕분에 수입도 많이 생기고 남긴 것도 많습니다.
아, 그런데 몸은 피곤하고 뭔가 많이 남기기는 한 것 같은데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듯 허전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그렇군요. 너무 바빠서 하나님을 잃어버렸군요.
새벽부터 주님은 고요하고 작은 음성으로 나를 부르고 계셨는데
나는 너무 바빠서 주님을 뿌리치고 달려 나가버렸습니다.
지금이라도 피곤하기는 하지만 주님 앞에 나아가렵니다.
그리고 그분께 죄송하다고 말씀드리렵니다.
남편을 신바람나게 하는 말
1. 여보 사랑해요.
2. 여보 아이가 당신을 닮아서 저렇게 똑똑하나 봐요.
3. 내가 시집하나는 잘 왔지
4. 여보 내가 당신을 얼마나 존경하는지 모르지요?
5. 역시 당신밖에 없어요.
6. 다시 태어나도 당신과 결혼하겠어요.
7. 당신은 다른 남자들과 질적으로 달라요.
8. 당신은 하나님 다음이에요.
9. 당신 품에 있을 때가 제일 편안해요.
10. 여보 용돈을 좀 더 드릴께요.
경건의 삶을 점검하는 7가지
1. 나는 항상 기도하며 살고 있는가.
2. 나는 항상 기뻐하며 살고 있는가.
3. 나는 범사에 감사하며 살고 있는가.
4. 나는 그 어떤 것을 보고서도 욕심을 버릴 수 있는가.
5. 나는 언제나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살고 있는가.
6. 나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가.
7. 나는 어떤 일을 당하여도 두렴 없이 담대하게 살 수 있는가.
기이한 것은 바로 지금입니다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여름에 시원한 이야기 좀 할까요?
1월 5일 아침 7시 30분 수은주가 영하 13도 이하를 가리키는 매서운 小寒 , 지하철 3호선으로 구파발 역에 도착, 연계되는 156번 버스로 북한산 국립공원 에 하차, 해발 836.5m 백운대에 올랐습니다.
백운산장에 내려와 싸 가지고 간 김밥을 먹으면서 12년 전에 바로 이 자리에서 본 기이한 현상을 회상합니다. 그 때도 꼭 이런 날씨였습니다. 친구들과 백운산장에서 좀 떨어진 바위 위에서 본 기이한 광경입니다.
12년 전 그 날. 전 날 내린 눈이 한낮의 햇빛을 받아 녹아서 나무 가지 가지마다 물방울로 맺혔다가 그 날 밤 강추위로 물방울이 꽁꽁 얼어붙어 나무 가지가지 하나 하나가 투명한 얼음 속에 갇혀있습니다. 온 산에 나무 가지가지가 모두 투명하다못해 파르스름한 다이야몬드 반지를 끼고 있는 모양입니다. 여기에 찬란한 햇빛이 비추자 온 산이 오색 찬란한 영롱한 보석 빛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것이 정말 너무 너무 황홀한 풍광이었습니다. 숨막히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것은 온 골짜기를 흔들어 놓는 바람이 불자, 나무 가지가지가 서로 부딪치며 내는 소리가 큰 물결이 소리치는 듯, 백만 대군이 눈보라를 휘날리며 광활한 설원을 질타하며 아우성치듯 다- 다- 다-, 따- 다- 닥- 따- 닥-, 우- 르- 르- 르- 릉-, 다- 다- 닥- 하는 소리에 넋을 잃었습니다
12년이 지난 지금인데도 그날 온 산에 가득한 그 얼음 막대기 가지가지가 연출한 그 기이하고 웅장하고 절묘한 풍광은 눈에 선합니다. 아,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 때 나는 이런 멋진 풍경은 겨울만 되면 아무 때나 산에 올라오면 언제라도 흔히 있는 일인 모양이다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걸 그 후에야 알았습니다. 그 때는 그 것이 그렇게 귀하고 귀한 것인 줄 예전엔 미처 몰랐다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후 지금까지 그렇게 아름답고 감동적인 풍광을 한 번도 보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산사람들에게 물어보았더니 그런 현상은 자기들처럼 산에 매일 다니는 사람들도 수년만에 어쩌다 한 번 보는 정도로 지극히 드물고 드문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지금 여기서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가?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사람, 지금 내가 처한 상황,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 하나 하나가 그처럼 기이하고 기이한 일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에 사로 잡혔습니까?
사람은 한 평생 무엇인가에 사로잡혀 그것만 바라보고 삽니다.
돈에 사로잡힌 사람은 돈밖에 안 보입니다.
사업에 사로잡힌 사람은 사업밖에 안 보입니다.
여자에 사로잡힌 사람은 여자밖에 안 보입니다.
도박에 사로잡힌 사람은 도박밖에 안 보입니다.
권력에 사로잡힌 사람은 권력밖에 안 보입니다.
불평에 사로잡힌 사람은 온통 불평 꺼리 밖에 안 보입니다.
하나님께 사로잡힌 사람은 하나님 밖에 안 보입니다.
가장 행복한 삶은 두말할 것도 없이 하나님께 사로잡혀 하나님만 바라보고 사는 것입니다. “저희로 마귀의 올무에서 벗어나 하나님 께 사로잡힌 바 되어 그 뜻을 좇게 하실까 함이라”(딤후2:26)
요한 웨슬리의 간증
"내가 회심을 하고 중생을 체험하기 전에도 선교사였으며 예수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예수를 열심으로 믿었고 온갖 교회 일에 몰두했습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아들의 믿음이 아니요 종의 믿음을 가졌었습니다. 종의 믿음은 억지로 하는 것입니다. 아들의 믿음은 은혜요, 축복입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때
그리스도인 이라고 말할 때는
구원받은 자임을 외치는 것이 아니라
한때는 죄인이었음으로 속삭이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선택했노라고
교만한 마음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실수하는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필요 하노라고
강한 자임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약한 자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힘주시기를 기도하노라고
성공했음으로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했음으로 시인하는 것이다
내가 진 빚을 다 갚을 수가 없노라고
모든 것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몰라서 혼란스러움을 시인하는 것이다
그래서 겸손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구하노라고
온전하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함이 많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오직 하나님의 인정하심만을 믿노라고
삶의 고통이 사라졌다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 몫의 고통을 지셨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이름을 찾노라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때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판단의 권위가 내게 없음을 말하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을 뿐이라고.
지름길은 없습니다
한 희랍의 수학자가 "기하학에 지름길은 없다."라는 말을 하였습니다. 이 말은 노력하지 않고 어떻게 쉽게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나 하고 궁리하는 젊은 학도들에게 주는 경고입니다. 우리들도 알고 있듯이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경에서도 마찬가지이며 우리들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이 길은 지름길이 아닙니다. 날마다 자신을 부인하고 날마다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들만이 들어갈 수 있는 길입니다.
어린이는 어리석은 이 어른은 어루으는 이
‘어린'이 라는 말은 ‘어리석은' 이라는 말의 줄임말입니다.
그래서 어린이의 특징은 ‘어리석음'입니다. 아 직 깨닫거나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올바른 판단 을 내리지 못하는 것이 어리석음이지요.
그래서 성경은 그 어리석음을 다스리기 위해 “매를 들지 않는 자는 자기 자식을 미워하는 것이나,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알맞은 때에 징계하느니라.”(잠언 13:24)고 했습니다. 영적으로 ‘어린'이들이 많지요. 영적으로 어린 사람들은 자신의 모습은 보지 못한 채 남을 비난하거나 판단합니다. 핑계를 잘 대고 약속도 잘 안 지킵니다. 배려 할 줄도 모르고 자신의 권리는 기가 막히게 찾으면서 의무는 나 몰라라 합니다. 항상 자기 중심적이며 희생을 모릅니다. 어리기 때문이지요. 남에게 조금만 섭섭한 소리를 들어도 잘 삐치고, 이해할 줄 모르고, 독선적이고, 항상 대접받기만 바랍니다. 왜냐하면 어리기 때문에요. 영적인 어리석음, 어린이에서 빨리 자라나 장성한 성인이 되세요. 우리나라 기독교가 사람 숫자는 많지만 큰일을 못하는 것은 영적인 어린이들이 너무 많기 때문입니다.
‘어른'이 라는 말은 ‘어우르는'이 라는 말의 줄임말입니다.
그래서 어른의 특징은 ‘어우름'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의견을 이해하고 받아들여 함께 모나지 않고 잘 어울리도록 조화를 이루는 포용력이 바로 ‘어우름'입니다. 어른은 그동안 살면서 이 세상은 나 혼자만의 세상이 아니라 의견이 다른 여럿이 모여 산다는 것과, 서로 양보하고 이해하고 배려해야 나도 좋고 남도 좋다는 것을 깨우친 사람입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조금 손해가 되고 섭섭한 마음이 들더라도 포기할 줄도 알고 다음을 기약하며 마음이 상하지 않는 것입니다.
몸집은 다 자란 성인인데, 생각이나 마음이 아직도 어리석은 어린이인 사람이 많습니다. 다른 사람을 포용할 줄 모르고 자기만 아는 독불장군, 안아무인이며, 남을 헤아릴 줄 모르는 사람은 아직 어른이 아닙니다.
몸은 다 자랐지만 아직 어른이 안 된 사람을 ‘성인아이'라 하고 그 정도에 따라서 상담학 에서는 ‘정신병'으로 분류하기도 합니다.
영적인 어리석음, 어린이에서 빨리 자라나 장성한 어른이 되세요. 우리나라 기독교가 사람 숫자는 많지만 큰 일을 못하는 것은 포용력이 있는 영적인 어른이 너무 적기 때문입니다.
아내를 신바람나게 하는 말
1. 여보, 사랑해요.
2. 당신은 어쩜 그렇게 내 입에 딱 맞게 요리를 잘 해?
3 당신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내 사람이요.
4. 역시 우리 장모님이라니까.
5. 다 당신 기도 덕분이야.
6. 처녀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예뻐.
7. 내가 당신이랑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겠어.
8. 당신 잠든 모습은 마치 천사 같아.
9. 여보, 좀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기도가 무엇이냐?
기도가 무엇이냐? 한마디로 말하라면 ‘허덕이지 않는 것' 입니다.
나 잘났다고 뽐내지 않는 것
내 몫이 왜 요것밖에 안되냐고 까탈 부리지 않는 것
세상일은 나 혼자 다하는 양 허둥대지 않는 것
천둥이 치고 벼락이 떨어져도 상관하지 않고 어깨를 떡 펴고 걷는 것
남의 비난이나 중상 모략쯤은 씩 한번 웃고 상관도 않는 것
기도가 무엇이냐? 한마디로 말하라면 ‘직면하는 것' 입니다.
비겁하게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것
다음에 해야지 미루지 않고 당장에 꼿꼿히 일어서 전진하는 것.
장애물을 피하지 않고 밟고 넘는 우직함.
신앙생활에 있어서 아무것도 되는 일이 없다고 느껴질 때, 그래서 기도로
돌파구를 찾고 싶은 사람들은 명심하시라!
기도는 ‘허덕이지 않고, 직면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행복이 별거더냐?
어떤 주부의 이야기인데, 어느 날 갑자기 머 리가 아파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보니 뇌종양 이랍니다. 그것도 악성 종양이어서 얼마 못 살 거랍니다. 수술 날짜를 잡기는 했지만 수술실에 서 걸어 나올 보장이 없는 수술이랍니다. 수술 하기 전 날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아이들의 옷을 차곡차곡 개 옷장 속에 넣으며 한없이 울 었더랍니다. 자기가 아니면 양말 한 짝 찾아 신 지 못하는 남편의 속옷과 양말을 서랍장에 넣으 면서도 펑펑 울었더랍니다.
수술실로 들어가던 날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보는데, 지켜보던 남편이 그제서야 실감이 나는 듯 ‘어쩌면 좋아' 하며 땅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랍니다. 얼마 후에 수술이 성공적으로 끝나 퇴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한번의 짧은 삶이 주어진 이 주부의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은 마치 천국 같더랍니다. 모든 것이 다 새롭고 모든 것이 다 귀하고 모든 것이 다 고맙고 감사하지 않은 것이 없더랍니다. 맨날 짜증을 부렸던 남편의 뒤집어 벗어놓은 양말도, 늦잠 자는 아이들을 깨우는 것도, 누군가 집 앞에 몰래 버려놓은 쓰레기도, 사람들이 서로 싸우는 모습까지도 그냥 좋아 보이고 감사하더랍니다. 이 땅에서 숨쉬는 그것 자체가 행복이더랍니다
우리는 뭔가 나에게 부족한 것, 없는 것이 채워져야 그나마 조금이라도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고 ‘뭐가 없다. 뭐가 안 돼. 뭐가 불만이야' 하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어둡고 부정적인 생각이나 말은 다른 사람들의 에너지를 끌어당깁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합니다.
행복은 나에게 내 놓을 것이 있어서 밖으로 나갈 때, 또는 흘러 넘칠 때 느끼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밝고 긍정적인 생각이나 말은 나에게서 좋은 에너지가 나갑니다. 그래서 말하는 나도 행복하고 듣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해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방법을 아주 쉽게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나의 의식과 생각을 바꾸는 것입니다. 어두운 생각에서 밝은 생각으로, 부정적인 생각에서 긍정적이 생각으로, 안 된다는 말보다는 된다는 말을 많이 하고, 꾸중하기보다는 칭찬을 많이 하고, 하지 말자는 쪽에서 하자는 쪽으로 생각을 바꾸기만 해도 행복해집니다.
우리는 돈이 없어도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습니다 .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도 얼마든지 퍼주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얼마든지 사랑의 사람, 빛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사랑받는 남편 10계명
1.같이 자라 - 한 침대에서, 한 이불을 덮고, 같은 시간에.
2.밥을 다 먹어라 - 맛있다 맛있어 하면서,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
3.아내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어라 -가로막지 말고 맞장구 쳐주어라.
4.아침을 활기차게 시작하라 -남편의 활기는 금방 아내에게 전달된다.
아내가 깨워야 일어나지 말고 미리 일어나 창문을 열어라!
5.처가에 가서는 싱글벙글 하라 - 갈 때는 선물 을 잊지 말 것!
처가에 가서는 가장 늦게 나올 것.
6.부부동반 모임을 즐겨라. 부부모임은 가능한 한 참가하여 즐겨라.
7.잘못했으면 곧 사과하라 - 곧 사과하라! 지금 곧.
8.아내 편을 들라. 일단은 아내의 편을 들고나서 잘잘못을 따져라.
9 .생일 결혼기념일을 잊어버리는 것은 간 큰 남자!!
10.결혼반지를 빼지 말라.
당신은 세련된 사람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교양이라는 말과 인격 이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누가 교양인이 고 누가 인격자입니까? 독일의 언어학자 비트겐슈타인은 인격은 말에 의해서 나타 난다고 합니다. 언어가 그 사람의 교양의 척도이고, 인격의 척도라는 것입니다. 외 모는 세련되었는데 말은 거칠다면 그것은 결코 세련된 것이 아닙니다. 세련된 말을 할 줄 알아야 정말 세련된 것입니다. 그러나 세련된 말이란 상류사회에서 쓰는 어떤 특별한 말이 아니라 결국 칭찬해 주는 말이 세련된 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있는 곳을 아름다운 말이 넘치는 환경으로 만들어 가는 세련된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교육학자 벤자민 블룸은 사람의 환경을 물질환경과 언어환경으로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물질환경보다 언어환경이 훨씬 소중합니다.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무엇보다 좋은 언어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가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무엇을 못해 주었다고 속상해 하지만 정말 속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자녀에게 따뜻한 말 해주지 못한 것입니다. 보약을 찾을 필요 없습니다. 따뜻한 말을 주는 것이 보약보다 소중합니다. “나에게 당신이 소중해요!” 라는 그 한 마디가 상대방의 건강을 회복시킵니다. 그 말이 남편을 건강하게 하고, 아내를 건강하게 만듭니다.
성경은 칭찬하는 말이 뼈를 윤택하게 한다고 합니다. 골다공증으로 고생하는 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칭찬하는 말입니다. 낙심한 사람에게 “제가 기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사랑하십니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그 생명을 윤택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명절이 되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을 해야 하겠는데 돈이 없어서 걱정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러나 선물보다 훨씬 좋은 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감사의 언어가 담긴 편지를 써서 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 담긴 칭찬하는 말입니다.
지난 목요일 성경공부를 하는데 갑자기 성경공부 하던 분들이 저를 한참 비행기태워 주었습니다. 겉으로는 “괜히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라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정말 신났습니다. 그 전날 잠을 제대로 못 잤는데 그로 인한 피곤이 싹 가셨습니다. 물질문명은 발달하지만 언어는 갈수록 황폐해져가고 있는 이때에 더욱 겸손하게 우리의 언어를 지켜서 우리가 속한 공동체를 사랑과 용기가 넘쳐 나는 아름다운 공동체로 만들어가지 않겠습니까?
ⓒ이한규 목사(분당 샛별교회)
세 증인의 증언
법정에서 증인의 증언은 가장 유력한 증거로 인정됩니다. 증인의 증언은 나를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합니다. 나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정직하게 증언을 해 줄 수 있는 증언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첫째는 나 자신입니다. 그 누구보다도 나는 내가 가장 잘 압니다. 나에게는 양심이 있어서 다른 사람들이 다 속을지라도 나는 나를 속일 수 없습니다.
2.둘째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에 편만하십니다. 내가 숨을 쉬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눈을 피할 곳은 이 세상에는 없습니다.
3.셋째는 나의 일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나를 증명해 줍니다. 저울추를 속이거나 사람들에게 이롭지 못한 일을 하면 그 순간에는 돈을 벌지 모르나 반드시 나중에 그 댓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 가지의 증언자와 친해지십시오. 내가 곤경에 처했을 때 나에 대해서 정직하게 증언을 해 줄 증언자들입니다. *
어리석은 사람
어떤 할머니에게 외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이 미국으로 건너가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할머니는 아주 빈궁하고 가난한 생활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보다못한 주변의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할머니의 아들이 미국에서 크게 성공했다고 하는데, 그 아들은 왜 어머니를 도와주지 않고 이렇게 어렵게 살게 하지요?”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얼굴이 빨개져서 “도와주지는 않지만 가끔 편지도 오고 이상한 그림도 오곤 하기는 해요!”
나중에 알고 봤더니 그 이상한 그림은 거액의 수표였습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수표를 쌓아두고도 쓸데없이 가난하게 산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가끔 하나님으로부터 거액의 수표가 날아옵니다.
그것은 누군가가 당신에게 “기도하라”고 하는 그 충고입니다.
기도하면 원하는 것을 무엇이든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도'하라는 수표의 가치를 무시해버리고서 여전히 기도하지 않고, 여전히 고생하며 삽니다. 이 글을 읽고도 틀림없이 당신은 무시해 버리고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
록펠러의 생활신조
미국 록펠러 재단을 세웠고, 여러 가지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있는 록펠러는 어렸을 때 어렵게 자랐으나 그의 어머니가 유언으로 남긴 말을 따라 살아서 세계제일의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의 유언은
1.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라.
2.목사님을 하나님 다음으로 섬겨라.
3.아무도 원수로 만들지 말라.
4.예배시간에는 항상 앞자리에 앉아라.
5.오른쪽 주머니는 항상 십일조 주머니로 드려라.
6.주일예배는 본 교회에서 드려라.
7.아침에는 목표를 세우고 기도하라.
8.남을 도울 수 있으면 힘껏 도우라.
9.아침에는 꼭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라.
10.잠자리에 들기 전 하루를 반성하고 기도하라.
추석과 크리스쳔
추석의 좋은 점이라면?
추석 같은 절기 행사는 평소 떨어져 지내던 가족 들이 한 자리에 모여 즐거움을 나누면서 1년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아주 중요한 공동체 행사다. 추석이 좋은 것은 우선 많은 이 야기와 웃음이 있어 불신자가 있다면 이때같이 좋은 전도기회가 없다는 점이다.
추석 때 제사와 추도예배 문제로 불신자와 크 리스천 가족들이 부딪치는 일들이 종종 있다. 이때 크리스천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이것은 이 땅에 기독교가 전파된 이래 끊임없이 제기되어 온 문제 중 하나다. 모든 문제는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다. 긍정적으로 보면 이게 좋은 선교의 기회가 될지도 모른다. 우선 크리스천들은 추석을 복음전파의 시기로 활용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불신자 친척을 만나기 전에 뜨거운 기도가 필요하고 복음을 그들에게 몸소 보여줘야 겠다는 각오가 필요하다.
제사를 드릴 시 크리스천은 같이 절해야 하는가?
그리고 제사음식은 어떻게 먹을 수 있는가?
만약 제사에 참여해 절해야 하는 경우라면 우선 ‘저는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조상님께 절하기보다는 추모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리겠습니다' 라고 말해라. 그 다음 조용히 무릎을 꿇고 기도한 후 돌아가신 분 보다는 복음을 받아들여야 할 산 사람에 대한 기도를 하라. 물론 그 날만이 아니라 평소에 기도하는 게 기본이다.
그리고 제사 음식 차리는 것은 절대 마음의 부담을 갖지 말고 평소보다 더 열심히 음식을 장만해 손님을 맞아라. 물론 제사는 우상 숭배지만 음식 자체가 어떤 능력을 가져서 일반 불신자들의 생각같이 혼령이 와서 그 음식을 먹는 것도 아니다. 모인 식구들이 어차피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이므로 가족 간의 교제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게 음식이다. 어쩌면 제사에 대한 부담으로 인한 언짢해 하는 듯 한 표정과 행동이 친교의 기회 또한 상실하게 할 수 있다.
사실 제사음식을 나눈다는 자체는 그것을 통해 유대와 일치를 노리는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제사라는 행위 자체는 나쁘지만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긍정적인 요소, 이를테면 효(孝)나 가족 공동체 형성 같은 좋은 의미는 살릴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평소의 삶과 일치되는 효를 통해 진정한 크리스천의 모습, 진정한 가족 공동체의 원형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오늘만의 십계명
1.오늘만은 행복하게 지내십시오.
2.오늘만은 자신의 마음을 지키십시오.
3.오늘만은 몸을 조심하십시오.
4.오늘만은 유익한 일을 하십시오.
5.오늘만은 유쾌하게 보내십시오
6.오늘만은 마지막 날처럼 사십시오
7.오늘만은 철저한 시간 계획을 세우십시오.
8.오늘만은 혼자서 조용히 휴식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9.오늘만은 주어진 상황에 순응하십시오
10.오늘만은 두려워 마십시오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법
이솝 우화에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 라는 이야 기가 있습니다. 쥐들이 사는 평화로운 동네에 고양 이가 출현하여 매일 매일 쥐를 잡아먹었기 때문에, 공포에 질린 쥐들이 대책 회의를 열었는데, 그 대책 이란 것이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면, 고양이가 움 직일 때, 딸랑 딸랑 방울 소리가 날 테니 그러면 그 방울 소리를 듣고 미리 피할 수 있다. 그러므로 고 양이 목에 방울 달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러 갈 것인가? 하는 문제에 부딪치자 모두 손사래 쳤다는 이야기입니다. 이현주 우화집 <모퉁이 돌>에서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평화로운 토끼 나라에 커다란 뱀이 나타났습니다. 토끼 나라의 평화가 깨졌습니다. 뱀은 매일 매일 토끼를 잡아먹었습니다. 토끼들은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에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문을 닫아걸고 공포 속에 살았습니다.
그 때 이미 뱀에게 그 사랑하는 짝을 잃고, 그 자신의 왼 쪽 발 하나도 뜯긴 절름발이 토끼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이 토끼는 곰곰이 생각하였습니다. 이 건 도무지 사는 것이라 할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예전의 평화로운 토끼나라를 회복 할 수 있을까?. 절름발이 토끼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토끼나라의 평화를 되찾으려면 저 흉악한 뱀을 없애는 길 밖에 없다. 결국, 토끼도 이솝우화의 저 쥐들처럼 어떻게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하는 문제에 도달하였습니다.
절름발이 토끼는 오래 고뇌하였습니다. 그리고 오직 한 길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토끼는 문을 열고 집밖으로 나갔습니다. 토끼는 울긋불긋한 버섯이 많이 피어 있는 숲으로 갔습니다. 토끼는 그 아름다운 버섯을 마구 마구 뜯어먹었습니다. 머리가 어찔어찔하였습니다.
토끼는 절름거리며 뱀 굴로 갔습니다. 토끼는 뱀 굴 앞에 서서 “이 못된 뱀아, 나와봐라, 이 나쁜 놈아!” 하고 소리쳤습니다. 뱀이 슬- 슬- 슬- 기어 나와 절름거리는 토끼 모양새를 보고는 아니 이놈이 미쳤나! 하였습니다. 뱀은 마침 배도 출출한 판인데 어쨌든 잘 됐다 하고 덥석 한 입에 절름발이 토끼를 삼키고, 제 굴로 도로 들어가 엎드렸습니다. 그리고 뱀은 그 굴에서 영원히 나오지 못하였습니다. 토끼 나라에는 다시 활기찬 자유와 넘치는 평화가 찾아왔습니다. 절름발이 토끼는 고양이 목에 방울 다는 법, 자유와 평화를 되찾는 법을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이정수 목사 <말씀의샘물 2권>
좋은 사람
1. 자신의 실수를 솔직하게 인정할 줄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2. 항상 자신을 반성하고 발전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3. 책임질 일은 손해가 되더라도 철저하게 책임지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4. 행동은 먼저, 말은 나중에 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5. 가능한 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6. 남의 말을 열심히 들어주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7. 어려운 문제에도 더 좋은 해결책이 있음을 믿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8. 열심히 일하면서도 시간적인 여유를 낼 줄 아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9.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10. 반드시 싸워야 할 것과 타협해야 할 것을 구별하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11. 자기보다 나은 사람을 존경하며 배울 것을 찾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12. 항상 자기 분수를 지키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13. 희생할 줄 아는 사람은 좋은 사람입니다.
사람의 값은 ?
이 세상에서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이 귀하게 대접을 받고, 돈도 못 벌고 생산성이 없는 사람은 천대를 받습니다.
그러나 저는 사람의 값은 이미 이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에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다 정해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돈으로 사람의 값을 매기지만, 하나님은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을 얼마나 이루었느냐로 값을 매깁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면 그 사람은 비싼 사람일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 마음대로 살았다면 아무리 돈 많은 부자라도 거지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계획은, 뜻은 무엇일까요? 시대와 역사를 초월하여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의 보편적인 가치가 하나님의 계획이고 뜻입니다. 그것은 '선과 악'입니다. 어느 시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도 똑같이 존재하는 것이 '선과 악'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게 사는 사람은 비싼 사람이지만, 악하게 사는 사람은 쓰레기입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선(善)'과 '구원'을 서로 같은 것으로 혼동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선하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구원받았기에 선하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두 가지는 전혀 다른 별개의 문제입니다.
싸구려 인생을 살지 말고 나 자신의 가치를 높이세요. 그 말은 비싼 차나 보석으로 자신을 치장하라는 말이 아니라, 제발 진실(眞實)하고 착하고 선(善)하게 살라는 말입니다.
손 사용 10곕명
1.어깨를 치는데 사용하지 않고, 두드리며 격려하는데 사용하겠습니다.
2.때려서 상처 내는데 사용하지 않고, 싸매고 치료하는데 사용하겠습니다.
3.손을 내저어 거부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꼬옥 잡아주는 데 사용하겠습니다.
4.도박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봉사하는데 사용하겠습니다.
5.받기만 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나누어주는데 사용하겠습니다.
6.손가락질하며 비방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위하여 기도하는데 사용하겠습니다.
7.요행을 바라며 투기하는데 사용하지 않고, 열심히 일하는데 사용하겠습니다.
8.어지르는데 사용하지 않고, 치우는데 사용하겠습니다.
9.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는데 사용하지 않고, 책을 잡는데 사용하겠습니다.
10.나를 위해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겠습니다. *
예배를 성공하는 방법
사람은 축제에 초대를 받을 때 차림세로 마음 을 나타낸다. 초대받은 사람이 반바지 입고 작업 복을 입은 채로 가면 대단한 실례다. 주인의 입 장도 생각하고 잔치를 빛내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것이 초대한 사람을 생각해주는 것이다.
깨끗한 옷은 최소한의 예의이다. 옷은 신분을 구분해준다. 비싼 옷을 입고 교회에 오라는 얘기가 아니라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얘기이다. 예배 때 마음과 정성을 다해 최고의 것을 준비하고 오는 것이 성도의 예절이다.
유대인들은 안식일 전날을 안식일의 예비일이라고 해서 안식일을 준비했다. 성도도 그렇게 토요일부터 예배를 준비하면 반드시 예배 중에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 무엇이든지 준비가 철저하면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배도 미리 예배를 준비하는 사람이 성공적인 예배자가 된다.
예배드릴 때 그냥 드리지 말고 열린 마음의 준비를 하고 드리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배가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지는 것이다.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란 책에 이런 글이 있다. 가난한 아빠는 말한다.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베풀 것이다.” 그러나 부자 아빠는 말한다. “베풀 줄 모르는 사람은 부자가 될 수 없다. 그러므로 기부금 내는 데에도 많이 내라 그래야 부자가 된다.” 구두쇠가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베풀고 좋은 소문을 내는 자가 돈을 번다. 더 나아가 선한 일의 소문이 하나님께 들리면 그 모습을 얼마나 기쁘게 보시겠는가? 그런 식으로 베푸는 삶을 살려면 돈도 있어야 하기에 일터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그러나 주일에 하나님을 외면하면서까지 일터나 사업장으로 가면 안 된다.
성경에 장가들려고 주님의 초청에 못 간다고 거절하는 사람도 나온다. 새로 장가든 자는 아내를 즐겁게 하기 위해서 전쟁에도 안 나가고 직업도 일 년간 쉬게 되어 있다. 그처럼 부부는 서로 즐겁게 해 주어야 하고, 부자간에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러나 서로를 즐겁게 해주려고 예배 자리를 멀리하면 안 된다.
가정은 소중한 장소지만 하나님보다 가정이 크게 보이면 안 된다. 자녀는 소중한 내 자녀이지만 하나님보다 자녀가 크게 보여도 안 된다. 가정과 자녀를 사랑하기에 하나님이 크게 보이고, 하나님이 마련하신 천국 잔치가 크게 보여야 한다. 돈도 중요하고, 즐거움도 중요하고, 가정과 자녀도 중요하지만 하나님이 빠진 돈과 즐거움과 가정은 참으로 허무한 것이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하다. 예배를 무엇보다 우선순위에 두어야 예배를 성공할 수 있다.
ⓒ이한규 목사
오직 그리스도를 바라라
큰 성공을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자
큰 지위를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자.
큰 교회를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자.
큰 부요를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자.
큰 명성을 바라지 말자.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자.
큰 성공과, 큰 지위와, 큰 교회와, 큰 부요와, 큰 명성이 모두 예수 그 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없는 성공과 지위와 교회와 부 요와 명성은 모래 위에 세운 집처럼 언제 무너져버릴지 모릅니다.
올해는 목에 칼이 들어와도 오직 예수 !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며 살아갑시다. *
성경적인 대화법
1.들을 준비를 하고 상대방이 말을 끝내기 전에
대답하지 않는다.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잠18:13)
2.말을 더디하고, 먼저 생각하며 서둘러 말하지
아니한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거니와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1:19)
3.상대가 알아들을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말한다.
4.진실을 말하되 언제나 사랑 안에서 말한다. 사실을 부풀려 말하지 않는다 .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매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엡4:15)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엡4:25)
5.말다툼을 벌이지 않는다. 다투지 않고도 의견을 달리할 수 있다. - ‘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어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잠20:3)
6.화를 내면서 대꾸하지 않는다. 부드럽고 친절하게 대꾸한다. -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잠15:1) ‘어리석은 자는 그 노를 다 드러내어도 지혜로운 자는 그 노를 억제하느니라'(잠 29:11)
7. 잘못을 했으면 인정하고 용서를 빈다. 상대가 잘못을 고백하면 용서한다고 말한다. 반드시 그것을 잊어버리고 다시 언급하지 않는다
‘허물을 덮어 주는 자는 사랑을 구하는 자요 그것을 거듭 말하는 자는 친한 벗을 이간하는 자니라.'(잠17:9)
8. 상대를 책망하거나 비판하지 않는다. 오히려 회복 시켜주고 격려한다. -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네 자신을 돌아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갈6:1) ‘피차 권면 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하라.'(살전5:11)
9.누가 말로 공격하거나 비판하거나 책망하면 똑같이 대꾸하지 않는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롬12:17) ‘악에게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 *
용감한 골리앗?
어떤 사람이 가정 예배를 드릴 때의 일입니다. 그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6척 장군 골리앗이 있었단다. 그가 이스라엘에 쳐들어와 전쟁하자고 외쳤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 무서워 나무 뒤에, 숲 속에, 굴속에 숨었단다. 이스라엘이 바람 앞에 등불처럼 꺼져가고 있을 때 17살밖에 안되어 솜털밖에 안 나서 면도칼도 필요 없는 소년 다윗이 용감하게 싸우러 나갔단다.”
여기까지 설교가 이어졌을 때 아들이 설교를 갑자기 중단시키며 말했습니다.
“아빠! 다윗이 용감한 것이 아니라 골리앗이 용감하네요.”
그는 아들에게 이상해서 물었습니다.
“얘야! 다윗이 용감하지 어째서 골리앗이 용감하니?”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빠! 소년 다윗은 아무리 조그마해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
니까 나가서 싸우는 것이 당연하지만, 골리앗은 아무리 커도
하나님도 함께 하지 않는데 자기만 믿고 싸우는 것이 얼마나
용감해요?” *
욕샘내고 싶은 10가지
1. 성경 읽기 대회에 1등 욕심내고 싶습니다.
2. 가족 찬양도 최고로 잘하고 싶습니다.
3. 교회의 가장 앞자리를 욕심내고 싶습니다.
4. 예배에 한번도 안 빠지는 개근상은 정말 욕심부리고 싶은 최고의 상입니다.
5. 남 도와주고서 주님께 칭찬 듣는 일도 욕심내고 싶은 일입니다.
6. 무엇보다도 우리 교회 기도 대장 자리를 놓치고 싶지 않습니다.
7. 말씀 듣는 시간을 정말 욕심부려 챙기고 싶습니다.
8. 교회에 언제나 일등으로 와서 예배당에 불을 켜는 순간을 욕심내고 싶습니다.
9. 가장 양보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을 욕심내고 싶습니다.
10. 하나님께 가장 좋은 것을 드리는 일을 욕심내고 싶습니다. *
위약 효과
프랑스 약사 에밀 쿠에는 1950년 Placebo Effect(플라시보 이팩트/ 위약효과)를 발견한 사람으로 유명합니다.
어느 날 쿠에가 잘 아는 사람이 의사의 처방전 없이 찾아와, 몹시 아파 죽을 지경이니 약을 지어달라고 하였습니다. 쿠애는 처음에 당연히 거절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시간이 늦어 병원 문도 닫혔고, 지금 당장 아파 죽겠는데, 내일까지 어떻게 기다리느냐고, 하소연하였습니다. 쿠에는 위법 행위는 할 수 없고, 당장 딱하기는 하고, 그래서 약간 하얀 거짓말을 하였습니다.
즉, 그 사람이 하소연하는 통증과는 실제로 아무 상관도 없고, 인체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 포도당류의 알약을 지어주면서, 우선 이 약을 좀 먹으면 많이 좋아질 것이다, 그리고 내일 병원에 가보라고 하고 돌려보냈습니다.
며칠 후 쿠에가 그 사람을 만났는데, 그 사람은 “그 거 무슨 약인지 참 신통합디다. 다음 날 병원 갈 필요도 없이, 그 약 먹고 말끔히 나았어요. 참 고맙습니다”
이 환자는 좋아질 것이라고 한 약사와 약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렇다면 낫겠구나 하는 정신적 확신으로 인하여 그 병이 나았던 것입니다. 훗날, “위약(僞藥)효과(Placebo Effect)”라고 불리는 이 유명한 치료법은 이렇게 발견된 것입니다.
쿠에는 이 우연한 발견을 더욱 발전시켜 정신 영역에도 적용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한 공식 하나를 개발하였는데, 그것은 포도당 알약이 아니라 몇 개의 간단한 단어로 만들어진 공식입니다. 이 공식은 곧 전 세계 많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었습니다.
쿠에의 공식은 무엇인가? <날마다 나는 점점 더 나아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간단한 말 한마디가 저 유명한 쿠에의 공식입니다. 이 말을 한문으로 바꾸면 日日新又日新(날마다 새롭고 또 새로워지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쿠에는 이 공식을 하루에 스무 번씩 큰 소리로 외치라고 합니다. 쿠에 공식의 핵심은 자기 암시를 통한 자기 확신입니다. 자기 암시의 황금률은 반복입니다. 쿠에 공식의 최고 효과를 얻으려면 매일 열심히 반복하여야 합니다. 가장 좋은 시간은 묵상 기도 시간, 잠들기 직전, 혹은 잠자리에서 일어난 직후가 가장 좋습니다. 쿠에 공식이 너무 단순하다고 그 효과까지 얕보아서는 안됩니다. 쿠에와 같은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그런 것이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고 코웃음쳤지만, 이 글을 쓰고 있는 우리야말로 쿠에 공식으로 엄청난 효과를 본 증인들입니다
ⓒ마크 피셔/마크 앨런<백만장자처럼 생각하라/국일미디어>
10가지 교인병
나이 드신 어른들이 부르시던 노래의 가사를 소개한다.
첫째는 주일날을 당하였어도 세상일만 생각하니 세상병이요
둘째는 예배당에 재종을 쳐도 아직도 우물쭈물 게으름병이라
셋째는 믿는 형제 서로 보면서 두 눈만 힐끗힐끗 시기병이요
넷째는 예배당에 앉아도 살림살이 염려하니 염려병이라
다섯째는 예배당에 출석부 보니 동그라미 가득하니 결석병이요
여섯째는 예배당에 늦게 나와서 정신 없이 기도하니 외식병이라
일곱째는 예배당에 와서 앉아 고개만 끄덕끄덕 졸음병이요
여덟째는 성경말씀 암만 들어도 은혜 받지 못했으니 기갈병이라.
아홉째는 헌금 바칠 때 돈 아까워 우물쭈물 인색병이요
열째는 예배하고 돌아가서도 세상일만 생각하니 세상병이라.
자기 자신을 돌아볼 때 가장 걸리는 것이 무엇인가?
ⓒ 박상훈 목사 <하나님의 프로포즈/크리폼>
영으로 성경읽기
성경을 읽을 때 건성으로 읽지 마세요. 어명(御命:임금님의 명령)을 받들 듯 심각하게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 말씀이 벌떡 일어나 나를 덮쳐옵니다. 성경을 다 쓰고 다 외운다고 해도 성경을 건성으로 읽는다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오히려 “나는 성경을 다 썼네~ 성경을 몇독이나 했네~ 너희들은 뭐냐~” 하면서 자기자랑과 남을 판단하는 판단 꺼리가 되어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립니다.
성경을 지식적으로만 읽지 마세요. 성경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너무 파고 연구를 하고 원어풀이나 역사적 배경을 하다보면, 성경 자체가 주는 ‘생명'을 놓쳐버리기 쉽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눈으로 읽지 말고, 내 심장 속에 있는 영으로 읽어야 합니다. 그러면 심장에서 영적인 파장이 솟구쳐 올라와 거대한 파도가 됩니다. 평생에 성경 한 구절만 내 몸 안에 제대로 들어와도 그 사람은 세상을 말없이 변화시키는 성인(聖人)이 됩니다.
십가가에 못박혔다는 말의 의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 혔다는 것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에 서 그분과 연합되었다는 것이다. 예 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다.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은 분명히 역사적 사건이지만, 단순히 역사적 사건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은 그분 시대의 사람들에게 의미가 있었던 것만큼 현재의 우리에게도 의미가 있다.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갈 2:20)고 말한다.
이 구절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롬 6:6)라는 구절과 연관된다. 여기서 ‘우리 옛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의 사람, 즉 내주하는 죄에 지배를 받는 사람을 의미한다.
‘십자가에 못 박힌다'는 주제와 관련 있는 또 다른 구절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더 이상 내주하는 죄의 종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했다는 것은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뗄 수 없는 관계를 맺는다.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부활 사건에서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는 말이다. 이제 그분의 본능은 우리의 본능이 되었다. 그러므로 그분이 하늘 아버지를 사랑하고 기쁘게 해드렸듯이, 우리도 주를 사랑하고 기쁘게 해드리고 영화롭게 하기를 지극히 갈망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되었기 때문에 가능하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라는 갈라디아서 본문은 헬라어에서 ‘완료 시제'로 기록되어 있다. ‘완료 시제'는 과거에 일어난 일이 현재에 어떤 결과를 남겼을 때 사용되는 시제이다. 그러므로 나의 옛 자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나는 그분과 함께 새 생명으로 부활했다.
나는 내면이 변화된 사람으로서 이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부활한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나는 정과 욕심으로 가득한 육체를 부정하고 날마다 하나님과 함께 사는 기쁨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말의 의미이다.
주님과 전도하면서 만나세요
가장 강력한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은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을 전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전도하려는 우리의 마음을 불안하게 한다거나 망설이게 한다거나, 전도하려고 하는 그 사람의 태가 돌변하게 한다거나 비난을 받게 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전도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마귀가 가장 싫어하는 말은 “예수 믿으세요” 라는 두 마디이고, 가장 싫어하는 일은 그 두 마디 말로 전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의 방해를 극복하고 주님을 증거하면, 상대방의 영혼은 깨어나고 더불어 내 안에도 거룩한 생명의 영광스러움이 가득하게 됩니다. 그것은 영혼의 가장 강력한 활동이며 주님의 임재와 충만함을 가장 쉽게 경험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오랫동안 주님을 믿어도 믿음의 증거가 나타나지 않고 영혼이 지치고 피곤한 이유는 “예수 믿으세요”하는 강력한 무기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에게나 함부로 “예수 믿으세요”하고 말해서는 안됩니다. 주님의 내적인 인도함을 따라 주님이 기회를 주시는 순간 총을 쏘듯 사용해야 효과가 있습니다. ‘전도'는 상대방을 살리기도 하지만 내가 살아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
헌 신
1.헌신은 하나님께 내 뜻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2.헌신은 나 자신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치는 것입니다.(미4:13)
3.아무리 헌신하여도 하나님이 받지 않으시면 그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4.헌신은 하나님을 향하여 거룩하게 구별되는 것입니다.(민6:12)
5.헌신은 성령 충만함을 포함하고 있습니다.(출29:33)
6.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깨끗함을 받은 사람이 헌신할 수 있습니다.
7.헌신은 자발적인 것입니다.(롬12:1)
8.헌신은 개인적인 것입니다.
9.헌신은 희생적인 것입니다.
10.헌신은 영적 예배입니다.
11.헌신은 나의 육체의 힘을 바쳐 할 수 있습니다.
12.헌신은 나의 재능을 바쳐 할 수 있습니다.
13.헌신은 나의 시간을 바쳐 할 수 있습니다.
14.헌신은 날마다 해야 합니다.
말씀 365일
위험에 처했을 땐 시편 91편으로 가세요
? 외롭거나 두려울 때 시편 23편으로 가세요
? 신앙인으로 써 확신이 필요할 때 로마서 8장1절에서 30절로 가세요
? 평안과 휴식을 원하시면 마태복음 11장 25 절에서 30절로 가세요
? 죄를 지었을 때는 시편51편으로 가세요
? 근심이 있을 때에는 마태복음 6장 19절에서 34절로 가세요
? 괴로움과 위기 안에 있을 때에는 고린도전서 13장으로 가세요
? 따돌림을 당하는 것 같을 때에는 로마서 8장 31절에서 37절로 가세요
? 일이나 여행으로 집을 떠나 있을 때 시편121편으로 가세요
? 투자할 일이나 돌려줄 일이 있을 때에는 마가복음 10장으로 가세요
? 믿음의 발동이 필요할 때는 히브리서 11장으로 가세요
? 좁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기도할 때는 시편 67편으로 가세요
? 슬플 때에는 요한복음 14장으로 가세요
? 사람이 실망시킬 때는 시편 27편으로 가세요
? 하나님이 멀게 느껴질 때는 시편 139편으로 가세요
? 세상이 하나님 보다 위대하게 보일 때는 시편 90편으로 가세요
? 열매를 많이 맺고 싶으면 요한복음 15장으로 가세요
? 의기소침할 때는 시편 27편으로 가세요
? 세상이 작아 보이고 자신은 커보일 때 시편19편으로 가세요
? 사람들에 대한 자신감을 잃어갈 때 고린도전서 13장으로 가세요
? 돈이 없을 때에는 시편 37편으로 가세요
? 사람들이 불친절해 보이면 요한복음 15장으로 가세요
? 내가 한 일에 낙심될 때 시편126편으로 가세요
? 바울의 행복의 비밀은
? 골로새서 3장12절에서 17절로 가세요
? 아주 좋은 기회가 있으면 이사야55장으로 가세요
? 다른 사람과 잘 지내려면 로마서 12장으로 가세요
4가지 평화
1. 십자가의 구속을 믿음으로 하나님과 원수되고 그 진노와 정죄의 대상이던 내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누리는 화평(롬5:1-2)이 가장 원천적인 평화다.
2.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한 사람에게는 내적인 깊은 평안을 주신다. 이 평안은 예수의 평안이며(요14:27)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인 즉 절대적인 것이어서 무엇으로도 빼앗을 수 없고 지각에 뛰어난 것이다.(빌4:7) 이 평화는 노한 파도가 부딪쳐 깨지는 바다 절벽 위에 어미새 날개 밑의 새끼 새의 평안 같은 것이다.
3. 하나님과 더불어 화평하고 내적으로 깊은 하나님의 평안을 소유한 사람은 속에 내란이 끝났음으로 모든 이웃과 더불어 싸움이 있는 곳에 화평을 심 는다.
4. 이런 사람들은 예수의 천년왕국과 영원왕국에서 사자가 초식하고 아기가 독사와 장난하는 우주적 평화 시대의 시민으로 참여한다.
지혜로운 사람의 특징
독일 베를린의 막스 플랑크교육연구소가 15년 동안 1천명을 대상으로 나이와 지혜의 연관성을 연구했습니다. 연구소는 오랜 연구를 통해 지혜로운 사람들이 갖는 몇 가지 공통점을 밝혀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대부분 역경을 극복했거나 고난을 체험한 경험이 있습니다.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과 일찍 인생의 어두운 단면을 체험한 사람들이 평탄한 삶을 살아온 사람보다 훨씬 지혜로웠습니다. 또한 개방적이고 창조적인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지혜의 빛을 발합니다. 연구소는 인생의 문제를 깊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지혜를 얻는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러나 고집이 세고 괴팍한 사람들은 나이가 들수록 지혜와 신용을 잃는다고 경고합니다. 성경도 지혜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잠16:16)
나의 고향
우리에게 설이라는 기쁜 명절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 모두에겐 태어난 고향이 있고 가야할 고향이 있습니다.
가야할 고향이 있음에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실향민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우리에겐 태어난 육신의 고향이 있고 일생동안 살아가면서 누릴 수 있는 마음의 고향이 있습니다. 마음의 고향은 교회가 될 수 있고 가정이 될 수 도 있습니다.
또한, 영원한 생명을 누릴 수 있는 영혼의 고향이 있습니다.
그 곳은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닌 하나님 아버지가 만드신 영원한 집입니다.
인생을 말 할 때 유수와 같다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 낮이나 밤이나 내 생각과는 상관없이 쉬지 않고 흘러가기 때문입니다.
또한, 활의 살과 같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활 사위에 당겨진 살이 눈에 보이지 않게 목표물을 향하여 빠르게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삶의 끝자락에는 대부분 허무하다는 말을 많이 하게 됩니다.
인생의 마지막에 와 버리면 벌거벗은 겨울나무처럼 앙상한 뿐이요 허무할 뿐입니다. 나중에 남는 것은 한줌의 재가 전부가 되어 버립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최상의 가치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잘 살다가 고향집에 돌아가는 것입니다.
누구나 동일한 삶의 진리가 있습니다. 첫째는 언젠가는 세상을 떠난다는 것이고
둘째는 언제 떠날지 모르는 것이고 셋째는 선악간의 하나님의 심판이 있고 천국 아니면 지옥에서 영원을 보내는 것입니다.
당신은 가장 귀한 사람입니다.
부모의 바람은 자녀가 잘 되는 것입니다.
천국에 계신 부모님의 소원은 무엇일까요?
영원한 고향에서 영생을 누리며 사시지 않겠
습니까?
앙상한 나무이지만 봄의 소망을 갖는 것처럼
우리의 삶도 새로운 봄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시지 않겠습니까?
소중한 것들
어떤 돈 많은 부자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나이가 많은지라 누구에게 재산을 물려주어야 할지 고민에 빠졌습니다. 부자는 우선 당대 최고급 승용차인 롤스로이즈 한 대씩 사서 두 아들에게 선물로 주었습니다.
얼마 후에 큰아들 집에 갔더니, 선물한 롤스로이즈가 다 찌그러진 채 마당에 버려져 있었습니다. 작은 아들 집에 갔더니 선물한 차가 반짝반짝 잘 닦여서 빛이 나고 있었습니다. 큰아들 집에서 상한 기분이 작은 아들 집에 가서 좋아졌습니다.
몇 년 후에 부자는 전 재산을 작은 아들에게 상속한다는 유언을 했습니다.
큰아들의 항의가 있었지만 아버지는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너는 내가 선물한 자동차 하나도 제대로 간수하지 못했다. 그 차는 그렇게 찌그러뜨려서 마당에 방치할 정도로 싼 차가 아니다. 그런 너에게 재산을 맡기면 제대로 간수하겠느냐?”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선물해주신 것들이 많습니다. 건강, 가족, 자녀, 직장, 교회, 재산, 이웃... 혹시 이 좋은 선물들을 찌그러뜨려서 방치해 놓은 것이 있습니까?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주신 선물을 잘 관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지 말라.” (고후6:1)
나침판 처럼
나침반 바늘이 언제나 북쪽과 남쪽을 가리키는 것처럼
저도 저의 삶 자체가 하나님만 가리키며 살고 싶습니다.
나침반이 주머니에 있을 때는 어디를 가리키는지 모르지만
나침반을 손바닥이나 평평한 곳에 놓고 잠잠히 바라보면
그 바늘이 잠시 움직이다가 정확하게 남과 북을 가리킵니다.
저도 이 일 저 일 하면서 정신 없이 하루를 분주하게 살지만
잠들기 전 마지막 시간에 주님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으면
분주했던 나의 하루가 정돈이 되고
정확하게 주님을 가리키는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그런 삶을 산다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잠잠히 주님 안에 머물고 싶습니다. *
집사의 직분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직책 중의 하나가 집사 직분이다.
그리고 교회부흥에 중요한 위 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바 로 집사직분이다.
1.집사를 세우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① 사도들의 협력자로 세웠다(행6:1-4)
② 구제 사업을 전담하도록 세웠다(행6:1-4)
③복음전도를 위해 세웠다(행7장)
2.집사 직분의 의미는 무엇인가?
①원어(디아코노스)의 뜻은 남에게 봉사하는 사람, 신복, 수종 하는 자
②교회의 일군(롬16:1) - 사도들의 신임을 받고 교인들에게 인정을 받아야한다.
③섬기는 자(빌2:30) -죽음을 겁내지 않고 충성스럽게 섬기는 자라야 한다.
-주인의 뜻을 분별하여 섬겨야 한다 - 자기의 뜻대로 섬기면 안 된다.
-띠를 띠고 섬겨야 한다(눅12:35) - 단정한 자세로 주인을 섬긴다.
-항상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 언제든지 부르면 대답하고 순종해야 한다.
④사환(마22:13) - 주인의 명령을 집행하는 자로서 주인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⑤사역자(고전3:5) -새신자 양육을 돕는 자로서 항상 모범이 되어야 한다.
3.집사가 될 수 있는 자격은 무엇인가?
①성령이 충만해야 한다.(행6:3) -체험적인 신앙인
②지혜가 충만해야 한다.(행6:3)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
③믿음이 충만해야 한다.(행6:5) -믿음으로 일하는 자
④칭찬을 받는 자야 한다.(행6:3) -성도들의 모범이 되는 자
⑤품행이 단정해야 한다.(딤전3:8) -덕스러운 생활을 하는 자
⑥일구이언하지 말아야 한다.(딤전3:8) -말에 책임을 지는 자
⑦술 취하지 말아야 한다.(딤전3:8) -생활이 구별된 자
⑧더러운 이익을 탐내지 말아야 한다.(딤전3:8) - 정직한 자
⑨믿음의 비밀을 가져야 한다.(딤전3:9) - 믿음을 귀히 여기는 자
결론
집사의 직분은 이름대신에 부르라고 붙여준 이름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귀한 일군으로 선택받은 하나님의 일군이다.
그러므로 집사의 직분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갖고 충성스러운 일군이 되자.
주님과 찬송하며 만나세요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찬송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찬송하라'고 친히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이사야43:21)
성경에는 천사들(시103:20), 성도들(시30:4,149:5), 나라들(시117:1), 어린이들(마21:16), 높은자와 낮은자(시148:11), 젊은이와 늙은이(시148:12), 모든 창조물(시150:6)이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찬송은 하늘나라에서도 영원히 계속 부를 것입니다. 찬송을 하면 마음에 평안과 기쁨과 은혜가 충만하게 되고 주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이 깊어집니다. 조용히 찬송을 부르면 어느새 주님은 그 찬송을 듣고 감격해 하시면서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 건성으로 부른다거나 딴 생각을 하면서 부르는 것은 찬송이 아닙니다. 가능하면 가사를 외워서 한 곡을 여러 번 반복하여 불러보면 좋습니다. 그 찬송이 나의 신앙고백이 될 때가지 반복하여 부르면 더 좋습니다.
주님과 찬송하며 만나세요. 찬송은 주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는 가장 빠른 지름길입니다.
2010.2.21 후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 두가지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힘든 일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미운 사람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입니다.
내게 공격을 퍼붓는 사람에게 관용과 미소를 보내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제퍼슨 대통령의 서재에는 이런 글이 적혀 있다고 합니다. <화가 나면 열을 세라.남을 죽이고 싶으면 백을 세라 사람은 감정의 동물이다.> 간디의 인생훈도 인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내가 지금 화가 나 있다면 이미 옳은 길에서 떠나 있는 것입니다. 영어의 화(anger)는 위험(danger)에서 한 글자가 빠진 것이다.
두 번째는 편안하고 행복한 삶 중에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기가 어렵습니다.
죄가 드러날 때 고백하는 것은 회개가 아니라 ‘자백'입니다. 회개란 자발적인 것입니다. 아무도 내 죄를 알지 못하고 추궁하지도 않을 때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 바로 신앙입니다. 회개란 벌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용서에 대해 감격하는 것입니다.
‘용서'와 ‘회개'는 성숙한 인간을 만드는 가장 좋은 재료입니다. *
감사의 4원리
1. 감사생활은 인생의 행복과 불행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시금석입니다.
감사할 조건이 많은데 감사가 없는 인생은 범사에
불평하면서 인생을 어둡게 살아가고, 감사할 조건이
적은데 감사가 있는 인생은 범사에 감사하면서 인생
이 밝게 살아갑니다. 사람에게 가장 큰 저주는 ‘목
마름'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 ‘메마름'
입니다. 사람은 감사하는 만큼 내 밖의 것이 소중하게
여겨지고, 내 안의 것이 의미 있게 됩니다.
2. 가장 중요한 감사는 ‘조건적인 감사'가 아니라 ‘근본적인 감사'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에 대한 감사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계심'을 감사하는 것입니다. 광야의 어려움을 생각하기보다 출애굽의 은혜를 생각하며 사는 것이 근본적인 감사입니다. 근본적인 감사가 있다면 환경은 더 이상 원망의 문제가 아니라 기도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대신(對神)관계에서 감사를 알면 대인(對人)관계와 대아(對我)관계에서도 감사할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에게 더 큰 감사거리와 축복을 주십니다.
사마리아에서 치료받은 10명의 문둥병자 중에 오직 한 명만 주님께 나와 감사했습니다. 9명이 받은 은혜는 ‘치료'에서 끝나버렸지만 감사한 1명은 ‘구원'의 은혜까지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놀라운 기적의 주인공'이 아니라 ‘감사할 줄 아는 심령'입니다. 불평하는 것은 망하는 연습을 하는 것이고, 감사하는 것은 축복 받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4. 감사는 생각과 마음에서 탈출해 혀끝과 손끝으로 표현되어야 합니다.
종은 울리지 못하면 진정한 종이 아니듯이 감사가 표현되지 않으면 진정한 감사가 아닙니다. 그러나 감사의 표현도 혀끝과 손끝의 80센티미터 거리를 극복해야 진정한 감사가 됩니다. 말로 감사하는 것도 소중하지만 물질을 드려 감사하면 그 감사가 훨씬 진지하고 소중합니다. 손을 펴는 희생이 없는 감사신앙은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진정한 감사신앙이 되기 힘듭니다.
ⓒ이한규 목사
성공자의 좋은 습관 10가지
1.문제점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습관을 가지세요.
2.매너리즘에 빠지지 않는 습관을 가지세요.
3.예의바른 습관을 가지세요.
4.글씨를 반듯하게 쓰는 습관을 가지세요.
5.약속시간을 철저하게 지키는 습관을 가지세요.
6.먼저 인사하는 습관을 가지세요.
7.매일 한시간씩 독서하는 습관을 가지세요.
8.편안한 마음을 갖는 습관을 가지세요.
9.마음을 비우는 습관을 가지세요.
10.미소를 잃지 않는 습관을 가지세요.
주 안에서 행하는 모든 일
여러 해 전에, 정해진 시각에 어떤 큰 오르간 연주회가 열리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르간에 펌프질을 할 사람이 그만 병이 들고 말았습니다. 일이 이렇게 되자 한 유명한 작곡가가 자신이 그 펌프질을 하겠노라고 자원했습니다. 왜 그런 보잘것없고 천한 일을 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작곡가는 "음악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떠한 일도 결코 초라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가 그를 섬기는 가운데 할 수 있는 어떤 일도 결코 보잘것없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이름 안에서 행하는 봉사의 일이라면 가장 작고 미미한 일일지라도 모두 즐길 수 있을 것입니다.
목숨을 바친 사랑
전쟁중 우리 나라에 있었던 실화라고 한다.
한 만삭이 된 어머니가 아기를 낳기 위해 어떤 집을 찾아가던 중이었다. 그 어머니는 그만 그 집을 다 가지 못하고 길에서 진통을 하기 시작했다.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었던 어머니는 어느 다리 밑에 겨우 자리를 잡아 아기를 분만하게 되었다. 추운 겨울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는 가운데 그 어머니는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고는 아기가 춥지 않도록 자기 옷을 모두 벗어서 아기를 감싸주었다. 해산 직후 추위에 어머니는 그만 얼어 죽고 말았다.
얼마 후 어느 미군 장교 한 사람이 차를 타고 그 근처를 지나가다가 휘발유가 떨어졌다. 그는 부대로 연락을 취해 놓고 차에서 내려 그 부근을 거닐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이상한 아기 울음소리 같은 소리가 들렸다. 깜짝 놀란 그 군인은 그 소리를 따라 다리 밑까지 내려오게 되었다. 거기서 그 군인은기가 막힌 장면을 목격했다. 어머니는 벌거벗은 채 얼어 죽어 있었고 어머니의옷에 둘러싸인 갓난 아기가 몹시 울고 있었다. "내가 여기서 기름이 떨어진 것이어쩌면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살리시기 위함인지도 모르겠군." 이렇게 생각한 군인은 그 아기를 데려다가 양자를 삼아 잘 키웠다.
그 아들은 미국에서 훌륭하게 자라 성인이 되었다. 늘 자신의 출생에 대해 알고싶어하던 그 아들은 어느 날 자기를 키워 준 아버지로부터 자기를 낳아 준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 아들은 무덤을 찾아 한국에까지 나왔다.
그 아들은 어머니의 무덤 앞에서 자기 옷을 벗어서 무덤 위를 덮으면서 울음을 터뜨렸다.
"어머니 얼마나 추우셨어요! 나를 살리기 위해 어머니는 그런 희생을 치르셨군요! 저는 어머니의 사랑을 생각하면서 벌거벗고 굶주린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겠어요!"
돌아온 딸
어느 시골의 한 가정에서 딸이 가출을 하여 자기 마음대로 살기 시작했다.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처지에까지 이르게 되자 소녀는 자살을 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죽기 전에 아버지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이 그리워 고향 집에 내려갔다. 밤중에 가 보니 자신이 가꾸던 장미꽃도 보이고 뛰어 놀던 잔디밭도 보였다. 달밤에 자기 집을 바라보니 담장 옆 대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다. 그 소녀는 문 가까이 가, "아버지-" 조용한 음성으로 불렀다. 그러자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뛰어 나왔다. "어디에 있다가 이제 오느냐? 네가 집을 나간 뒤 대문을 닫아 보지 못했단다. 언젠가는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단다." 혹시 밤중에 딸이
돌아올까 봐 깊이 잠들지 못하고 있던 아버지가 딸이 부르는 작은 소리를 듣고 뛰어나와 그 딸을 맞이했다는 이야기다.
겸손하게 십자가를 지라
낙타는 하루를 시작하고 마칠 때마다 주인 앞에 무릎을 꿇는다고 합니다. 즉, 하루를 보내고 일을 끝마칠 시간이 되면 낙타는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등에 있는 짐이 내려지길 기다리며, 또 새날이 시작되면 또다시 주인 앞에 무릎을 꿇고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짊어지는 것입니다. 주인은 낙타의 사정을 잘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낙타가 짊어질 수 있을 만큼만 짐을 얹어 줍니다. 낙타는 주인이 얹어 주는 짐을 마다하지 않습니다. 낙타는 당신입니다. 그리고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형편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리고 당신이 짊어질 수 있을 만큼 당신에게 짐을 얹어 주십니다. 이 때 당신은 어떤 모습으로 짐을 받으십니까? 낙타와 같은 겸손한 모습입니까?
새에게 날개는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날 수 있고, 배는 그 돛이 무거우나 그것 때문에 항해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짐이 되나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천국으로 향하게 만든다.
겸손의 일상 생활화
우리의 겸손한 마음과 온유한 심정은 사람과의 관계나 서로 대하는 태도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겸손을 이웃에게 나타내지 못하면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겸손이란 가치없는 것이 되고 만다. 그러므로 위에서 본 모든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의 일상생활을 통해 겸손을 배우자. 겸손한 사람은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동하기를 힘쓴다.
즉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여 서로 종이되며 각각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며 서로 순복하라"고 하신 말씀 그대로의 생활이다. 지혜에 있어서나 재능에 있어서나, 혹은 받은 바 신령한 은혜에 있어서 우리가 어떻게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지는 사람을 낫게 여길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그 질문은 마음속의 참겸손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의 광명한 빛 가운데 자신은 진실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만이 우리의 모든 것이 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완전히 죽일 때까지 나타나는 것이 겸손이다. 이러한 사람은 오직 "오, 주여 당신을 찾으려고 나는 나 자신을 버렸사오니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케 마옵소서"라고 할 것이다. 이렇게 되고서야 비로서 자기 중심의 모든 생각을 끊어 버리고 모든 사람앞에서 자기를 낮추어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게 되고 , 또 자기를 위해서 구하지 않고 오직 자기를 하나님의 종으로 또는 모든 사람의 종으로 생각하게 된다.
어떤 신실한 종은 주인보다 더 지혜로울런지 모른다. 그러나 신실한 종이라면 역시 종으로서 마땅한 정신과 태도를 가져야 한다. 참으로 겸손한 사람은 가장 연약하고 가장 볼 것 없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오히려 우러러보며 그들을 존경하고 섬긴다. 제자들의 발을 씻기던 그리스도의 정신이야말로 우리로 하여금 가장 작은 자 즉 다시 말하면, 피차의 종이 되는 것을 만족케 한다.
겸손한 사람에게는 시기와 질투란 없다. 겸손한 사람은 자기 앞에서 다른 사람들이 섬김과 존경 받음을 볼 때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 다른 사람은 칭찬을 받고 자기는 오히려 천대받고 무시당해도 참을 수 있다. 이는 그가 마치 바울 사도와 같이 "나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 그 정신을 배웠기 때문이다. 과연 이러한 사람은 마치 예수님께서 자기의 기쁨을 위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존귀를 구하지 않으신 그 마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동료들의 실수와 죄를 보고 날카로운 말로 책망하고픈 유혹을 받을 때에도 겸손한 사람은 "서로 참으며 서로 용서 하기를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용서해 주신 것같이 하라"고 여러 번 말씀하신 이 교훈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에 임할 것이다. 그러한 사람은 주 예수를 옷입어야만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소유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안다.
부모 공경
텍사스의 한 사내가 아내와 네 자녀를 버리고 캘리포니아로 가서 30년 동안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는 돈 한푼 없이 죽었는데, 자기의 시체를 고향 텍사스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텍사스에 살고 있던 자식들은 모두 그 소식을 듣고 분개했습니다. "그 사람이 우리와 무슨 상관있어? 그가 아버지로서 우리에게 해준 게 뭔데? 그 사람 때문에 어머니와 우리 모두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 왜 우리가 그 시체에 수고와 돈을 들여야 하지?" 그러나 신앙심이 깊은 큰아들은 아무 말없이 동생들의 불평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캘리포니아로 가서 아버지의 시체를 운구해 오기 위해 자기 트랙터와 농기게들을 저당잡혔습니다. 장례를 치르고 난 후 큰아들은 동생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에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씌어 있을 뿐, '어떤 부모'라는 말은 없단다"
묘비없는 칼뱅의 무덤
장로교의 창시자인 장 칼뱅은 생전에 남긴 업적도 대단했지만 세상을 떠날 때도 큰 영적 교훈을 남기고 갔다.
칼뱅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종교개혁을 일으키고 장로교회를 창립하자 그의 영향을 받은 존 낙스는 스코틀랜드로 건너가서 장로교회를 세웠고 다른 많은 지도자들도 유럽 각지로 흩어져 개혁교회들을 세웠다.
칼뱅이 죽을 때 남겼던 유언은 지금도 유명한 일화로 전해지고 있다.
바로 “내 무덤에 묘비를 세우지 말고 내 무덤의 흔적이 없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그의 유지를 따라 지금도 제네바에 가면 장 칼뱅의 무덤에는 이름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단지 그를 추모하는 많은 사람들이 너무 아쉬운 나머지 무덤 위에 ‘J.C'라고 이름 약자만 새겨놓았다.그래서 칼뱅의 유언을 음미하는 사람들은 그의 무덤가에서 더 큰 은혜를 받는다고 한다.
장차 부활의 새 아침이 올 것을 믿고 살아가는 우리 크리스천들도 칼뱅처럼 아름다운 영적 유산을 이 땅 위에 남기고 가야겠다.
부인할 수 없는 부활의 증거
로마의 바티칸 궁정에는 유명한 조각가 미 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 (Picta)라는 조각 품이 있다. 그 작품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시체를 성모 마리아가 품에 안고 있는 모습을 조각한 것이다.
그런데 여러 해 전에 이탈리아의 어떤 정신병자가 그 조각을 파손시켰기 때문에, 또 다시 많은 경비를 들여서 보수하였고 지금은 유리상자 속에 넣어 보관하고 있다.
그 조각품은 미켈란젤로가 죽기 이틀 전까지조각했다는 걸작품이다. 이를 보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 오는데, 가톨릭교회 신자들은 그 앞에 꿇어 앉아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기도를 드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참으로 아름다운 모습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만약 그 작품의 모습처럼 예수님게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일생이 끝났다면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라 할 수 없다. 다른 종교와 마찬가지로 슬픔의 종교요 무덤으로 끝나야만 하는 종교일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셨을 뿐만 아니라, 사흘만에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시므로 기독교가 생명의 종교,구원의 종교임을 증명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은 부활에 대한 기사로 가득차 있다. 부활의 진리를 기독교의 중심되는 내용이며, 부활하신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 가운데 계시며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다.
람세이(A.M.Ramsay) 교수는 말하기를 "신약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 복음은 결론이 없는 복음일 뿐아니라 전혀 복음이 될 수 없다"고 했다.
또한 옥스포드 대학의 역사학 교수였던 토마스 아놀드 (Thomas Anold) 말하기를 "나는 여러 해 동안 과거의 역사를 연구하고 그 사실을 조사하고 이에 대하여 기록한 문헌과 유물을 고증하여 그 사실 여부를 조사하여 오는 중이다.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표징, 곧 그리스도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보다 더 분명하고 완전히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을 인류 역사에서 나는 보지 못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한때 영국의 무신론자였던 리틀스톤(Girbert West)는 자기들이 무신론을 주장하는데 두 가지 장애물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는데 하나는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이요, 다른 하나는 사도 바울의 변화였다. 그들은 이 두 가지 사실을 변정하기 위해서 연구하기 시작했다.
얼마 동안 연구한 뒤에 두 사람이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우리도 더 이상 이에 대한 반증을 할 수가 없네. 우리는 이 연구를 통해서 오히려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뿐 아니라, 우리들이 죄인임을 잊고 살았음을 깨닫게 되었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그 예수님을 우리의 구주로 영접할 수 밖에 없네"라고 고백하였다는 것이다.
부활사실을 부인하기 위하여 연구하던 무신론자들이 오히려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고 신앙을 고백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이처럼 부활을 부정하는 세력은 다 망했으나 부활의 진리를 증거하는 교회는 언제나 살아 역사하고 있다. 왜냐하면 교회는 부활하신 주님의 몸된 교회이기 때문이다.
부활절의 첫복음
1884년 갑신정변이 일어난 조선의 정세는 매우 불안하고 혼란스러웠다. 당시 국제 사회는 조선을 ‘소망 없는 은둔의 땅'으로 보았다. 그러나 황무지이기 때문에 더욱 복음이 증거되어야 한다고 믿었던 미국의 젊은 선교사들이 있었다.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였다. 그들은 순교의 각오로 파송을 자원했다.
1885년 4월5일 부활절. 거센 풍랑을 헤치고 한 척의 배가 인천 제물포항에 도착했다. 단순한 입항이 아니었다. 이 나라에 처음으로 복음이 들어오는 감격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렇게 부활절에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조선땅을 밟았다. 황무지에 소망의 빛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아펜젤러는 본국에 보낸 첫 선교 보고서에서 이 날의 감동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곳에 왔다. 그날 사망의 철창을 쳐부수고 부활하신 주님께서 조선의 결박을 끊어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빛과 자유의 세계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부활의 주님
한때 석가모니의 뼈가 발견되었다고 인도를 위시한 불교국에서는 한동안 떠들썩 했었다. 석가모니의 이 유명한 뼈들은 잘 진열되어 수백 만 인도사람들의 경의속에 시가행진을 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뼈 앞에 부복한 것을 지켜보고 있던 한 선교사가 그의 친구에게 "만약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뼈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었다면 기독교는 산산조작이 나고 말 것이다." 라고 했다. 기독교는 그들처럼 죽은 자를 믿는 종교가 아니요 산 자를 믿는 종교요, 죽을 수 밖에 없는 인간을 믿는 종교가 아니라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믿는 종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새벽에 여자들이 향품을 예비해 가지고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가 예수님을 찾을 때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나?"라고 하는 천사들의 책망을 들었다. 우리도 신앙 생활을 하면서 산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으려고 하는 때가 많은 것 같다. 주님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찾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성도들의 가슴 속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님을 볼 것이요, 책 한 권 쓰시지 않으셨고, 번듯한 집 한 채 없어 머리 둘 곳도 없으시면서도 세상의 부의 주인이 되시며, 군사 한 명 없으셨으나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살아계시는 주님을 보아야 할 것이다.
감 사
나의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라.
모든 것을 주시는 이에게 감사하라.
과거가 아닌 지금 이 시간을 인하여 감사하라.
내 곁에 계신 예수로 인하여 감사하라.
상쾌하고 부드러운 봄철을 인하여 감사하라.
어둡고 쓸쓸한 가을을 인하여 감사하라.
지금은 잊혀진 눈물을 인하여 감사하라.
내 영혼 안에 있는 평안을 인하여 감사하라.
응답된 기도로 인하여 감사하고,
응답되지 않은 것을 인하여서도 감사하라!
내가 뚫고 지나간 폭풍을 인하여 감사하고,
모든 것을 공급하시는 이를 인하여 감사하라!
고통을 인하여 감사하고 즐거움을 인하여 감사하며,
절망 중에 주시는 위로를 인하여 감사하라.
아무도 측량할 수 없는 은혜를 인하여 감사하고,
비교할 수 없는 사랑을 인하여 감사하라.
길가에 핀 장미를 인하여 감사하고,
그 줄기들에 나있는 가시를 인하여 감사하라.
가정을 인하여 감사하고 그 단란함을 인하여 감사하며,
쾌락을 참게 하는 소망을 인하여 감사하라.
기쁨을 인하여 감사하고, 슬픔을 인하여 감사하며,
당신과 함께 하는 하늘의 평화를 인하여 감사하라.
내일의 소망을 인하여 감사하라.
지금부터 영원토록 감사하라
부활절 달걀
십자군 전쟁 때의 일이다. 로잘린부인은 전쟁터에 나간 남편이 전사했다는 소문을 듣고 절망의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떤 사람이 그 틈을 이용해 재산을 가로챈 후 로잘린을 마을에서 내쫓았다. 그녀는 이곳 저곳을 전전하다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 안착했다. 마침 부활절을 맞아 마을 어린이들에게 줄 선물을 준비했다.
"얘들아, 너희들의 나무를 하나씩 정하렴. 그리고 나무 밑에 둥지를 만들어 놓아라. 그러면 둥지에 예쁜 알이 들어있을 것이다."
로잘린은 둥지에 형형색색의 그림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글이 적힌 달걀을 놓아두었다. 어린이들은 신기한 표정으로 색달걀을 받았다. 그런데 한 소년이 달걀을 들고 친척집을 가던 중 길가에 쓰러진 부상병을 만났다. 소년은 부상병에게 달걀을 주었는데 부상병은 그곳에 적힌 글씨와 그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것은 내 아내 로잘린의 그림인데. 그리고 이것은 가훈이 아닌가"
그때부터 부활절 달걀은 '사랑'의 상징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26)
교회 힘의 근원
인도 수상 네루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다.
"수천 년의 세월이 흐르도록 인도의 종교들은 사람들로 하여금 땅을 개간하고 집을 짓고 늪지를 메우고 댐을 건설하도록 자극하지 못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 교회가 칭송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교회는 세계 도처에서 인간의 짐을 덜어 주려고 노력해 왔다. 교회가 인간을 자극하고 이끌었던 힘의 근원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다."
텅빈 계란과 예수님의 무덤
날 때부터 몸이 꼬여진 상태에다 정신박약아로 태어난 아이가 있었다. 그는 12살이었지만 아직도 2학년에 속해 있어서 담임선생 도리스에게는 언제나 큰 부담이 되었다. 더군다나 이 아이는 몸을 뒤틀거나 시끄럽게 하여 다른 학생에게 지장을 주며, 학습을 자주 방해하는 것이었다.
도리스 선생은 지미의 부모를 학교로 오라고 하여 이 일을 상의하게 되었다. 도리스 선생은 “왜 아이를 특수학교에 전학을 시키지 않는가”고 부모에게 물어보았다. 그러자 지미의 어머니는 흐느껴 울기 시작했고, 사무엘의 아버지가 말을 했다.
“선생님, 사무엘을 위한 특수학교가 이 근처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지미는 이 학교와 친구들을 몹시도 사랑합니다. 만약 우리가 이 아이를 먼 곳의 다른 학교로 보내면, 그것은 아이에게 견딜 수 없는 충격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선생님은 얼마 살지 못할 아이를 부모의 심정으로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하기 시작했다.
어느 봄 수업시간의 일이다. 부활절이 가까워 오는 날이었는데, 도리스 선생이 플라스틱으로 된 계란들을 교실로 가지고 들어와서는 19명의 아이들에게 그 플라스틱 계란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는 그 계란의 중간을 열어 보라고 했다. 그러자 그 플라스틱 계란은 절반으로 잘라지며 열렸고 그 안은 텅 비어 있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말하기를, 그것을 집으로 가지고 가서, 무엇이든지 생명을 나타내는 것을 그 속에다 넣어 가지고 다음날 학교로 가지고 오라고 했다.
이튿날, 학생들이 계란을 모두 선생님의 책상에다 갖다 모아 놓았다. 선생님은 한 개씩 열기를 시작했다. 계란 속에는 예쁜 꽃과 물 등 갖가지 것들이 하나씩 들어있었는데 한 가지만 텅 비어 있는 상태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사무엘 것이었다. 선생님은 왜 아무것도 없고 텅 빈 것을 그대로 가지고 왔는가 했더니,
다니엘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예수님의 무덤이 텅 빈 것이라고 했어요!”
선생님은 다시 지미에게 물어보았다.
“사무엘, 왜 예수님의 무덤이 텅 비었었지?”
“네 선생님, 나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죽였는데, 예수님의 아버지가 그를 무덤 속에서 살려냈어요!”
석 달 후에, 사무엘은 하나님 품에 안겼다.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은 그의 관 위에 나란히 놓여있는 19개의 텅 빈 플라스틱 계란들을 바라보며 알 수 없다는 듯 한 표정을 지었을 뿐이었다. *
부활의 주님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28:20)
터어키에 선교하던 선교사 한 분이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설명하려했습니다. "나는 여행하고 있습니다. 길을 가는데 두 갈래의 길을 만났습니다. 어느 길이 내가 목적하는 곳으로 갈 수 있는 길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 길을 물으려고 하다가 두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은 살아있는 사람이요 또 한 사람은 죽어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겠습니까? 산사람입니까? 죽은 사람입니까? "그러자 그들은 말하기를 "그야 물론 산 사람에게 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 내가 살아 계신 예수님께 찾아가지 않고 죽어버린 마호멧을 찾아가겠습니까 ?"
오늘도 살아계신 주님을 잘 섬기는 아름다운 날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전해야만 하는 이유
독일의 설교가요 신학자인 본 훼퍼는 히틀러의 독재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해 일생 동안 투쟁했던 사람이다. 그는 용감하게 설교했다. “어느 미친 운전사가 차를 몰고 있습니다. 당신이 만약 그 현장에 있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당신은 그 차 때문에 다친 사람들을 쫓아다니며 치료만 해 주고 기도만 해 주겠습니까? 아니면 미친 운전사를 끌어내리겠습니까?” 본 훼퍼는 결국 사형당하고 말았다.
그런데 그가 죽음 직전 환상 중에 본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다. 하나님이 재판장이 되시고 히틀러가 심판대에 서 있었다고 한다. “너 히틀러는 그 동안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무고한 피를 많이 흘리게 했으니 지옥으로 가서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이때 히틀러가 부르짖었다. “하나님, 저는 죽어서 이러한 세계가 있는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일 알았더라면 저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저에게 이런 것을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본 훼퍼는 가슴을 치며 회개했다고 한다. “주님, 저는 그를 끌어내리려고만 했지 그 영혼을 불쌍히 여겨 전도할 생각은 미처 못했습니다.”
끊어진 대화를 이으려면
끊어진 대화를 이으려면
최근 어느 주간잡지에서
이제는 남성 수다시대가 되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남자도 말을 많이 해야 여자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말을 많이 해 보지 못한 사람들은
여러 사람 모인 데 가면 어려움을 겪습니다.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합니다.
자신은 별로 할 말이 없다는 사실에
스스로 안타까움을 느끼고 미안해하기도 합니다.
우리 둘레에는 말 잘하는 사람, 말 많이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떤 경우에라도 무슨 말이든 할 줄 아는 사람들입니다.
어느 모임에서든 자신이 대화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말을 많이, 잘 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데
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어 보입니다.
말하는 사람들이 자기 이야기만 늘어놓기 때문입니다.
한 자리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내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느낌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마음을 쓰지 않고 내 맘대로 말하기 때문입니다.
이리하여 심한 경우에는 열 사람이 모여 이야기 하는데도
열 가지의 혼잣말만 있을 뿐, 대화는 없습니다.
대화를 하자고 한 자리에 앉았지만,
말을 하면 할수록 마음만 더 답답해집니다.
우리는 대화가 끊어진 시대에 살고 있지 않습니까?
끊어진 대화를 이으려면
먼저 상대방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가 하는 말의 옳고 그름을 재빨리 판단하고
내가 해 주고 싶은 말을 서둘러 하기보다는
그의 마음속에 있는 기쁨, 슬픔, 갈등, 고민, 계획을
이해하는 데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그가 마음 놓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하고,
때로는 격려하고 때로는 기다릴 줄 알아야 합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알맞게 표현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내가 말을 하지 않을 수 없을 때는
그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쉽게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상한 설교
어느 교회에 처음으로 취임한 신임 목사님이 있습니다. 그는 첫 취임예배에서 아주 멋지고 놀라운 설교를 했습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기뻐 했을까요? 우리가 정말 목사님을 잘 모셔왔다고 생각했겠지요. 그 다음 주일이 되었습니다. 이 목사님이 취임 예배에서 한 설교와 똑같은 설교를 또다시 했습니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교인들이 늘어갑니다. "저분이 지난 주일에 설교하신 것을 잊었나"하고 중얼거립니다. 그래도 이제 두 번째이니까 혹시 잊었거나, 아니면 취임 예배로 너무 정신이 없어서 설교 원고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이해 할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세 번째 주간에도 이 신임 목사님은 첫 번째, 두 번째 주간에 하신 설교를 똑같이 하셨습니다. 당신은 상상할 수가 있습니까? 똑같은 설교를 세 번 들었을 때의 교인들의 반응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가 모셔와도 단단히 잘못 모셔왔다"고 말할 것입니다. 한 용감한 교인이 목사님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목사님 목사님은 언제 새로운 설교를 시작하시겠습니까?"그래서 그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당신이 이 말씀을 정말로 삶 속에 적용할 때 그때 저는 새로운 설교를 시작할 것입니다." 당신은 무슨 목적과 동기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단순한 지적인 만족을 위해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아니면, 행동의 변화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으로 이 말씀을 받으십니까? 우리가 이 말씀을 순종할 때 참 자유를 얻습니다
담수화 공장
중동 산유국들은 지하수에 염분과 석회분이 많아서 그대로 식수로 사용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아 담수화 공장을 많이 세운다고 한다. 이는 물이 흐르는 큰 수도관 속에 화덕 같이 뜨거운 불이 흐르는 작은 철관을 여러 개 지나가게 하여 수도관의 물을 뜨겁게 하여 물이 증발되게 하는데 물을 더욱 증발시키기 위하여 한쪽에서 강한 바람을 일으킨다고 한다.
이렇게 증발된 수증기를 냉각하여 증류수를 만들고 여기에 약품을 가미하여 식수로 쓴다는 것이다. 염수나 더러운 물이 아무리 담수가 되려고 해도 스스로는 되지 못하는 것 같이 죄로 더러워진 인간의 영혼은 성령의 뜨거운 열과 강한 바람을 통해야만 죄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우리 영혼이 도저히 죄에서 놓임 받을 수 없다. 또한 성령은 곧 능력이시다. 주님의 제자들은 성령을 받은 후 기쁨과 능력이 충만하여 초인적인 힘으로 복음을 전했다.
황금률을 실천하라
지금부터 28년 전 죤 맥코넬은 혼자서 "워싱톤 인더스트리사"를 창건하였다. 그러나 그 회사는 지금 획기적인 성장을 거듭하여 오백만달러의 연간 순수입을 올리고 있다. 맥코넬이 이토록 놀랍게 성공을거두자 행정 관료들까지도 그의 성공 비결을 배우려고 공장을 빈번히방문하고 있다.
맥코넬은 자신의 성공 비결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마 7:12)는 이른바 황금율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황금율은 달리 표현해 보면 남들이 당신을 대해 주기 원하는 그대로 다른사람에게 행하라는 말이다. 맥코넬은 이와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회사는 황금율 회사입니다. 황금율은 내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황금율의 핵심은 남의 처지를 나의 처지로 바꾸어 생각할 줄 아는생활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그렇게 하는 것이 어렵기도 하지만 그럴지라도 그렇게 하면 어떤 문제라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이 단순한 철학이 "워싱톤 인더스트리사"가 위대한 성공을 거두도록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영생의 길이 여기있다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부활과 영생이 있다. 예수께서 온 인류위해 죽으신 후 부활하셔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우리 인간도 죽음이후 영생을 얻을 수가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기름부음을 받은 자 라는 뜻)께서 죽음의 권세를 깨부수고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이다. 타 종교에는 없는 부활의 종교를 말하는 것이 기독교이고 기독교의 핵심이 된다. 이 사실은 절대적인 사실이며 실현될 것이다.
우리 인간은 많은 발전과 개발로 인해 웬만한 문제들은 거의 다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죽음의 문제는 해결치 못한다. 아니 절대적이기에 포기한 상태이고, 포기한 자들의 입으로 전해지는 것은 죽음으로 인생은 끝이 나고 무덤에서 끝이라고 절망하고 만다. 그리고 인간의 유한함을 두려워하다가 곧 죽음에 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한 번 뿐인 인생을 잘 살아보자고 다짐을 한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좇아 지음 받은 영적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단언하건데 인간은 모두 영생한다. 문제는 어디에서 영생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인간은 죄의 존재이기에 타락된 존재를 회복하고 구원하시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고 한다면,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영원한 나라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황금 길을 걸으며 즐겁고, 행복하며, 사망이 다시는 없고, 질병과 고통과 번민이 없는 완전하고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되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던 불신자들과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영원한 나라 지옥에서 영생을 하게 된다는 진리이다.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사랑하셔서 죄 없는 자신의 독생자 외아들을 화목제물로 주셔서 십자가에서 처참히 죽게 하시고 우리 죄를 그에게 뒤집어 씌우셨다. 그러므로 그 예수를 믿을 때 우리의 죄가 용서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핵심이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어디 있단 말인가? 구원의 문은 활짝 열려있다.
이 땅에서 못 배웠다고, 가난한 것이, 질병이 있다고, 무능하다고, 천하게 생겼다고, 너무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하는 자라해도 예수 믿는 데는 자격기준이 없다. “누구든지”라는 말을 꼭 기억해야 한다. 누구든지 이다. 누구든지 예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함을 얻는 것이다. 너무 간단해서 오히려 의심이 생기는가? 의심하지 말라. 아주 간단하기에 정말 많은 사람들이 등지고 이 진리를 떠나갔음을 기억해라.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다.
특별 감지기능
세상에는 특별감지기능이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시각, 촉각, 미각, 청각, 취각 등 오감만으로는 감지할 수 없고 판단할 수도 없는 것에 대하여 과학적 기계를 가지고 감지하는 것이다. 북극의 자력을 감지하는데는 나 침판이 있고, 먼 곳에 오는 전파는 레이다를 가지고 감지한다. 먼 별에서 날아오는 에너르기는 레이다 망원경으로 감지 한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특별감지기능을 가지고 있는 기계를 통하여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만일 인간이 가지고 있는 오감을 통해서 감지할 수 있는 것만을 인정하려 한다면 그는 현대의 인간 삶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인간의 오감으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 수 없다하여 하나님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하는 성령을 모신 자만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 수 있는 특별감지기능을 가지고 있는 자이다.
성프란시스의 평화의 기도
비바람이 심하게 몰아치는 어느 날 프란시스의 방문을 두드리는 사람이있었습니다. 문을 열고 나가 보니 비에 온몸이 젖은 채 추위에 떨면서 먹을것을 구걸하는 나병환자였습니다. 프란시스는 피고름과 진물, 썩은 악취에도개의하지 않고 음식을 대접하고 갈아입을 옷을 주고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프란시스가 일어나보니 그 환자는 온데간데 없었고왔다간 흔적조차 없었습니다. 프란시스는 곧 모든 것을 깨닫고는 자신과같이 비천한 사람을 찾아와 주셨던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올렸습니다.이 기도가 바로 유명한 성 프란시스의 '평화의 기도' 입니다.
부모님 사랑
세계 제1차 대전 때 벨리에서 어떤 청년이 전쟁터에 나아갔는데 그 날부터 어머니는 기도하기 시작하셨다. 전쟁을 끝이 났으나 아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을 기다리다 못해 병이 드셨고 위독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조각가를 불러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모습을 조각해 달라고 부탁하여 완성된 작품을 대문에 놓고는 그만 세상을 떠나셨다. 이것이 어머니께서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하물며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이야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을까?
어버이 사랑
우리나라가 일제 탄압 아래 있을 때에 평양 신학교를 졸업하고, 경남 동래읍 교회를 시무하다가 순교를 당한 최상림 목사님은 많은 자녀를 두신 분이었다. 1남 8녀로 딸이 8명인데다가 교역자 생활이고 보니, 생계 곤란이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고 딸들의 교육 문제는 더욱 암담했다.
그런데 마침, 그 교회에 자식은 하나도 없이 부유한 생활을 하고 있는 장로님 한 분이 목사님에게 간청하기를 "많은 딸 중에서 하나만 양녀로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목사님은 즉시 그러자고 대답을 하고는 밤이 되어 자는 아이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누구를 보낼까 하여 사모님과 함께 상의했다. "맏딸?"하고 목사님은 사모님을 쳐다보았다. 사모님은 "그 놈은 똑똑한 아이인 걸요."하고 안 된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둘째는?"하고 목사님이 다시 물었더니, 사모님은 또다시 "그 놈은 화목둥이인 걸요."하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셋째는?"하고 다시 물었더니, "그 놈은 제일 잘 생긴 놈인 걸요!"하고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해서 목사님은, "그럼 넷째는?"하였더니 "그 놈은 너무 못 생겼고요." "그럼 다섯째는?" "그 놈은 몸이 약하고요." "그럼 여섯째는?" "그 놈은 아주 말을 잘 듣는 아이인 걸요." "그럼 일곱째는 ?" "그 놈은 아주 지혜로운 아이이고요." "그럼 여덟째는?"하였더니 "그 놈은 너무 귀엽게 굴어서요."하고는 사모님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니 하나도 보낼 아이가 없었다.
최 목사님 부부는 생활이 너무 곤란하여 많은 딸들 가운데 한 아이라도 양녀로 보내려고 마음을 먹었다가 결국은 하나도 보낼 수가 없는, 사랑스런 것들임을 깨닫고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것은 우리 인간들이 어떤 경우에라도 사랑하는 자녀는 버릴 수가 없는 것을 알게 하는 말이다.
교육가인 페스탈로치는 말하기를 "부모의 사랑은 봄날 저녁 내리는 이슬과 같은 것이요, 자녀의 사랑은 아름다운 꽃송이 같은 것이라."고 말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은 이에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지식에 넘치는 주님의 사랑은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측량할 수 없는 무한한 것이라."(엡3:18-19)
사도 요한도, "하나님의 사랑이 여기 있으니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어 우리를 살리셨으므로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니라."(요일4:9-11)
베드로도,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4:8)
어버이 은혜
보육원에서 자란 남매가 장성해 아버지를 만났지만 화상으로 일그러진 모습에 질색하고 다시는 찾지 않았습니다. 몇 년 뒤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남매는 마지못해 장례식에 참석했습니다. 남매는 장례식장에서 화장하지 말아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전해 들었지만 듣지 않았습니다. 남매는 화장한 다음 아버지가 생전에 사용하시던 물건들을 태우다가 우연히 한 권의 일기장을 발견합니다.
그 일기장에는 아버지가 화재 때 남매를 구출한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집에 불이 났을 때 아버지는 소방대원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불속으로 뛰어들어 어린 남매를 구하고 아내를 여의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런 내용도 남겼습니다. “보고 싶은 내 아이들아,미안하구나. 한 가지 부탁이 있다. 내가 죽거든 절대 화장은 하지 말아다오. 난 불이 싫단다. 불에 타는 무서운 꿈에 시달리며 30년을 넘게 살았구나.”
두 남매는 후회하며 통곡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한 줌의 재가 된 뒤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