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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해랑길 영광 36코스 역방향
합산버스정류장-염산방조제-합산항-설도항-내묘마을-칠산타워
20230208
1.천년의 빛 영광 칠산타워와 천일염길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 주는 달,
'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오세영(吳世榮,1942~)의 '2월' 전문
벌써 2월이다. 2월 8일 새벽부터 영광군 염산면 지역을 걸었다. 영광 출신의 오세영 시인은 2월을 이렇게 노래했다. '벌써'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달, 그래서 여유를 갖고서 세상을 살피고 세계의 존재를 발견하는 것의 소중함을 이렇게 표현했다. 그래서 '벌써'에 대응하는 '문득'이 빛난다. 허겁지겁 걷고 있는 서해랑길 탐방의 의미를 '문득' 되짚어 본다.
새벽 4시 50분쯤 서해랑길 37코스를 역방향으로 출발하여 오전 10시 30분이 조금 넘어서 끝마쳤다. 곧바로 36코스를 역방향으로 출발한다. '칠산갯길 300리'에 속하는 서해랑길 36코스와 37코스는 더 구체적으로 '천일염길'로 불리는데, 두우리해수욕장-향화도, 총거리 35km에 이른다. 36코스는 영광군 염산면 봉남리 합산마을 입구의 아세아물산(주) 앞에서 시작하여 향화도항에서 끝난다. 천일염의 장관을 보여주는 두우리의 광활한 염전에 비하면 봉남리와 옥실리 염전은 이에 이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천일염길은 두우리 염전이 대표한다고 생각한다.
36코스 대부분은 염산방조제를 따라가는 탐방로이다. 옥실리 내묘항 입구에서 내묘마을을 거쳐 제방으로 나오는 길과 장고도 앞에서 성율농장과 신흥마을을 거쳐 제방으로 나오는 길을 제외하면, 칠산바다 남동쪽 해안을 가로막은 길고 먼 방조제 제방길을 따라가는 길이다. 탐방로는 지루하고 멀게 느껴진다. 그러나 제방길에서 보는 풍광이 탐방객의 가슴을 흔든다. 그 풍광은 산과 바다와 섬과 들이며, 그곳에 의지하여 끈질기게 삶을 이어가는 이 땅의 민중들과 그들이 가꾸는 생활현장과 마을 모습이다. 그 풍경들과 그 마을의 유래와 그곳에 얽힌 이야기들을 알지 못하고 탐방객은 스쳐간다. 그래서 탐방객은 아쉬움과 그리움에 젖어 자꾸 돌아보고 더 살피고 먼 칠산바다를 응시하며 그곳의 섬들을 보고자 안달하지만 미세먼지는 먼 곳의 전망을 가리고 있다. 그렇지만 아름다움의 발견에 가슴은 뛴다.
가음산과 조개산, 봉덕산으로 이어지는 칠산바다 북동쪽 해안과 월암산, 무동산, 옥녀봉으로 이어지는 칠산바다 남동쪽 해안, 그 사이를 돌아가는 방조제 제방길에서 인간의 끈질긴 투쟁의 증거를 보았다. 이 풍경은 인간 역사의 시작은 자연에 대한 투쟁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장엄하게 증거한다. 해안에 자리잡은 월평항, 합산항, 내묘항, 해안 안쪽에 자리잡은 봉남리 합산마을과 면소재지마을, 설도마을, 오동리의 신오마을과 옥실리의 신옥마을, 내묘마을, 미동마을, 송촌마을, 대무마을, 이곳 주민들은 들과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 대대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간척지에 염전을 일구고 농산물을 재배하거나 칠산바다에 나가 고기를 잡아 풍요를 누리고 있다.
마음 아픈 일도 있다. 6.25 전쟁 중에 공산당교와 기독교의 신앙 충돌로 공산당교 교도들이 기독교인들을 수장시킨 아픈 현장이 있다. 그 현장에 기독교인 순교기념공원을 조성하고 기독교인 순교탑을 세워 놓았다. 옥실리 내묘항 입구에서 내묘마을로 내려갔다. 남향한 내묘마을이 무척이나 평화로웠다. 그런데 폐가들이 여러 곳이 있다. 이 풍경이 가슴을 울린다. 그들은 어디로 떠났는가? 생활이 나아져 도회지로 나갔을까? 이곳의 생활이 피폐해져 떠나야만 했는가?
영광군의 한자는 榮光郡이 아니라 '靈光郡'이다. 지명의 의미는 신령스런 빛의 고을로, 자연의 영묘한 빛이 반짝이는 은혜로운 지역이란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흥선대원군이 정계를 은퇴하고, 전국을 유람할 때 전라도를 돌아다니면서 아름다운 인정과 풍요로운 자연을 보고 '팔불여(八不如)'를 말했는데, 그 여덟 고을 중 영광(靈光) 지역을 '호불여영광(戶不如靈光)'이라 표현했다고 한다. '사람 사는 집이 많기로는 영광만한 곳이 없다’는 '호불여영광(戶不如靈光)'은 조선 후기에 영광군을 말할 때는 맞는 표현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도 이 표현이 맞을까는 의심스럽다. 그럼에도, 영광군은 '인심 좋고 물산이 풍부하여 살기 좋은 고장'임을 자랑하며 '천년의 빛 영광'을 표나게 내세우고 있다. 향화도항에 세워진 111m의 칠산타워는 영광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칠산타워 2층 벽면에 '천년의 빛 영광' 디자인과 '영광 칠산타워' 문구가 적혀 있다. 영광이여, 천년의 빛나는 광채를 온누리에 펼치기를! 탐방객은 두 손 모아 기원한다.
2.탐방 과정
전체 탐방 거리 : 14.32km
전체 소요 시간 : 3시간 32분
서해랑길 36코스 종점이자 37코스 시작지점에, 서해랑길 36·37코스 안내도, 칠산갯길 300리 안내도와 이정목, 염산방조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칠산갯길 300리 이정목 기둥에 서해랑길 37코스 시작점 표지가 붙어 있다. 뒤쪽에 가음산이 우뚝하다.
칠산갯길 300리 이정목 앞에서 염산방조제 제방길로 올라가지 않고 제방 아랫길로 진행한다.
앞의 건물은 아세아물산(주) 건물인데 현재 폐업하였다고 한다.
염산면 봉남리 간척농지 합산들이 드넓다. 앞의 마을은 봉남리 합산마을이고, 왼쪽 뒤의 흐릿한 산이 봉덕산이며 그 아래 시가지가 염산면 면소재지이다.
"봉남(奉南)3里 합산(蛤山)마을은 1927년 간척지가 조성되면서 농사짓기 위해 탐진 최씨(耽津崔氏) 최봉한(崔鳳漢)이 들어와 살면서 성촌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이 간척사업으로 농토가 형성되었으며 당시 마을 뒷산이 조개 모양을 닮은 형국이어서 마을 이름을 합산(蛤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 영광군청
서해랑길은 '금(金)수산' 방향으로 이어진다.
염산방조제 제방으로 올라와 제방 위로 이어간다.
방조제 위에서 뒤돌아보았다. 왼쪽 출발지의 산이 조개산, 오른쪽 뒤 우뚝한 산이 봉덕산, 그 아래가 염산면 면소재지이다.
제방 위을 걸어 칠산바다 방향으로 이어간다. 왼쪽 뒤에 보이는 건물이 금(金)수산, 오른쪽 간석지에 월평항이 있다.
왼쪽 뒤에 흐릿한 산이 금호산, 중앙 뒤에 뾰족한 산이 144.6m 산봉, 오른쪽이 조개산이며 그 아래 아세아물산(주)이 있다.
염산방조제가 오른쪽으로 빙 돌아가며 그 안쪽에 드넓은 간척지를 개척하였다. 중앙 뒤에 칠산타워가 보이기 시작한다.
37코스에서 걸어온 염산면 야월리 염산방조제가 이어지고, 월평항과 가음산 아래 월평마을이 보인다.
금(金)수산 양식장이 상당히 넓다. 오른쪽 뒤에 36코스 시작지점인 칠산타워가 보인다.
염산방조제 두우리 해안의 죽도와 작은 섬이 왼쪽에 보인다. 두 섬은 두우리의 방조제 조성에 중심축이 되는 섬 같다.
칠산타워와 칠산대교가 더 분명히 보인다. 염산방조제는 오른쪽으로 돌아가는 곳의 합산항에서 왼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오른쪽은 왕새우양식장, 그 뒤에 태양광발전소, 그 뒤가 금(金)수산이다. 맨 왼쪽 뒤 뾰족한 산봉이 이름이 없는 144.6m 산봉, 그 오른쪽 세 번째의 나즈막하게 둥그스름한 날구봉, 그 오른쪽 앞이 출발지인 조개산, 오른쪽의 듬직한 봉덕산이 모두 확인된다.
설도항 4.36km 지점. 왼쪽 뒤 흐릿한 곳은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지역이며 그 앞의 섬은 저도, 그 오른쪽은 봉대산일 것이다.
칠산타워와 칠산대교, 칠산타워 오른쪽 섬은 목도, 맨 오른쪽은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송계해변의 낮은 산, 그 왼쪽은 닭섬, 그 뒤는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지역, 칠산대교 오른쪽 도리포항 앞의 섬은 등대섬이라고 가늠한다.
섬들이 보여야 하는데 미세먼지 탓에 보이지 않는다. 아쉽다.
왼쪽 죽도와 그 오른쪽 작은 섬으로 이어지는 두우리의 방조제, 가음산 앞으로 야월리 지역의 방조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왼쪽에 가음산, 중앙 오른쪽에 출발지인 조개산, 그 뒤 왼쪽에 날구봉, 중앙에 뾰족한 144.6m 산봉이 모두 확인된다. 습지 뒤쪽에 왕새우양식장, 그 오른쪽 뒤에 금(金)수산이 보인다.
맨 왼쪽에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지역, 그 앞에 닭섬, 그 오른쪽에 해제면 송석리 송계해변의 낮은 산이 가늠된다.
오른쪽에 칠산타워와 칠산대교, 목도, 중앙에 장고도, 왼쪽에 쥐섬, 왼쪽 맨 뒤에 가장 높이 솟은 산이 월암산이라 가늠한다.
합산항에서 제방길을 따라 진행한다. 왼쪽에 봉덕산이 우뚝하고, 간척지 왼쪽 앞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가 설치되어 있다.
염산면 봉남리의 염산방조제가 앞쪽에 왼쪽으로 휘어지며 길게 이어진다. 방조제 안쪽에 왕새우양식장이 있다.
맞은편의 염산면 옥실리 지역을 조망한다. 왼쪽에 쥐섬, 중앙에 장고도와 그 뒤에 칠산타워가 살짝 솟아 있다. 맨 오른쪽에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의 도리포항과 칠산대교가 있다.
건너편에 염산방조제가 맨 왼쪽 염산면 옥실리 내묘항에서 오른쪽으로 길게 이어진다. 내묘항 오른쪽 마을이 고양이 머리를 닮았다고 하는 괴머리마을(내묘마을)이며, 내묘마을 오른쪽 바다에 고양이가 쥐를 잡는 형국의 쥐섬이 보인다. 그 오른쪽 산이 무등산이며 왼쪽 뒤에 가장 높은 산은 오동리의 월암산(336.3m)이라 가늠한다.
염산면 봉남리의 염산방조제는 왼쪽으로 돌아간다. 건너편의 옥실리 방조제는 중앙의 내묘항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고 중앙 맨 뒤에 오동리의 월암산(336.3m)이 우뚝 솟아 있다.
염산방조제는 왼쪽 휘어졌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중앙 오른쪽 뒤에 보이는 설도항으로 이어진다. 왼쪽에 봉덕산이 우뚝하고 방조제 안쪽에 왕새우양식장이 있다.
염산방조제 안쪽 간척지에 대규모 태양광발전소가 있다. 왼쪽 뒤에 야월리의 가음산, 중앙에 봉남리의 조개산이 보인다.
염산방조제는 왼쪽으로 돌아섰다가 오른쪽으로 꺾어 중앙 뒤의 설도항으로 이어진다. 방조제는 설도항 수문교에서 오른쪽으로 꺾어 오동리 지역으로 넘어간 뒤 맨 오른쪽 옥실리 내묘항으로 이어진다.
염산면 봉남리 1107 지역으로 설도항 2.3km, 36코스 시점 9.2km 지점이다. 염산방조제는 중앙 오른쪽의 설도항으로 이어진다. 방조제 안쪽에 넓은 합산저수지가 있으며 중앙 뒤에 보이는 시가지는 염산면 면소재지이다.
간척농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봉덕산이 우뚝하고 그 오른쪽 아래에 염산면 면소재지 시가지가 있다.
왼쪽에 염산면 면소재지 마을, 중앙에 설도젓갈타운과 설도항, 염산방조제는 설도항 수문교를 돌아 오동리 지역으로 이어진다.
왼쪽 앞에 설도젓갈타운과 그 앞쪽에 설도항이 보인다. 염산방조제는 설도항 오른쪽 수문교를 지나 오른쪽으로 휘어져 오동리로 넘어갔다가 다시 옥실리로 이어진다.
앞 중앙에 내묘항, 오른쪽에 쥐섬, 맨 오른쪽 뒤에 장고도, 쥐섬 뒤쪽에 칠산대교와 칠산타워가 보인다.
왼쪽에 설도마을, 중앙에 설도젓갈타운,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돌아 설도수산물판매센터와 설도항으로 이어진다.
서해랑길은 오른쪽으로 돌아 설도수산물센터 앞으로 이어진다. 왼쪽 쉼터정자에서 간식을 먹으며 10여 분 쉬었다.
장고도 6.53km 지점이다. 왼쪽 뒤에 염산면 옥실리 내묘항과 내묘마을 언덕에 통신 중계탑이 보인다.
염산방조제는 왼쪽 설도수산물판매센터 앞을 지나 맞은편의 설도항을 거쳐 건너편으로 이어진다.
오른쪽에 염산교회가 보인다. 그 앞쪽에 기독교인 순교기념공원이 있다.
설도마을 입구 쉼터정자 옆에 멀구슬나무가 멀구슬들을 달고서 그윽하다.
"염산면 봉남(奉南)4里 설도(雪島)마을은 마을의 형국이 마치 누워있는 섬 같다 하여 와도(臥島)라 불렀으나 '누운 섬'을 '눈섬'으로 짧게 발음하므로써 오늘날 설도(雪島)로 불러오고 있으며, 마을 앞 배수갑문에 와도(臥島)로 표기되어 있다." - 영광군청
왼쪽 뒤에 염산교회, 왼쪽 앞에 목포해양경찰서 설도출장소, 오른쪽에 설도항이 있다.
왼쪽에 기독교인 순교기념공원이 있으며, 서해랑길은 오른쪽 염산방조제 제방으로 이어진다.
뒤에 염산교회가 있으며 오른쪽에 배수갑문이 복원되어 있고 기독교인 순교탑이 있다. 순교탑 입구의 '기독교인 순교탑' 설명안내판과 순교탑 설명비의 글을 옮겨 놓는다.
순교탑 입구의 '기독교인 순교탑' 설명안내판
이곳은 수문이 있었던 자리였는데 기독교인 순교지입니다. 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 신앙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바꾼 순교자는 염산교회 77명의 성도들을 비롯해 영광군에 194명의 순교자들이 있는데 이들의 숭고한 신앙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역사적 사건의 현장인 이곳에 '기독교인 순교탑'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는다는 이유 때문에 목에 돌을 매달고 바닷물에 던짐을 받는가 하면 죽창에 찔리고 몽둥이에 맞고 칼에 목을 베이고 생매장을 당하는 등 여러 모양으로 죽임을 당했습니다. 신앙을 목숨보다 중하게 여긴 순교자들은 천국을 소망하며 죽음 앞에서도 자신을 죽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고 순교의 제물이 되었습니다. 특히 이곳에 수장을 당한 순교자들이 바닷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면서도 찬송을 부르며 천국을 향하여 나아갔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좋은 신앙의 모본이 되고 있습니다.
순교탑 앞 표석의 '순교탑의 설명문'
이곳은 목에 큰돌을 달아서 수장시킨 기독교인들의 순교지 입니다. 어디에도 이것은 세계 기독교사에서 유래들을 찾아 볼 수 없는 것입니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당시 9월 28일 서울 수복 후 미처 퇴각하지 못한 인민군과 공산당들에 의해서 바다 속에 빠져 허우적거리면서, 마지막 순간까지 찬송가를 부르면서 그들은 순교를 했습니다. 이와 같이 신앙을 지키려다 수교한 194명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장소를 기념하기 휘하여 역사적인 사건의 주현장인 이곳에 순교탑을 세우게 되었습니다. 탑은 예수님이 팔을 벌리고 있는 듯한 마치 천사의 날개와 같은 의미를형상과 담아 형상과 미역사의 날개와 같은 의미를 조형화했고, 상층부의 세 개의 타원구는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를, 머리의 원은 고난을 상징하는 가시관을 그리고 전체적으로 사람의 형상을 리듬감 있게 역동적으로 묘사하였습니다. 부조벽화는 목에 돌을 매달아 수장시키고 신자들을 무참히 살해하는 장면을 상징적으로 표현하여 순교 지역의 현장성과 영속성을 부각시켰습니다. 2003.6.16
배수갑문을 지나 염산면 봉남리에서 오동리로 넘어간다.
봉남리의 봉덕천과 오동리의 오동천이 합수하여 칠산바다로 흘러드는 곳에 안강저수지가 형성되어 있다.
왼쪽에 설도젓갈타운과 설도수산물판매센터, 중앙에 설도항, 오른쪽에 염산교회와 순교기념공원, 뒤에 봉덕산이 솟아 있다.
방조제가 오동리에서 옥실리로 넘어가 오른쪽 옥실리 내묘항으로 이어진다. 내묘항 왼쪽 내묘마을 언덕에 통신중계탑이 있다.
옥실리의 염산방조제 제방에서 맞은편 염산방조제와 봉남리 지역을 살폈다. 왼쪽 야월리의 가음산과 그 맞은편 봉남리의 조개산이 가늠된다. 염산방조제는 왼쪽에서 오른쪽 설도젓갈타운으로 이어지고 있다.
봉덕산 아래 염산면 면소재지 시가지가 있다. 왼쪽에 설도젓갈타운,중앙에 염산교회와 설도항, 오른쪽에 배수갑문이 있다.
제방길을 따라간다. 오른쪽에 내묘항이 있다. 서해랑길은 언덕의 송신중계탑을 거쳐 내묘마을로 이어진다.
맨 왼쪽 마을은 오동리의 신오마을, 전봇대 오른쪽 마을은 옥실리의 신오마을이라 가늠한다.
"오동(梧桐)2里 신오(新梧)마을은 1923년 간척 후(干拓後) 농사짓기 위해 진주 강씨(晋州姜氏) 동수(東秀)가 상오에서 들어와 기타 성씨와 함께 성촌하였다. 성촌 전에는 가마동이라 불렀으나 제방 축조로 농사를 짓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하여금 신설된 마을이며 오동리(梧桐里) 중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 하여 신오(新梧)라 하였다.
옥실(玉瑟)1里 신옥(新玉)마을은 광주 무등산 정기가 불갑산 정기로 이어져 다시 월암산(月岩山) 정기를 받아 마을 뒷산인 창고봉(倉庫峰) 하단에 있는 신옥(新玉)마을 형국이 가마솥 형국이라 하여 가마동이라 불러 오던 중 1922년 간척공사 이후 각 처에서 각 성씨들이 모여들어 성촌을 이루었다. 옥실리(玉瑟里) 지형이 구슬처럼 연결되었다 하여 옥실리(玉瑟里)로 칭하다가 일제강점기 이후 신옥실리(新玉瑟里)라 변경되었다가 현재는 신옥(新玉)이라 칭한다. 조선조 말에는 육창면(六昌面)에 속하다가 군남면(郡南面)에서 1983년 본 면(面)에 편입되었다." - 영광군청
염산면 옥실리 61-2 지역으로 설도항 2.1km, 36코스 시점 5.0km 지점이다. 오른쪽은 내묘항으로 이어지고, 서해랑길은 왼쪽 언덕을 넘어 내묘마을로 이어진다.
맞은편 설도젓갈센터와 설도항을 거쳐 염산방조제 옥실제방길을 따라왔다.
염산면 옥실리 1174-12 지역으로 36코스 시점 4.7km 지점이다. 서해랑길은 오른쪽 해안으로 나가는 길이다.
내묘항 입구에서 왼쪽 중계소 송신탑이 세워져 있는 언덕을 넘어 내묘마을로 내려왔다. 내묘마을에는 폐가가 많다.
"옥실(玉瑟)2里 내묘(內猫)마을은 마을 형국이 고양이 머리를 닮았다 하여 '괴머리'라 불렀으며, 마을 바로 앞에는 고양이가 쥐를 잡으려 한다 해서 '쥐섬'이 있었으며, 그 후 마을이 크게 조성되어 분리되면서 안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내묘(內猫)'라 부르게 되었다." - 영광군청
내묘 해안 제방으로 나가면, 내묘항에서 언덕을 넘어오는 길과 만나게 된다.
내묘항에서 내묘 해안으로 이어지는 해안길이 없다. 내묘항에서 언덕을 넘어 오른쪽 길로 내려온다. 가음산이 중앙에 멋지다.
서해랑길은 내묘 해안에서 건너편 옥실리 미동 해안 제방길로 이어간다.
옥실리 내묘 제방에서 맞은편 미동 해안을 바라보았다. 중앙 뒤에, 이 지역에서는 무동산(舞童山)이라 이르는 무등산이 가늠된다.
내묘 해안에서 칠산바다 갯벌을 바라보았다. 왼쪽에 무동산이 바다로 벋어 있고, 오른쪽에 쥐섬, 그 뒤에 장고도가 있다.
내묘항 입구에서 언덕을 넘어 옥실리 내묘마을로 내려와 해안으로 나왔다. 간척지에는 갈대군락지가 형성되어 있다. 앞의 구릉 뒤쪽에 내묘항이 있으며, 구릉 왼쪽 언덕길이 내묘항으로 통하는 것 같다.
내묘 해안에서 미도 해안으로 넘어가는 언덕에서 마을을 바라보았다. 폐교된 송흥초등학교 건물이 보인다. 송정마을이다.
"옥실(玉瑟)2里 송정(松亭)마을은 마을 주위의 산세가 좋고 노송(老松)이 우거진 곳으로 감나무 숲이 울창하여 일명 도청곡(桃靑谷)이라 불렀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이곳을 오가면서 노송을 정자 삼아 쉬면서부터 송정(松亭)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 영광군청
옥실리 미동 해안에서 미동마을을 조망하였다. 간척지 미동들이 드넓고 수로에 물이 가득하다.
"옥실(玉瑟)3里 미동(米洞)마을은 마을 뒷산 이름이 무동산(舞童山)이라 처음 마을명을 무동(舞童)이라 불렀다가, 해방 후 육창면 당시 끝부분에 위치해 있다고 미동(尾洞)이라 부르다 무동산(舞童山) 앞이라 아름다움이 있다고 미동(美洞)으로 불렀다. 그 후 간척지를 막아 농토가 많아지면서 쌀이 많이 생산되길 바라는 의미에서 현재는 미동(米洞)으로 부른다." - 영광군청
왼쪽에 미동배수펌프장, 오른쪽에 쥐섬, 맨 뒤에 장고도, 그 앞에 바다로 벋은 무동산 꼬리가 보인다.
왼쪽에 내묘항, 중앙 뒤에 내묘마을이 보인다. 내묘마을을 거쳐 해안으로 나와 언덕을 넘어 미동 해안으로 왔다. 오른쪽에 미동배수펌프장이 있다.
칠산바다의 갯벌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내묘마을이 고양이의 형국으로 이 섬을 잡는 형국이라 쥐섬이라 불린다. 맞은편에는 가음산 아래의 야월리 염산방조제, 오른쪽 봉남리 조개산 아래에서 이어지는 봉남리 염산방조제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앞에 무동산 산줄기의 꼬리가 보인다. 그 뒤에 장고도가 있다. 서해랑길은 무동산 꼬리를 돌아나간다.
드디어 칠산타워가 가까이 보인다. 서해랑길은 해안에서 오른쪽 들길로 나가 앞의 조릿대 숲을 거쳐 나간다.
앞에 장고도가 있다. 서해랑길은 장고도로 나가지 않고 왼쪽 농로로 들어가 들길을 가로지른다.
서해랑길은 시멘트 농로를 따라 왼쪽 조릿대 숲을 지나 중앙의 성율농장 앞을 거쳐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장고도 해안길에서 들길로 들어와 이곳으로 왔다. 앞에 쥐섬, 그 뒤에 봉덕산, 그 오른쪽 아래에 설도젓갈타운과 설도항이 있다.
서해랑길은 성율농장 앞으로 나가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왼쪽에 칠산타워와 칠산대교가 보인다.
향화도 2.90km 지점이다.
장고도 앞 마을은 새로 생겨난 마을로 신흥마을이라 이르는 것 같다. 서해랑길은 향화로2길을 따라 해안 제방길로 나간다.
향화도 2.67km 지점. 111m의 칠산타워가 솟아 있고, 영광의 향화도와 무안의 도리포를 잇는 칠산대교가 바다를 가로지른다.
오른쪽 신흥마을을 거쳐 해안의 제방으로 나왔다. 오른쪽 뒤에 봉덕산이 우뚝하다.
무동산이 정면에 그 오른쪽에 송촌마을이 자리하고 앞에는 염전이 펼쳐져 있다. 왼쪽 성율농장 앞을 거쳐 이곳으로 왔다.
봄이 왔으니 염전을 일구는 일손이 바쁘다. 오른쪽 산봉이 옥녀봉, 그 아래 송촌마을이 자리하고 있다. 왼쪽은 무동산 자락이다.
"옥실(玉瑟)4里 송촌(松村)마을은 1600여 년경 형성된 마을로서 마을 앞쪽에 옥녀봉(玉女奉)이 있고, 옥녀봉(玉女奉) 뒤쪽에 골냇동인데 골냇동에 큰 소나무가 많이 있고 마을 좌우 뒷산에 소나무가 많아서 송촌(松村)이라 부른다. 일설에는 소나무를 베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지만 베어 없어지고 지금은 큰 소나무가 거의 없다." - 영광군청
오른쪽 쥐섬 앞, 성율농장, 장고도 앞 신흥마을을 거쳐 해안 제방길로 나와 이곳으로 걸어왔다. 왼쪽 뒤에 야월리의 가음산, 오른쪽 뒤에 봉남리의 봉덕산이 분명히 확인된다.
왼쪽에 향화도와 바다에 목도가 있다. 칠산타워가 우뚝하고 칠산대교가 칠산바다를 가로지른다. 향화도는 육지화되었다.
왼쪽에 옥녀봉 꼬리가 있다. 그 자락에 대무마을이 자리하고 있으며 앞쪽에는 칠산대교로 이어지는 향화로가 달린다.
"옥실(玉瑟)4里 대무(大武)마을은 1600여 년경 형성된 마을로써 마을 뒷산에 옥녀봉(玉女奉)이라는 산봉우리가 있으며, 옥녀봉(玉女奉)의 모습이 춤추며 비파 타는 형상이라 해서 무실리(舞瑟里)라 했으나 일제강점기 이후 소무(小武)와 대무(大武) 2개 마을로 분리되었다." - 영광군청
해안길을 오른쪽으로 돌아 향화도항으로 향한다. 칠산타워와 칠산대교, 건너편의 무안군 도리포항이 보인다.
칠산대교가 칠산바다를 가로지른다. 바로 앞 왼쪽 칠산타워 버스정류소 옆에 서해랑길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다.
칠산타워 버스정류소 옆에 서해랑길 35·36코스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합산버스정류장-염산방조제-합산항-설도방조제-설도젓갈타운-설도항-기독교인순교지기념공원-옥슬제방-내묘항-쥐섬-철산타워, 탐방 경로가 한눈에 들어온다. 14km, 4시간 30분. 실제로 걸은 탐방 거리는 14.3km, 전체 소요 시간은 3시간 32분이었다.
2023냔 1월 25일 서해랑길 35코스를 마치고 찍었다.
왼쪽에 죽도, 그 오른쪽에 가음산, 중앙에 장고도, 맨 오른쪽에 봉덕산이 확인된다.
앞은 목도, 맨 오른쪽은 가음산 자락, 그 왼쪽 작은 섬은 죽도, 그 왼쪽 섬이 임병도인 듯. 중앙 맨 끝이 송이도가 맞을까?
칠산타워 앞길 전봇대 기둥에 서해랑길 36코스 시작점 표지가 붙어 있다.
무안관광안내도 옆에 서해랑길 36코스 시작점 표지가 전봇대 기둥에 붙어 있다.
서해랑길 36코스 역방향 탐방을 마치고 칠산타워 전망대로 올라가 칠산바다를 조망했다.
망대봉은 왼쪽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산줄기 중앙에 있으며 중앙 맨 뒤에 무안군 해제면 덕산리 봉대산이 흐릿하다.
장고도 건너편의 제방길과 장고도 앞에서 걸어온 해안 제방길이 선명하다. 왼쪽 뒤에 가음산, 그 오른쪽에 조개산, 중앙 오른쪽에 봉덕산, 그 앞 바다에 쥐섬, 그 앞에 무동산, 오른쪽에 옥녀봉 끝자락이 모두 확인된다.
오른쪽 버스가 정차한 칠산타워 버스정류소 옆에 서해랑길 36코스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오른쪽에 목도, 왼쪽 뒤에 무안군 해제면 송석리 송계 해변, 그 앞에 닭섬, 중앙 뒤에 낙월도, 대각시도, 소각시도인 듯.
칠산바다를 조망하는 111m 칠산타워가 명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