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4년 백제 왕사 묘련이 창건한 고찰 ‘개암’ 이름은 우금바위 전설과 관련 ‘마음여행’ 주제로한 템플스테이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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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개암사 가는길은 2.5km구간에 700여본의 벚나무가 꽃망울을 터트리는 등 최절정의 만개상태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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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우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조선시대 3대 기생이자 부안 출신의 여류시인인 매창이 연인 유희경을 떠나보내며 지었다는 '이화우(梨花雨)'는 비가 오는 것처럼 떨어지는 배꽃과 꽃비를 말한다. 비록 배꽃은 아니지만 전북 부안의 개암사를 찾아가는 길에는 이화우와 버금가는 봄꽃의 여왕인 벚꽃 터널을 만날 수 있다. 운이 좋아 살랑살랑 봄바람이 불기라도 한다면 봄꽃비도 구경할 수 있다.
엄동설한에도 꽃을 피운다는 매화는 절개의 상징이기는 하지만 쉽게 구경하기 힘들고 연분홍 진달래나 철쭉은 산에 가야만 볼 수 있다. 하지만 봄만 되면 활짝 피어 화사함을 선사해 주는 벚꽃은 집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어 친근감을 더해준다.
개암사 벚꽃 길을 제대로 즐기려면 자동차를 버려야 한다. 꽃비 내리는 벚꽃터널을 걸으며 수많은 선비들의 마음을 녹이던 매창의 시 한수 읊으며 걷는 것 또한 개암사 가는 길의 색다른 운치며 재미다. 용이 휘감은 일주문 기둥을 뒤로하고 개암사 경내에 들어서면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100여 그루의 울창한 전나무 숲 사이로 어렴풋이 보이는 연초록 녹차밭 풍경에 눈이 호강이다. 새로 쌓은 석축사이 돌 층층대를 오르면 매창을 닮은 붉은 매화가 반겨준다. 이 매화는 부안현감을 지낸 이규가 중국황제 앞에서의 시전에서 이겨 하사품으로 받은 것이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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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년 백제왕사 묘련이 창건한 고찰 개암사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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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암사는 634년(무왕 35) 백제의 왕사 묘련이 창건한 고찰이다. 사찰 이름을 ‘개암(開巖)’이라 부르게 된 배경은 뒷산 정상의 웅장한 ‘우금바위(또는 우금암)’의 전설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즉 마한의 효왕 28년에 변한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해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우(禹)와 진(陳)의 두 장사를 보내어 감독하게 하고 좌우 계곡에 왕궁전각을 짓게 했는데, 동쪽을 묘암(妙巖), 서쪽을 개암(開巖)이라 부른데서 비롯됐다.
즉 우금바위에 천연석굴이 있어 그 바위를 개암이라 불렀는데, 바위 모습이 멀리서 보면 크게 둘로 이루어진 듯해 ‘바위가 열린 상태’라는 의미에서 ‘개암’이라 칭했다는 구전도 있다. 백제가 신라와 당나라의 연합군에 의해 망하자 도침 스님과 무왕의 조카 복신이 일본에 있던 왕자 풍을 왕으로 추대하고, 유민을 규합해 백제 부흥운동의 근거지로 삼았던 주류성지로 추정되는 곳도 바로 우금바위아래 우금산성이다.
삼국통일 후에는 원효 스님, 의상 스님이 우금바위아래 우금굴서 정진하며 암자를 중수했는데 지금도 원효방으로 불린다. 진표율사가 개암사 부속암자인 ‘부사의방장(不思議方丈)’서 참선 득도한 기록도 있다. 진표율사는 개암사에서 전수한 이래 불가에서 민간요법으로 전수돼 오는 개암죽염의 창시자로 알려져 있다. 고려때는 원감국사가 황금전을 중심으로 해 동쪽에는 청련각, 남쪽에는 청허루, 북쪽에는 팔상전, 서쪽에는 응진당과 명부전을 지었으며, 총 30여 동의 건물을 세워 <능가경>을 강의하면서 많은 사람을 교화해 이곳 산의 이름을 ‘능가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단아한 정취를 자아내는 소박한 사찰 개암사에는 보물이 있다.
길이 14m, 폭 9m의 영산회괘불탱이다. 이것은 조선 영조 25년(1749년) 승려화가 의겸 등이 영축산서 설법하는 석가모니 모습을 그린 것으로 보물 제1269호로 지정돼 있다. 개암사 대웅보전 뒤 울금바위는 나당연합군의 공격에 맞서 끝까지 항전한 백제군의 지휘본부가 있던 곳이며 울금바위를 중심으로 뻗은 울금산성에서 백제 유민들이 항전을 했다고 전해진다. 내소사로 들어가는 길에 아름드리 전나무가 있다면 개암사로 들어가는 길은 단풍나무가 지키고 있어 봄 뿐만 아니라 가을에 찾으면 아름다운 풍광에 저절로 탄식이 나올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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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 14m, 폭 9m의 영산회괘불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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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때문인지 개암사 예찬론자들이 많다. 대표적인이가 유홍준 前 문화재청장이다. 유 前 청장은 <나의문화유산답사기>에서 “나라면, 개암사에 살고 싶다. 적막함이 무척 마음에 든다. 그 곳에서라면 나는 누구의 것도 아닌 원래의 내가 될 수 있고, 나만의 속도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고 적고 있다. 개암사는 템플스테이 사찰로도 유명하다. 원효스님의 화쟁 사상을 바탕으로 우리시대에 필요한 소통과 나눔, 휴식과 치유가 있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마음 여행’이라는 주제로 우금암 트레킹과 마음나누기, 소금 만다라, 차 명상, 녹차밭 포행, 찻잎따기, 전차 만들기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20년 전 개암사를 처음 찾았을 때나 지금이나 개암사는 적막했다. 사방을 둘러봐도 고요다. 적멸 그 자체다. 단촐한 전각, 마당 한 켠에 고고한 자태를 뽐내는 홍매화 한그루. 커다란 석축계단을 오르면 제일먼저 맞는 대웅보전. 뒷산이 치밀어 올린 두개의 울금바위는 사람들의 마음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속세의 찌든 때가 저절로 녹아든다. 절을 내려오는 길에 벚꽃의 풍광을 보니 정극인의 ‘상춘곡’이 귓가에 스친다.
“세상에 묻혀 사는 분들이여. 이 나의 생활이 어떠한가./옛 사람들의 운치 있는 생활을 내가 미칠까 못미칠까?/세상 남자로 태어난 몸으로서 나만한 사람이 많건마는/ 왜 그들은 자연에 묻혀 사는 지극한 즐거움을 모르는 것인가?/ 몇 간쯤 되는 초가집을 맑은 시냇물 앞에 지어 놓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우거진 속에 자연의 주인이 되었구나.”
개암사 주지 재안스님“개암사는 원효, 의상, 진표 율사같은 고승대덕들이 수행한 도량입니다. 원효 스님이 진정한 화쟁 사상을 실천했듯이 사찰은 지역사회와 더불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동력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스님이 주지로 처음 부임해서 제일 먼저 한 일이 수행 풍토를 정착시킨일이다. 2012년 하루 5천배씩 200일간 100만배 절 수행을 회향했다. 10여년 전 서울 봉은사 소임을 볼 때에 이어 두 번째 100만배 수행이다.
스님은 “기도하는 사람은 막지 않습니다. 서로 탁마 정진하면 누구라도 훌륭한 도반이 될 수 있지요” 재안 스님은 복지 포교에도 관심이 많다. 얼마전 조계종의 ‘아름다운 동행’에 아프리카 학교 기금으로 1천만원을 후원했다. 풍족해야만 나누는 것이 아니라는 스님은 그동안 보시한 쌀만해도 8,000kg이 넘는다. 이외에도 청소년들에게 장학금도 지급한다.
여행수첩
<교통편>
▲자가용 서해안고속도로-부안나들목-고창방면 23번 국도 9.3km-봉은삼거리(개암사 진입로 표지판 우회전 2.3km)- 개암사
▲대중교통 서울에서 고속버스 이용-부안시외버스 터미널 하차-부안에서 상서, 줄포, 곰소, 또는 격포, 내소사행 군내버스를 이용, 개암사서 하차
<가볼만한 곳>
▲채석강=1976년 4월 2일 전라북도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됐다. 면적 12만 7372㎡이다. 부안군 변산반도 맨 서쪽, 격포항 오른쪽 닭이봉 밑에 있다. 옛 수운의 근거지이며 조선시대에는 전라우수영 관하의 격포진이 있던 곳이다.
<맛집>
민속바지락죽(변산온천 입구, 063-583-9763), 송포횟집(변산해수욕장, 생선회, 063-581-8877), 당산마루(부안읍내, 참뽕기능성 한정식, 백합죽, 063-581-3040)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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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개암사가는길 벚을 만나면 정말 아름다울것 같아요.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