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했던 2012년의 여름이야기 (5)>
◎가을을 맞이하여 다시 시작
사람이 느끼기에 가장 쾌적한 기온이라는 22도의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비 온 끝에 찾아온 ‘반짝 가을’ 날씨이다. 하늘은 청명하고, 습기가 날아가 버린 상쾌한 바람이 창문으로 살랑살랑 들어와 어서 밖으로 나오라고 손짓을 한다.
오늘은 모처럼 남편과 함께 공원에 나가 산책을 한다. 오랜 금식으로 근력이 약해지고 장 기능이 원활 하지 않자 산책으로 체력을 회복하고 있다. 퇴원하여 집으로 온 남편은 오랜 금식을 한 후유증으로 위에서 음식을 거부하는 증세를 겪었다. 그러는 사이 체중은 10kg이나 빠져 있었다. 조금씩 밥술이라도 넘기기 시작한 것이 며칠 되지 않았다.
오늘 아침은 16도까지 기온이 떨어졌다. 6시경, 긴 옷 하나를 더 껴입고 남편과 함께 집을 나섰다. 산책로에 들어서자 남편의 걸음이 빨라져 혼자 저만치 앞서가고 있다. 며칠 전까지도 속도가 느려 같이 걷는 내가 답답할 정도였는데 예전의 페이스를 찾아가고 있는 듯하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말이 있듯이 움직이는 것이 최고의 보약 이다.
남편이 퇴원 한 날이 8월 19일, 간단할 줄 알았던 치과 수술로 35일을 병원에 있었던 것이다.
어머님은 구리 한양대 병원에서 치료를 받으시다가 8월 3일 천호동 로뎀 전문병원으로 옮기셨다. 로뎀 병원에서 더 있다가 가라고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8월 27일 포천시 소흘읍 송우리에 있는 ‘연세실버 전문요양원’으로 모셔 논 상채이다. 잦은 환경 변화로 흥분하시고 힘들어 하시는 어머님을 이리저리 옮겨 드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집으로 모셔올 형편이 되지 않은데다 가시는 병원마다 간병인도 감당하지 못해 하고, 주변 환자들과 가족들의 민원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서였다.
아침 산책로에는 잠 없는 노인들이 주로 나온다. 오늘은 조경회사에서 풀어 놓은 여인들도 무리지어 걷고 있다. 잔디도 깎고, 여름내 무성하게 커버린 잡풀을 뽑아 그 자리에 가을꽃을 심기 위 해 나온 사람들이다. 봄부터 다리와 전봇대에 걸어 놓았던 화분의 꽃들은 잦은 비와 바람으로 볼품이 없어졌었는데, 새 것으로 다시 심어져 가을 단장을 끝낸 상태이다. 화분 속의 어린 사피니아와 제라늄은 앞으로 두 달 이상 예쁜 꽃을 피워 거리에 나선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해줄 것이다.
가을맞이 준비에 부산한 사람들을 보며 나도 흐트러졌던 몸과 마음을 재정비하고 다시 시작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자분이 병원에 계시는 동안 밖으로 다니느라 힘들기는 했지만 조 석은 햇반에다 장조림, 후식은 토마토로 간단히 때우는 생활을 한 달 이상 하다 보니 국이나 찌 개를 끓이는 일도 새삼 힘들고, 두 사람 먹고 난 설거지도 너무 많아 보이는 것이었다.
마냥 늘어지고 편해지고 싶어 하는 육신을 추스르기 위해 어제는 두 가지의 김치를 담갔다. 추석도 다가오는데 지금부터 적당한 긴장감을 유지해 두는 것이 그 때 가서 덜 힘들 것 같다.
집안 일 뿐 아니라 그 동안 긴 방학에 들어갔던 모임들이 이번 달부터 시작을 한다. 매주 목요일에 포콜라레 모임을 가야하고, 성당 반 모임도 해야 한다.
잡초를 뽑아 버리고 새로운 꽃으로 단장하는 공원처럼 나에게도 9월은 헝클어졌던 마음을 수습하고 새 기운을 내어 다시 시작하는 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