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안 마이어 , 단지 평범한 보모였던 그녀가 사진기를 들게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또한 사진기를 들고서도 욕심없이 무명으로 한 평생을 살수 있었을까?
비비안 마이어는 평범한 보모였다. 비상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보모의 역할에 아무쪼록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그녀의 손에 쥐어지는 건 아기용품, 기저귀따위 뿐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녀는 사진기를 들고 온 세상을 찍었다. 무려 15만장이나 되는 사진이 증명하 듯, 그녀는 세상 모든 것을 필름에 담았다. 하지만 죽을때까지도 그녀는 사진을 그저 개인적인 취미로 여겼던 것일까? 절대 공개하지 않으며 그저 상자안에 쌓여있길 한 세월, 어느 한 사람에서 고작 400달러도 안되는 돈에 팔리면서 세상에 알려진다. 그 이후 사람들은 그녀의 사진에 열광했다. 왜 ? 왜 사람들은 그 사진에 열광 했을까? 그녀가 보모출신의 사진작가여서? 신비로운 컨셉에 매료되어서? 그녀는 단지 사진으로 모든 이들의 찬사를 이루어냈다. 그녀가 보모라는 것은 세상 어디에도 알려져 있지 않았다. 사진으로 유명해 지고 난 뒤에 그녀가 보모출신이었다는것이 알려졌을 뿐. 그녀의 사진은 모든 이들의 이야기가 뒤섞인 일상 사진이다. 다만 그 이야기를 사진속에 얼마나 잘 담아내느냐는 비비안 마이어의 특별한 재능이었을 것이다. 이렇게 재능이 숨겨진 사람이 오로지 자신의 행복을 위해 사진을 찍어왔다는 것이 더욱 극적인 비비안 마이어를 만들어 냈던 것이다.
근대 한국, 우리에겐 이름만 들어도 아픈 그런 시간이지만 그 당시 서양인들에게는 그저 변방에 어느 국가와 다르지 않았다. 그 나라에 걸린 수많은 시간, 장소, 사건.... 그들에게는 그들의 의미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었고, 우리의 생활상이 그들에겐 문명화가 덜 된 것처럼 보였으리라. 일명 '문명화된' 나라에서 온 그가 찍은 한국은 딱 그래보이는 곳이었다. 이 당시 조선은 격변을 겪고 있던 공간이었다. 무엇이 맞다는 뜻이 아닌, 구시대와 신세대의 충돌, 전통과 기술의 충돌. 그곳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괴리감. 우리나라의 현재가 저 당시와 150년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은 때라면 그게 더욱 신기한 것이다. 그럼에도 현재의 한국은 이렇게 바뀌었고, 사람들의 생활상은 정반대로 바뀌었다. 천천히 발전해 가는 과정에서 여러 전통이 남은 다른 나라와 달리, 이 나라의 문화는 발전속도에 못이겨 이제서야 뒤를 돌아보는 과정속에 있다. 그 과정에서 이 모습들을 담은 사진만이 우리가 돌아볼 방향을 안내할 뿐이다. 서양의 시각에서 본 조선은, 날것이자 우리조차 남기지 못한 우리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