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18일 카테고리 "맛사랑"에 소개 했던 "50년 떡볶기 할머니"
그후 3년의 오늘.
경복궁역 앞에서 2시 반에 만난 부암동 친구와 두 시간 정도 대화를 나누다
군것질을 하고픈 마음에 적선동 시장골목으로 들어섰다.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떡볶기 할머니 한테로 갔고
할머니를 보니 너무나 반가웠고 정정하신 모습에 놀라웠다.
아줌마 들이라 많이 먹을 것 같아 보이지가 않았는지
우선 천 원 어치만 먹어보고 나중에 더 시키라고 하신다.
철판위에 수붓히 쌓인 떡을보니 삼천원어치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개를 입안에서 깨무는 순간 " 아~ 그래 이 쫄깃한 맛 ! " 감탄으로 이어진다.
너무나 부드럽고 쫄깃한 느낌은 다른 곳 에서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맵지도 않고, 짜지도 않으면서 입에 짝! 달라붙는 맛! 말로는 표현 못해요~.
1. 왼편에 6개는 먹고 있던 우리 몫이고, 한쪽 모서리가 닳아있는 스텐주걱은 15년 쯤 된 할머니의 분신.
할머니의 얼굴에선 어디에도 아흔살의 흔적을 찾아 볼수 없게 건강해 보이셨다.
오랫 만에 인사를 나누면서 오고간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가족얘기.
개성이 고향인 할머니는 결혼해서 3 남매를 두시고 잘 살으셨는데
6.25 전쟁 때 이북에서 남편이 전쟁에 나가서 죽음으로
모진 인생 길로 들어서게 되신 것이다.
6.25 직후, 친정엄마의 권유로 남한에서 먹고살길을 찾으러 내려 왔다가
그만 그 길로 못 돌아 가게 되었고 그 당시 7.9.11살이던
자식들을 가슴에 묻고는 지금까지 홀로 살아 오셨다고 한다.
11살이었던 아들은 무척 똘똘 했었고 지금은 70살 이 넘은 할아버지가 되었을 꺼라며
아주 뿌듯한 표정을 지으시며 아들 자랑을 하시는 모습에 가슴이 아려왔다.
33살,처음 대구에 내려가서 채소 장사를 시작으로 안 해본 행상이 없었고
땔감나무와 화초 장사를 해서 얼마간의 돈을 모으게 되었답니다.
돈을 조금 모으니 힘들지 않고 한 자리에서 할 수있는 일을 찾아
지금 이 자리에서 떡볶이 장사를 하며 반 평생을 보내고 92살에 이르렀는데
지금의 소망은 빨리 죽는 일!
할머니의 얼굴은 80살도 안되게 보이시고 편안하고 여유가 있었다.
차림이 누추해서 그렇지 옷만 잘 차려 입으시면
당차지만 지혜롭고 온화한 할머니의 기품을 느끼게 한다.
우리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할머니는 계속 손을 움직여 떡을 썰고 계셨다.
요즘은 모두 기계로 떡국 떡을 써는데 할머니는 손으로 썰어서 파신다.
" 내 손으로 썬 떡국은 오래 끓이면 맛이 없어. 한번만 우르륵 끓이면 돼~."
저렇게 무릎 위에 바구니를 올려놓고
손으로 어렵지 않게 썰수 있는 가래떡은 부드럽단 소리다.
일부러 먹어 보라고 주신 떡조각을 먹어보니 정말 부드러웠다.
자식들에 대한 자긍심이 이 할머니로 하여금 초라하지않고
당당하며 비굴하지 않은 인생을 살게 한 버팀목이었을 것이다.
한 동안 우리 나라를 떠들석하게 했던 이산가족 찾기에도 매달려 보았지만
자식들과의 연결은 아직도 못하고 있는데
할머니의 기상으로 봐서는 그 자식들도
이북에서 나름대로 성공하여 잘 살고 있을거라는 추측을 해본다.
"내가 이래뵈도 삼 남매를 두었는데 모두들 성공해서 잘 살고 있어~."
할머니의 소리 없는 자랑이 뒤 돌아 서는 내귀에 쟁쟁하다.
소쿠리에 있던 떡국 떡을 모두 8천에 담고
이미 먹은 떡볶기 천원,
만원짜리 내고 거스름 안 받으려고 천원어치 달랬더니
사진만큼 거의 이천원어치를 주셨다.
양념장: 곱게 다진 파, 마늘, 고운 고추가루, 깨소금, 몽고간장,
팬을 달군후 기름을 조금만 두른후 먼저 떡을 볶다가
양념장을 넣어 골고루 간이 배어들도록 둥글려 준다.
포장은 하얀 비닐 봉투에 넣어주신다. 오른쪽 하늘색 프라스틱 뚜껑은 양념통.
3년전에 올렸던 건데 철판, 주걱, 양념통 위치 변함없이 그 대로 임.
오랫 만에 나의살던 고향 동네에서
아직도 정정하신 옆집 할머닐를 만나 뵌 것같은 저녁이었다.
* * *
내 고향: 종로구 사직동 에서 태어나 매동 초등학교 다님.
적선동,옥인동, 궁정동,효자동에 온 일가 친척들이 모여서 살았고
적선동 시장(금천교시장)과 통인 시장,사직공원은 너무나 친근한 곳이다.
사진찍기를 거부 하시는 할머니가 이해가 되어 인물은 찍지 않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