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7.07
3일간의 동행 - 3
아내도 나처럼 잠을 설쳤을까. 친구가 셋이나 해남으로 달려오는 중이다. 젊은 날, 웃음이 떠나지 않은 그 화려한 시절에 만든 예쁜 인연으로 40년을 거뜬히 이어온 우정이다. 만나면 웃고 그러다 웃고 또 웃다가 즐거운 마음으로 웃으며 다음을 기약하는 친구들이다. 여전히 뜨거운 날이고 그늘 밖에 서면 온몸이 녹아내릴 것만 같다. 에어컨 바람이 시원한 영암 메밀국숫집에서도 그녀들은 하염없이 웃는다. 누가 제일 많이 웃는가? 가장 크게 소리 내어 웃는가? 관찰자가 되어 살피다가 누적 횟수를 세지 못해 같이 웃는다.
해남의 최고는 대흥사다. 두륜산의 아름다운 품에 자리한 큰 사찰이다. 해남은 물론 목포, 영암, 무안, 신안, 진도, 완도, 강진, 광주 등 9개 시군의 말사를 담당하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의 본사다. 대흥사라는 나무를 알기 위해 두륜산이라는 숲을 살피려고 두륜산케이블카 티켓을 구매했다. 전망대에 서면 남해에는 완도가, 서해에는 진도와 울돌목이 선명하다. 눈앞에 고계봉 정상석이 보인다. 그 너머로 가련봉과 두륜봉의 웅장한 모습은 바라만 봐도 가슴 떨릴 만큼 장관이다. 대흥사 해탈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보이는 동쪽 봉우리가 가련봉이고 그 우측이 두륜봉이다. 내 손가락 끝에 걸린 봉우리를 그녀들은 예상했다는 듯이 웃는다.
내 마음은 산길을 오른다. 내친김에 국보 제308호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까지 데려가고 싶다. 미륵불 좌우상하 네 곳에 새겨진 공양천인상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더위를 감당할 수 없으니 어찌하랴. 미황사 도솔암으로 향한다. 우리 국토 최남단 땅끝 달마산의 기암괴석 사이에 숨겨진 암자다. 진달래꽃이 붉은 봄이면 천상이라 여겨진다. 단풍 짙은 가을도 꾸밈없이 좋겠지만 하얀 눈이 덮인 도솔암 사진을 보면 더 이상 할 말을 잃는다. 이번 여행이 계절마다 기억되고 추억되어 해남이 그리워지기를 소망해 본다.
여름날 새벽이 붉어 온다. 해남 땅끝항 여객선터미널은 첫 선박부터 정상 운항을 확인해 준다. ‘2005 완도 방문의 해’를 맞이하여 선박 운임과 기관 입장료는 반값이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품격이 다르다. 넓고 긴 물길을 품은 연못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바윗돌이 있어야 할 자리에 떡하니 버티고 섰다. 아홉 칸짜리 세연정 지붕은 장군의 위용을 갖추었고 열여섯 개 둥근 기둥은 하나하나가 모두 선비의 붓대처럼 느껴진다. 고급스럽다. 신발은 벗어 던지고 오른 마룻바닥은 반지르르하다. 숱한 사람의 흔적이다.
달력에서나 본 사진 풍경이다. 예송리 갯돌 해변은 동글납작한 검은 돌멩이가 지천으로 깔린 해수욕장이다. 전복 작업용 굴착기를 장착한 선박이 스페인 어느 항구 요트처럼 듬성듬성 떠 있다. 끝이 없는 바다는 어디가 수평선인지 모르겠다. 하늘도 바다도 기분 좋은 파란색 페인트를 퍼부은 듯하다. 노화 동천항에서 연안여객선 대한호에 몸과 차를 실었다. 완도 화홍항으로 나오는 50분 동안 객실 바닥에 널브러진 그녀들에게서 아줌마라는 사람이 보인다.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내가 외우는 <어부사시사>의 전부다. 땅끝 해남으로 내려온 지 6개월이다. 간간이 짬 내서 주변을 여행한다. 진도, 완도, 강진, 장흥, 영암, 나주, 신안으로 국가 유산을 답사하거나 여행지를 찾아가 본다. 하루하루가 즐겁다. 이 즐거움에 끼어드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친구들이 걸핏하면 해남으로 오겠다고 한다. 대구에서 서울에서 대전에서 보길도 세연정에 한 번 가려면 큰마음을 먹어도 될까 말까다. 그들에게 나는 징검다리다. 윤선도 원림을 마냥 그리워한다고 했다. 멀리서 찾아와 "보길도 가 봤어?"라고 가볍게 묻는다. 동백꽃 피고 비 내리는 날, 볕이 쨍쨍 내리쬐는 날, 모두 색다른 부용동이다. 완도로 귀촌하라는 친구의 속삭임에 미소로 답한다. “니가 가라. 완도!” 언제부턴가 친구들 사이에 농담 삼아 던지는 말이다. 오늘도 매우 덥다. 여객선 난간에 서면 멀리 다도해 작은 섬들이 다가왔다 사라진다.
명승 제3호로 지정된 완도 정도리구계등 해변으로 이끌었다. 구계등이란 파도에 밀려 표면에 나타난 자갈밭이 아홉 개의 계단을 이룬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방풍 숲 어귀에는 왠지 비밀의 화원이 생각나는 곳에 벤치가 놓여 있다. 사진찍기를 즐기는 그녀들의 몸놀림이 빨라졌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다. 날이 무더운데도 파란 바닷물에 손조차 담그지 못하는 것은 그녀들의 나이 탓이라 지레짐작하고 만다.
여행의 시작은 숙소다. 그녀들에게 2박 3일은 흑석산자연휴양림에서 시작되었다. 아내의 간절함이 쌓이고 쌓여 만들어진 숙소다. 전국의 자연휴양림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주말에 방 하나 구하는 게 무지 어렵다. 예약 시간에 맞춰 찰나의 손놀림으로 클릭해도 절대 만만치가 않다. 그렇게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다. 우여곡절 끝에 구한 숙소에는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여자들의 수다다. 밤늦도록 이어졌을 그녀들의 이야기. 불 꺼진 어둠 속에서도 끊일 듯 끊이지 않는 말과 말들의 연속.
마지막 날이다. 남도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다산(茶山 丁若鏞, 1762~1836)의 땅 강진이다. 전 문화재청장 유홍준의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 첫권의 시작이 월출산이니 그의 속내를 따라가 본다. 천년고찰 강진 무위사 수륙대재는 조선 초기부터 역사가 600년을 넘었다. 죽은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불보살의 원력으로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행사다. 올해는 10월 18일이다. 살아생전 한 번쯤은 참가하리라 다짐한 지 오래다. 국보 제13호 극락보전 보수 공사로 아미타여래삼존벽화(국보 제313호)와 백의관음도(보물 제1,314호)는 5년 이상 기다려야 한다.
월출산 남쪽 기슭이다. 가끔 역사극 드라마의 배경이 되는 백운동 원림 정선대와 수소실 마루에 걸터앉았다. 온천지가 쥐 죽은 듯이 조용하다. 대나무와 동백나무 푸른 숲에 숨어 세상과 연을 끊을 이들에게는 안성맞춤이다. 자이당 뒤쪽 숲길을 따라 강진 월출산 다원을 걷는다. 보성 차밭이나 제주도 녹차밭은 익히 알고 있으나 강진에도 이토록 넓은 차밭을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으리라. 텅 빈 월남사 터에 홀로 덩그러니 서 있는 삼층석탑을 볼 때마다 애달프다. 꿈같은 세월이 진짜 꿈이었음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애처롭다.
친구들을 보낸 아내는 시무룩하다. 안다. 아내의 아쉬움을 나는 알고도 남음이 있다. 더 주고 싶었으나 더위라는 놈에게 발목이 잡힌 탓이다. 더워도 어지간히 더웠어야지. 시간이란 놈도 그리 만만하지는 않아 보인다. 그녀들의 주름 앞으로 닥쳐올 시간은 지금보다 더 매정하기만 할 텐데. 그래도 걱정은 접어두시라. 나는 돌쇠다.
첫댓글 언니한테 물어봐야된다
진짜 돌쇠인지 손 많이 가는 도련님인지!!
여행은 내가 될쇠지.
설계부터 인솔, 해설까지 몽뙁 책임지지.
그래요 그건 인정 오빠랑 여행가면 편하지 따라만 가면 꿀 떨어지니깐
인정...
딋 바라지 하면서도 즐거운 사람이 있다는 걸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