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구간 산행기
일시 : 2008년 12월 21일 09:30~16:30
구간 : 신동리~신동봉~성봉~성치산~광대정재
거리 : 10km
참여인원 : 14명
참가자 인사(청산회관 09:30) - 시내버스출발(09:40) - 신동리 (10:25) - 심천월빙타운 등산로입구(10:30) - 신동봉(630m)(11:20) - 성봉(648m)(점심식사12:30) - 성치산(670.4m)(14:30) - 517봉(15:00) - 광대정재(15:40) - 금산(해산)
11구간에서 하산지점을 오푸동재로 내려와 심천웰빙타운으로 내려온 관계로 12구간의 출발지점을 오푸동재로 올라가려하였으나 심천웰빙타운에서 사유지와 장뇌삼을 재배한다는 이유로 입산을 하지 못하게 하여 남일우체국장인 장종안님께서 몇 번의 전화로 부탁을 하였으나 역시 허락을 받지 못하였다. 더 이상 아쉬운 소리를 할 수 없어 다른 길로 올라가기로 하였다.
대전에서 같이 참석하겠다고 여성 2분에게서 전화가 왔다. 차량편을 같이 이용했으면 하신다. 오룡역에서 만나 청산회관에서 참석자를 만나니 전체 12명의 참석자가 기다리고 있었다. 09:40분에 출발하는 시내버스에 승차하니 다른 승객은 한명도 없고 오늘의 산행회원만이 승객으로 전용버스를 타고 가는 듯한 느낌이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는데 황경록씨로 부터 전화가 왔다. 지금 어데인가하고, 집앞 아파트앞 승강장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버스가 오질 않는단다. 우리는 남일면 조금 못 미쳐의 4거리에 도착한 때인데, 참석이 불가능한가 했는데 다른 차편으로 올라오신단다.
신동리에 도착하여 출발전 사진촬영을 끝내고 올라가려고 황경록씨에게 전화를 하니 지금 도착을 한다면서 대답을 들으니 화물차 한 대가 정차를 하면서 내리신다. 덕분에 버스를 안타시길 잘했다면서 그 화물차로 저수지 위쪽의 안골까지 화물차량으로 이동을 하였다. 그런데 이 화물차가 지난달에 내려갈 때 만나 타고 같던 그 화물차란다.
안골 입구 심천웰빙타운 앞에서 하차하여 사유지 경계의 능선으로 올라 신동봉으로 올라가는데 처음에는 등산로가 없어 능선으로 올라가는데 길이 없어 바위와 숲길을 뚫고 올라가니 등산로가 나타난다. 첫 번째 봉우리에 도착하여 과일과 음료를 마시고 있는데 황경록씨가 중부지방에서는 잘 발견이 안되는 귀한 나무라면서 층층나무를 소개하면서 알려준다. 층층꽃과 다른 것으로 목본과란다. 가을에 보라색의 예쁜 꽃이 핀단다. 이 등산로로 계속올라가니 신동봉에 도착한다. 신동봉에서 멀리 성봉이 보인다. 신동봉에서 보니 성봉과 성치산간의 산줄기와 주변의 모습이 뚜렷하게 잘 보인다.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장종안씨의 옛날 이야기를 같이 들었다. 어린시절 나무를 하기 위하여 이곳까지 올라와 나무를 해갔단다. 다른 분들도 어렸을때의 나무하던 이야기를 하는데 모두들 고생을 하고 산림감시를 하던 사람과의 실랑이와 피해 다녀던 이야기와 그때 그시절에 나무가 없으면 생활을 할 수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땔감을 구해야 하는 형편을 생활하면 그 시절의 어른들의 고통이 눈에 선하다. 단속하는 분들도 그 사정을 뻔히 알면서 단속을 해야 했을 것이다.
벌써 한사람의 발자국이 먼저 올라갔다. 밤에 눈발이 날려있어 바닥에는 살포시 눈이 쌓여있다. 오르막길에서는 눈과 낙옆이 뒤섞여 상당히 미끄럽다.
성봉에는 남녀의 2분이 먼저와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데 부부인듯하다. 십이폭포주변의 산을 돌아보고 있단다. 먼저 온 발자국의 주인은 혼자서 먼저 갔단다. 대전쪽의 산들에 대해서 궁금한점을 물어보길래 자세하게 알려주니 고맙다면서 먼저 출발한다.
성봉에서 점심식사를 하기로 하고 모두들 도시락을 펴놓았는데 대전에서 오신 여자2분은 라면을 가지고 왔는데 날이 추운관계로 라면이 끓지를 않아 같이 도시락을 나누어 먹으며 가스가 어떤것인지 물어보니 겨울용이란다. 가스를 확인하니 겨울용이 아니고 더구나 산에서의 취사에 경험이 전혀없는 형편이였다. 내가 빈 그릇에 뜨거운 물을 담아 가스통을 넣으니 화력이 갑자기 살아나면서 금새 라면이 끓어버린다. 모두들 깜짝 놀라며 그런 방법이 있었느냐며 좋은것을 배웠다고 좋아들 한다. 뜨거운 라면을 한 젓가락씩 먹으니 그 맛이 일품이다. 오늘도 점심식사에는 좋은 술들이 많이 나왔다. 양주에 더덕술, 소주에 복분자주까지 한잔씩 마시니 취기가 올라온다.
성봉에서 성치산까지의 능선은 험하면서도 능선등산의 묘미를 두루맛볼 수 있는 구간이다. 봉우리에 올라설 때 마다 골짜기의 깊음을 알 수 있고 경계의 좌우를 보면서 천혜의 성벽임을 다시금 알 수 있다. 성치산에 도착하여서는 건너편의 성치산 정상석이 있는 곳에는 아무도 건너가질 않는다. 나의 조그만 생각으로는 건너편의 봉우리를 정상이라고 칭하기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가질 않는다. 옛 문헌에서도 보면 성치산의 줄기를 따라 서술이 되어있고 이 지맥의 능선밖에 나가 있는데 그 봉우리를 성치산의 정상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서운찮은 생각이 든다. 또한 주 줄기의 봉우리와 현재의 성치산의 정상이라고 하는 봉우리의 높이도 오히려 주 줄기의 봉우리가 더 높은 감이 있다. 성치산의 정상은 두 지역간의 봉우리 선점을 먼저하기 위한 조치로서 어느 한쪽이 정상석을 세운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성치산에서 부터는 계속해서 내려가는 길이어서 한결 수월한 등산이 되고 중간중간에 양념으로 작은 봉우리가 있어 쉬어가기가 좋다. 뒤에 쳐져 있는 일행을 살피냐고 늦게 517봉에 도착을 하였는데 사과를 나누어 먹고 있다. 사과 한 개를 놓쳤는데 급경사로 굴러 떨어져 내려갔단다. 다시 주워올까하고 내려다보니 그 끝이 보이질 않아 포기하고 말았다.
517봉에서부터 구석티재(광대정재)까지는 숲가꾸기 사업으로 나무를 많이 베어 등산로가 막혀있어 쓰러진 나무를 치우면서 내려왔다.
광대정재에 도착하니 여자분들은 밭에 있는 냉이를 캐느랴고 정신이 없다. 사진촬영을 하려해도 오지를 않는다. 모두들 한웅큼씩의 냉이를 캐가지고 온다. 오늘 저녁 냉이국의 향기가 나는 듯 하다.
광대정재는 구석티재라고도 한다. 옛 문헌에는 구석티재라고 적혀있다. 재의 바로 아래 마을이 광대정이라고 하기도 하고 구석리라고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아는 재의 이름이 광대정재라 현재는 칭하고 있다.
광대정재에서 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지나가는 승합차에 부탁을 하여 장호씨와 길대섭, 황경록씨가 먼저 출발하여 승합차를 가져오기로 하고 우리는 걸어내려가는데 시외버스가 오는것을 정지시켜 태워줄것을 부탁하여 금산까지 쉽게 올 수 있었다. 시외버스라 요금은 비싸지만 인심좋은 기사분이 한 사람분은 할인을 해준다. 금산시외버스터미널에서 내려 뒷풀이로 막걸리라도 한잔씩 하고 헤어질까 했으나 차를 가져온 관계로 서운하지만 할 수 없이 그대로 헤어졌다.
첫댓글 이제 저도 따라가렵니다 ^^ 우리고장 금산의 둘레산 ..알아야할것 같습니다 ...소중한 우리 금산의 명산 .....
백발대장님 한 해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새해에도 금산둘레잇기 변함없으시기 바라며, 새해에 복 많이 받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