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신들은 영주한테서 받은 봉토(그리고 이보다는 훨씬 드물지만 토지 이외의 수입원)를 보유하되, 그 대가로
영주에게 특정한 봉사를 바쳐야 하며
개인적인 충성으로 영주와 묶여 있다.
좀더 넓은 의미에서 이 용어는 '봉건사회'를 가리킨다.
봉건사회는
특히 폐쇄적인 농업 경제에서 번성한 문명의 한 형태이며,
단순히 영주와 봉신 및 봉토가 존재한다는 것 말고도
일반적인 특징을 갖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는
민간의 의무든 군사적 의무든
모든 공식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은
국가나 공익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위해서가 아니라,
군주와 개인적으로 기꺼이 맺은 관계 때문에 그 의무를 수행한다.
이들은 봉토라는 형태로 보상을 받으며,
이렇게 받은 봉토는
자손에게 물려주어 대대로 소유한다.
봉건제의 또다른 측면은
자유가 없는 소작농에 대해
토지를 소유한 영주가
광범위한 경찰권과 사법권 및 과세권을 비롯한
여러 가지 권한을 행사하는
장원제 또는 영주제이다.
郡縣制
나라를 몇 개의 행정구획으로 나누고
여기에 중앙에서 임명한 지방관을 파견해 다스리던 제도.
최초로 중국을 통일한 진나라의 시황제는
늘어난 영토와 백성을 효과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일련의 개혁을 단행했다.
그는 우선 지방 관리의 독립된 통치지역이 생기지 않도록
봉건세력을 철폐하고
각지의 세력가와 부호를
강제로 수도 셴양(咸陽)으로 이주시켰다.
이후 전국을 36개 군·현(郡縣)으로 나누고,
중앙에서 임명한
수(守:행정)·
위(尉:군사)·
감(監:감찰)을 파견하여
각 군·현을 통치하게 했다.
진나라 이전까지
국가는
중앙의 군주 직할지 외에는
여러 제후의 분봉지로 나뉘어,
분봉지마다 독립된 왕국에 가까운 세습 권력과 자치를 누렸다.
그런데 진시황은
전국을 일체 군현으로 나누고는
모두 지방관을 파견해 관리하고
일체의 세습을 허용하지 않았다.
이는
세계사에서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중앙집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