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의 글은 저의 페이스북 친구인 김미옥 선생님의 글입니다.
일본의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와 아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의 아들이 발달장애란 건 알고 있었지만
작곡가로 활동하고 있다는 건 처음 알았습니다.
글 마지막에 링크된 유투브에 들어가 음악을 들었는데,
정말 감동이더군요...ㅠㅜ
일독과 일청을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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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흘 동안 책 표지 올리기 릴레이 6
○ 오에 겐자부로, 개인적인 체험
내가 소개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가즈오 이시구로’는 2018년 노벨상 수장 작가이다.
그 전에 그는 멘부커 상을 받았는데 나는 멘부커 상의 문학작품이 영화화된 것을 골라 집중적으로 골라보는 버릇이 있다.
그 중 ‘남아있는 나날’의 안소니 홉킨스 열연에 감동해서 ‘가즈오 이시구로’를 소개하려 했다.
다행히(?) 한선혜 페친의 8번째 책으로 ‘가즈오 이시구로’가 소개되었기에
나는 오늘 ‘오에 겐자부로’를 소개하기로 한다.
오에 겐자부로는 1994년 노벨상 수상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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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줄거리를 아는데 누구의 작품인지 기억을 못할 때가 있다.
읽은 지 수십 년이 지나면 내용만 강렬하게 남는 것인데 이런 경우이다.
-20대의 젊은 남자가 아버지가 되었다.
아내가 출산을 했다는 말을 듣고 병원에 갔는데 아이는 발달장애아였다.
의사는 묘한 방식으로 안락사를 권한다.
우유대신 설탕물을 먹이면 며칠 내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는 것이다.
거절도 확답도 하지 않고 젊은 아버지는 고민을 하는데
결국 우유를 택하는 과정의 단편소설이었다.
이 소설이 오에 겐자부로의 것이었는지 다른 소설가였는지 지금도 아리송하다.
20년이 지났고 문체가 아닌 줄거리로 기억된다면 다른 소설가도 쓸 수 있는 소재이다.
장애아의 출산으로 고민하는 부모들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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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설, 개인적인 체험
오에 겐자부로(Oe Kenzaburo)는 1935년생이다.
<기묘한 일거리>로 작가로 데뷔했고 23세에 <사육>으로 일본 최고 권위의 아쿠타가와 상을 최연소 수상했다. 그리고 1960년 결혼을 했다.
여기까지는 젊고 재능 있는 작가가 밟는 순탄한 길이었다.
그러다 1964년 그는 아들을 얻었다.
그가 막 소설가로서 발 돋음을 할 무렵 태어난 아이는 장애아였다.
살아도 불행하고 죽어도 불행한 끝닿을 데 없는 절망 앞에 방황하는 젊은 아버지의 자전적
이야기가 <개인적인 체험>이다.
이 소설에서 ‘버드’는 27세의 청년이다.
‘버드’는 어릴 때의 별명처럼 미성숙하고 불안한 청춘이다.
그는 아프리카 지도를 사들이며 아프리카 모험기를 쓰는 게 꿈이다.
이른 결혼을 하고 알코올에 빠져 살며 다니던 대학원마저 중퇴하자
보다 못한 장인이 학원 강사로 취직을 시켜 겨우 밥은 먹고 산다.
이 불안한 청춘에게 돌발적인 일이 발생했다.
아내가 뇌헤르니아라는 장애를 가진 아이를 출산한 것이다.
뇌가 밖으로 빠져나온 신생아는 의료진에게도 생명으로 취급받지 못한다.
의사는 이 아이가 수술을 해도 고통조차 느끼지 못하는 식물인간으로 살 것이며
인간이 아닌, 단지 ‘살아 꿈틀거리는’ 세포의 집합 같은 뉘앙스의 언급을 한다.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아이는 머리에 피 묻은 붕대를 감고 있다.
그는 이 기괴한 아이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린다.
‘버드’는 이 슬픈 소식을 알리러 장인에게 가지만 장인 또한 장애아에 대해서
살아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듯 조롱 섞인 농담을 한다.
차라리 죽는 게 나은 ‘그것’ 인 것이다.
그는 대학시절의 여자 친구 히미코에게 찾아간다.
히미코는 남편이 자살한 이후 밤거리를 방황하는 또 하나의 불안한 청춘이다.
술을 마시며 옛 이야기를 하지만 그들에게는 건널 수 없는 간극이 있고 공통분모의 불안한 영혼을 갖고 있다.
‘버드’는 다음 날 직장인 학원에서 숙취로 인한 구토를 하고 쫓겨난다.
그는 병원에 가서 아이의 생사를 확인하는데 아이는 살아있다.
심지어 빈사상태에 빠져 있어야 할 아이가 자라고 있다.
그는 의사에게 아이를 죽게 하는 방법을 돌려서 말하지만 의사는 냉정하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죽일 수 없다는 거다.
장모는 ‘그것’을 빨리 처리하라고 그에게 독촉한다.
아이의 쇠약사를 바라지만 누구도 직접 처리하고 싶지 않다.
그는 의사가 수술을 권유하던 날 아이를 병원에서 데리고 나온다.
옛 연인 히미코의 아는 낙태의사에게 아이의 처리를 부탁할 생각이다.
히미코가 아프리카로 같이 떠나자고 말하지만 ‘버드’는 거절한다.
그는 친구의 술집을 찾아가 도망치는 것을 그만 두고 아이를 수술시키겠다고 말한다.
‘괴물아이에게서 도망치는 대신 정면으로 맞서는 방법은 내 손으로 목을 조르거나 그 아이를 키우는 방법 밖에 없어. 그걸 알지만 용기가 없었던 거야’
‘버드’는 ‘처리’하려던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 수술을 시키고
뇌외과 교수에게 장래희망을 이야기한다.
교수는 달라진 ‘버드’에게 이제 그 별명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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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에는 여러 복선들이 깔려있다.
그러나 핵심을 위해서 생략한다.
이 소설의 가장 기괴함은 장애아가 아니라
제 손에 피를 묻히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다.
장애아로 태어 난 아이의 목숨은 부모가 결정하도록 종용하면서
어서 끝내라고 구경꾼의 자세를 취한다.
심지어 장인장모로 거론되는 친인척들마저 합류하고 있다.
부모 또한 결정을 의사에게 미루려 든다.
버드는 혼자 이렇게 중얼거린다.
‘나는 어떻게 해서든지 아기 괴물로부터 도망쳐야 한다. 그렇지 않았다간
아아, 아프리카 나의 여행은 어찌 되는 것일까’
뇌가 흘러나온 아기와의 조우는 세상에 태어 나 처음 맛보는 공포이다.
젊은 아버지는 자신의 꿈이 이뤄지지 않을 거라는 불안에 떤다.
이 소설을 쓴 오에 겐자부로는 장애아인 아들이 태어났을 때를 이렇게 회고했다.
‘ 죽이고 싶지는 않았지만, 단지 자연사하기를 바라기는 했어요.’
오에 겐자부로 또한 장애를 가진 자식의 죽음을 바랬던 것이다.
이 소설은 아이를 살리겠다는 결심을 한 젊은 아버지 ‘버드’가
부모로서 책임감을 가지는 순간 성인이 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자전적 소설의 젊은 아버지는 오에 겐자부로다.
아들 오에 히카리가 태어난 것을 계기로 그는 이 소설을 썼고 국제적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현실참여 작가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의 아들 오에 히카리는 좋은 부모를 만난 경우이다.
새소리나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아들에게서 절대음감을 본 부모는 그를 장애인 작곡가로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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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장애인학교 설립을 반대하는 자리에 나와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는 장애인 부모들을 보았다.
내게 너무 충격적인 장면이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장애인 부모가 눈물로 이해나 동정심을 구하는 세상은 이상한 세상이다.
사회적 구조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면 아무 문제가 없을 상황이었다.
...
https://youtu.be/sed73hdy_n4
덧: 오에 겐자부로의 아들이자 장애인 작곡가인 오에 히카리의 음악을 올린다.
소설의 주인공 아기 괴물이 오에 히카리다.
글 출처 https://www.facebook.com/miogg1/posts/2115684921833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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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19.04.21 22:58
첫댓글 오에 히카리((大江 光) 씨는 이름이 빛(光) 이네요. 겐자부로씨는 아들 덕을 많이 보내요.^^
맞아요. 아들로 인해 그의 삶과 문학에 일대 빛의 개벽이 일어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