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박영산장로 | 서른, 여전히 청춘일까? 여든, 아직 청춘일까? 서른과 여든 사이에는 오십 년의 간격이 있다. 그 오십 년의 간격은 두 세대가 공유하는 긴 시간이다. 그런데 서른, 아직 푸르디푸른 청춘의 시간에 있으면서도 마치 세상을 다 알고, 세상을 다 산 것처럼 지치고 늙어버린 젊은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오히려 여든의 나이에도 독서를 시작하고, 문화센터를 찾아다니면서 다시 세상을 배우고, 다시 자신이 할 일을 찾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눈을 초롱초롱 뜨고 거침없이 길을 간다. 젊음을 다시 사는 노인들, 오늘은 주변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원로장로님을 만나러 길을 나섰다.
충남 아산에 있는 신창감리교회 박영산 원로장로, 그런데 ‘원로’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 물론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하다. 걸음걸이도 불편해 보인다. 하지만 운전대를 잡은 투박한 손이 건강하다. 얼굴에 가득한 미소 때문일까? 얼굴에 틈을 주지 않고 총총 들어가 박힌 주름도 아름답다.
어려운 사람을 돕는 선한 일에는 언제나 앞장을 선다는 박영산 장로, 그가 예수님을 만난 것은 열네 살 중학교 1학년 때이다.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
“열심히 일 밖에 모르시던 아버지가 아프셨는데 약이라는 약은 다 써 보고, 용하다는 의원도 찾아가 보고, 큰무당을 불러 굿도 여러 차례 해 보았지만 아무런 차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교회에 가 보라고 하더군요. 어머니는 교회에 가기 전 쌀을 닥닥 긁어서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굿을 해 보았습니다. 그 굿에도 아버지의 병에 차도가 없다면 온 식구가 모두 교회에 가기로 한 거지요. 밤새워 징을 두드리며 굿을 했지만 아버지 병은 아무 차도가 없었습니다. 다음 날, 우리 가족 모두 교회로 갔지요. 교회에 가니까 정말 좋더군요. 굿하느라 돈 쓸 일도 없고, 약초 구하러 다니느라 다 빠졌던 어머니의 발톱이 새로 나고, 아버지의 병은 차츰 차도를 보이기 시작하고....... 그렇게 믿기 시작한 예수님을 오늘날까지 믿었고, 이젠 두 아들에 이어 손자까지 목회자가 되겠다고 신학대학에 갔습니다.”
서른여덟 살에 장로가 된 그는 일흔 살에 은퇴를 할 때 까지 충직하게 그 소임을 다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고, 그로 인해 장로의 반열에 오른 사람들이 여럿이다. 장로였던 시절, 교회에서는 물론 지방회나 연회에서 열심히 봉사했다. 철도공무원 신분이었을 때도 장로로서 늘 모범을 보였다. 공금은 동전 한 닢도 소중히 여기면서 헌금은 늘 넘치게 했던 박영산 장로, 지금의 신창감리교회는 바로 박영산 장로의 신앙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교회이다.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내 윤영운 권사와 처녀 총각으로 교회학교 봉사를 하고, 또 흙벽돌을 찍어 교회당을 지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20여 년이 지나서 다시 교회를 견축하고 사택을 짓는 동안 박영산 장로에게 가장 우선인 것은 늘 하나님의 일이었다. 여든이 가까운 박영산 장로, 그는 지금도 새벽기도를 빠지는 일이 없다.
박영산 장로, 그는 지금도 일을 한다. 농사를 짓고, 노노케어 팀장을 맡고, 시골 중학교에서 학생 안전지킴이 일을 한다. 박영산 장로에게 노노케어가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이 참 즐겁다.
“노노케어 일을 하는 평균 연령은 75세인데 가정을 방문해서 더 연로한 노인들이 혹 상한 음식은 먹고 있지 않는지, 가전제품은 잘 작동되고 있는지 확인하고, 또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일입니다. 한 사람이 한 달에 30시간 근무하고 나라에서 20만 원을 받는데 시골 노인들에게 큰 수입이지요. 한 사람이 열흘 동안 두 명을 돌보니까 방문 시간은 자유롭게 하지만 한 사람에게 한 번에 90분씩 할애하는 거지요. 팀장을 맡고 있는데 전화비 3만 원이 더 지급되고, 대신 한 달에 한 번 일지를 모아서 대한노인회 시 지회에 제출합니다.
| | | ▲ 마을 노인회에서 복지시설을 방문하여 쌀을 전달하고 있다. (왼쪽 끝이 박영산 장로) | 그런데 어떤 이들은 일지를 제대로 쓰지 못해서 종일 일지 쓰기를 지도할 때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힘들지 않느냐고 하는데 참 재미있습니다. 그 일이라도 하니까 사람을 만나고, 또 팀장을 하니까 사람들이 우리 집에 찾아오고, 또 함께 밥도 먹을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노노케어 회원들에게 밥을 사느라 사실 전화비까지 모두 써야 한다는 박영산 장로, 그는 사람을 만나는 일이 즐겁다고 한다. 그들에게 넌지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것도 참 좋다고 한다. 박영산 장로가 하는 중학교 학생 안전지킴이, 그가 근무하면서 작은 시골 중학교에 흡연하는 학생이 사라졌다.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한 편의 아름다운 풍경이다.
“쉬는 시간에 여기저기 돌아보고 있는데, 저쪽 한 구석에서 연기가 퐁퐁 올라오고 있는 겁니다. 학생들이 쪼그려 앉아서 몰래 담배를 피우고 있었던 거지요. 가까이 다가가서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맛있느냐?’고 다정하게 물었지요. 아이들이 너무 놀라서 담배를 내던지더군요. 아이들에게 놀라지 말라고, 어려서 담배를 피우면 건강에 정말 해롭다고 말했지요. 적발되면 야단치는 대신 다정하게 타일렀더니 어느 날인가부터 아이들이 다가와서 담배 끊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사랑만큼 좋은 가르침은 없어요. 지금은 아예 흡연자가 없습니다.”
학생들이 버스를 못타거나 비가 오는 날은 학생들을 태워다 준다. 또 어떤 학생에게는 매월 5만 원씩 책값을 지원해 주기도 하고, 졸업시즌에는 어려운 학생을 찾아내 30만 원이 넘는 교복도 마련해 준다. 박영산 장로가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 일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결손가정 학생들 집에 김치와 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농사지은 쌀을 배달해 주기도 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선한 일들을 즐겨 하는 박영산 장로, 그가 총무로 있는 사단법인대한노인회 아산시 지회 신창면 분회는 지난 겨울 성탄절에 신창면내 노인 25명에게 난방비 40만 원씩을 지원했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마을 노인회 회장들이 매월 만 원씩 내서 모은 천만 원, 노인들 모두 관광을 갈 수 도 있고, 노인들 모두 맛있는 식사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회장 오세근 어르신과 총무 박영산 장로는 추운 겨울, 난방비가 부족해 추위에 떨고 있는 노인들을 생각했다. 회장들이 모여 천만 원을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의견에 너도나도 난방비 지원 의견에 찬성을 했다. 다함께 따뜻하고, 다함께 행복한 길을 찾는 것이다. 늘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생각해내는 박영산 장로, 그의 선한 생각들이 실천으로 옮겨진 것이다. 박영산 장로는 두 번의 무릎관절 수술을 했다. 의사는 몸을 아끼라고 강권한다. 그러나 그는 몸을 아낄 시간이 없다. 시골은 일손이 부족하고, 그보다 더 연장자들이 농사를 짓고 있기에 틈만 나면 일거리를 찾아서 나선다. 이웃의 농사일을 마치 자신의 일하듯 한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일손이 필요한 곳마다 몸을 아끼지 않고 도움을 주는 박영산 장로, 그의 집엔 늘 사람들로 북적인다.
노인이지만 대접받기보다는 먼저 대접하고자 하는 박영산 장로, 그에게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어머니와 아버지가 먼저 가신 곳,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가 먼저 가 있는 곳, 언젠가 나도 가야 하는 곳이지요. 몸이 많이 아플 때는 아내가 참 많이 그립지만 하나님께서 삶을 허락하시는 그 순간까지 더 부지런히 살아야지요.”
평생 부지런함을 달고 산 박영산 장로, 그를 아는 사람들은 교회를 다니는 사람이든 안 다니는 사람이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그를 칭찬한다. 어떤 사람은 그를 가리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라고 말하고 또 어떤 사람은 ‘그분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양반’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선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박영산 장로, 그의 선한 행실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들려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 25: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