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원도지방 무박2일(24시간) 기차여행 동행기"
| |
■ 정선 5일장
1990년대부터 지역경제의 버팀목이었던 탄광이 잇따라 문을 닫으면서 정선 5일장도 날로 쇠락해 갔다. 상가는 매물을
내놓아도 입주자가 없어 문을 닫는 곳이 점차 늘어났고 인구도 크게 줄어들자 철도청은 정선을 오가는 열차노선
폐쇄를 검토했다.
이때 정선군이 국내 유일의 비둘기호 열차인 정선선을 정선 5일장과 접목시켜 관광 열차로 운행하자는 제안을
철도청에 했다. 철도청도 이를 받아들여 99년 3월 `비둘기호 타고 정선 5일장 가는 관광 열차`를 처음으로 운행했다.
이 열차가 전국적으로 알려지면서 여행사들도 정선 5일장 관광 여행 상품을 잇따라 내놓았다.
뚜렷한 관광 상품이 없는 정선군이 철도와 연계하여 정선5일장을 관광문화 상품으로 개발하면서 이제는 전국의
대표적인 전통 장터로 인기를 끌고 있다. 시골장터에 불과했던 정선 5일장을 관광상품화 한 것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공무원들의 발상 전환이 한몫 했다.
시장을 오가는 전용 관광열차를 운행하고, 조상의 한이 담긴 아리랑 등 정선지역 특유의 테마를 주변 관광지와
연계한 것이 적중했다. 5일장(매월 2, 7, 12, 17, 22, 27일)을 관광상품으로 만드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정선5일장의 크기는 약 4천평 규모, 좌판과 상점이 있는 것까지 합치면 모두 600여개의 점포가 장사를 한다.
이중에 100여개는 상점이고 나머지 500여개는 모두 상점이 없는 길거리 좌판이다.
■ '양반전'과 함께 떠나는 18세기 고전여행
아리랑의 본 고장 정선 아라리촌 굽이치는 국도38호선의 산길을 돌아 정선에 들어서면 초입에 ‘아라리 촌’이 눈에
띈다. 정선읍 애산리 일원 34,721㎡(구,10,503평)부지에 정선의 옛 주거 문화를 재현해 놓은 이곳은 ‘정선아리랑’의
구성진 가락처럼 한갓지다.
입장료가 무료라는 것도 마음에 들지만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 또한 깔끔하고 단정해보였다. 아라리 촌에는 ‘굴피집’,
‘너와집’, ‘저릅집’, ‘돌집’, ‘귀틀집’이라는 생소한 이름의 집들이 옛 주거 형태 저마다의 특징을 간직한 채
자리하고 있다.
아라리촌에는 여러 볼거리가 있는데, 그중 ‘양반전’을 소재로 한 동상들이 재미를 더해준다. 양반전은 조선
영·정조시대의 실학자이자 소설가였던 연암 박지원(朴趾源)의 한문소설로서, 조선후기 경제적 몰락으로 가문이
기울자 양반 신분을 상품으로 팔아야 했던 시대상을 그리고 있다.
양반의 무능과 허식을 해학적으로 풍자 또는 비판하는 이 작품은 양반들이 진취적이고 실용적인 지식인으로
새롭게 변화하기를 기대하는 해학소설이기도 하다. 그 양반전의 배경이 바로 이곳 정선이었다. 옛날 강원도
정선 땅에 한 가난한 양반이 있었는데, 그는 현명하고 정직하며 책 읽기를 즐기고 손님 접대를 잘하며 신임
군수에게도 잘 하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생산능력이 없으므로, 관가에서 쌀을 빌려 먹으며 살아가는 처지였는데 그 빌려 먹은 쌀이 어느덧
1,000여 석이나 되어 갚을 길이 없자 마침내 관찰사의 투옥 명령이 내려졌다. 난처해진 군수가 망설이며
어찌할 바를 모르자 이웃에 살던 지체 낮은 부자가 그 빚을 대신 갚아주고 양반의 신분을 사겠다고 말한다.
두 사람 간에 증인이 된 군수는 양반의 신분을 산 자에게 ‘양반문서’를 만들어 주었는데, 거기에는 양반으로서
지켜야 할 온갖 형식적인 행동절차와 권리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부자는 양반이란 신분이 겉치레일 뿐
구속이 많고 거추장스럽기만 하며, 그 월권이 도둑과 다를 바 없다고 깨닫게 된다. 그 후 양반되기를 포기하고
달아나 다시는 양반 소리를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아라리 촌 내부에는 이 양반전의 줄거리를 알려주는 동상들이 이곳저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옛 정선의 주거들도
그 모습 그대로 사람들의 발길을 기다리고 있다.
△ 동상으로 꾸며 놓은 '양반전' △ 너와집 : 2백년 이상 자란 소나무토막을 쪼갠 널판으로 지붕을 이은
정선지방의 전통 민가가 너와집이다. △ 굴피집 : 참나무껍질인 굴피로 지붕을 덮은 집으로 보온이 잘되고
습기를 효과적으로 차단하기 때문에 겨울철에 매우 춥고 여름철에 비가 많이 오는 기후에 안성맞춤이다.
△ 저릅집 : 대마의 껍질을 벗기고 난 줄기를 짚 대신 이엉으로 이은 집을 일컬으며 겨릅집이라고도 한다.
속이 빈 줄기가 단열재로서의 기능을 하기 때문에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 귀틀집 : 껍질을 벗긴 통나무를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쌓아 올리고 나무 틈새는 진흙으로 메운 집이다.
많은 적설량을 견딜 수 있고 온도 유지가 용이하여 산간지대의 화전민들이 오래 전부터 이용해 왔다.
△ 돌집 : 정선지방의 독특한 가옥 형태로 두께 2cm정도의 돌기와로 지붕을 덮어 올린 집으로 주로
정선지방 산기슭에 매장된 청석을 이용하였다.
이 주거들은 보는 것만이 아니라 직접 이곳에서 전통 주거 문화 숙박 체험이 가능하다. 이외에도 농기구를
다루던 대장간과 통방아 물레방아 등이 전시되어 있다.
■ 화암(畵巖)동굴
화암동굴은 원래 금을 캐던 천포광산(泉浦鑛山)으로 1922년부터 1945년까지 연간 약 29,904 kg의 금을 생산하는
국내 제5위의 광산이었다. 국내 최초로 폐 금광 갱도와 천연 동굴을 연계한 이 동굴은 2,800㎡에 달하는
천연동굴과 관람길이가 1,803m로 총 관람규모는 5개장 41전시관으로 돌아보는데 약 2시간 소요된다.
화암동굴은 옛부터 부(富)의 상징으로 표현되는 "금(金)"과 동굴생성물이 잘 보존되어 있는 천연동굴이 조화를
이루는 "금(金)과 대자연의 만남"을 테마로, 당시의 채광작업을 하던 장비와 시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실제의 금광맥을 육안으로 볼 수 있으며 금이 생산되어 인간생활에 쓰이기까지의 전 과정과 "금"에 관한
모든 것을 알 수 있도록 실물과 당시의 자료, 영상물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사람의 형상과 비슷하여 친근감을 주고 '희망과 행운'을 주는 이야기 속의 도깨비를 캐릭터로 형상화하여
남,녀,노,소 모두 재미있게 볼 수 있도록 다양한 ZONE이 연출되어 있다. 또한 넓은 공간에 유석폭포, 동굴산호,
동양최대의 황종유벽, 대석순과 대석주를 비롯한 성모마리아상, 부처상 등이 형성되어 있으며 태고의 동굴
생성물이 잘 보존되어 아직까지 성장을 멈추지 않고 있는 동굴로서 금과 대자연, 동화속의 도깨비가 함께
어우러지는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국내최초의 테마동굴이다.
화암동굴은 규모가 큰 만큼 '역사의장', '금맥따라365', '동화의 나라', '금의세계', '천연동굴'등 5개의
다양한 테마동굴로 이루어져 있다.
▷ 역사의 장 : 천포광산(泉浦鑛山) 개발 당시의 모습을 재현, 금광맥과 채굴적(광산내 시설, 흔적 등),
채광작업에 쓰이던 장비 등을 볼 수 있으며, 특히, 100여m에 달하는 수직갱구에 당시에 사용하던 동바리,
사다리 등이 그대로 남아 있어 금광 채광 과정의 애환과 어려움을 엿볼 수 있다. 또 노다지 궁전(자연동굴)의
천장에는 이 동굴의 수호신인 호랑이 상과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채광 갱도를 볼 수 있다.
▷ 금맥따라 365 : 이 동굴에는 18~45도에 이르는 급경사 수직 동굴로 고도 차이는 90m, 길이 200m에 이르며,
급경사와 만만함을 두루 경비하고 있어 공포감과 환희 성취감등 인생 여정을 느낄 수 있으며, 동굴 이름처럼
365개의 계단이 있으며 , 공룡상, 거북이상등 동굴의 신비를 만끽 할 수 있다.
▷ 동화의 나라 : 화암동굴의 캐릭터인 금깨비. 은깨비를 통해 금광개발의 과정과 금의 가치 등을 동화적으로
연출해 놓아 어린이들이 금이 만들어 지기까지의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표현하였다.
▷ 금의세계 : '금의 세계'에서는 18.5Kg의 순금과, 금의 종류, 채굴 및 제조과정, 금과 관련된 역사 등을 실물과
영상물을 통해 금에 대한 모든 것을 이해 할 수 있도록 하였다.
▷ 천연동굴 : 마지막 테마동굴인 '천연동굴'에는 황금을 연상케 하는 28m 규모의 유석폭포와, 높이 8m,
둘레 5m 규모의 대형 석순과 석주 2개로 이루어져 있어 동양 최대를 자랑하고 있고, 커튼형 종류석, 동굴산호,
곡석 등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지금도 동굴 내부에서 자라고 있는 석순, 석화 등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으며 금광개발의 흔적을 살피고 금에 대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화암동굴은 누구나 즐겨 찾는
관광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 01.정선5일장 관광 홍보 국악인 축하공연
▼ 02. 정선5일장에는 모든 상품이 우리 신토불이 제품이다. 판매원도 신토불이증
▼ 03. 가는날이 장날이라... 17일 정선장날이라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 04. 곤드레비빔밥을 먹은 관광객 1천여명이 정선5일장 장터를 찾았다.
▼ 05. 없는것 빼고는 모두 다 있 다는 정선5일장 풍경
▼ 06. 정선5일장 최고의 인기산채 곤드레나물이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 07. 곤드레나물 생채 1kg에 5천원이란다.
▼ 08. 소생도 2kg을 사와서 나물해서 먹엇는데 정말 맛 좋았답니다.
▼ 09. 먹거리골목, 콧등치기, 곤드레나물밥 등등... 처음 맛보는 것들이었다.
▼ 10. 말만 잘하면 덤으로 수북히 얹어주기도 하는 우리들의 정선5일장
▼ 11. 입장료가 무료라는 정선아라리촌
▼ 12. 아라리촌 전경. 번호는 흥겨운 고전 한마당 양반전 소개
▼ 13. 무능한 양반의 출납부를 보고 놀라는 관찰사, 1번
▼ 14. 집앞 마당에 퍼질러 앉아 우는 양반을 한탄하는 양반처, 2번
▼ 15. 양반이 되고자하는 부자에게 양반을 팔다. 3번
▼ 16. 상민이 양반이 되어 고을군수에게 절하는 양반, 5번
▼ 17. 양반이란 이런 것이니라. 느릿느릿 걷는 양반, 7번
▼ 18. 양반을 팔아먹은 양반이 상민이 되어 밭을 가는 양반, 8번
▼ 19. 상민의 상투를 잡고 수염을 뽑는 양반, 9번
▼ 20. 양반을 거부하는 상민부자.허울뿐인 양반 싫소이다. 10번
▼ 21. 양반전은 조선 영,정조시대 연암 박지원의 한문소설이다.
▼ 22. 통방아는 ‘물방아’ 또는 ‘벼락방아’라고도 하며, 커다란 통나무를 이용하여 앞쪽에는 공이를 박고, 뒤쪽은 물이 담 길 수 있도록 구이통을 판다. 귀대를 통해 구이통 속으로 흘러 들어온 물에 의해 공이가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확에 있는 곡식을 찧게 된다.
▼ 23. 귀틀집, 목재가 풍부한 산간지대의 주민들이 짓고 살던 원시주거의 한 가지로
안방과 윗방, 정지, 헛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 24. 껍질을 벗긴 통나무를 우물정(井)자 모양으로 쌓아 올려 벽체를 삼으며,나무 틈새는 진흙으로 메워 짓는다. 많은 적설량에도 견딜 수 있고
온도유지가 용이할 뿐 아니라 간편하게 지을 수 있어 산간지대의 화전민들이 오래 전부터 이용하여 왔다.
▼ 25. 육모정, 정선읍내 전체를 바라 볼 수 있고 특히 조양강과 계절따라 변하는 조양산의 절경을 한 눈에 감상 할 수 있다.
▼ 26. 관광객들이 그네타기를 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27. 요즘은 사진작가들 중에 여성들도 많이 보인다.
▼ 28. 화암동굴은 눈으로 즐기는 곳이 아니라, 페광을 이용한 곳이다.
▼ 29. 정선향토박물관 앞의 조형물, 지게춤물박장단놀이를 표현한 것.
▼ 30. 화암동굴 출구 앞에 있는 도깨비 조형물
▼ 31. 화암동굴안 곳곳에는 천포광산 당시의 모습을 재현한 역사의 장을 만들어 놓았다.
▼ 32. 금광채굴당시의 모습. 나무사다리를 타고 다닌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다.
▼ 33. 자연동굴 안에 있는 박쥐석고상
▼ 34. 자연동굴안, 동양최대의 유석폭포 종유석이다.
▼ 35. 대형석순
▼ 36. 기차여행팀이 타고 온 10여대의 대형 관광버스들
▼ 37. 화암동굴 주자찾 앞에는 천포금광촌 휴식의 장이 만들어져 있다.
▼ 38. 천포관광 당시의 광부들이 사용한 우물을 만들었다.
▼ 39. 광부들에게 판매한 당시의 물건들. 구판장
▼ 40. 광부들이 살아가던 금광촌의 대장간
▼ 41. 광부들이 고된 일을 마치고 막걸리로 목을 축이던 주막집 주모
▼ 42. 광부들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노름을 하던 합숙소
▼ 43. 천포금광촌 휴식의 장 화단에는 보기더문 백모란/백목단이 피어 있었다.
▼ 44. 모란/목단(牧丹)은 붉은 꽃이 피기에 붉을단(丹)을 붙였는데 그럼 이 꽃을 뭐라고 불러야 하나 ??
▼ 45. 한문 이름 없이 한글로 백모란이라 부를까 보다...허~
▼ 46. 흰색꽃이 피도록 만든 교배종인가 ???
▼ 47. 어라~~?? 연분홍 목단도 있네...
▼ 48. 아무려면 어때.. 24시간짜리 기차여행 멋지게 자알 하였습니다...
Namgang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