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고자료14]
노아의 예언 및 가나안 진멸에 담긴 하나님의 계획, 그리고 삼손의 수수께끼
1) 노아의 예언에 숨은 하나님의 계획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창12:3)
* 노아의 예언
대홍수 이후 노아는 포도 농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이마 농부인 노아가 홍수로 황폐해진 그 비탈진 곳에 다시 포도 농사를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노아는 그만 술에 취해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아비의 실수를 자신의 저주로 삼은 함의 교만하고 몰염치한 행동과 자신들의 축복으로 삼은 셈과 야벳의 경건하고 공손한 행동이 잘 대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노아의 예언은 ‘가나안에 대한 저주, 셈의 영적 축복, 야벳의 물질적 번영’이 나타나 있습니다. 족장 시대에 있어서 족장들의 자녀에 대한 복과 화의 노래는 효력을 가졌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계시의 한 방편으로서 족장들의 입술을 주장하셨기 때문입니다. 노아의 '실언'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 가나안은 그(야벳)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창9:25,26,27)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창9:26상)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에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창9:27상)
아마도 함의 막내아들인 '가나안'이 이번 사건에 깊숙이 관여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가나안이 노아의 소치를 처음 보고 그 사실을 아비 함에게 고했을 것입니다. 또 가나안도 이미 그 아버지 함의 불경건함과 죄악을 답습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노아는 예언의 은사를 통해 장차 가나안 족속이 징계를 받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예언했던 것입니다.
노아의 예언 중 가나안에 관한 내용은 “가나안이 ‘종들의 종’ 즉 ‘가장 비참한 종’이 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결코 근현대에 있었던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주장을 대변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인종차별주의자들은 노아의 예언을 아주 편협하고 왜곡되게 해석하여 '흑인'을 노예로 부리는 것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잘못된 신학, 잘못된 교리로 유색인종들을 철저하게 유린하고 탄압했던 것입니다.
‘가나안’에 대한 노아의 예언은 가나안 족속을 대변되는 함 족속이 '섬기는 자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을 말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또 마땅히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는지도 모릅니다. 노아의 예언을 자세히 보면 ‘셈의 장막에 야벳도, 가나안도 거하게 될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셈 족속을 복의 근원 삼아 모든 족속(야벳, 함)에게 ‘복’을 주시려 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결코 '셈의 후손'만 편애하시려는 의도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문자적으로 노아의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족속은 셈족인 이스라엘에 의해 비참한 종의 형태로 전락되었고(수9:23), 나머지는 솔로몬 시대에 완전 정복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노아의 예언을 통해’ 셈족도, 야벳족속도, 가나안 족속(함 족속)도 결코 버리지 않으리라는 점을 분명히 해두셨던 것입니다.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밝히셨던 것입니다. 또 전 인류를 향한 구속의 시나리오를 천명하신 것으로 보는 게 더 타당할 것입니다. 가나안 족속이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족속이나 다른 민족에 의해서 정복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셈족이나 야벳 족속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범죄하고 패역이 극에 달하였을 때에는 어느 민족이든지 멸망당하고 노예가 되었습니다. 비단 가나안 족속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경우만 보아도 이 점은 더욱 분명해 집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께 범죄하고 불순종했을 때 어김없이 이민족에 의해서 침략당하고 노예로 살았으며 심지어 바벨론에까지 포로로 잡혀가 70년 이상을 노예로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예언을 특정 인종에 대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창9:27)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고자 하셨습니다. 처음부터 셈, 야벳, 함 족속 모두에게 복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던 것입니다. 모든 인류를 구속하시고자 계획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원대한 계획을 이루어 나가려고 했을까요? 그 절차와 방법이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 내용을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되, 셈의 후손을 ‘복의 근원’ 삼아 점진적으로 ‘가나안’(함)과 ‘야벳’족속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셈 족속’을 복의 근원을 삼으시되, 결코 ‘가나안’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노아의 예언(창 9장) 뒤로 이어지는 내용을 살펴보면 이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노아의 예언(창 9장) 뒤 10장에서는 야벳 족속(10:2-5), 함 족속(10:6-14)과 가나안 족속(10:15-20), 셈 족속(10:21-31) 순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11장 바벨탑 사건 이후 다시 셈의 후손이 나열되고 있습니다(창11:10~26). 왜 이토록 셈의 족보가 중복되게 나열되고 있습니까? 다음을 보십시오.
* 너는 복이 될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12:2-3)
하나님께서는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려고, 모든 족속을 구원하시려고 셈의 후손을 ‘복’ 즉, ‘복의 근원’ 삼으신 것입니다. 셈의 후손을 ‘복의 통로’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창세기 10장, 11장에 나오는 ‘셈의 가계’는 ‘복의 근원의 큰 물줄기’이었던 것입니다. 드디어 12장에서 하나님은 셈의 후손인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다시금 자신의 원대한 구원계획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셈족인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 ‘복의 시작점’ ‘복의 꼭짓점’ 삼으셔서 모든 족속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아브라함 한 개인에게만 있지 않았습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관심은 ‘모든 족속’이었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아브라함)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창12:3하)
“예수께서 나아와 말씀하여 이르시되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를 삼아.....”(마28:18,19상)
하나님께서는 ‘복의 근원’ 삼으시기 위해 아브라함에게 본토(고향),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본토를 바꿔주시려 함입니다. 아니 원래의 본토를 되찾아 주시려 함입니다. 갈대아 우르는 우상이 창궐하고 패역한 곳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눈을 돌려 '하늘 본향'으로 인도코자 하셨습니다. '하늘 도성'으로 대변되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고자 하셨습니다. 믿음의 순례 길을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주 극단적이고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자신의 원대한 구속의 역사를 이루고자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셈족 가운데서 불러내어 이른바 ‘가장 비참한 종’ 가나안 족속에게로 인도하여 가신 것입니다. 다음을 보십시오.
* 저주를 축복으로 바꿔주시려 함
하나님께서는 왜 “내가 네게 보여줄 땅(가나안)으로 가라”고 하셨을까요? 궁금하지 않으세요? 왜 하필이면 '가나안 땅'을 택하신 것일까요? 창세기 9장 노아의 예언을 떠올린다면 가장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일 것입니다.
“아브람이 그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창12:5,6)
흥미로운 점은 노아의 예언에서 ‘가장 비참한 종’으로 언급되었던 그 ‘가나안’, 그곳으로 아브람을 데려가시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도착한 이후 이 가나안 땅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늘 ‘약속과 축복의 땅’으로 상징되었습니다. 가나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아브라함과 그 후손의 영원한 기업으로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저주의 땅이 이제 축복과 약속의 땅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장 비참한 저주를 받았던 그 가나안을 향해 나아가라는 명령을 받았고 순종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그러셨을까요?
이는 하나님께서 결코 '가나안'을 버리지 않으셨음을 알게 해주는 대목이 아닐까요? 가나안을 회복시키려 하시는 뜻이 아닐까요? 가장 저주받았던 땅 ‘가나안’이 이제 ‘약속의 땅’ ‘믿음의 본토’가 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죄인 중에 괴수인 바울을 들어서 크게 사용하셨던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은혜주시기를 원합니다. 그 하나님께서 많은 곳 중에서 하필이면 ‘가나안 땅’을 지목하신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창세기 9장 ‘노아의 예언’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가나안을 택하신 것은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겠다’는 가장 확실한 결단일 것입니다. 또 노아의 예언이 ‘가나안이 하나님의 구원계획에서 제외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증거이기도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니느라”(딤전2;4)
* 아브라함을 '복의 근원'으로 삼으신 이유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합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2)
아브라함을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의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는 데에도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만 편애하시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궁극적으로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고자 함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이유 있는 축복’이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통해서 ‘가나안 땅’부터 시작해서 땅의 모든 족속에게 복을 주시고자 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또한 아브라함처럼 ‘복의 근원’ 삼으시기 원합니다. 여러분을 축복의 통로로 삼으시기 원합니다. 물론 우리에 대한 주변의 반응(적대적, 호의적)은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망치 말고 끝까지 ‘복의 근원’의 사명을 감당하라고 하십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만 기도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주변 사람들을 향해 관심을 갖기 시작하십시오. 그들에게 우리 자신이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2) 가나안 진멸에 담긴 하나님의 계획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의 종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 땅을 다 당신들에게 주고 이 땅의 모든 주민을 당신들 앞에서 멸하라 하신 것이 당신의 종들에게 들리므로 당신들로 말미암아 우리의 목숨을 잃을까 심히 두려워하여 이같이 하였나이다.”(수9:24)
기브온 주민들의 말(수9:24)처럼, 하나님은 정말 가나안 주민 모두를 멸하라 하셨습니까? 다음의 구절을 볼 때 사실로 보입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사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들으시고 네 앞에서 여러 민족 헷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 곧 너보다 많고 힘이 센 일곱 족속을 쫓아내실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게 넘겨 네게 치게 하시리니 그 때에 너는 그들을 진멸할 것이요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신7:1,2) /“네게 넘겨주신 모든 민족을 네 눈이 긍휼히 여기지 말고 진멸하며 그들의 신을 섬기지 말라...”(신7:16상)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신20:16,17)
이처럼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에 대해 ‘완전한 배척과 진멸’이라는 무자비할 정도의 엄명을 내리셨는데 이는 첫째, 소돔과 고모라처럼 그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즉 가나안 족속에 대한 징벌 계획이 최초 아브라함에게 계시된(창15:16) 이후 거의 700여 년 동안이나 계속 더해진,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추악한 그들의 범죄 때문 말입니다.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창15:1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신 후에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내 공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차지하게 하셨다 하지 말라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니라.”(신9:4)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그들의 죄에 대한 단호한 조치와 철저한 징벌을 명령한 것일 뿐, 일반적인 동정이나 자비심까지 금한 것이 결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둘째, 여호와 신앙의 순수함을 간직하기 위함입니다. 죄악 된 환경으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완전히 분리시켜 그들로 하여금 가나안 족속의 타락의 길에 빠져들지 않고 영원토록 여호와 신앙의 순수함을 간직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 하게 할까 함이니라.”(신20:18) 여기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들이 포함되어 있습니까? ‘민족적 비동맹 비타협’과 ‘종교적 불관용’입니다. “...그들과 어떤 언약도 하지 말 것이요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 것이며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신7:2~4) /“오직 너희가 그들에게 행할 것은 이러하니 그들의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드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신7:5)
왜 입니까? 우상 숭배자들과의 동맹이나 타협은 우상 숭배로 빠져들 올무가 되기 때문이며, 가나안 땅의 모든 우상 종교를 과감히 척결하지 못하면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만을 그 땅위에 드러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다음의 구절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곧 헷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신20:16~17) 이 말씀대로 라면 위에 열거된 족속에 속한 자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모두 도륙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여리고 기생 라합의 경우나 기브온 거민들의 경우 등에서 볼 수 있듯 ‘완전한 진멸’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여호수아가 기생 라합과 그의 아버지의 가족과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살렸으므로 그가 오늘까지 이스라엘 중에 거주하였으니 이는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정탐하려고 보낸 사자들을 숨겼음이니라.”(수6:25) /“그날에 여호수아가 그들(기브온 거민들)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회중을 위하여 여호와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로 삼았더니 오늘까지 이르니라.”(수9:27)
사사기 1장 19절~36절과 역대하 2장 17~18절 역시 가나안 족속이 완전히 진멸되지 않았음을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계셨으므로 그가 산지 주민을 쫓아내었으나 골짜기의 주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베냐민 자손은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여부스 족속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므로 여부스 족속이 베냐민 자손과 함께 오늘까지 예루살렘에 거주하니라...므낫세가 벧스안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다아낙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돌과 그에 딸린 마을들의 주민과 이블르암과 그에 딸린 주민들과 므깃도와 그에 딸린 마을 주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가나안 족속이 결심하고 그 땅에 거주하였더니...”(삿1:19~36) /“전에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 땅에 사는 이방 사람들을 조사하였더니 이제 솔로몬이 다시 조사하매 모두 십오만 삼천 육백 명이라.”(대하2:17) 본문의 15만3천6백 명은 성전 건축을 위한 역군 징발이 그 목적이었으므로 (유아와 여자를 제외한) 20세 이상의 성인남자의 수로 유아와 여자를 모두 합하면 40~50만 명은 족히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고라의 아들들의 경우를 통해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신24:16)의 원칙을 확인할 수 있는 바 (몇몇 경우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 ‘진멸’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사료됩니다.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들의 집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들의 재물을 삼키매 그들과 그의 모든 재물이 산 채로 스올에 빠지며 땅이 그 외에 덮이니 그들이 회중 가운데서 망하니라.”(민16:32,33) /“고라의 아들들은 죽지 아니하였더라.”(민26:11)
결국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가나안 족속의 진멸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죄에 대한 단호한 조치와 철저한 징벌을 명령한 것일 뿐, 일반적인 동정이나 자비심까지 금한 것이 결코 아니며, 라합이나 기브온 거민의 경우처럼 주께 피하는 사람은 오히려 누구든지 주의 품으로 들어올 수 있었음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3) 삼손의 수수께끼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이제 내가 너희에게 수수께끼를 내리니 잔치하는 이레 동안에 너희가 그것을 풀어 내게 말하면 내가 베옷 삼십 벌과 겉옷 삼십 벌을 너희에게 주리라...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삿14: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