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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KOB산악회
 
 
 
카페 게시글
회원산행기 스크랩 봉화 청량산
탄곡 추천 0 조회 50 14.03.20 22:2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4년 3월 19일(수)

늘푸른산악회원 24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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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 서산 황금산, 해남 달마산, 남해 금산, 봉화 청량산을 우선 가기로 하고 카렌다에 표시를 해 놓았다.

황금산과 달마산은 계획대로 되었으나 남해 금산은 이틀 전에 신청하려고 카페에 들어가보니 이미 48명이 신청을 하여 갈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일주일 전에 청량산을 가겠다고 신청했는데 이번에는 가겠다는 인원이 모자라 자칫 산행이 취소될지도 모르겠거니 했는데 가까스로 20명이상이 되어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유명한 산을 아직 올라보지 못한 곳이 여러군데 있는데 기회가 주어져도 다른 사정으로 못가게 되는 경우가 많아 유명한 청량산도 이제야 가게 된 것이다.

19일 아침 7시 40분에 통과하는 차를 타기 위해 에니메이션고등학교 앞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는데 건너편에 관광버스가 서있는게 보인다.

7시 35분이므로 다른 버스려니 하면서 녹색신호를 받고 건너는데 회장이 내 앞으로 달려오면서 도로 건너 가라고 한다. 회장과 같이 건너와 유턴해서 돌아오는 버스로 7시 43분에 에니메이션고등학교 앞을 출발 중간에 2번 쉼을 하고 11시 46분에 하청량 산행들머리에 도착, 준비하고, 기념촬영한 뒤 11시 55분에 산행이 시작되었다. 

 

개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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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계획 : 하청량 - 청량산(장인봉) - 하늘다리 - 연적봉 - 자소봉 - 경일봉 - 청량사 - 입석

실제산행 : 하청량 - 청량산(장인봉) - 하늘다리 - 연적봉 - 자소봉 - 김생굴 - 청량사 - 입석

 

하청량 들머리

 

 

시멘트포장도로끝

산행을 시작하자마자 시멘트 포장도로에 된비알이다.

여러군데의 산에서 깔닥고개를 올라보았지만 이렇게 1.5km나 되는 긴 깔닥고개는 이곳에서 맛보며 지겹다. 

이곳에서부터는 다행히 시멘트포장도로를 벗어나 조금은 나은 것 같다.

산악회에서는 오후 5시까지 하산 완료하라고 했다. 10km가 채 안되는 거리이므로 쉽게 생각하고 오르는데 이 깔닥고개를 오르면서 은근히 걱정이 된다.?


 

 

 

산간마을

이런 비탈에 두 집으로 보이는 사람사는 집이 있다. 물도 있고 밭도 보인다.

올라가면서 보는 사람마다 이런 된비알에서 어떻게 살아가는지 큰 걱정들을 한다.


 

안부

이곳까지 1.5km의 된비알을 오르고 왼쪽 약 300m 지점에 이산의 최고봉인 장인봉을 올랐다가 다시 이곳으로 와서 오른쪽으로 향한다.

늘푸른산악회에서는 금년에 100대 명산을 모두 오르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100대 명산은 산림청에서 선정한 것도 있고 '한국의산하'에서 선정한 것도 있는데 선정 기준은 산악인들이 접속이 많은 것을 기준으로 주로 대도시 주변의 산이 많이 차지하고 있다.

1.지리산, 2.설악산, 3.북한산, 4.덕유산, 5.가야산, 6.대둔산, 7.소백산, 8.계룡산, 9.관악산, 10.속리산...27.한라산 이렇게 되어 있고, 오늘 우리가 오르는 청량산은 30위에 랭크되어 있다. ?

 

 

 

 

청량산(장인봉 870m) 정상

산세는 크지 않으나 연이어 솟는 바위 봉우리와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꼽힐 만큼 산세가 수려하고, 도립공원으로 지정(1982년)된 점 등을 고려하여 산림청에서 100대 명산으로 선정하였다.
원효대사가 창건한 유리보전, 신라시대의 외청량사, 최치원의 유적지인 고운대와 독서당,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은신한 오마대(五馬臺)와 청량산성, 김생이 글씨를 공부하던 김생굴, 퇴계 이황이 수도하며 성리학을 집대성한 오산당(청량정사) 등 역사적 유적지로도 유명한 산이다.   

산 위의 밭

논이 적은 경북지방은 산 정상부근에도 개간을 하여 농사를 짓고 있다.

평야지대에서만 살아본 사람들에게는 이것도 신기한 볼거리이다.

 

 

청량산은 옛 기록에서 이르되 6.6봉, 8대(臺), 3굴을 가진 바위 산이다. 이 산의 중심에 앉은 청량사에서 두루 바라뵈는 9개 봉우리와 그 바깥쪽 3개 봉우리 합해 12봉을 사람들은 청량산 6.6봉이라 불러왔는데, 이는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퇴계 이황의 시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기암봉들이 모여서 미로와 같은 산릉과 계곡을 이룬 한편 입구만 틀어막으면 안심이었을 이 청량산은 피신처로도 적격이었다.

이 청량산으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들어온 적이 있다. 공민왕은 청량사 법당 유리보전의 현판 글씨를 자신이 청량산을 찾았던 명확한 흔적으로 남겼다.
물론 그 누구보다 이 산을 먼저 찾아들었던 이는 스님네들이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연대사란 이름의 절을 지금의 청량사 자리에 세웠고, 그후 무려 27개나 되는 사암이 이 청량산 안에 들어 앉았다고 한다.
청량산과의 첫 대면에서는 차마 그 말을 믿기 어렵다. 청량사와 응진전 두 사암이 자리잡은 것만도 용하다 싶을 정도로, 사방에 보이는 것은 몽땅 암봉이며 하나같이 수직으로 깎아질렀다. 거기에 절이 앉기는커녕 사람이 걸어 오를 틈새나마 있을까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층암절벽들 사이로는 교묘하게 길이 나 있으며, 여기저기에 커다란 암자 정도는 너끈히 앉힐 만한 공간이 널려 있다.
<청량산고증>에 따르면 청량산의 원래 이름은 수산(水山)이었으나 청량사 주위가 특히 절승이므로 청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천지(榮川誌)>에는 낙타 타 자를 써서 타자산(駝子山)이라 기록되었다고 하니, 이는 곧 청량산봉들이 낙타의 혹과 흡사한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장인봉에 올랐다가 내려와 오른쪽으로

 

접근금지

바위로 이루어진 산으로 낭떠러지에는 난간을 설치하여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으나 그 밖으로 나가면 위험하다.

산 중간중간에 이런 추락위험 표지판을 많이 설치해 놓았다.

 

하늘다리

구름다리가 설치되어 있는 산이 대둔산, 월출산 등 전국에 여러군데 있다. 거의 구름다리라고 부르는데 이 청량산에서는 '하늘다리'라고 부르고 있어 구름다리보다 한 수 위인것 같다.


 

 

 

 

 

 

 

 

앞에 보이는 탁필봉과 자소봉

연적봉 오르는 길

 

 

 

연적봉

 

탁필봉과 자소봉

 

탁필봉

붓끝같이 뾰족한 바위 봉우리로 올라갈 수가 없다.

 

                              자소봉

 

 

자소봉(855m)

한글로만 표기가 되어 그 뜻을 알 수가 없다.

일명 보살봉으로도 불리우는걸 보면 이 봉우리도 불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듯하다.

계속해서 경일봉까지 가보고 싶었으나 출입금지 표시가 되어 있어 이곳에서 하산길로 접어든다. ?

 

 

 

 

 

 

 

경일봉 폐쇄

자소봉을 지나 872봉, 841봉, 경일봉까지 가는 것으로 계획을 세우고 자소봉에서 내려와 더 가려는데 출입금지 표지가 되어 있다.

그렇게 다 돌고 내려와도 오후 4시 이전에 내려올 수 있을텐데 출입금지 표지를 보고도 갈 수가 없어 청량사를 행해 내려간다.

나는 스마트폰 밧데리 소모가 다 되어 갈아끼우고 내려오게 되니 맨 뒤로 처지게 되어 맨뒤팀 3사람이 같이 내려간다.

 

 

 

 

 

김생굴 가는길

앞에간 일행들은 직진하여 청량사로 내려간 것 같다.

뒤에 처진 우리 3명에게 내가 300m만 가면 만나게 되는 '김생굴'을 가보자고 했더니 망설인다.

앞에간 사람들도 청량사를 보고나면 곧바로 날머리인 입석으로 가게되니 시간이 많다고 하였더니 따라온다.


 

김생굴(金生窟)

경일봉 중층에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통일신라시대의 서예가 김생(711~?)이 글씨를 연마하던 장소인데, 상하가 절벽으로 되어있고 그 중앙으로 수십명을 수용할 만한 반월형의 자연암굴로 형성되어 있다. 

김생은 이 굴 앞에 암자를 짓고 10여 년간 글씨 공부를 하여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인 '김생필법(金生筆法)'을 확립하였다. 그는 당시 왕희지체, 구양순체가 유행하던 시기에 청량산의 모습을 본뜬 독특한 서법을 구사함으로써 가장 한국적인 서풍을 이끌어 냈으며, 이로 인해 해동서학의 종조(宗祖)로 여겨져 한국서예사의 한 획을 긋게 된다. 굴 앞으로는 김생암(金生庵) 터가  남아 있으며, 굴 옆으로는 천길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장관을 이루고 있는 김생폭포(金生瀑布)가 위치하고 있다.  


김생과 청량봉녀(淸凉縫女) 설화

김생이 경일봉 아래 바위굴에서 글씨공부에 전념한지 9년 만에 명필이 되었다는 자신감을 갖고 하산하려 하였다. 그때 젊은 여인이 나타나 자신의 길쌈 솜씨와 글씨 공부를 겨루어보자고 제의하였다. 그 처녀는 바로 청량봉녀였다.

김생은 처녀의 제의를 수락하여 굴속에서 불을 끄고 서로의 실력을 발휘하였다. 이윽고 불을 켠 뒤 비교해보니 처녀가 짠 천은 한 올도 흐트러짐 없이 가지런하였는데, 김생의 글씨는 그만큼 고르지 못하였다. 이에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은 김생은 1년을 더 연마하여 10년을 채운 뒤 명필이 되어 세상으로 나갔다고 한다.(한석봉의 일화와 비슷하다.)

 

 

 

청량사

 

 

 

몇번 갈 기회가 있었으나 번번히 좌절되었던 청량산을 이번에야 오르게 되었다.

800m급의 높지 않은 산이나 바위, 그것도 뾰족하고 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이라 그 위용은 큰산 못지 않다.

청량산에는 12봉과 12대가 있다.

12봉 : 장인봉, 외장인봉, 선학봉, 자란봉,자소봉, 탁필봉, 연적봉, 연화봉, 향로봉, 경일봉, 금탑봉,축륙봉, 등 12봉우리

12대 : 어풍대, 밀성대, 풍형대, 학소대, 금가대, 원효대, 반야대, 만월대, 자비대, 청풍대, 송풍대, 의상대 등 12개의 대(臺)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하루에 모두 둘러보기는 어려운 곳인데 3시간만에 중요한 곳은 대강 보게 된 것같아 마음이 가볍다.

나는 오후 2시 30분에 하산 완료하고 하산주로 피로를 풀었다. 후미는 3시 45분에 내려와 그들은 식사도 못한채 4시경 출발하여 나는 6시 50분경 일찍 집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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