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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년 7월 7일, 맥추감사절 주일 낮 예배 설교 +
+ 제 목 : “장자여! 감사하며 사는 만큼 잘 됩니다!”
+ 본 문 : 신명기 16장 9절 - 12절 (구약성경 287쪽)
9 일곱 주를 셀지니 곡식에 낫을 대는 첫 날부터 일곱 주를 세어
10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칠칠절을 지키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복을 주신대로
네 힘을 헤아려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고
11 너와 네 자녀와 노비와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 및 너희 중에 있는
객과 고아와 과부가 함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12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이 규례를 지켜 행할 지니라. 아멘!
서로 축복 / “됩니다. 잘 됩니다. 갈수록 더 잘 됩니다.”
“살겠네. 그래도 살겠네. 아무리 힘들어도 살겠네.”
오늘 맥추감사절 설교로 “감사하며 사는 만큼 잘 됩니다!” 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오늘은 7월 첫째 주일입니다. 한 해의 절반을 보내고 새로운 반을 시작하는 첫째주일입니다.
지나온 한 해의 절반은 물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돌아보면 다 주님의 은혜요 사랑인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또 어떻게 살 것인가? 주님의 은혜로만 승리하며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그런 의미에서 오늘 우리가 지키고 있는 맥추감사절은, 지나온 삶은 물론 한 해의 절반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남은 삶과 2024년 후반기의 반년을 감사로 시작하고, 오직 믿음으로 살아 주님 의지하고,
주님이 주시는 능력으로 잘 되고, 더 잘 되는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며 지키는 주일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미 주신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고, 앞으로 주실 하나님의 축복에 감사하며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면 맥추감사절을 어떻게 지켜야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될까요? 한마디로 감사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잘 믿는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그분은 항상 ‘감사합니다.’ 라는 말이 입에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할아버지의 별명이 ‘감사 할아버지’ 였습니다. 어느 날 감사 할아버지가 고기를 사가지고,
집으로 오다가 돌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때 지나가던 개가 고기를 달랑 물고 달아나 버렸습니다.
할아버지가 고기를 물고 도망가는 개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는 것입니다.
마침 그 곁을 지나가던 동네 젊은이가 말합니다. “할아버지! 무엇이 감사하세요? 돌에 걸려 넘어졌고,
고기도 개에게 빼앗겼는데, 무엇이 감사합니까?” 그때 감사 할아버지는 젊은이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젊은이, 나는 고기는 잃어버렸지만, 내 입맛은 빼앗기지 않고 그대로 있지 않은가? 그래서 감사하네.”
이렇게 어떤 상황에도 감사의 조건을 찾고, 감사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자는 복 있는 사람입니다.
이와는 정반대로 항상 원망과 불평, 그리고 비난하는 일이 습관화된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떤 마을에 따뜻한 온천과 얼음같이 시원한 냉천이, 함께 솟아오르는 신기한 곳이 있었습니다.
여인들은 빨랫감을 가지고와 온천에서 빨래를 삶고, 냉천에서는 헹구어 집으로 가져가곤 했습니다.
그 모습을 본 한 관광객이 안내하던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이 동네 사람들은 찬물과 더운 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어서 참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마을 사람들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많겠죠?”
그러자 안내원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만에요. 이 마을 사람들은 불평불만이 훨씬 더 많습니다.
따뜻한 물과 찬물이 나오는 것은 좋은데, 빨래 비누까지 나오지 않는다고 불평불만을 늘어놓습니다.”
감사할 수 없는 상황에서도 감사하는 사람이 있고, 감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도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내게 주어진 것, 내가 받은 것,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감사하는 사람이 진짜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뇌성마비 찬송시인 송명희 자매는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혼자서는 도무지 거동 할 수 없는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그녀는 비록 건강은 없어도,
가진 지식은 없어도, 공평하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하는 수많은 아름다운 시를 지었습니다.
그 중에 ‘범사에 감사하라’ 는 감사 찬송시가 있습니다.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자여, 범사에 감사하라.
고난 주간에만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예배드리는 자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을 항상 기억하라.
위급할 때만 기도하는 자여, 쉬지 말고 기도하라. 기쁠 때만 기뻐하는 자여, 항상 기뻐하라.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감사생활은 어떻습니까? 감사절에만 감사하는 것은 아닙니까?
성경은 말세가 되면 감사를 잃어버린다고 했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린 삶은 가장 불행한 삶의 모습입니다.
오늘은 지금까지 지켜주시고 축복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드리는 맥추감사절주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노예생활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출애굽합니다.
그리고 모세의 인도를 받아 애굽에서 나와, 홍해를 건너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광야에 도착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시내 산 위로 부르신 후 십계명을 주셨고, 지켜야 할 3대 명절을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유월절은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두 번째, 수장절은 1년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 거두어들인 곡식에 감사하며 지키는 추수감사절입니다.
세 번째, 유월절과 수장절이라는 명절 사이에, 하나님은 맥추절을 감사함으로 지키라고 명하십니다.
맥추절은 밀과 보리농사를 지어 첫 열매를 거둔 후, 감사함으로 드리는 절기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직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 광야에서 맥추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파종하여 풍성한 열매를 수확하게 될 것임을 미리 축복하신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광야생활을 하고 있지만, 반드시 가나안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절을 지키고 있는 지금 우리들도, 당장은 내 손에 아무 것이 없어도, 앞으로 받을,
하나님의 축복을 미리 바라보며, 감사의 예배를 드리게 하기 위해 맥추절을 지키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주시는 맥추감사절의 영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40년 동안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7년 동안의 가나안 정복전쟁을 거쳐서 약속의 땅에 정착하여, 하나님의 명령대로 맥추절을 지킵니다.
그러므로 맥추감사절은 애굽에서의 430년 동안의 노예생활과, 광야에서의 40년, 가나안에서의 7년,
그 모진 고난의 세월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참한 노예생활에서 구원해 주시고, 힘들고 고통스런,
광야생활 동안 인도해 주시고, 보호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말고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지금 살아가고 있는 가나안의 풍족함에 빠져, 과거에 받은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현재의 풍요로움에 빠져 이미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신명기 8장 11절 - 14절 말씀하십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살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많아지고,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우리들이 언제 하나님을 잊어버립니까? 힘들고 어려울 때는 오히려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합니다.
그러나 신명기 말씀처럼 먹거리가 풍성하고, 좋은 집에 살고, 재물이 풍부하고 넘칠 때 넘어집니다.
교만함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선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들이 누리고 있는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와 축복을 잊지 말고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입술에서 감사가 사라진 것은 환경과 조건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나에게 감사할 수 있는 복된 환경을 주십시오.” 라고 기도하기 전에 “나에게 감사하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믿음이 식어지면 감사는 사라지고 원망불평만 쏟아집니다.
불평은 불행의 뿌리이고, 감사는 행복의 시작입니다. 사탄은 오늘도 이렇게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항상 낙심하라. 쉬지 말고 원망하라. 범사에 불평하라. 이는 너희를 향한 사탄의 뜻이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불평하면 누구의 사람이 됩니까? 사탄 마귀의 지배를 받는 불행한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아멘! 아멘입니까? (살전 5:16-18)
불평과 감사는 바로 한 그릇 속에 담겨있습니다. 똑같은 환경입니다. 똑같은 사건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있는 사람은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감사합니다. 그러나 믿음 없는 사람은 불평합니다.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은 어떤 사람입니까? 축복합니다. 언제나 감사하는 편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무슨 일에나 기쁨을 기쁨으로 표현하고, 감사를 감사함으로 표현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기쁨을 기쁨으로 표현할 줄 모르고, 감사를 감사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은 불행한 사람입니다.
우리에게 감사 절기를 지키도록 하신 것은 먼저 하나님을 위해서요. 다음으로 우리를 위해서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가 감사함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감사하면서 행복해 하면 하나님도 행복해 하십니다. 그리고 더 행복하도록 축복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맥추감사절과 추수감사절을 맞으면서, 우리에게 행복을 주는 감사를 회복해야 합니다.
감사절은 감사하는 마음의 훈련입니다. 감사절은 고마운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는 날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돈 밖에 모릅니다. 그래서 돈에 미처 돌아가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돈 다음으로 나 밖에 모릅니다. 나라와 민족도 나보다 더 중요하지 않습니다. 내가 최고입니다.
심지어는 부모도, 형제자매도 내 생각과 틀리고, 내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버리고 떠나는 세상입니다.
대부분의 부모는 그렇지 않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자식도 걸리적 거리면 버리거나 죽여 버립니다.
한마디로 이기주의가 판치는 세상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생활은 우리를 풍요롭게 합니다. 우리의 삶을 행복하게 합니다. 그래서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감사할 때, 나도 행복하고 너도 행복하게 됩니다.
사회는 그렇다 치고, 오늘의 교회를 보십시다.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죄인 된 우리가 예수님 믿고, 십자가의 보혈로 죄 씻음 받아 용서받고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서는 내가 죄인이라고 고백을 하면서도, 사람들 앞에서는 다릅니다.
자기는 아무 흠도 없는 의인으로 착각하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가 허물투성이 죄인으로 취급합니다.
자신이 죄인이었으나, 예수님 보혈로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다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는 성도라면,
불평하지 않습니다. 아니 불평할 수 없습니다. 한 사람의 말 많은 교인이 많은 말을 퍼뜨립니다.
그리고 여러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말 많은 한 사람이 많은 사람을 말이 많은 사람으로 만들어 갑니다.
불평하는 교인도 여러 사람이 아닙니다. 불평하는 한 사람이, 불평하는 교인들을 만들어 냅니다.
그렇게 말 많은 한 사람, 그렇게 불평하는 한 사람이 둘이 되고, 둘이 넷이 되는 식으로 늘어나면서,
주님의 옆구리가 터져 물과 피를 다 쏟으시면 세워진 하나님의 교회가, 사탄의 운동장이 되고 맙니다.
그것은 감사함이 없고, 입만 열면 남의 말이나 하고 불평하는 사람들로 말미암아 이루어지고 맙니다.
그 옛날 우리의 어르신들은 보리밥에 반찬 한 가지를 먹으면서도 웃으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요즘 사람들, 맛있는 음식을 잔뜩 먹으면서도, 배고픈 늑대 마냥 으르렁거리며 덤벼듭니다.
그래서 얼굴에 웃음이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행복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무슨 감사가 있겠습니까?
웃음은 감사하는 마음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네 마음에 있느니라.”
이렇게 마음에 천국이 있는 사람은 감사합니다. 항상 행복하다고 말합니다. 축복을 받으며 삽니다.
이렇게 감사하는 사람은 근심 걱정이 없습니다. 두려움과 불안이 없습니다. 조급함도 젼혀 없습니다.
하나님에게 속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현주소는 「믿음도 / 은혜군 / 감사면 / 행복리」입니다.
그런데 사탄 마귀에게 속한 세상 불신자들의 현주소는 「살기도 / 괴롭군 / 죽으면 / 끝나리」입니다.
영국의 성경 주석가, 메튜 헨리 목사님은 “감사는 더하기(+)와 같아서 모든 것에 감사하면,
거기에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진다. 어떤 일이든지, 어디서든지 감사하면 플러스의 축복이 주어진다.
그러나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없어진다.” 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불평하다가 빼앗기는 불행한 삶보다는, 감사하는 삶을 사십시오.
감사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축복하십니다. 그래서 잘 됩니다. 더 잘 됩니다. 갈수록 더 잘 됩니다.
감사하며 지켜야 할 맥추감사절이기에, 오늘 본문 10절 말씀처럼 예물을 드리되,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대로 힘을 다하여 자원하는 예물을 드리므로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복을 주십니다.
어떤 복을 주십니까? 출애굽기 34장 22절 – 24에서 약속하셨습니다. 악한 세력을 완전히 물리쳐 주시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지경도, 가정의 지경, 사업의 지경, 삶의 지경도 넓혀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 모든 지경이 넓혀지는 축복을 받아 “하나님을 기쁘게! 사람을 기쁘게!” 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맨소래담’ 아시죠? 맨소래담이라는 세계적인 약품회사 사장 하이드 알버트 알렉산더는,
1887년, 미국이 경제 공황을 당했을 때도, 믿음을 지켰고 자신의 소득 10의 9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는 삶이 힘들고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하나님께 드리는 독실한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엄청난 경제 공황 중에서도, 하나님 앞에 서원한 것을 드리기 위해서 집까지 기꺼이 팔았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당신같이 하나님 믿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라며 미쳤다고 그를 조롱했습니다.
그래도 그는 ‘주님! 나도 확신 있는 믿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합니다.” 하고 기도생활을 계속했습니다.
그런 그가 경제공황이 채 끝나기도 전인 1889년에, 하나님께 응답을 받고, 맨소래담이라는 제약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사람들은 아니, 먹고살기도 힘든 이 어려운 때에 무슨 약품을 만드냐고 비난했습니다.
그러나 경제 공황 중에서도 그의 사업은 번창하고 번창하여 세계적으로 으뜸가는 회사로 발전했고,
오늘날까지도 “맨소래담” 이라는 회사 약품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상품으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보호자로 삼는 사람은, 하나님의 그늘 아래서 번성의 삶을 누리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방패가 되어 주십니다(창 15:1). 자기의 눈동자같이 우리를 보호하시고(신 32:10),
피할 바위가 되어 주시며(삼하 22:3), 우리를 평안히 품어주시고 보호하여 주시고 계십니다(사 31:5).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쁜 마음으로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크게 역사하시고 축복하실 줄로 믿습니다.
제가 가끔은 설교나 실족한 성도들을 만나면 “사람보고 믿지 말고 하나님 보고 믿으라.” 고 합니다.
저만 그런 게 아니라 여러분도 똑같은 말을 할 것입니다. “사람보고 믿지 말고 하나님 보고 믿으라.”
이런 말을 누구에게 합니까? 믿음 약한 성도들이나, 교회나 목사에게 비판적인 사람들에게 합니다.
한마디로 사람보고 믿는 단계의 사람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보고 믿어야죠.
그런데 우리 모두는. 특히 항존직분자 정도 되면, 하나님을 보고 믿는 단계도 뛰어 넘어야 합니다.
그 단계가 어떤 수준의 단계입니까? 사도 바울이 그 수준 높은 단계를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 받는 자가 된 것처럼, 너희는 나를 본받아라.” 내가 먼저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살고,
더 나아가 “나처럼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살아라.” 라고 말할 정도로 수준 높은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교회 안에서 다른 일로 큰소리치면 안 됩니다. “나처럼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살라.” 고 큰소리쳐야 합니다.
이렇게 신앙생활하면 행복합니다. 축복받습니다. 날마다의 삶이 기적입니다. 잘 됩니다. 더 잘 됩니다.
여러분! 교회 오래 다녔다고 행복한 것 아닙니다. 직분 가졌다고 다 축복받고 잘 되는 것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의 신앙이 제발 커졌으면 합니다. 적어도 “나처럼 그리스도를 본 받아 살라.” 고 말입니다.
노년을 행복하게 사는 십계명이 있습니다. 이렇게 살면 믿음으로도 행복하게 됩니다.
일. 일일이 알려고 하지 말고. / 이. 이것저것 간섭하지 말고. / 삼. 삼삼오오 좋은 친구를 사귀고.
사, 사생결단하지 말고. / 오, 오케이 하고. / 육, 육체적 악수하고. / 칠, 70%되면 됐다고 해 주고.
팔, 팔팔하게 살려면 운동을 하고. / 구, 구질구질한 것은 버리고. / 열, 열의 하나는 나누며 살고.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예수님을 본 받는 성숙한 신앙생활을 하려면, 이렇게 살면 되겠더라구요.
이렇게만 살면 나도 행복하고, 내가 행복하면 가족도, 다른 모든 성도들도 나 때문에 행복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닮기 위해, 불평하는 삶보다는 감사하는 삶을 삽시다.
예수님을 닮고 복을 받는 삶을 살기 위해, 재물이 삶의 우선이 아니라 예수님을 먼저 선택합시다.
예수님을 닮고 복을 받는 삶을 살기 위해, 성령 충만으로 끼리끼리 살지 말고 더불어 함께 삽시다.
여러분! 우리의 성공이 어디에 있습니까? 많이 가졌다고, 많이 배웠다고? 권세를 누렸다고? 아닙니다.
문제는 얼마나 감사할 수 있느냐? 어디까지 감사할 수 있느냐? 얼마나 충만한 감사 속에 살고 있느냐?
감사로 생을 마감하느냐? 그것이 바로 성공의 기준이요. 그렇게 감사로 산 사람이 성공한 사람입니다.
어느 여 집사님이 계절이 바뀌면서 옷을 갈아입고 보니, 구두가 맘에 들지를 않았습니다.
집에 있는 많은 구두가 맘에 안 들어 구두를 사러 나갔습니다. 여기 저기 구두점을 돌아 다녔습니다.
“아니, 왜 이렇게 맘에 드는 구두가 없지?” 투덜거리며 걷고 있는데, 어디선가 찬양소리가 들립니다.
소리 나는 쪽을 바라보니 휠체어에 의지한 어떤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찬양을 부르고 있었습니다.
두 다리가 없는 그 사람을 보면서 깨달았습니다. “두 다리가 없어 신발을 신을 수도 없는 저 사람은,
찬양을 부르고 있는데 나는 구두가 맘에 안 든다고 그 많은 구두를 놔두고 이렇게 불평을 하고 있다니.
진짜로 나는 한심한 사람이로구나.” 그래서 구두를 사려고 했던 돈을 그 사람에게 모두 주고서,
집으로 돌아와서 지금까지 집에서 불러 본 적이 없는 그 여집사님은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왜 우리는 감사와 감격스러운 마음이 없을까요? 못 가져서 그럴까요?
가난해서 그럴까요? 옛날에 비하면 지금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갖고, 풍족하게 살고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족이 없고, 기쁨도 즐거움도 없고, 행복한 마음도 없이 불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내가 지금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소중한 것을 전혀 모르고 살기 때문입니다.
감사의 마음과 우리가 원하는 진정한 행복이란? 적은 것을 가지고도, 자족할 줄 아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 – 18절에서 하나님의 뜻을 선포합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아멘!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으로,
2024년 후반기에도 잘 되고, 더 잘 되고, 갈수록 더 잘 되는 축복으로, 정말로 감사합니다.
정말로 많이 행복합니다. 큰 소리로 외치며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 기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