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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식민주의의 범주와 성격
김 욱 동
아프리카를 비롯한 비서구 세계가 그 동안 서구 열강들로부터 홀대를 받아 왔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절대 정신을 신의 반열에까지 올려 놓은 헤겔(G. W. F. Hegel)은 일찍이 아프리카는 역사의 울타리 밖에 놓여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역사 철학』(1892)의 서문에서 “아프리카는 자의식적인 역사 시대 저편에 놓여 있는 유년기의 땅으로 어두운 밤의 장막에 휩싸여 있다”고 밝힌 것은 너무나 유명하다. 그리하여 헤겔은 역사 발전이나 진보와는 거리가 먼 아프리카는 결코 세계사의 한 장면이 될 수 없다고 못박기에 이른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아프리카를 ‘검은 대륙’이니 ‘어둠의 땅’이니 하고 낯추어 부르는 태도는 그 뿌리를 더듬어 올라가 보면 결국 그 헤겔과 만나게 된다. 그런가 하면 그는 유럽에 대해서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찬사를 늘어 놓는다. 동양이 역사의 출발점이라면 유럽을 비롯한 서양은 역사의 끝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가령 영국 사람들을 ‘온 세계에 문명의 복음을 전하는 전도사’라고 치켜 세우는 데에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몇몇 이론가들이 식민주의에 이론적 틀을 마련해 준 사람으로 흔히 헤겔을 꼽는 것은 그렇게 무리가 아닌 듯하다. 물론 헤겔은 드러내 놓고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를 내세우거나 두둔한 적은 없다. 그러나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이론적인 뒷받침을 해 준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헤겔의 말에는 아프리카 대륙을 지배하는 것이 영국과 같은 유럽 국가들의 몫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어둠의 장막’이란 유럽 문명이 밝은 횃불을 비추어 주는 곳이라는 뜻이요, ‘유년기의 땅’이란 성숙한 어른이 어린아이를 훈육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식민주의 정책자들은 헤겔의 이론을 그대로 실천에 옮긴 것과 크게 다름없다. 헤겔주의의 깃발 아래 유럽 식민주의자들은 한 손에는 성서를 들고 다른 손에는 칼을 든 채 아프리카 대륙에 첫 발을 들여 놓았던 것이다.
포스트식민주의는 헤겔이 보여준 유럽 우월주의에 대한 비판과 저항을 그 출발점으로 삼는다. 아프리카를 비롯한 피식민지 주민들은 그 동안 유럽 사람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 온 식민주의 이데올로기에 쐐기를 박는다. 아프리카는 헤겔의 말대로 과연 절대 정신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치욕과 저주의 땅인가? 세계 역사의 집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아직도 문밖에서 추위에 떨며 서성거리고 있는가? 역사 진보나 발전은 아직도 이룩할 수 없는 허황된 꿈인가? 아시아는 과연 역사의 시작이며 유럽은 역사의 끝인가? 포스트식민주의는 바로 이러한 물음에 답하려고 한다. 포스트식민주의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아프리카는 ‘어둠의 땅’이 아니라 ‘문명의 요람’이요, ‘유년기의 땅’이 아니라 ‘이 세계의 자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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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주의를 말할 때마다 제국주의라는 용어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지금까지 이 두 용어는 흔히 동의어로 쓰여 왔지만 이 둘은 서로 엄격히 구분지어 쓰는 편이 좋을 듯하다. 제국주의는 식민주의의 상위 개념이다. 자본주의 생산 양식을 세계 곳곳에 전파하려는 태도를 뜻하는 제국주의는 비서구 국가에 침투하여 자본주의를 옮기거나 비자본주의 형태의 사회 조직을 무너뜨리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한편 식민주의는 제국주의 역사에 있어 특정한 한 단계로 보는 편이 더 옳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서 식민주의란 다른 나라의 국토를 정복하고 침략하여 그 나라를 직접 통치하는 행위를 말한다. 식민주의 통치자들은 원주민의 노동력을 착취하거나 자원을 수탈할 뿐더러 토착 문화에 대한 간섭을 일삼는다. 그런가 하면 ‘제국주의적 식민주의’는 남의 나라 영토를 침략하여 대규모로 지배하고 통치하는 것을 가리킨다.
이렇게 남의 나라를 착취하고 침탈하는 과정은 ‘식민주의’보다는 오히려 ‘식민지화’라고 불러야 마땅할 것 같다. 식민주의는 식민지화를 가져오는 식민지 정책이나 상태 또는 태도 따위를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한편 ‘내적 식민주의’란 한 나라 안에서 이루어지는 식민주의를 말한다. 외국의 식민지 주민을 다루듯이 한 나라에 속한 특정 집단이나 지역을 다룰 때 내적 식민주의가 일어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흑인과 멕시코 계열의 소수 집단, 독일에서 가스타르바이터 집단, 그리고 프랑스에서 뵈르스 집단 따위가 여기에 속한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다문화주의는 바로 내적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이요 대안이다.
르네상스 시대에 지리상의 발견이 길을 터 놓은 유럽 식민주의는 19세기 중엽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그 절정에 달하였고, 이 무렵 영국과 유럽 나라들이 무려 지구상의 85퍼센트 이상에 해당하는 영토를 식민지로 삼았다. 비록 그 힘은 약해졌지만 20세기 후반에 들어와서도 제국주의적 식민지화는 여전히 계속되어 왔다. 가령 1989년에 허물어지기 전까지만 하여도 옛 소련은 헝가리?폴란드?체코슬라바키아 등 동구권 위성 국가들을 식민지로 삼은 것과 거의 다름없었다. 중국의 티벳 지배,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지배, 이스라엘의 점령 지역과 요르단강 서안(西岸) 지구의 통치, 그리고 영국의 북부 아일랜드 지배 따위는 아직도 식민주의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포스트식민주의의 개념을 규정하는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을 규정하는 것만큼이나 복잡하고도 미묘하다. 그러나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는 아마 그 의미소를 살펴보는 일이 될 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이라는 의미소, 포스트구조주의가 ‘구조주의’라는 의미소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듯이 포스트식민주의 또한 ‘식민주의’라는 의미소를 떠나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다. 한마디로 포스트식민주의는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나 지역의 입장이나 태도를 가리킨다. 이 점에서 포스트식민주의는 식민주의가 시작된 순간부터 비롯한 빌 애쉬크로푸트(Bill Ashcroft)?개러스 그리피쓰스(Gareth Griffiths)?헬런 티핀(Helen Tiffin)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Ashcroft et al a, 2). 왜냐하면 그들의 이론에 따른다면 식민주의와 포스트식민주의를 구별하기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포스트식민주의란 직접 또는 간접 식민주의의 영향을 받은 나라의 태도나 입장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어떤 다른 지역보다도 특히 유럽 식민지와 깊이 연관되어 있고, 그리하여 어떤 이론가들은 아예 ‘포스트유럽’이라는 말까지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이렇듯 포스트식민주의는 유럽 식민지 역사와는 뗄래야 뗄 수 없을 만큼 깊이 연관되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하여 포스트식민주의를 유럽에만 한정시키는 것은 좁은 소견이다. 물론 유럽 제국주의가 식민주의에 앞장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비단 유럽에만 그치지 않고, 아시아나 라틴 아메리카도 그 동안 온갖 식민주의를 겪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우리나라와 중국이 일본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는가 하면, 라틴 아메리카의 여러 나라들이 유럽과 미국의 식민지 지배를 받았다. 그러므로 식민지 지배에 놓여 있다가 정치적 독립과 더불어 식민지 굴레에서 벗어난 나라라면 일단 포스트식민주의의 범주에 들어간다.
포스트식민주의는 식민주의 지배 뒤에 비로소 나타나기 시작한 민족주의적 자각이요 문화적 각성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제국주의와 식민주의는 줄줄이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예를 들어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1947년에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다음 새로운 민족주의 의식이 일어났다. 1950년대에는 알제리아 전쟁 이후 프랑스에 맞서는 좌파주의의 물결이 성난 파도처럼 일어났다. 1960년의 나이제리아 독립도 포스트식민주의가 발전하는 데 한몫을 톡특히 맡았다. 이밖에도 1963년 마우마우단의 폭력 행사의 결과로 얻어 낸 케냐 독립, 1966년의 바르바도스 독립, 1976년의 트리니다드 독립, 1980년의 짐바브웨의 독립 따위도 예외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1981년 2월에 95개 비동맹 국가들이 선포한 뉴델리 선언도 포스트식민주의가 발전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 선언문에서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 주둔하고 있는 외국 군대의 철수,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세워 놓은 무역 장벽을 허물 것을 요구하는 등 약소 국가의 권리를 되살리고자 하였다.
포스트식민주의와 관련하여 여기에서 잠깐 제1세계, 제2세계, 제3세계, 그리고 제4세계가 어떻게 다른지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두말할 나위 없이 제1세계란 미국과 러시아를 비롯하여 서유럽 제국과 일본 같은 선진 공업 국가들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요즈음 흔히 세계 경제의 대부(大父)로 행세하는 ‘G-7’ 같은 선진 자본 국가들이 바로 제1세계에 속한다. 제2세계란 백인들이 개척하여 이주한 식민지 국가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오스트레일리아의 이론가 앨런 로슨(Alan Lawson)이 처음 이 용어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을 비롯하여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 그리고 뉴질런드 등이 여기에 속한다.
제3세계란 본디 미국과 옛 소련 양대 진영에 대하여 비동맹 중립의 입장을 취하는 아시아?아프리카?라틴 아메리카 등 개발 도상 국가들을 통털어 이르는 말이다. 이 용어는 1950년대 초 프랑스의 인구학자 알프레드 소비가 처음 만든 것으로 흔히 일컫는다. 1980년대 말 옛 소련 체제가 무너진 뒤 미국이 국제 무대에서 독주하는 지금, 이 용어는 선진 공업 국가에 맞서는 저개발 국가나 개발 도상 국가들을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이매뉴얼 월러스타인(Immanuel Wallerstein)이 세계 체계 이론에서 말하는 ‘주변 국가’가 바로 제3세계에 해당한다. 그리고 제4세계란 흔히 백인 식민지 개척자들이 들어오기에 앞서 살았던 토착 원주민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 예를 들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북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기 훨씬 이전부터 그곳에 살아 왔던 인디언 원주민들이 바로 그들이다.
이 가운데에서 제1세계에는 포스트식민주의라는 용어를 적용할 수 없음은 두말 할 나위가 없다. 미국을 빼놓고서는 서유럽의 선진 공업 국가들은 지금까지 한번도 남의 나라로부터 식민 지배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문명의 전파라는 구실 아래 힘이 약한 남의 나라들을 침략하여 식민지로 삼기 일쑤였다. 오늘날 그들이 선진국의 대열에 서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식민지의 물적?인적 자원을 착취하고 수탈하여 자본을 축적한 결과라고 하여도 그다지 틀리지 않는다.
제1세계 국가 가운데에서도 미국은 아주 독특한 위치를 차지한다. 언뜻 보면 미국은 영국 식민주의의 통치와 지배를 받은 만큼 일단 포스트식민주의 국가로 볼 수 있다.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까지만 하여도 미국의 13개 주는 실제로 영국 식민지였다. 애쉬크로프트?그리피쓰스?티핀 같은 이론가들은 지금까지 미국을 그러한 관점에서 보아 왔다. 식민지화의 순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제국적 과정에 의하여 영향을 받은 모든 문화를 포스트식민주의 문화로 보는 그들은 미국 또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그들에 따르면 적어도 이 점에서 미국은 아프리카 제국?오스트레일리아?방글라데시?캐나다?카리브해 제도?인도?말레이지아?몰타?뉴질랜드?파키스탄?싱가폴?남태평양 제도?스리랑카 등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앤 맥클린톡(Ann McClintock)이 미국을 ‘식민지 없는 제국주의’라고 부르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McClintock, 295).
그러나 미국을 포스트식민 국가로 보는 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따른다. 1776년에 독립을 선언한 뒤 미국은 곧바로 식민지 국가의 대열에 끼게 되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 하면 곧 피식민지 국가보다는 오히려 제국주의 국가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만큼 미국은 세계 곳곳에서 여러 나라들을 지배하는 그야말로 가장 막강한 패권 국가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러므로 미국을 포스트식민 국가로 보는 것은 다같이 바닷물 속에 살고 모양이 비슷하다고 하여 고래와 상어를 똑같이 취급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두말할 나위 없이 고래는 젖먹이 동물인 반면 상어는 난생 또는 태생 동물이다. 미국을 포스트식민 국가에 넣는다면 이주?노예?자원 착취?억압 같은 식민주의의 엄연한 역사적 과정을 자칫 놓쳐 버릴 위험이 있다.
캐나다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같은 제2세계에 속한 나라들은 사정이 조금 다르다. 흔히 ‘이주 식민지’ 또는 ‘신세계 식민지’라고 부르는 이들 나라들은 백인들이 정착하여 개척한 곳이다. 어떤 이론가들은 이 나라들을 포스트식민 국가에 넣어 마땅하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다른 이론가들은 이 테두리에서 제외시킨다. 물론 이들 나라들은 하나같이 그 동안 영국의 지배와 통치를 받아 왔다는 점에서는 포스트식민 국가로 보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캐다나는 한편으로는 영국의 지배를, 다른 한편으로는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다. 더구나 캐나다는 정치적으로 영국의 식민지였지만 문화적으로는 미국의 식민지와 거의 다름없다. 한편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영국 연방에 속하는 자치령으로 되어 있다.
그러나 유럽 백인들이 정착한 이민 식민지에서는 노동 착취나 자원 수탈이 아프리카나 인도에서처럼 그렇게 체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유럽의 식민주의 정책가들은 마치 새로운 땅에 식물을 옮겨 심듯이 신세계에 자국의 국민들을 이주시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모국의 문화는 어쩔 수 없이 새로운 토양에 맞게 바뀌고 변형되었지만 원래의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영국은 제국주의의 중심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모국에 더 가깝다. 또한 이들 나라들은 영국 제국주의의 핵심의 일부이며 제국주의나 식민주의가 발전하는 데 직접 또는 간적적으로 뒷받침을 해 주었던 것이다. 물론 넓은 의미에서는 이 나라들을 포스트식민 국가로 볼 수 있을 터이지만 좀더 엄격한 의미에서는 그렇게 보기 어려울 것 같다. 그들 국가들은 제2세계라는 이름에 걸맞게 선진 공업 국가인 제1세계와 저개발 또는 개발 도상 국가인 제3세계 사이에서 그야말로 어정쩡한 자리에 놓여 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포스트식민주의 문학과 영국 연방 문학의 관계이다. 그 동안 적지 않은 이론가들이 포스트식민주의 문학과 영연방 문학을 비슷한 차원에서 보아 왔거나 아예 같은 것으로 보아 오기 일쑤였다. 캐나다를 비롯한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말할 것도 없고 서인도 제도에서 아프리카를 거쳐 인도에 이르는 여러 나라들이 하나같이 영연방 문학의 우산 속에 들어간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서 영연방 문학이 곧 포스트식민주의 문학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포스트식민주의 문학에는 영어 문화권에 속하지 않은 나라의 문학도 얼마든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제3세계 국가를 포스트식민 국가로 보는 데에는 별다른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 실제로 이 두 용어 사이에는 거의 등식 관계가 이루어진다. 백인 이주 식민지와는 달리 제3세계 국가들은 종주국으로부터 혹독한 식민 경험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치적으로는 주권을 잃었고, 경제적으로는 수탈과 착취를 당하였으며, 문화적으로도 전통 문화가 그 자취를 찾을 수 없을 만큼 허물어져 버리다시피 하였다. 제3세계 식민지를 두고 흔히 ‘침략 식민지’ 또는 ‘붕괴 식민지’라고 부르는 것은 바로 이러한 까닭에서이다. 무엇보다도 인종이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분야가 바로 포스트식민주의이다. 더러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식민화는 주로 백인 서유럽 사람들이 비유럽계의 유색 인종을 지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포스트식민주의 담론이 어떤 이론보다도 좁게는 비교 문학적, 넓게는 비교 문화적 성격을 지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비교 문학에는 반드시 식민주의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마저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제3세계 국가라고 하여 모두 다 포스트식민 국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포스트식민 국가들이 대개 제3세계 국가들에 속해 있지만 그렇다고 하여 모든 제3세계 국가들이 포스트식민 국가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제3세계 국가 가운데에는 식민주의를 한번도 겪지 않은 나라들이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식민 사회와 제3세계를 엄격히 구별하여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제3세계 문학과 포스트식민주의 문학을 똑같은 개념으로 보려는 학자들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라틴 아메리카는 이러한 경우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비록 다른 제3세계 국가처럼 정치적?경제적으로는 선진 자본 국가에 예속되어 있으면서도 본격적으로 식민주의를 겪지 않았기 때문에 라틴 아메리카를 엄격한 의미에서 포스트식민주의 국가로 보는 데에는 적잖이 무리가 따르게 마련이다.
제4세계에 속한 주민들도 포스트식민 주민으로 불러 크게 틀리지 않는다. 제2세계의 그늘 밑에서 그 동안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해 온 토착 원주민이야말로 참다운 의미에서 포스트식민 주민으로 부를 만하다. 가령 오스트레일리아의 마오리 원주민들, 캐다나의 에스키모를 비롯한 토착 인디언, 그리고 미국 대륙에 살아 온 인디언들은 백인 식민지 통치를 받으며 온갖 고통과 시련을 겪어 온 희생자들이다. 실제로 포스트식민주의의 물결과 더불어 토착 원주민의 목소리가 전보다 훨씬 커졌다. 토착 원주민들에게 사회 정의와 문화적 생존을 위한 투쟁은 가장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같은 포스트식민 국가라고 하더라도 나라에 따라 그리고 지역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같은 바닷물 속에 산다고 하여 똑같은 물고기가 아니듯이 식민주의를 겪었다고 하여 똑같은 포스트식민 국가는 아니다. 예를 들어 아프리카는 인도나 파키스탄과 다르고, 이들 나라들은 카리브 연안 국가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가 하면 아시아나 라틴 아메리카 나라들은 그들과는 또 다르다. 심지어 비슷한 지역에 놓여 있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도 서로 다르다. 뉴질랜드에서는 마우리족이 아직도 소수 민족으로 남아 있는 반면,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마우리족과 같은 소수 민족은 이제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 식민주의가 인도에서는 주로 도시 지역에서만 영향을 끼친 반면, 다른 나라에서는 도시보다는 지방에서 더 큰 영향을 끼쳤다. 동남 아시아에서는 중국인과 인도인 같은 이민 노동이 큰 역할을 하였다면, 서인도 제도에서는 노예 노동과 계약 고용인 노동이 중요한 구실을 맡았다. 또한 다른 나라에서와는 달리 아프리카에서는 식민주의는 흔히 복음주의적 기독교와 손을 잡았다.
포스트식민주의는 공식적으로 정치적 독립을 한 이후의 역사적 시기를 가리키지만 그렇다고 하여 단순히 역사의 이정표 구실을 맡지만은 않는다. 포스트식민주의란 계몽주의 이후 서구의 지식과 권력 구조를 비판하는 수정주의적 태도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식민주의를 겪었으면서도 식민지에 대하여 이렇다 할 만한 저항이나 비판을 보이지 않는 나라도 얼마든지 있다. 한 나라에 포스트식민주의라는 꼬리표가 붙으려면 반드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하여 자의식을 느껴야 하고 의도적으로 식민지 국가에 대하여 저항을 하거나 비판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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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식민주의 담론을 말할 때마다 늘 문제가 되는 것이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과 저항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인가 하는 점이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성의 역사』(1976)에서 “권력이 있는 곳에 저항이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권력에 대한 저항의 정도나 그 성격을 밝혀 내기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다. 포스트식민주의는 참다운 의미에서 식민주의에 대한 저항인가, 아니면 그것은 한낱 새로운 형태의 식민주의에 지나지 않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두고 이론가들 사이에서 의견이 서로 엇갈린다. 어떤 이론가들은 ‘탈’식민주의로 보는가 하면, 다른 이론가들은 ‘신’식민주의로 본다. 일본 식민주의를 경험한 탓인지는 몰라도 우리나라 학자들 사이에서는 신식민주의보다는 오히려 탈식민주의로 보려는 입장이 훨씬 더 지배적인 것 같다.
포스트식민주의를 탈식민주의로 보려는 이론가들은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란 이제 한낱 공룡처럼 시대착오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치누아 아체베(Chinua Achebe)와 다이애너 브라이든(Diana Brydon) 같은 이론가들에 따르면 피식민지 국가들은 이제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나 명실공히 홀로 서 있다. 그들은 특히 문화 영역에서는 피식민지 작가들이 제국주의나 식민주의 종주국의 작가들에 못지않을 뿐더러 오히려 그들을 앞지르고 있다고 본다. 포스트식민주의 문학은 말하자면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의 잿더미 속을 헤치고 솟아오르는 불사조와 같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포스트식민주의의 그 ‘포스트’는 이탈이나 저항 또는 가치 전도 따위를 뜻하는 셈이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는 문화를 정치나 경제와 뚜렷이 따로 떼어서 생각하려는 데에서 비롯한다. 포스트식민 국가들은 비록 정치나 경제에서는 여전히 선진 자본 국가들에 예속되어 있을망정 문화에서만은 그러하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식민지 종주국보다는 식민주의를 겪은 나라에서 문화가 훨씬 더 활짝 꽃을 피웠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문학의 판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지금 세계 문단에서 주도권을 잡고 있는 작가들은 거의 대부분이 식민주의 종주국에 속한 작가들이 아니라 오히려 식민주의를 겪으며 여러모로 가치 박탈을 체험한 피식민지 국가의 작가들이다. 현실이 각박하면 각박할수록 꿈이 커진다는 말도 있듯이, 피식민지 국가에 속한 작가들은 쓰라린 고통과 뼈저린 절망을 창조적 에너지로 바꾸어 훌륭한 작품을 많이 써 왔던 것이다.
기원전 1세기에 활약한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Horatius)는 일찍이 제국의 이동이란 곧 문화와 학문의 이동을 뜻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제국의 중심이 그리스에서 로마로 옮겨온 역사적 사실에서 그는 바로 그 실례를 찾는다. 그 찬란한 그리스 문명이 제국의 멸망과 함께 고스란히 로마 제국으로 자리를 옮겼기 때문이다. 이 무렵 아테네로 통하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창과 방패로 싸우던 고대에는 몰라도 핵무기가 한 순간에 지구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 수 있는 20세기에는 사정이 반드시 그러하지만도 않다. 정치의 힘이 곧 문화의 힘으로 통하던 시대는 막을 내린 지 이미 오래이다. 오늘날 이 두 힘은 겉으로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기계적인 상관 관계를 가지지 못한다. 정치의 힘과 문화의 힘은 오히려 반비례한다고 보는 편이 훨씬 더 옳을 듯하다.
20세기 후반의 영국 문단은 이러한 경우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된다. 해가 질 날이 없다던 그 대영 제국의 몰락은 문단의 판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영국에서 소설가들에게 주는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은 부커상이다. 그런데 이 상을 받은 작가들은 거의 대개가 비영국계 출신들이다. 인도 태생의 작가 샐먼 러쉬디(Salman Rushdie)가 『한밤의 아이들』(1981)로 처음 이 상을 받은 뒤 지금까지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스리랑카, 심지어는 일본 태생의 작가까지도 이 상을 받았다. 사정은 프랑스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아서 프랑스의 식민 지배나 통치를 받은 나라의 작가들이 최근 들어 공쿠르상을 받는 등 프랑스 문단에서 부쩍 눈길을 끌고 있다. 가령 카리브해 출신의 두 작가 패트릭 샤모아조와 마리스 콩테가 바로 그러하다. 이밖에도 마르니티크 태생의 레오폴드 셍고르, 과다돌프 태생의 기 티롤리앙, 그리고 세네갈의 에메 세제르 등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부커상에 그치지 않고 노벨 문학상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를 비롯하여 오스트레일리아의 소설가 패트릭 화이트(Patrick White),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Gabriel Garcia Marquez), 나이제리아의 작가 월 소잉카(Wole Soyinka), 이집트의 소설가 나집 마후즈(Nagieb Mahouz), 멕시코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 남아프리카 작가 나딘 고디머(Nadin Godimer), 서인도 제도의 시인 데릭 월콧(Derek Walcott) 등도 하나같이 비유럽게 출신의 작가들이다. “하인 자격으로 세계 문학의 집에 들어왔다”는 월콧의 말은 그다지 과장이 아닌 듯하다. 아직 노벨상을 받지는 않았어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1984)으로 주목을 받은 체코슬라바키아의 작가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 『장미의 이름』(1983)을 발표하여 세계적으로 이름을 떨친 이탈리아의 작가 움베르토 에코(Umberto Eco)도 세계 문단에서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이렇듯 미국이나 유럽계가 아닌 작가들로 지금 세계 문단에서 눈부신 활약을 하고 있는 작가들은 그 수를 하나하나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다.
한편 포스트식민주의를 신식민주의로 보려는 이론가들은 이와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한다. 정치적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는 끝장이 났을는지 몰라도 그것이 끼친 언어적?문화적 결과는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서 포스트식민 국가들은 정치적?경제적으로뿐만 아니라 문화적으로도 여전히 예속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가야트리 스피박(Gayatri Spivak), 프레드릭 제미슨(Frederic Jameson), 린더 허천(Linda Hucheon), 그리고 월 소잉카 같은 이론가들은 아직도 많은 나라들이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고통받고 신음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피식민지 국가들이 그 동안 유엔의 결의안에 따라 그리고 민족주의의 거센 물결을 타고 정치적으로 독립되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아직도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 예속되어 있다시피 하다.
더구나 지금 같은 다국적 자본주의 시대에 시장의 세계화가 빠르게 진전되면서 국경이 낮아지고 때로는 거의 허물어져 내려앉기도 하였다. 이렇게 국민 국가, 국민 경제의 개념이 이렇다 할 만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에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를 겪은 나라들의 경제적 예속은 날이 갈수록 그 골이 깊어만 간다. 코카콜라나 맥도널드 햄버거로 대변되는 서구 상품이 제3세계 국가와 공산주의 국가에까지 깊숙히 손을 뻗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상품 소비는 단순히 입맛을 바꾸거나 소비를 부추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사회의 부르주아적 가치를 은근히 심어 준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몇몇 이론가들은 ‘코카콜로니제이션’(Coca-colonization)이나 ‘맥도널다이제이션’ (McDonaldization)이라고 부른다. ‘콜카콜로니제이션’이란 중독성이 강한 청량 음료수 ‘코카콜라’라는 말과 식민지화를 뜻하는 ‘콜로니제이션’이라는 말을 한데 묶어 만든 것으로 코카콜라 같은 상품을 좋아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본주의 국가의 식민지가 된다는 뜻이다. ‘맥도널드화’라고 옮길 수 있는 ‘맥도널다이제이션’이라는 용어도 코카콜로니제이션처럼 햄버거 같은 상품을 통한 식민지 지배를 뜻한다.
최근 들어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 아시아 여러 나라들이 겪고 있는 금융 위기는 이 점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WB)을 앞세워 경제적 예속의 고삐를 바짝 조이고 있다. 지금 국제통화금의 한파에 이들 나라의 경제는 꽁꽁 얼어붙어 있고 심지어는 국가의 경제 주권을 말할 것도 없고 정치 주권마저도 크게 위협받고 있다. 외환을 빌려 주는 댓가로 환율과 금리에서 통화량과 성장율에 이르기까지 간섭하는 국제통화기금의 행동은 내정 간섭이나 월권의 수준을 훨씬 넘어 가히 횡포나 폭력에 가깝다고 할 만하다. 빌 애쉬크로프트?개러스 그리피쓰스?헬런 티핀은 “모든 포스트식민 사회는 이런 식 저런 식으로 여전히 뚜렷한 식민지 지배나 미묘한 식민지 지배를 받고 있고, 독립하였다고 하여 아직 이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Ashcroft et al, b 2)라고 말한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의 행동을 보면 그들의 주장은 그렇게 무리가 아닌 듯하다.
봅 호지(Bob Hodge)와 비제이 미쉬러(Vijay Mishra)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와 포스트식민 국가의 관계를 아버지와 자식의 그것에 견준다. 포스트식민 국가들이 선진 공업 국가를 비판하는 것은 마치 나이어린 자식들이 엄격한 아버지의 훈육에 반발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아직 나이가 어리고 힘이 없는데다가 경험이 부족한 만큼 자식들의 반항이나 저항은 어쩔 수 없이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고 그들은 말한다. 물론 여기에서 미쉬러와 호지는 오스트레일리아를 염두에 두고 말하고 있지만, 이 주장은 아프리카나 인도를 비롯한 제3세계 국가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Mishra and Hodge, 288).
여기에서 잠깐 프란츠 파농(Franz Fanon)의 이론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는 정치적 독립과 경제적 독립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한다. 그에 따르면 자본주의가 지구 곳곳에 걸쳐 막강한 힘을 떨치고 있는 지금 저개발 국가나 개발 도상 국가들은 정치적으로 독립한 뒤에도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여전히 예속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서구 열강들이 우리들을 운명지으려고 하는 상황을 단호히 거부하여야 한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는 심지어 서구 열강들이 우리 땅에서 그들의 국기를 내리고 경찰력을 철수한 다음에도 원한을 풀지 않았다. 지난 몇 세기에 걸쳐 자본가들은 저개발 세계에서 다름아닌 범죄자처럼 행동해 왔다. (Fanon, 101)
피식민지 국가들이 문화 분야에서만은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을 앞지른다는 주장도 이들 이론가들에게는 그렇게 설득력을 주지 못한다. 문화는 궁극적으로 정치나 경제와 뗄래야 뗄 수 없을 만큼 아주 깊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문화 분야는 정치나 경제 영역과 비교해 볼 때 좀더 자율성을 지니고 있을 뿐더러, 어떤 면에서는 선진국보다는 오히려 후진국에서 그 활동이 더 두드러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좀더 시야를 넓혀 보면 피식민지 작가들은 여전히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의 굴레에 놓여 있는 것과 다름없다. 제국주의나 식민주의 지배에서 벗어난 국가의 문화적 위치를 가리키기 위하여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는 군대 계급과 관련한 용어를 빌려 ‘속관’(屬官)이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포스트식민 국가의 작가들은 풀밭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짐승에 견줄 수 있을 것 같다. 짐승들이 풀밭에서 자유롭게 풀을 뜯어 먹고 있는 것 같지만 말뚝에 매어 놓은 밧줄의 테두리를 결코 벗어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선진 자본 국가들은 그 동안 밧줄이나 고삐와 같은 구실을 하기 일쑤였다. 여기에서 밧줄이나 고삐 구실을 맡고 있는 것이 바로 식민지 종주국의 언어이다.더러 예외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포스트식민주의 작가들은 작품을 쓸 때 하나같이 제국주의나 식민주의 국가의 언어를 매체로 삼는다. 비평가들로부터 주목받고 있는 작품들은 거의 대개가 영어나 프랑스어 또는 독일어 같은 종주국 언어로 씌어져 있다. 그런데 종주국의 언어를 빌려 작품을 쓰는 데에는 큰 한계가 따를 수밖에 없다. 독일의 언어학자 빌헬름 훔볼트(Wilhelm Humboldt)는 언어를 두고 세계를 여는 열쇠라고 말하였듯이 언어는 단순히 생각과 사상을 담아 내는 그릇 이상의 깊은 의미를 지닌다. 인간은 언어를 통하여 비로소 생각하고 세계를 바라보기 때문에 언어는 인간의 생각과 사상에 크나큰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가령 1940년 일본 식민주의자들이 우리의 민족 정기를 말살하려고 강제로 우리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어 짓도록 한 창씨 개명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총알이 육체 정복의 수단이었다면 언어는 정신 정복의 수단이었다”는 케냐의 소설가 응우기 와 티옹고(Ngugi wa Thiongo)의 말은 이 점을 단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그러므로 포스트식민주의 작가들이 자기 나라의 토속어를 쓰지 않고 제국주의나 식민주의 종주국의 언어를 쓴다는 것은 여간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물론 문제는 언뜻 보이는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 종주국 언어를 쓴다고 하여 반드시 영혼이나 정신까지 종주국에 넘겨 주는 것은 아닐는지도 모른다. 가령 치누아 아체베는 아프리카 작가들이라도 영어나 프랑스어 같은 유럽 언어를 얼마든지 아프리카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그에 따르면 유럽어는 국제적인 의사 소통의 매체로서는 말할 것도 없고 민족의 정서를 담는 매체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다.
자신의 모국어를 버리고 남의 나라 말을 쓰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인가? 그것은 무서운 배반이고 죄책감을 불러일으킨다. 그러나 나의 경우 그밖에 달리 선택 할 길이 없다. 나는 그 언어를 물려받았으며 나는 그것을 사용하려고 한다 …… 나는 영어가 나의 아프리카 경험의 무게를 지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느낀다. 그러나 그것은 선조의 고향과 충분히 교류를 나누면서도 새로운 아프리카 환경에 맞도록 변경된 새로운 영어가 되어야 할 것이다. (Achebe, 62)
실제로 아체베를 비롯한 가브리엘 오카라(Gabriel Okara) 같은 작가들은 그 동안 표준 영어를 변형하여 자신의 경험과 문화를 표현하려고 해 왔다. 또한 이러한 과정에서 그들은 영국의 표준 영어에 새로운 생명력과 활기를 불어넣기도 하였다.
빌 애쉬크로프트?개러스 그리피쓰스?헬런 티핀은 영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눈다. 하나는 소문자로 된 영어(english)이고, 다른 하나는 대문자로 된 영어(English)이다. 대문자 영어가 대영 제국에서 쓰는 표준 영어를 가리킨다면, 소문자 영어는 영국의 식민지 지배와 통치를 겪은 여러 나라들에서 쓰는 영어를 말한다. 이 두 영어는 언뜻 보면 똑같은 언어 같지만 실제로는 적잖이 차이가 난다. 하나는 제국의 중심에서 쓰이는 언어인 반면, 다른 하나는 중심에서 멀리 떨어진 변경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소문자 영어에는 그 동안 영국 식민주의의 지배와 통치를 받은 흔적이 짙게 묻어 있는 고통과 절망의 언어라는 것이다 (Ashcroft et al a, 38-51).
3
한편 응우기 와 티옹고는 아체베나 오카라와는 전혀 다른 입장을 취한다. 응우기는 영어가 결코 아프리카 경험을 표현하는 수단이 될 수 없다고 못박는다. 한 민족의 사상과 감정은 반드시 그 민족 특유의 토속 언어로써밖에는 담아낼 수 없다는 논리이다. 더구나 응우기는 토착어만이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에 맞설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아프리카어야말로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반제국주의적 투쟁의 중요한 무기라고 굳게 믿는다. 그리하여 그는 지금까지 케냐의 농부들과 노동자들이 쓰는 말인 키쿠유라는 말로 소설 작품을 써 왔다. 마침내 그는 케냐의 나이로비대학에서 영문학과를 완전히 폐지하고 그 대신 아프리카 언어와 문학을 가르치는 학과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런데 이러한 주장을 펴는 응우기의 이론서들이 그가 비판하고 있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출판사에서 출간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포스트식민주의 작가들이 정치적으로 독립한 뒤에도 제국주의나 식민주의 종주국의 언어를 그대로 쓴다는 것은 육체가 해방된 뒤에도 영혼은 여전히 강대국에 종속되어 있음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종주국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한 참다운 의미에서의 독립이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렵다. 이 점과 관련하여 미국의 흑인 여성 시인 오드르 로드(Audre Lorde)의 말은 시사하는 바 자못 크다. 그녀는 한 시 작품에서 주인 집의 연장을 빌려다가 주인 집을 때려부수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밝힌다. 주인 집을 허물기 위해서는 마땅히 다른 집에서 더 큰 연장을 빌려와야 할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서인도 제도의 작은 나라 앤티구아의 작가 저메이커 킨케이드(Jamaica Kincaid)에게서도 마찬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그는 식민주의라는 범죄를 기술하는 데 자신이 알고 있는 언어라고는 그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의 언어밖에는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범죄자의 언어로써는 범죄자가 저지른 나쁜 행동을 드러낼 수 없다고 절망감을 털어 놓는다.
작품의 출판도 포스트식민주의를 억압하는 고삐나 밧줄로서의 구실을 톡톡히 맡는다. 최근 들어 컴퓨터의 등장과 더불어 인쇄술이 눈부시게 발달에 발달을 거듭해 왔다고는 하지만 포스트식민 국가에서 인쇄술은 여전히 뒤떨어져 있다. 오늘날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출판을 거의 독차지하고 있다시피 하다. 어떠한 작가의 어떠한 작품을 출판할 것인가 하는 것은 전적으로 뉴욕이나 런던 또는 파리 같은 대도시에 있는 출판사의 손에 달려 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은 책의 출판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책의 배포와 판매에도 크나큰 영향을 끼친다. 그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서는 작품이 제대로 독자들에게 전달될 수가 없는 것이 오늘날 다국적 기업 시대의 유통 구조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선진 국가에 기대는 오늘날 포스트식민 국가의 문화 의존과 종속은 정치적 통제나 경제적 지배에 못지않게 여전히 크다.
여기에서 잠깐 쿠암 안토니 아피아(Kwame Anthony Appiah)의 이론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는 포스트식민주의의 작가들이나 이론가들도 궁극적으로는 ‘콤프라도르’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콤프라도르란 본디 외국 상사에 고용되어 중국인과 거래나 교섭을 맡던 중국인을 가리킨다. 그러니까 포스트식민주의의 작가들이나 이론가들은 한낱 매판(買辦) 지식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피아는 서구에서 교육을 받은 몇 안 되는 서구 지향적 작가들이나 사상가들이 만들어 낸 것이 곧 포스트식민주의 문학이라고 본다 (Appiah, 26). 이러한 상황에서 포스트식민주의 문학은 어쩔 수 없이 비판과 저항의 칼날이 무뎌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자국 안에서 비판과 저항의 힘을 누그려뜨릴 뿐만 아니라 반대 집단과의 거리를 좀더 넓히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더구나 포스트식민주의 문학은 제1세계 비평가들이나 이론가들이 핵심적인 구실을 한다는 점에서도 그 한계가 여실히 드러난다. 포스트식민주의 문학을 분석하는 이론적 틀을 마련해 주는 이론가들이나, 그 이론을 바탕으로 작품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비평가들은 거의 대개가 제1세계 국가에 속한 사람들이다. 이렇듯 작품이 씌여지는 곳이 다르고, 그 작품을 비평하는 곳이 서로 다르다. 미첼(W. J. T. Mitchell)은 포스트식민주의 문학에서 창작과 비평이 피식민지 국가와 제국의 중심에서 각각 이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가장 중요한 새로운 문학이 식민지―과거에 경제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지배를 받은 지역이나 주민―에서 나오고 있는 반면, 가장 도전적인 새로운 문학 이론은 한때 그들을 지배한 제국의 중심―유럽과 미국의 공업 국가들―으로부터 나오고 있다. (Mitchell, 475)
제1세계 비평가들은 포스트식민 국가로부터 수입한 원자재를 수입하여 선진 기술로 가공하여 부가 가치가 높은 상품을 만들어 낸다. 그것은 지난 시절 식민주의자들이 피식민지 국가의 물적 자원을 약탈하고 착취하여 상품을 만들어 다른 나라로 수출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착취 대상이 과거에는 물적 자원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문화 자원으로 바뀌었을 따름이다.
이렇게 선진 자본주의 국가의 비평 담론에 연루되어 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포스트식민주의 문학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스트식민주의 담론은 자칫 또 다른 형태의 제국주의나 식민주의 지배 담론이 될 우려가 없지 않다. 그것은 피식민지 주민의 ‘목소리’를 빼앗고, 결과적으로는 주변부의 약소 국가에 대하여 여전히 문화적으로나 지적으로 헤게모니를 행사하기 때문이다. 바버러 크리스챤(Barbara Christian)의 말대로 포스트식민주의 이론은 자유분방하고 해방적인 포스트식민주의 텍스트를 유럽의 답답한 인식소 안에 가두어 둘 위험성을 충분히 안고 있다 (Christian, 148-57). 물론 토착 원주민 이론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정교하게 다듬어지고 세련된 제1세계 이론 앞에서는 제대로 맥을 못춘다.
포스트식민주의를 탈식민주의로 보려는 입장이나, 이와는 반대로 신식민주의로 보려는 입장이나 그렇게 바람직하다고 보기 어렵다. 포스트식민주의를 혁명적인 이론으로 보는 것도,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는 이론으로 보는 것도 모두 옳지 않다. 이 두 입장 모두 어느 한쪽에만 지나치게 무게를 싣고 있기 때문이다. 포스트식민주의는 ‘탈’식민주의도, ‘신’식민주의도 아니라 글자 그대로 ‘포스트’식민주의일 따름이다. 탈식민주의라면 ‘디콜로니얼리즘’이라는 말을 두고 굳이 ‘포스트콜로니얼리즘’이라는 용어를 쓸 리 만무하다. 마찬가지로 신식민주의라고 한다면 ‘네오콜로니얼리즘’이라는 용어를 써야 마땅할 것이다.
포스트식민주의는 한편으로는 제국주의나 식민주의에 대한 비판이며 대안이요,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의 또 다른 모습이며 새로운 지배 형태이다. 이러한 이중성을 제대로 깨닫지 않고서는 포스트식민주의의 개념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 이 이론이 지니고 있는 역동적 힘은 바로 활시위처럼 팽팽한 그 긴장과 갈등에 있다. ‘포스트’라는 갓을 쓰고 있는 현대 이론들이 으레 그러하듯이 포스트식민주의도 어쩔 수 없이 그것이 비판하는 이론과 관련을 맺을 수밖에 없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이나 포스트구조주의, 해체주의나 페미니즘에서보다 포스트식민주의에서 지배 담론에 대한 비판이나 저항이 훨씬 더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특히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를 몸소 겪은 나라에서는 포스트식민주의 담론을 혁명적이고 해방적인 이론으로 보려는 태도가 더 강하게 나타난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바램이고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는 사실을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다. 그러한 순진한 믿음 자체가 자칫 또 다른 제국주의나 식민주의를 불러오게 될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서강대〉
인용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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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hcroft, Bill, Gareth Griffiths, and Helen Tiffin. (b) “General Introduction.” In The Post-Colonial Studies Reader. Ed. Ashcroft, Bill, Gareth Griffiths, and Helen Tiffin. London: Routledge, 1995, pp 7-11.
Christian, Barbara. “The Race for Theory.” In Contemporary Postcolonial Theory: A Reader. Ed. Padmini Mongia. London: Arnold, 1996, pp. 148-57.
Fanon, Frantz. The Wretched of the Earth. Trans. Constance Farrington. New York: Grove Press, 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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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shra, Vijay, and Bob Hodge. “What is Post(-)colonialism?.” In Colonial Discourse and Pos-Colonialism: A Reader. Ed. Patrick Williams and Laura Chrisman. New York: Columbia University Press, 1994, pp. 276-90.
Mitchell, W. J. T. “Postcolonial Culture, Postimperial Criticism.” In The Post-Colonial Studies Reader. Ed. Ashcroft, Bill, Gareth Griffiths, and Helen Tiffin. London: Routledge, 1995, pp. 475-79.
Ngugi wa Thiong’o. Decolonizing the Mind: The Politics of Language in African Literature. London: James Currey, 19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