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보일러실에서 구타당해
증언자 : 박필호(남)
생년월일 : 1960. 2. 1(당시 나이 21세)
직 업 : 호텔 보일러공(현재 호텔 상무)
조사일시 : 1988. 12
개 요
우리 집은 화순 북면에 있었는데 집안이 극도로 빈곤했다. 친척 한 분이 아버지에게 함께 젖소를 사육하자고 제의하여 광주 지원동으로 이농하게 되었다. 나는 이농 이전부터 광주에서 직장을 가졌고, 월급은 매달 부모님께 드려 용돈을 타서 쓰곤 했다. 1980년 당시 내가 근무하던 '미도호텔'은 금남로 가톨릭센터 뒤 쪽에 위치해 있었다.
보일러실로 들이닥쳐 구타
18일은 일요일이라 처음으로 중앙교회에 나가 11시 예배를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거리에 차는 안 다니고 군인들이 완전 군장차림으로 군데군데 배치되어 있었으며 시민들도 웅성웅성하고 있었다. 최루탄을 뿌렸는지 몹시 매웠다.
5월 19일 10-11시경 미도호텔 보일러실(지하실)에 있는데 "아고" 하는 비명소리가 들려 살짝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우리 직원들이 피를 흘리고 있고, 그 옆에는 군인들이 대검을 들이대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밖에 나오지 못하고 지하실에 그대로 있었다. 그러면서도 불안해, 입고 있던 예비군복 바지를 벗고 일부러 헌 작업복에 다 떨어진 슬리퍼를 신었다. 그리고 얼굴에 생연탄을 칠하고 기계를 만지는 시늉을 했다. 6명의 공수가 지하실로 들이닥쳐 대검을 들이대면서 말했다.
"사람 숨겨 놨지?"
"숨겨놓은 적 없어요."
나보다 키가 작은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공수가 워커발로 이마를 쳤는데 나는 운동신경이 빨라 얼른 피해 버렸다. 공수는 약이 올랐는지 험악한 말을 내뱉었다.
"새끼들 왜 도망가느냐? 전라도 새끼들 씨를 말려버리겠다."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인상이 찌푸려졌는지 공수는 '인상을 썼다'고 머리를 방망이로 내리쳤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지만 머리가 멍해져서 아픈 줄도 몰랐다. 그때 사장님이 내려오셨다.
"우리 직원인데 왜 때리시오."
"당신은 가만히 있어."
공수 한 명이 나를 지키고 나머지는 지하실을 하나하나 뒤지는데 성난 이리떼 처럼 이빨만 하얗게 번들거리고, 눈동자는 술을 먹어 취한 듯했다. 한참을 뒤지더니 아무것도 없자 나가버렸다.
신혼부부까지 끌고 가
그때 직원 7명 정도가 끌려갔는데 그중에 김현보 씨는 피를 너무 많이 흘려 아는 경찰에게 사정해서 간신히 풀려나왔다. 나는 다행히 끌려가지 않았다. 한참 후에 밖으로 나와 보니 복도에는 피가 흥건했고 일하는 아주머니들이 울고 있었다. 공수들이 차고문을 넘고 들어와 신혼부부라며 사정하는 손님까지 끌고 갔다고 했다. 나는 머리가 심하게 부어 19일인지 20일인지 박윤식 외과에서 진찰을 받았다. 당시 미혼이라 계속 호텔에 남아 있었는데 집에서 전화가 왔다. 지원동에서 싸움이 있어 사람이 많이 죽었으니 오지말라고 했다. 모두 무섭다고 집에 돌아 간 다음이라 더욱 무서워서 서동 작은집으로라도 갈까 하고 전화했다.
작은집에서도 위험하니 오지 말라고 했다. 호텔을 지키는 사람이 혼자뿐이어서 사장님이 밖으로 나가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가끔씩 상황을 보기 위해 시내에 잠깐 나가 집회에 참석도 하고 공수를 향해 돌멩이도 던졌다. 저녁에는 혼자 숙직 근무를 하기 때문에 나가지는 못하고 총소리가 나서 옥상으로 올라가 시내 쪽을 보면 총알 날아가는 것이 보였다. 숙직할 때는 불안해서 호신용 칼을 가지고 있었다.
21일인가 친구가 와서 총을 보여주며 함께 나가 싸우자고 했다. 그러나 나는 호텔을 지켜야 했으므로 나갈 수 없다고 말했다. 오후에 지하실에서 무료하여 책을 보는데 후문을 두들겨 나갔더니 끌려갔던 직원들이 맨발에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고 멍이 들어 처참한 상태로 돌아왔다. 오후 3-5시 사이였다.
"어떻게 안 죽고 왔느냐?"
"31사단에서 돌아온다."
모두 박윤식 외과에서 진찰을 한 다음 집으로 돌아갔다. 호텔에는 경리주임 손병섭 씨만 남았다. 23일 도청 안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수속이 복잡해 안에 들어 가지 않고 상무관에서 분향만 하고 호텔로 돌아왔다. 가끔씩 사람들이 호텔로 와서 화장실과 세면장을 사용했고 화장지 등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뭘 했는지 기억은 잘 안 나고 27일 새벽 연발의 총소리를 들었다.
5월은 반드시 진상규명되어야 하고 당시 실제적 지휘자였던 전두환 등은 반드시 구속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사.정리 주경화)
[5.18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