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man, india, ajman, maldives, polska, hong kong, mongolia, canada, malaya, singapore, malaysia, mocambique, bhutan, cuba, dominica, posta romana, grenada, pakistan, 조선우표, nepal, scotland, republic of rwandaise, , newzealand, arab, republica de guinea, ecuatorial ······."
이 영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대충 눈치를 챘으리라.
어렵게 내려가던 영어 단어 중에 '조선우표'라는 문구가 눈에 들어왔을 테니 말이다.
8월 말쯤 흥사단 사무실에 출근한 벗씨로부터 황급한 전화가 걸려왔다.
점심을 먹은 뒤라 식곤증이 오락가락 할 시간에 시끄러운 전화벨 소리가 울리더니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든 것이다.
"멋진 여보, 흥사단에 당신 앞으로 소포가 와 있다. 소포."
"무슨 소폰데 이렇게 급하게 말을 해?"
"몰라, 나도······. 흥사단에 나왔더니 이렇게 소포가 와 있네?"
"나한테 그쪽으로 올 우편물이 뭐가 있어? 흥사단 쪽에는 모두 우리 집 주소가 등록되어 있는데?"
"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할까?"
"잘못 온 것인지도 모르니 바로 뜯어 봐!"
"알았어."
소포 뜯는 소리가 잠시 들리는가 싶더니 전화기에서 바로 벗씨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여보, 우표첩이다. 우표첩! 우표첩 속에 우표가 가득 들어 있다."
"웬 우표첩?"
"글쎄, 우표첩 속에 편지도 있네? 그리고 조그만 비닐 팩에도 또 우표가 하나 가득 들어 있고······. 오오, 돈도 있다. 돈······. 만 원짜리 한 장이다."
"왜 그리 호들갑이고? 천천히 얘기해 봐. 제발, 천천히!"
"아니, 흥분되어서 그렇지. 당신 앞으로 이런 소중한 선물이 날아오다니······."
벗씨로부터 들리는 얘기에 내가 오히려 흥분되어서 죽겠는데 벗씨가 더 난리를 치니 이럴 어쩌란 말인가.
"그러지 말고, 소포 봉투를 봐, 누가 보냈는지······."
"응, 알았어······. '유...종...상...' 이라고 적혀 있는데?"
"아, 그래? 그 분은 이번에 백두산 산행을 같이 했던 단우님이잖아? 국민은행에 다니시는 분 말이야."
"아, 그 분? 그 분은 이번 여행에서 우리 다래하고 바다한테 용돈도 주셨던 분인데? 부모님 따라 여행 왔다고 참 착하다고 말이야."
"그래, 그 분 맞다. 버스 제일 뒷자리에 앉아서 우리 아이들한테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도 해 주신 분이지. 며칠 전에는 내가 흥사단 카페에 올렸던 ‘백두산 여행기’를 잘 읽었다고 일부러 전화도 주셨어. 그래서 내가 쓴 책 ‘우리 집도 파랑새다’를 한 권 보내드렸는데 그 보답인 모양이다."
"어쩌지, 이 일을? 너무 황송하잖아?"
"그러게 말이야. 편지 내용을 사진 찍어서 멜로 보내 줘 볼래? 도저히 궁금해서 안 되겠다."
"이따가 집에 가면 볼 텐데, 뭐 그래?"
"아니야, 도저히 궁금해서 안 돼. 바로 보내 봐."
벗씨를 재촉하여 바로 받아본 편지는 하얀 A4 종이에 내용이 가득 채워져 있었다.
"멋진욱씨, 벗씨, 다래, 바다, 모든 가족에 안부 보냅니다.
보내 주신 '우리 집도 파랑새다' 책을 받자마자 처음부터 끝까지 단숨에 읽었습니다.
참 인생을 즐기며 훈훈하게 살아가는 가정이라는 느낌이었습니다. (중략)
책 '71페이지에 있는 우표이야기'를 읽고 제가 어릴 때 모았던 우표 책을 보내 드립니다.
그러지 않아도 누군가에게 우표 책을 주어야겠다고 생각 중이었습니다.
우표 책임자를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그리고 책값 1만 원을 동봉합니다. (중략)
유종상 올림. 2007년 8월 22일"
책을 만들어내고 나서 과분한 칭찬을 많이 들었지만 이렇게 구체적으로 표현을 해 가면서 선물까지 보내 주신 분은 처음이었다.
저보다 10년이나 선배로서 어릴 적부터 모아 온 우표를 단번에 저한테 줘야겠다고 결심을 한 것에 대해서 송구스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우표첩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정성이 가득 배어 있는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었다.
우표에 영어 알파벳으로 인쇄되어 있는 것은 어느 국적인지 좀 알 수 있겠는데, 아랍어나 기타 알 수 없는 언어로 적혀 있는 것은 어느 나라 우표인지조차도 모를 정도로 다양했다.
더군다나 5대양 6대주를 넘나들 정도로 국적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새, 나비, 물고기, 꽃, 나무, 기차, 스포츠, 명화, 그리고 역사적 인물 등 동식물과 역사적인 사건을 총 망라한 그야말로 만물 백화점 같은 내용의 다양한 우표들이 1천여 점 이상이나 담겨 있었다.
유종상 단우님은 그 동안 이 우표들을 수집하려고 펜팔이라도 하셨는지 어떤 우표에는 도장이 찍힌 것들도 있었다.
이렇게 유 단우님의 마음과 추억이 흠뻑 담긴 우표를 준다고 해서 날름 받아 챙긴다는 것이 사람의 도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보, 이 우표를 받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또 책값도 보내왔는데 어떻게 하지?"
"나도 잘 모르겠다. 당신이 괜히 설치는 바람에 이렇게 난처한 입장이 되어 버렸잖아?"
"다래야, 어차피 너가 우표를 모으고 있으니 너가 결정해 봐라. 어떻게 할까?"
"저도 모르겠어요. 그 때 용돈까지 주셔서 억수로 죄송했는데요."
"그럼, 다래야, 너가 편지 좀 써라. 백두산 여행에서 좋은 말씀 해 주셔서 참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애지중지하시던 우표를 이렇게 또 보내 주셔서 어쩔 바를 모르겠다고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다래는 이미 받은 우표첩을 돌려 드리기는 싫었는지 감사 편지를 쓰겠다는 약속만 하고는 개학을 했다는 핑계를 대고 서울로 가 버렸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주는 것도 있고 받는 것도 있지만 막상 이번처럼 이렇게 귀중한 선물을 받아 보니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에 대해 결심이 서지를 않았다.
그 동안 책을 내고 거기에 따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는 좀 쑥스러운 면이 많았는데 이렇게 직접 과분한 사랑을 주시는 것에 대해서도 아직 익숙하지가 않았다.
이 일을 고비로 삶에 대한 태도를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지만 유 단우님께는 어떻게 인사를 드려야 할지 아직도 결정하지 못 했다.
이러다 또 그냥 넘어갈 것 같기도 하다.
하여튼 우표첩 같은 과분한 선물에는 적응이 안 된다고나 할까.
가문의 영광이 또 하나 생기게 되었구나.
2007년 9월 8일
멋진욱 서.
첫댓글 보내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종상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