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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우리집 대소사
1. 집 신축
2. 혁범 결혼식
3. 장손자 탄생
4. 큰아들 토론토에 주택 구입
5. 자서전 반응
6. 혁범 결혼 승낙
7. 처음 살아보는 아파트
8. 해외 가족여행
9. 여수 엑스포
10. 코 눈 수술
1. 집 신축
동네에서 옛날 집을 신축하지 않고 사는 집은 우리 집밖에 없다.
80년에 주택을 구입하여 33년간 한집에서 줄기차게 살아왔다.
지하실에서 1층 2층 다락방까지 내 손때가 묻지 않은 곳이 없다.
연탄온돌에서 기름보일러로 바꾸고 가스보일러로 교체 할 때까지 풍상을 겪으며 살아왔다.
직접 도배를 하지 않나 니스나 페인트칠을 하지 않나 수도 배관을 수리하지 않나 각방마다 필요하게 못질을 하고 지붕에 물이 새면 틀어막으러 다니질 않나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것 같아 생각할수록 정이 가는 집이다.
지붕에는 태양광 발전을 하여 전기도 절약하고 정원에 나무도 있고 방도 넓고 여러 개가 있어 살아가는데 편하기 그지없었다.
금년 구정이 지나서 집사람과 아들이 집을 허물고 신축을 하잔다.
주영이네는 벌써 두 번씩 짖고 16호 유안네도 또다시 짖겠다고 우리보고 같이 짖자고 한다.
그 바람에 16호와 같이 손잡고 건설 회사를 찾아가서 집을 짓기로 하였다.
건설회사가 5월 1일 공사를 시작하여 충분히 5개월이면 완성하니 넉넉잡고 우리보고는 다른 곳에서 6개월만 살다 오란다.
건설회사가 자금이 부족하여 차일피일 시간을 끄는데 연말이 되서야 간신히 준공이 떨어졌다.
연말에 추가 공사를 하다 앞집에서 민원을 넣어 곤욕을 치렀다.
우리는 2013년 2월 6일 정식으로 입주를 하였다. 아직도 후처리 마무리 공사는 남아 있다.
이삿짐 책
30여년 만에 집을 이사하게 되어 이삿짐을 싸게 되었다.
2층 주택을 헐고 그 자리에 신축을 하려니 완공 할 때까지 본의 아니게 피난살이를 하게 되었다.
30년이 넘은 헌집이라 어데서 어떤 고장이 나고 어디가 물이 새고 어디가 부서져 나갈지 예측불허라 새로 지을만한 시기는 되었다.
그래도 30여 년간 살았고 고장난데는 고치고 살기 편하게 여기저기 손을 보다보니 집에 정이 들고 손때가 묻은 집이라 허물어 버리기에는 너머나 아쉬웠다.
모처럼 이사를 하려고 하니 문제가 보통이 아니다.
지하실, 1, 2층 다락방에 까지 쌓여있는 살림살이는 정리하여 버리고 버려도 한이 없다.
개인 주택에 오래 살려면 주인은 반 목수가 되어야한다.
한겨울 밤에 수도 파이프가 터지면 수리공을 불러도 올 리가 없으니 자기가 응급처치를 하여 공사를 끝낼 수 있는 공구와 부속품이 항상 준비되어야 한다.
안방의 난방 파이프가 오래되어 물이 새서 지하실에 물이 떨어져 의사의 청진기를 동원하여 안방의 물새는 곳을 찾아서 수리하기도 하였다.
집에 물이새면 방수처리와 미장이 흉내까지 다 내어야 한다.
외장의 페인트칠도 해야 되는 것은 기본이다.
오래된 집을 문제가 있을 때마다 수리공을 불러 공사를 하면 수리비가 의외로 비싸 몇 번 출장을 오면 집 한 채 값이 날라 가는 것 같다.
경제적인 측면을 보면 주인이 고생을 하더라도 선 목수가 되어 직접 자기 손으로 집을 수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미장이가 쓰는 흙손 과 멩가고데 목수가 쓰는 빠루와 톱을 비롯하여 대패 부라이어 롱노오스 대소 망치와 드라이버 등 공구 세트가 지하실 장롱 같이 큰 공구함에 꽉차있다.
이제 이사를 가야하고 새집에서는 필요가 없으니 수년간 손때가 묻은 이 공구들을 모두 버려야 한다.
스포츠 용구도 마찬가지다.
스키를 오래 타다보니 집사람과 나의 스키 세트가 6세트가 있는데 지인들에게 자식들을 위하여 가지고 가라고 하여도 가지고 가지를 않는다.
음악 레코드판도 월남 PX에서 사온 것부터 비디오테이프 CD가 몇 박스 있는데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아 쓰레기 처리를 해야 했다.
어찌된 일인지 레코드판이나 비디오테이프를 재활용 아저씨도 가지고 가지 않는다.
나는 옷을 별로 사지 않았는데 버리지 않고 수년간 모아진 것이 산더미 같다. 수십 년간 거의 버리지 않고 구석구석 쌓아 놓았으니 그 양이 대단하다.
집사람이나 자식과 나의 입지 않는 옷은 과감히 장애인 재활용통에 집어넣었다.
재활용통이 넘쳐서 가지고 가면 또 넣고 가지고 가면 또 넣고를 반복하다 보니 정리가 되었다.
안방에 걸어놓은 청전제자가 그린 대형 액자와 마루에 걸어놓은 내가 좋아하는 사계군방 액자도 처치곤란이다. 액자를 걸어놓는 것이 유행할 때 거실이나 계단에 걸어놓았던 계단의 크고 작은 여러 액자도 과감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어 그림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였다.
마당에 각가지 술병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고는 이웃집에서 골동품집이라고 했을 거다.
2층 큰방에는 벽 한 면을 붙박이 책장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 2층의 책장과 1층의 내 컴퓨터 방에는 큰아들과 나의 책이 꽉차있다. 2층 다른 방에는 작은아들 책이 책꽂이에 꽉 차있다.
이 책들을 처리하는 것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1차 정리하여 고물상 아저씨에게 책을 한 리어카 가득 들려주고 났는데도 없어진 표시가 나지 않는다.
2차로 책장과 책꽂이의 책을 특별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방바닥으로 내려놓고는 아예 고물상 아저씨를 2층 방으로 불려 올렸다.
고물상 아저씨는 좋아하겠지만 이 책은 임자를 만나면 제법 쓸 만한 것들도 많은데 신축하고 방을 줄여가는 입장이라 인정사정 볼 입장이 아니다.
컴퓨터 IT 책들은 한권이 2, 3만 원 이상 가며 아트지로 인쇄되어 책이 상당히 무겁다. 내 책은 대학교 교과서부터 대학원의 참고서적 집사람의 의무 원서 그리고 24권의 대백과사전 동의보감 회사 다닐 때 보던 전문서적 등 이제는 책을 보지 않겠다는 결심을 한 사람같이 열심히 버리다 보니 지금은 책장이 헐렁하다.
무협소설 영웅문이나 태백산맥 같은 소설은 첵크 대상도 되지 않아 주저 없이 버렸다.
아들도 지금은 컴퓨터에서 찾으면 되니 웬만하면 다 버리란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미술전집과 앨범은 한 50권 싸들머 지고 이사를 왔다.
옛날에 사진을 찍어보겠다는 일념으로 사진잡지 월간 영상, 월간 사진, Photograph, Ashahi photo, 또 각종 사진전 책자 등 약 2백여 권을 필요한 사람 찾다가 실패하여 고물상 신세가 됐다.
이사를 와 보니 이삿짐 속에 사진 암실기법 예술 촬영법등 아날로그 시대의 수동 카메라 찍는 법과 사진전등 소책자가 한보따리 따라왔다. 이 책을 사진 좋아하는 친구에게 옛날 사진 책이 필요 하느냐고 귀띔을 하여 주면 얼씨구나 하고 달랠 줄 알았는데 이 친구가 콧방귀도 안 뀐다.
우리나라가 인구가 팽창하여 단독주택에서 아파트로 주거가 변환되어 모든 살림살이는 줄어들고 당장 필요 없는 물건은 버리는 문화가 형성되어 옛날 고물을 찾기가 매우 어려운 실상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이 버리는 문화는 국가에 조금도 보탬이 되지 않는데 모든 사람이 편안하고 비싸고 사치스러운 것만 찾는다.
국민소득이 향상 되였다고는 하나 바람직하지 않은 문화다. 버리다 보니 국가뿐 아니라 개인의 역사 흔적도 사라지는 것 같다. 실생활 용품도 당장 필요하지 않으면 쓰레기통으로 가니 국부의 낭비다.
나는 2, 3개월 동안 우리 집의 지하실 1, 2층 다락방에 쌓여있는 가재도구를 정리하고 버리느라고 몸살이 나서 한참 고생을 하였다.
30년이 넘게 산 집에 묵은 먼지를 턴다고 생각을 하니 시원하기도 하다.
언제 구입했는지 기억도 없지만 꾀 쓸만한 물건인데도 과감히 버려야했다.
물건이 아깝고 애착은 가나 부둥켜안고 있을 수도 없고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손에서 놓을 수밖에 없다.
지금은 집사람이 우리도 한번 아파트에서 살아보자고 하여 일생 처음으로 아파트 26층에 둥지를 틀었다.
아파트 생활이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 화장실에서 끈을 잡아당겨보면 경비 아저씨가 뛰어오고 손님이 왔다고 문을 열어 주려면 이 버튼 저 버튼 누르다 경비실에서 전화가 온다.
칠십 늙은이가 실수를 연발하며 아파트 사는 연습을 하고 있다.
아파트가 편하고 살기 좋다지만 흙 한번 밟아보지 못하는 아파트에서 집에 박혀 있으면 하루 종일 텔레비전과 싸움만 하니 운동량이 부족하여 산으로 뛰쳐 가는 수가 상책이다.
산에 올라가 보면 성냥갑같이 쌓아놓은 아파트가 늘비하다. 수도권뿐만 아니라 지방에도 아파트 아니면 집이 아닌 것같이 아파트 풍년이다.
세계에서 늦게 시작한 우리나라의 아파트열풍이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아파트가 많은 국가가 된 것 같다.
이삼십년 지나면 이 아파트들이 다 노후하여 재건축하거나 헐어버리면 이 쓰레기들을 다 어디에 버릴지 생각만 하면 답답하다.
아파트에 살면 편하고 문화생활 하는 것 같은데 노망이 들었나. 쓸데없는 남의 걱정까지 하는 것을 보면 나는 뒤떨어진 세대가 되어 버렸다.
지금 나는 아파트에서 편안한 생활을 하며 새로 지은 집에서 노후를 보낼 생각을 하니 마냥 즐겁기만 하다.
2. 혁범 결혼식
작은아들 혁범이가 12월 23일 3시 강남역 삼성타운 삼성전자 다목적 홀에서 결혼식을 하였다.
신부는 용궁김씨 미연이로 편모슬하에서 자랐고 성결대 복지학과 출신이다.
둘이 10여 년간 사귄 사이로 나이는 양띠 동갑내기다.
예식일이 추운 겨울에 크리스마스이브 전날 일요일이고 시간도 점심시간이 지난 3시라 하객에게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장소는 교통이 편한 강남역이라 그나마 다행스러웠다.
하객은 주로 신랑 측 사람들이고 혁범이 친구들이 많이 와서 기념사진도 두 번에 걸쳐 찍었다.
폐백 시간을 조절하지 못해 폐백이 끝나고 식당에 내려갔을 때는 하객이 거의 다 돌아간 후라 인사도 제대로 못하였다.
식사는 건물 지하에 있는 한식당 중식당 양식당으로 선택의 폭을 넓혔는데 주로 한식당에 모이고 젊은 하객은 양식당으로 갔다. 중국식당이 제일인기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신혼 방은 신축중인 집에 4층을 쓰라고 하여는데 4층이 결혼식 전까지 완성을 하지 못하여 신혼여행 갔다 와서 신혼 방을 꾸미라고 하였다.
건설업자가 뒤늦게 결혼식 전에 공사를 마치려고 일을 하다 옆집의 민원에 걸려 곤욕을 치루고 기간만 지체하게 되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새집에 와서 첫날밤을 보내고 5박6일 보라카이 신혼여행 갔다 와서 처갓집에 초행을 치른 후에 새집에 와서 살기로 하였는데 그때까지도 4층이 완성되지 못하였다.
결국은 2013년 1월18일 4층에 들어가 신혼살림을 차리게 되었다.
청첩장 문구
두 사람이 진실과 이해로써 하나로 이루려 합니다.
귀한걸음 하시어 저희의 새로운 출발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늘 처음의 마음처럼 행복하게 살겠습니다.
3. 장손자 탄생
2012년 9월 14일(음력4345년 7월 28일) 12시 12분에 장 손자가 캐나다 토론토 병원에서 제왕절개수술로 태어났다.
금년 1월 한국에 와서 태기가 있어 손주를 보게 된 것이다.
아들보다는 큰 며느리가 손자를 보려고 무척 노력을 한 모양이다.
덕분에 가문의 계승은 이어가게 되었다.
이름은 돌림자로 권문의 37세손이니 순(純)자 항렬이라 순용(純瑢)이라고 지었다.
권순용(權純瑢). 권세권(權) 순수할순(純) 패옥소리용(瑢)이다.
사주는 생년은 임진년(壬辰年) 생월은 을유월(乙酉月) 생일은 무인일(戊寅日) 생시는 무오시(戊午時)다.
관운과 출세운 금전운이 동시에 있으며 자기가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결실을 맺으며 통솔력이 있고 마음은 유순하며 의지력이 굳고 인내심이 있다.
사주팔자도 잘 받고 태어났다고 하니 아무쪼록 무럭무럭 자라 집안의 기둥이 되어라.
큰 인물이 된다고 하니 지켜보겠다.
4. 큰아들 토론토에 주택구입
혁진 주택 구입
큰아들인 혁진이가 토론토에 2층 단독주택을 구입하였다.
방도 크고 주차장에 뒤뜰도 있어 혁진이 부부가 살기엔 큰 편이다.
외국에서 주택을 장만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데 혁진이가 이제 수입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다. 은행에서 20년 분할상환으로 론을 썼는데 월 상환하고도 생활에 여유가 생긴단다.
서울의 우리 집을 5월부터 신축하고 있는데 혁진 이는 캐나다에서 주택을 구입한 것이다.
5월 25일 입주하고는 매우 흡족해 하는 것을 보고는 우리 마음도 기쁘다.
2005년 캐나다 윈저에 있을 때 변호사와 얽혀 개인주택을 떠안고는 은행 빚에 쪼들려 노심초사하는 것을 보고는 부모의 입장에서 도와주지도 못하고 마음만 안쓰러웠었다. 윈져집을 조금 손해가 나더라도 팔라고 하였으나 여의치 않아 한국 사람에게 세를 주고 지금까지 부둥켜안고 있다.
그래서 혁진 이는 캐나다 윈저에 한 채 토론토에 한 채 본의 아니게 두 채의 집을 보유하게 되었다.
5. 자서전 반응
작년 말에 자서전 ‘생각나는 대로 적은 나의 인생기’를 출간하여 연말 연초에 친구들 모임에 참석하여 한권씩 나누어 주었다.
처음서부터 판매목적은 아니었고 출세 못한 사람도 자서전을 쓸 수 있다는 신념으로 내가 실명으로 서술하였다.
친척들은 내 책을 읽어보고 자신을 더 높일 수 있는 것을 왜 비하해서 썼느냐고 안타깝다고 한다.
친구들은 내가 그렇게 유명인사인지 몰랐다고 나를 다시 본다고 한다.
책을 다 읽어보니 내가 그렇게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는지 몰랐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한다. 또 편하게 재미있게 잘 썼다고 문필가로서의 실력이 있다고 한다.
출판사 사장은 편집을 한다고 하더니 옛날 문구라 수정을 해보니 제 맛이 안난다고 수정 없이 원본대로 출판하겠다고 하여 내가 그렇게 하라고 하여 원본을 수정 없이 출간한 것이다.
대단한 책은 아니지만 내가 성의껏 쓴 책이 예상외로 반응이 좋아 기분이 좋다.
6. 혁범 결혼 승낙
혁범이가 여자친구 김미연이를 데리고 와서 결혼을 하겠다고 한다.
혁범이와 양띠 동갑내기고 10년간 사귄 사이다. 편모슬하에서 오빠와 살았고 대학 졸업 후에는 집에서만 생활을 하였다.
10년 전 혁범이가 우리 부부에게 미연이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때 나는 걸출난 인물이 아니더라도 둘이 나이가 어리더라도 본인들이 결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더라도 나는 결혼을 강행할 마음으로 미연이를 만났다.
나는 내가 늦게 결혼을 하여 아희를 가졌을 때 나의 친구들은 손주가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다니고 있을 때다.
큰아들인 혁진이가 장가를 가지 않았더라도 여자만 마음에 든다면 작은아들 혁범이를 결혼 시켜야 되겠다는 나의 마음은 그렇게 조급해 있었다.
혁범이 여자친구 미연이를 처음보고 어떻하면 내 마음에 드나 내 마음에 드는 면은 어대가 있나 하고 빨리 결혼 시킬 요량으로 좋은 점만 찾으려고 노력을 하였으나 허사였다.
이런 미연이가 10년 만에 다시 나타난 것이다.
혁범이는 우리 몰래 계속 만나고 있다 지금 결혼하겠다고 데리고 온 것이다.
이 시점에서 가타부타 따질 일도 아니고 자식이 일생동안 행복하게 살겠다면 결혼을 하라고 승낙을 하였다.
여의도 진진바라에서 양가 상견례를 하였다.
따님을 잘 키워주셔서 감사 합니다.
미숙한 게 많으니 잘 가르쳐 주십시오
양가의 수인사가 끝나고 서로 처음 보는 입장이라 대화가 자연스럽지 않고 서먹하다.
우리부부와 미연이 어머님과 부산서 올라온 작은 아버지 그리고 당사자 둘 도합 6명이 식사를 하며 대화를 하였다.
나는 둘이 결혼을 하면 논현동 새로 짖는 집 4층에 신혼살림을 차려주고 나는 5층에 살겠다고 하였다.
상견례가 끝나면 마냥 즐거워야 하는데 나는 무덤덤하다.
7. 처음 살아보는 아파트
우리 집사람이 아파트에 한번 살아보는 것이 소원이란다.
우리나라에 그렇게 많은 아파트를 우리는 한번도 살아본 적이 없다.
예전에는 아파트가 없었고 아파트 붐이 일어났을 때도 부동산에 눈을 뜨지 못하여 단독 주택에 계속 살았다.
아파트가 처음 시작할 때엔 아파트 가격이 단독주택의 가격보다 샀었는데 같은 평수의 아파트가 지금은 주택보다 5배나 비싸니 앉아서 손해 본 꼴이다.
아파트에서 문화생활 한번 해 보자는 집사람의 소원이 이루어 졌다.
지금 살고 있는 단독주택을 허물고 다세대 주택을 짓기로 하여 집을 철거하니 부득이 이사를 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혁범이 근무지와 내 사무실을 기준으로 하여 안양으로 정하고 안양 역에 붙은 foal안 아파트 26층에 전세를 들었다. 집을 완성할 때까지 한시적으로 아파트 생활을 하는 것이다.
집사람의 소원은 풀어 아파트 생활을 하는데 처음이라 어딘지 어색한 느낌이 든다.
아파트 생활이 편하다고는 하나 집속에 가쳐 있는 것 같고 밖에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감지가 되지 않는다.
베란다엔 결로 현상이 심해 금세 곰팡이가 슨다.
나는 아파트보다 주택 생활이 더 좋은 것 같다.
8. 가족여행
혁진이 식구가 캐나다에서 온 바람에 혁범이 까지 온 식구가 가족여행을 하였다.
휴양지인 필리핀의 보라카이로 여행지를 잡고 한 겨울에 열대지방으로 휴양 여행을 떠났다.
가이드가 우리보고 가족여행이 행복해 보인다고 한다.
우리 일생에 가족 해외여행은 이번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공산이 크다.
보라카이 여행
여행지 ; 보라카이(필리핀)
일 시 ; 2012년 1월 12일 -1월 15일. 3박4일
여행사 ; 칼투어. 현지가이드 Blue 0917-327-5522
호 텔 ; Boracay Regency Beach Resort
금 액 : 1,030,000/1인당 + 유류할증료 137,000 x 6인(소아 80%) = 6.796.000
큰아들 부부가 손녀를 데리고 내 칠순잔치에 참석하겠다고 귀국하였다.
장시간 휴가를 내어 오는 아들이 고맙기는 하나 캐나다에서 오는 여행경비가 만만치 않아 오는 것도 부담이 된다.
자기들은 세 살배기 손녀를 한국 유아원에 데리고 가서 한국 아희들과 만나 자연스럽게 한국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겠다는 목적에 무게를 둔 것 같다.
내 생일은 동지섣달 추운 겨울이다.
집사람은 큰애도 오니 집안 식구가 다 모인기회에 열대휴양지로 온 가족이 여행을 하면 큰 의미와 보람이 있을 거라고 여행 계획을 하고 있었다.
여행가기 위하여 둘째 아들도 휴가를 낼 수 있다고 한다. 큰아들은 캐나다에서 오자마자 예상하지도 않는 여행에 동참하게 되여 가긴 가지만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여행지를 물색하다 필리핀 보라카이로 결정을 하였다.
여행경비는 우리가 내려고 하니 두 아들이 반부담으로 자기들이 내겠단다.
휴양지에 가려면 호텔을 특급호텔로 예약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휴양하러 갔다 스타일만 꾸기며 돈은 돈대로 나가게 마련이라 호텔에 신경을 썼다.
보라카이 리젠시 리조트로 결정을 하고 호텔과 직계약을 하려니 모든 경비가 항공료 포함하여 똑같은 조건에 여행사보다 비싸다.
인천공항에서 칼리보 공항까지 4시간 직행하여 공항에 내리니 열대의 온기가 확 품겨오는데 겨울 내복을 입고 온 우리는 비상대책으로 겉옷을 벗었다.
공항에서 옷을 갈아입고 버스에 오르는데 큰애가 안나온다.
단체여행이라고 생각을 안 하고 손녀 옷까지 여유 있게 갈아입고 마지막에 나오니 버스에서 기다린 손님들에게 눈치가 보인다.
리젠시 비치 리조트에 도착하니 비치에 연이어 붙어있는 호텔 룸이 위치가 최적이고 해안가의 비치를 호텔 것 같이 사용하여 편안하기 그지없다.
바다는 깨끗하고 모래는 하얗고 물이 맑다. 바닷물은 염기가 많아 짜며 수영하기 쉽게 몸이 뜬다.
호텔이 객실도 많으며 수영장도 3개씩이나 있는데 디럭스한 맛은 안 난다. 그래도 보라카이에서는 제일 좋은 위치에 제일 좋은 호텔이다.
아침식사를 호텔식당에서 하는데 식당위치가 안쪽으로는 수영장이 붙어있고 밖으로는 해안 비치에 붙어 있다.
온 식구가 해안 쪽으로 앉아 식사를 하는데 모든 식구의 얼굴이 환하다. 온 식구가 모여 바다를 보며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보면 VIP 가족으로 보겠다. 밥투정하는 손녀도 즐거워하며 식사를 잘 하고 있다.
식당에서 식사하며 해안비치를 보니 바닷물이 파랗고 아름다워 즐거운 우리 식구를 축복해주는 것 같다.
호텔 본관에 붙은 수영장을 갔다.
어린이용 수영장도 있어 주브를 들고 손녀를 태우는데 손녀 고은이가 수영장에 처음 와 보는 것 같다. 세 살배기 말도 제대로 못하는 고은이가 처음 온 수영장이 신기하기도 하고 주브를 타고 노니 즐겁기 한이 없는 모양이다.
일생 처음 수영장을 접하니 만화 뽀로로로 눈에 스키 타는 것 만 보다 수영장에서 직접 물을 헤치며 수영을 하니 새로운 세상을 보는 것 같을 거다.
열대지방이라고는 하나 날씨가 우리나라 초여름 날씨같이 물에 조금 있으면 춥다.
어린애가 추우니 방에 들어가 뜨거운 물로 샤워하고 몸을 덥히라고 하였다.
우리는 해안 비치로 가서 해수욕을 할 테니 비치로 나오라고 하고 손녀를 호텔방으로 보냈다.
보라카이의 비치는 해안에 안전요원도 없이 수영 객이 알아서 즐기라는 곳이다.
모래알도 가늘고 희고 고우며 비치의 경사도는 완만하여 한참을 걸어도 물의 깊이가 가슴을 차니 위험하지는 않다. 물이 맑아 눈을 뜨고 바다 속을 보면 바다 속이 선명하게 보인다. 물이 맑아서 그런지 물속에서 눈을 떠도 눈이 쓰라렵지가 않다.
손녀 고은이가 금세 나타났다.
수영장도 처음인데 바닷물도 처음 맛보는 것이다.
모래를 밟고 바닷물에 들어가는 것 자체가 신기한 것이다. 조그만 파도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바닷물이 입에 닿아 짜니 당황한다.
날씨가 뜨거우면 해안가에서 재미있게 놀 수 있었는데 날씨가 서늘하여 바닷가에서 노는 맛을 제대로 맛보지 못한 체 손녀를 호텔방으로 보냈다.
오후에는 요트를 타고 바다낚시와 스노크링을 하였다.
요트가 작아서 롤링을 하여 고은 이를 근심하였는데 다행히 고은이가 낮잠을 자는 바람에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
나는 바다낚시에 열대어를 건저 올렸다. 혁진 이는 하얀 점박이 구렁이 같은 바다뱀을 잡아 올렸다. 가이드가 가이드 생활 15년에 이런 뱀을 잡은 것은 처음 본다며 열심히 사진을 찍는다.
스노크링을 하는데 바다 속의 경치가 아름답지 못하고 예쁜 열대어도 별로 안 보인다.
비치에서 오일 마사지도 온 식구가 하였다. 고은이가 엄마 마사지 하는 옆에 앉아 구경하며 보채지도 않고 잘 참아준다.
밤에는 호텔방에서 식구들이 모여앉아 열대과일 맛을 보며 여행의 흥취를 느꼈다.
D Mall에서 샤쓰에 직접 그림을 그려 파는 옷가게에서 두 아들에게 페인팅한 검은 샤쓰를 하나씩 사주었다. D Mall은 섬에서 하나밖에 없고 제일 크고 옛날과 현재, 재래와 신식이 혼재하여 있는 시장인데 한번 구경할만하다.
세쨋날 오후에는 세일링 보트를 즐기러 갔다. 보트에 세일이 두개인데 큰 세일은 바람을 잡고 작은 세일은 방향을 잡는다. 무동력으로 바람의 힘으로 이동하는 이 전통적인 배는 양쪽 날개에 그물망을 달고 한쪽에 서너 명씩 관광객을 태우며 바다를 한바퀴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대로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은 괜찮다. 저녁노을을 바라보며 배위에서 바닷바람을 쏘인다는 것도 흥취 있는 일이다.
식구들이 예상한 것만큼 재미있고 즐겁게 노는 것 같지 않아 서운한 감이 든다.
자발적으로 계획해서 오는 여행과 끌려서 오는 여행의 차이일 거라고 생각해 보았다.
여행 와서는 자기가 즐길 수 있는 한도 껏 자기가 즐기도록 해야지 남에게 끌려서 즐겁게 놀면 여행의 즐거움이 반감된다. 또 여행 땐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여행 다닐 때는 어린아희가 여행팀에서 제일 신경 쓰이는 존재다. 어린애가 울거나 보채면 온 여행객의 신경을 자극하여 어린이가 오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번 여행에 손녀 고은 이는 울거나 보채지 않고 다른 여행객에 피해도 주지 않아 고맙게 생각한다.
온 가족이 추운 겨울에 뜨거운 열대지방으로 여행 잘 갔다 왔다.
9. 여수 엑스포
여수에서 세계무역박람회인 엑스포가 여름에 열렸다.
집을 짓는 바람에 계획했던 해외여행도 못가고 집 공사에 신경을 쓰다가 바람도 쏘일 겸 여수 엑스포 구경을 가기로 하였다.
처음 엑스포를 개막하고는 여행사에서 여행객도 모집하고 코레일 에서도 할인을 하고 주최 측에서는 입장권도 할인을 하는 등 열심이었다. 한달이 가니 시들해져 손님이 뜸해지고 여수 지자체에서는 공짜 입장권을 남발하기에 이르렀다.
이 시기에 집사람과 여수 내려가서 공짜 손님과 들볶기며 엑스포 구경을 하였다.
8월 9일 KTX도 엑스포행이 매진이 되어 무궁화호로 내려갔다. 여수 엑스포장에 입장을 하니 인산인해라 한 전시장에 들어가려고 하여도 한 시간 줄을 서서 대기하는 것은 보통이다. 전시장을 몇 개 보지도 못하고 밤이 되어 여관으로 돌아왔다.
여수의 전 숙박업소는 다 만원이고 마을 회관 경로당까지 숙소로 활용을 하였다.
여수 지자체에서 만원씩 하는 입장권을 공짜로 남발을 하여 당일 입장객수가 엑스포 개장한 이래 최고로 많았다는 것이다.
재수 업게 사람이 제일 많은 때 엑스포를 가서 줄서다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또 줄서기 하다 귀경하였다.
전시장은 감동받을만한 곳은 못 찾았고 빅오O 정도가 눈길을 끌었다.
나는 첫날은 엑스포 구경하고 다음날은 해변에서 쉬며 회도 먹고 오려고 계산했으나 큰 계산 착오를 한 것이다.
10. 코 눈 수술
1년에 눈 코 수술을 다 했다.
집을 짓거나 집을 크게 수리를 하게 되면 손재가 따른다고 한다.
금년에 내가 개인주택을 허물고 다세대주택을 지으려니 내 몸에 칼을 대서 코수술 눈 수술을 하여 손재수를 대신하는 액땜을 했다고 위안을 한다.
코 수술
잠을 자는데 입안에 침이 말라 꼭 개숫물을 떠다놓고 하룻밤에 몇 번씩 잠을 깨서 입안을 물로 추겨야한다.
자면서 입을 벌리고 자기 때문에 입안의 침이 마르는 것 같다.
나는 침샘의 한줄기가 막혀 입속이 마르는 것으로 생각하고 침샘과 연결되어 있는 코를 수술하가로 하였다.
코도 축농증에 코에서 코가 나오지 않고 코가 말러 있어 세수할 때 꼭 콧속으로 물을 넣고 콧속의 습도를 맞추고 있는 상태였다.
콧속으로 물을 흡입하고 입으로 나오게 하는 방법으로 몇 년을 했는데도 효과가 별로 없어 수술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코로 물을 들이마시고 그 물을 입으로 나오게 하는 것도 처음에는 머리가 띵하다. 수영하다 코로 물을 마신 것같이 코가 얼얼하나 계속하다 보면 별로 힘들지 않고 쉽게 할 수가 있다.
코로 물을 마셔 입으로 나오게 하는 코 소제도 처음에는 소금기가 있는 미지근한 물로 시작을 하나 나중에는 찬물로 하여도 어렵지 않다.
코 수술을 하면 축농증도 낳아 킁킁거리지 않고 침샘이 뚫려 잠을 자는데 입도 마르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수술일자를 잡았다.
삼성병원에 수술일자를 알아보니 한두 달 대기는 보통이다.
제일 빨리 수술할 수 있는 이비인후과 김효열 교수를 찾아 3월3일 C/T 촬영을 하고 3월20일 양쪽 코 수술을 하였다(1,280,000원)
19일부터 3박4일 입원을 하고 몇 개월간 외래치료를 받았다.
코 수술을 받고나니 코가 뻥 뚫려 시원하다. 코에다 물을 넣으면 축농증으로 차있던 동공에 빈 공간을 축농증 대신 물이 차있어 고개를 숙였다 들면 코에서 물이 뚝뚝 떨어진다.
코 수술을 하면 침샘이 뚫려 잠을 잘 때 입속이 마르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으나 결과는 실패다. 개숫물 떠놓지 않고 잠을 좀 편안하게 자려고 수술을 하였더니 내 맘대로 안 된다.
지금도 잘 때는 머리맡에 개숫물을 떠 놓고 잔다.
눈 수술
늙어 노안이 되서 그런지 컴퓨터를 오래 붙잡고 들여다봐서 그런지 몇 년간 눈이 급속히 나빠지기 시작하였다. 돋보기 도수가 1.5에서 2.5를 넘어 지금은 3.0을 써야 되는 시력이다.
병원에 가니 백내장 시초라며 조금 더 참고 더 악화되면 1년 후에 수술을 하자고 한다.
안과 전문이라는 영등포 김안과병원을 찾아가니 수술을 하잔다. 1년 후에 할 바엔 지금 하는 것이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6월 30일 수술 일자를 잡았다.
진료 검진 비 4십만 원 빼고 한쪽 눈에 55만원씩 1,100,000원이 수술비다. 국가 의료공단에서는 한쪽 눈에 2십만 원씩인데 여기는 적용이 아직 안되는 모양이다. 이름이 난 안과라 그런지 수술 인원이 줄을 서 있고 거의 다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들이다.
수술은 30분인데 대기시간이 있어서 그런지 입원을 하루 시킨다. 자지 않고 낮에만 입원과 동시에 퇴원하는 수법은 처음 봤다.
눈의 중요도를 알기 때문에 수술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어쩌나 하고 매우 근심이 되었다.
왼쪽 눈을 수술하고 일주일 후에 오른쪽 눈을 수술하기로 하였는데 집도의 이호경교수가 휴가를 가는 바람에 일주일 더 늦추어 7월 14일 오른쪽 눈을 수술하였다.
왼쪽 눈이 약간 이상한데 의사는 이상 없다고 한다.
외래진료를 받으며 안약을 사서 넣고 마지막으로 11월 1일 원시 근시 안경 두개를 샀다.
거리. 좌 우 -0.75(SPHERE) -0.25(CYLINDER) 90(AXIS) 62/60(PD)
읽기. 좌 우 +2.75(ADD)
수술 후에 책을 보다 먼 산을 보면 초점이 바로 맞춰지지 않고 흐릿했다가 서서히 맞춰진다.
수술 전에 예상한 것과는 달리 명쾌하지는 않으나 불편한지는 않다.
원시안경을 쓰고 운전을 하면 물체가 잘 보이고 기분도 좋다. 그런데 안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 아직 습관이 안 되어 거북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