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으로 범벅된 몸으로 덕유산 정상을 오르다
(기행 수필 덕유산 제3편)
루수/김상화
맑은 공기를 마시며 새들이 조잘대는 감미로운 소리와 함께 덕유산 구천동 계곡을 따라 상류로 올라간다. 올라가는 오솔길은 잘 닦아 놓아 걷기가 매우 편하다. 게다가 곱게 내려앉은 햇살도 우리를 보호하듯 감싸 안는다. 일주문을 막 통과했다. 조금 걸어 올라가니 백련사가 아담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백련사(白蓮寺)의 역사와 유래는 2편에서 자세히 기록하였다. 단 경내의 모습을 소개하고 목적지인 이 산의 정상 향적봉을 향해 올라가려 한다. . 조심스럽게 올라가 보니 대웅전이 어서 오라고 하며 반겨준다. 품위와 멋이 깃들어진 대웅전 글씨체의 현판은 한석봉이 썼다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6.25 전쟁 때 모두 불타 1960년대에 복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 쓴 아름다운 글씨가 다른 곳에서 복사해온 것이 아닌가 필자는 생각이 든다.
아기자기하게 건축물이 자리 잡은 백련사(白蓮寺)의 경내를 모두 구경하고 나왔다. 다행스럽게도 백련사 옆으로 향적봉으로 가는 길이 있다. 목적지를 향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일까? 처음부터 깔딱 고개가 기다린 듯 어서 오라고 손짓한다. 지금부터 고생 좀 해보라고 하는 소리가 귓전에 들리는 듯 느껴진다. 추운 겨울이지만 따사로운 햇살이 내려와 겨울을 힘겹게 이겨내는 나무들에 사랑을 퍼부어 댄다. 그런데 고운 햇살도 나에겐 부담스럽다. 몸에서 정신없이 흐르는 땀을 주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힘은 들어도 어찌하겠는가? 아무리 힘든 산행이라 할지라도 해낼 수 있다는 정신무장이 되어있다. 목적지를 향해 뚜벅뚜벅 걸어 오라간다. 지도를 펼쳐 보니 백련사에서 향적봉까지 거리가 2.5km이다. 이 어마어마하게 긴 코스가 깔딱고개로 이루어졌다고 한다.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찔하다. 향적봉(香積峰)이 얼마나 아름답기에 필자를 이토록 고생시킨단 말인가?
고산 지대에서 느낄 수 있는 나무의 독특한 향기가 바람을 타고 날아온다. 내려앉은 흰 눈은 볕에 반사되어 보석처럼 반짝이며 빛을 토해 낸다. 눈이 쌓인 깔딱 고개는 아이젠을 하였지만, 걸을 때 가끔 미끄러지기도 한다. 있는 힘을 다해 올라온 것이 약 1km 정도 되는 것 같다. 그때 옆에서 다람쥐 한 마리가 고개를 쳐들고 그윽한 눈망울을 굴리며 쳐다본다. 얼마나 반가운지 모른다. 너무도 힘이 들어 주저앉고 싶었던 찰나였다. 그런데 그 다람쥐가 앞발을 들고 미끄러지지 말고 잘 올라가라고 빌어 주기까지 한다. 다람쥐의 재롱떠는 모습을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그래서인지 신기하게도 힘들었던 것이 눈 녹듯 사르르 녹아내린다. 이렇게 작은 감동에도 흔들리는 모습이 인간인가 보다. 다람쥐의 재롱에 피로가 풀리고 입가에 엷은 미소가 행복하게 번지니 말이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실 때 서로 유기적으로 돌보고 사랑하며 살라고 하셨나 보다. 이렇게 하찮은 동물로부터 위로를 받고 힘까지 얻어가니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동물이라는 것도 생각해 본다.
다람쥐의 재롱을 한참 동안 바라보고 있자니 정신이 번쩍 든다. 나 혼자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동료들과 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조금 불안한 생각도 든다. 그래서 전윤연 회장께 전화를 걸었다. 늘 상냥한 목소리지만 그때는 천사의 목소리로 들린다. 그만큼 내가 힘이 들어 지쳐 있다는 증거다. 지금 우리도 힘이 들어 쉬고 있으니 천천히 안전하게 올라오라고 한다. 역시 회장다운 대답이다. 그러나 동료들을 따라가야겠다는 생각밖에 없다. 부지런히 걷기 시작했다. 이마에선 왜 이렇게 많은 땀이 흘러내려 괴롭힐까? 참 야속하다. 연신 수건이 흠뻑 젖도록 닦아낸다. 땀을 닦고 걸으면서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왜 산엘 와서 이 고생을 할까? 나약한 생각이 들 때마다 그냥 주저앉고 싶은 생각뿐이다. 그러나 힘을 내서 걸어야지 어떻게 하겠나, 스스로 위로하며 걷는다.
아무리 걸어도 동료들을 만날 수 없다. 이젠 할 수 없이 정신을 가다듬고 나 홀로 정상까지 올라가여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상에서 만나면 되겠지 하며 걷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한참을 올라간 것 같다. 내려오는 등산객에게 물어보니 정상까지 약 1km 정도 남았다고 한다. 그렇게 많이 올라온 것 같은데 아지도 1km가 남았다는 말에 아연실색이다. 힘은 들어도 묵묵히 걸었다. 걷다 보니 젊은 청년 두 분과 일행이 되었다. 내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천천히 함께 올라가자고 하며 위로를 한다. 어디서 왔느냐고 물어보니 인천에서 왔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에게 70세가 넘으셨지요. 한다. 고개를 끄떡거리니 그 연세에 이 험한 산에 올라오시는 것이 존경스럽다고 한다. 두 사람의 젊은 분들과 함께 걸으니 젊은 기가 내 몸으로 흘려들어 왔나 보다. 그때부터 아름다운 자연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앙상하게 벌거벗고 서 있는 원시림이 정겹게 보이고 흰 눈이 덮인 산자락은 겨울의 아름다운 풍경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토록 멋이 배어있는 산인데 왜 땀을 흘리며 속까지 끌이고 힘들게 올라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속으로 중얼거려 본다.
참으로 고마운 젊은 분들이다. 재미있는 대화와 눈이 덮인 산자락에 매료되어 힘들었던 마음은 까마득하게 사라졌다. 이정표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0.5km만 더 가면 오늘의 목표인 덕유산의 정상에 도착한다. 그곳에서 그리도 보고 싶었던 향적봉이란 표석을 볼 것이다. 향적봉의 표석을 보면 입맞춤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든다. 향적봉은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세워져 있을까? 예쁜 미인을 만들어 세워 놓았을까? 아니면 근육질의 미남을 만들어 세워 놓았을까? 궁금증이 머리를 어지럽힌다. 이 생각 저 생각들이 마치 상상의 나래를 달고 행복의 나라로 달리는 것 같다.
행복한 꿈속에서 깨어난 듯 정상에 발을 밟는 순간이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정상을 가득 메운 등산객들이다. 어림잡아 약 3~400명 이상의 인파가 아닌가 싶다. 시골의 오일장에 모여든 사람들처럼 웅성웅성 와글와글 떠들어 댄다. 그다음은 우락부락하게 남성미를 갖춘 향적봉이라고 쓴 표석이 보인다. 표석은 울퉁불퉁하게 생긴 자연석 그대로의 돌에 향적봉(1,614m)이라고 한글로 새겨 놓았다. 표석을 보는 순간 기쁨의 미소가 입가에 번진다. 나도 오늘 해냈다는 승리의 함성을 지르고 싶은 충동은 웬일일까? 그토록 고생하며 올라왔다는 기쁨도 쏟아진다. 어렵게 해냈다는 승리의 함성도 지르고 싶다. 그러나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할 송우 가족들은 한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등산객들에게 부탁해서 몇 장의 기념 사진을 찍었다.
사방이 확 트인 정상은 100대 명산답게 아름답다. 우리나라 100대 명산 중 인기 4위이며 4번째로 높은 산이라고 한다. 겨울 산행으로는 당당하게 인기 1위를 차지한다. 정상에서 바라본 조망은 크고 작은 산봉우리들이 정겹게 붙어있다. 우리 민족의 뿌리를 발견한 듯 가슴이 벅차오른다. 기쁨도 이젠 그만 만끽하고 하산을 해야 한다. 그런데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다. 겉옷까지 흠뻑 젖어 땀내 음과 함께 몸이 시리다. 무엇보다 감기가 올까 걱정이 된다. 리조트 있는 쪽으로 하산하다 보니 주목이 즐비하게 길 양옆에 서 있다. 그런데 그 주목들이 눈꽃을 예쁘게 피워놓았다. 이 광경을 본 필자는 그 아름다움에 또 한번 놀라고 간다. 곤돌라를 타는 곳까지 왔다. 여기서 필자가 사랑하는 고세훈 님을 만났다. 왜 이리 반가울까? 그런데 오늘 함께 걸으며 향기로운 대화를 나누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그토록 아쉬움을 가슴에 안고 곤돌라를 타고 내려왔다
이산의 보배인 33 경(景)중 1, 2편에서 22 경(景)까지 썼다. 나머지 23경부터 33경까지 지금 쓰려 한다
*제23경 호탄암(虎嘆岩)
금포탄에서 0.7km 지점에 있는 거암이다. 칠불산(七 佛山) 호랑이가 산신령 심부름을 가다가 이곳에서 미끄러져 낙상했다는 전설이 있다.
*제24경 청류계(淸流溪)
호탄암에서 안심대까지 이어지는 1.1km 구간의 계곡 이다. 울창한 수림과 기암괴석 사이로 흐르는 맑은 물이 비경을 이룬다.
*제25경 안심대(安心台)
안심대(安心台)는 청류계와 연계되어있다. 안심대는 구천 동과 백련사를 오가는 행인들이 개울물을 안심하고 건너다니는 여울목이다. 기암 사이로 쏟아지는 폭포 수와 맑은 물이 아름다워 덕유산을 오르는 탐방객들의 휴식공간이 되고 있다.
*제26경 신양담(新陽潭)
안심대에서 0.2km 지점에 있다. 속칭 새양골이라고도 부르는 신양담은 숲 터널로 이어진 구천 계곡 중 유일하게 햇빛을 볼 수 있는 곳으로 길 아래 기암과 맑은 담이 아름답다.
*제27경 명경담(明鏡潭)
신양담에서 0.3km지점에 있다. 여울목에 잠긴 물이 거울같이 맑다하여 명경담이라 한다.
*제28경 구천폭포(九千瀑布)
구천폭포(九千瀑布)는 명경담에서 0.5km 지점에 있다. 층암을 타고 쏟아지는 2단 폭포는 자연이 창조한 예술작품으로, 옛날 천상의 선녀들이 무지개를 타고 내려와 놀았다는 전설이 있다.
*제29경 백련담(白蓮潭)
백련담(白蓮潭)은 구천 폭포에서 0.2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백련담은 연화폭(蓮華瀑)을 거친 맑은 물이 담겨 못을 이루고 흘러간다.
*제30경 연화폭(蓮花瀑)
백련담과 이속대를 잇는 0.3km 구간의 계곡으로, 흘러내리는 물이 계곡의 층층 암반과 기암괴석에 부딪히며 이루는 폭포수와 물보라가 장관을 이룬다.
*제31경 이속대(離俗台)
화폭과 이어지는 이속대는 백련사와 지척 간에 있다. 기암의 좁은 흠을 타고 미끄러지듯 쏟아지는 한줄기의 폭포수가 신비롭다. 사바세계를 떠나는 중생들이 속세와의 연을 끊는 곳이라 하여 이속대라한다.
*제32경 백련사(白蓮寺)
백련사(白蓮寺)는 이속대에서 0.3km 지점에 있다. 덕유산 중턱의 신라 때 고찰로 덕유산 정상을 오르는 탐방객들의 휴식처로 이름나있다. 가을철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면 만산의 홍엽이 일품이다.
*제33경 향적봉(香積峰)
백련사에서 2.5km 지점의 해발 1,614m 향적봉이 정상이다. 정상에는 등산객을 위한 산장과 우물이 있고 주변에는 고산식물인 주목이 군락을 이루고, 철 따라 피어나는 진달래 철쭉, 원추리와 겨울철의 설경이 일품이다. 또한, 정상에서만 볼 수 있는 덕유산 일출과 온통 설경을 이루는 운해(雲海)가 장관을 이루는 멋들어진 곳이다.
높이가 1,614m인 향적봉은 예로부터 은은한 향기가 그득히 쌓여 있는 봉우리라 일컬어지며 그곳에 올라 삼남을 굽어보면 북으로 가깝게는 적상산이 있고 멀리 황악산. 계룡산이 보이며 서쪽은 운장산, 대둔산, 남쪽은 남덕유산을 앞에 두고 지리산 반야봉이 보이며 동쪽으로는 가야산, 금오산이 보인다. 정상에는 탐방객을 위한 산장인 향적봉 대피소와 우물이 있고 주변에는 덕유산이 자랑하는 고산식물인 주목이 군락을 이루며 철 따라 피어나는 진달래, 철쭉, 원추리와 겨울철의 설경이 일품인 산이다.
놀랍게도 33경(景)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덕유산의 정상인 향적봉(香積峰)은 눈길 가는 곳마다 아름답고 향기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높이가 무려 1,614m가 되는 산으로 초보자들이 등산하기엔 만만치 않은 산이었다. 그러나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산이다. 현 시국은 암담하지만, 세상은 희망이 있고 행복이 샘솟는 장밋빛이었다. 산이 주는 교훈과 향기를 한 아름 안고 서울로 간다. 정연표 회장께서는 달리는 버스 안에서 오늘 한 사람도 사고 없이 등산함을 축하한다는 말과 전국의 좋은 명산을 발굴해 행복한 산악회를 만들어 보겠다는 건설적인 인사말을 던져 준다. 앞으로 송우 가족은 서로 돕고 사랑하는 가족이 되길 바란다고 하며 인사말을 맺는다. 뒤이어 김종배 전 회장이 인사말을 한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이제 등산하기 가장 좋은 봄입니다. 늘 사고 없이 안전한 산행을 하시기를 바란다는 말로 인사말을 맺는다. 덕유산 수필은 3편으로 끝을 맺는다. 덕유산 산행이 힘은 들었지만, 필자도 송우 가족 여러분 덕분에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8년 0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