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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가족 사랑과 헌신
창세기 50:15~26
요셉은 이스라엘 민족 역사 속에 우뚝 솟은 큰 인물입니다. 요셉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더불어 족장 시대의 큰 믿음의 인물로서, 요셉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은 한 작은 가족 단위의 가문에서 한 나라를 이루어갈 민족 단위의 공동체로 급성장하는 계기가 마련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이라는 인물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언약, 곧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는 말씀을 이루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렇듯 큰 인물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보석의 원재료인 귀한 원석이 만들어지려면, 깊은 땅 밑에서 뜨거운 고열과 압축 과정과 장구한 시간의 흐름이 필요합니다. 이렇듯이, 요셉과 같은 위대한 신앙의 인물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많은 연단이 필요하였습니다.
요셉은 친어머니 라헬을 일찍 여읜 탓에 아버지의 사랑을 유별나게 받았으나 배다른 다른 형제들의 시기와 질투를 받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아직 철부지 시절이던 요셉이 특별한 꿈을 꾸고 형들 앞에서 자랑했다가 형들이 그 꿈을 인하여 더욱 분노하여, 그 꿈 때문에라도 요셉을 크게 미워하여 그를 나중에 죽이려 했다가 노예상인에게 은 20량에 팔아넘겼습니다. 종이 되어 팔려간 요셉은 낯설고 물선 애굽 땅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잃어버린 채, 형제들에게 배신당하여 온갖 고생을 다했습니다. 그가 팔려간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구정물에 손을 잠그고 온갖 잡일을 다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어 주인의 눈에 띄이게 되었고 하는 일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므로 결국 그 집안일을 다 관장하는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더 연단되어야 할 필요가 있었기에, 하나님은 그에게 여주인의 유혹을 허락하시고 젊은 시절의 요셉이 이성의 유혹을 잘 극복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지만 여주인의 유혹을 잘 이겨낸 요셉은 무고하게 감옥에 갇히는 시련을 또 당해야 했습니다. 그 감옥에서 연단의 세월을 보내는 중에 결국 감옥에서 만난 애굽 왕 바로의 신하들의 꿈을 해석해준 일을 계기로 하여 바로 왕의 꿈을 해몽해주었습니다. 이일로 요셉은 마침내 애굽 바로 밑의 권력자, 애굽의 제 2인자인 국무총리의 막강한 권력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이렇게 충분히 연단받은 후에야 그 충분히 준비된 그릇으로서 하나님의 복된 계획을 이루어가는 귀한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억울한 일을 많이 당하고,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잘 인내하며 낙심치 말고 더욱 믿음과 소망 가지고 잘 헤쳐나가기 바랍니다.
특별히 요셉의 연단받은 인격과 신앙과 성공적 삶은 아버지 야곱의 가문, 곧 요셉의 형제들의 가문과 그 후손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요셉은 한 개인으로서 많은 고생과 어려움을 통과했지만, 그의 연단과 고생은 그의 형제들과 그의 가족 가문에게 크나큰 축복의 유산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러면 요셉이 어떻게 그의 가문에 복된 영향을 끼쳤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요셉은 아버지의 미숙한 사랑으로 인하여 불화와 미움으로 얼룩졌던 가족 관계를 용서와 사랑으로 치유하였습니다.
요셉의 부친 야곱은 성격적으로 특별한 분이었습니다. 지고는 못사는 경쟁심이 타고난 분이었고, 기어코는 목적을 이루고야 마는 성미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책임감도 커서 자기가 맡은 일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도 끝까지 완수하는 성격이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배려해주는 분인가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자는 사랑하고 마음에 안드는 사람은 절대 마음 못주는 성격입니다. 아내를 네 명을 얻었는데, 그 마음은 언제나 둘째 부인 라헬에게만 주었습니다. 그런 라헬이 마음이 착한 것은 아니었고 신앙이 깊은 것도 아니었으나, 한번 꽂힌 사랑을 야곱은 끝까지 죽도록 사랑합니다. 그 라헬이 가장 먼저 세상을 떠나니까 야곱은 라헬이 낳은 아들 요셉과 막내 베냐민만 사랑합니다. 다른 아내들이 낳은 아들들은 알아서 쑥쑥 잘 자라주고 일도 잘해주니까 고마운 줄 모르고, 일꾼처럼 부려먹기만 합니다. 그러나 늘그막에 얻은 요셉과 베냐민은 어리니까 그냥 예쁘게만 보고 특별히 편애해주었고, 그 결과 다른 아들들은 불만이 많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야곱의 편애는 요셉에게도 해가 되었으니, 다른 형제들이 요셉만 사랑하는 아버지에 대한 불만을 인하여 그 요셉을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였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식들을 편애하며 배다른 아들들끼리 화목하기보다 서로 시기하게 만든 아버지 야곱의 잘못 때문에, 가족의 분위기가 망쳐졌고 불화하고 요셉을 노예상인에게 팔아넘기는 악을 행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야곱 가족의 오랜 불화와 미움과 슬픔과 배신의 악을 당한 그 피해자로서 요셉은 훗날 형제들에게 보복할 수 있는 충분한 힘과 권력을 가졌지만 그들을 용서하고 품어줌으로써 가족이라는 혈육 공동체 의식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하였던 것입니다. 요셉이 용서하고 화해하지 않았다면 야곱의 집안은 풍비박산이 되고 말았고 이방 나라에서 공중분해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이스라엘 민족은 일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가족과 친척이란 가장 가까운 사이이면서도 서로에게 가장 상처를 주고 받는 관계입니다. 가족끼리 기대가 많으면 그만큼 섭섭함도 많은 것이 가족입니다. 서로 가장 큰 도움을 주고 받으면서 영광을 함께 나누는 관계이지만, 가장 큰 부담을 주고 받는 관계이기도 합니다. 가장 사랑을 나누는 관계이지만, 배신과 상처를 받으면 가장 강렬한 미움이 대상이 되는 것이 가족이기도 합니다. 차라리 관계 없는 사람이었다면 그러한 미움과 아픔도 없었겠지만, 가족이기 때문에 그러한 고통을 주고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족과 친척이라는 혈연 공동체는 이러한 갈등이 없을 수 없기 마련이므로, 우리는 미움과 상처를 배가시키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그 대신 우리 모두 요셉처럼 집안과 가문에 서로간의 갈등과 미움과 상처를 싸매어주고 용서와 사랑의 꽃이 피고 형제 우애의 향기가 은은히 풍겨나는 그러한 화평의 도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둘째로, 요셉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체험적 신앙 간증으로 가족의 믿음을 새롭게 하였습니다.
요셉은 요셉은 다사다난한 삶의 굴곡을 지나왔던 사람입니다. 어린나이로부터 30세에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기까지 참 많은 일을 겪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한 아들의 신분에서, 한낱 종으로 팔려가 고생하던 시절에 이르렀다가 가정 총무로 발탁되어 승승장구하다가 무고한 모함을 받아 다시는 나올 수 없는 정치범 감옥에 떨어져 앞날이 캄캄한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가 또 다시 신분이 수직 상승하여 애굽의 국무총리가 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한 굴곡진 삶의 여정에서 다윗은 한결같이 하나님 한분만을 굳게 의지하였습니다. 다윗은 고난과 성공, 역경과 순경 어느 형편에 처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능하신 손에 자기 운명을 다 맡기어서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심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궁극적으로 그는 고난도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당한 것을 알았습니다. 자기의 긴 기다림도 하나님의 가장 좋은 시간이 무르익기 위함인 줄 알았습니다. 애굽의 종이 된 것도, 감옥에 갇힌 것도, 사람들이 자기를 실망시킨 것도, 자기가 애굽의 국무총리의 자리에 오른 것도 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함임도 알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작정 속에서 한치의 오차 없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려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애굽의 이방 사람들 앞에서나, 자기 친형제들과 그 후손들을 만나 얘기 할 때마다, 자주 하나님을 자주 언급하여 말하였습니다. 계산해보니, 창세기 39장에서 50장까지의 요셉의 발언한 내용 중에 하나님을 언급하는 횟수가 13번이나 되었습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편안한 대답을 하시리이다”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하나님이 속히 행하시리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를 바로에게 아버지로 삼으시고 그 온 집의 주로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통치자로 삼으셨나이다”
이러한 요셉의 말 속에서 그의 자연스러운 신앙 고백이 때마다 일마다 표출됨으로써 그를 만나 이방인들이나 그의 형제들이 흐릿했던 믿음이 선명해지는 변화가 일어났던 것입니다. 야곱 집안의 흐트러졌던 신앙, 불경건함으로, 미움으로 헝클어지고 죄책감으로 약해진 신앙을 요셉의 확신에 찬 체험적인 하나님 주권 신앙으로 바꾸어주는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이처럼 한 가정의 신앙이 형식적이 되고 세상적이 되고 우상 숭배나 미신적 신앙으로 변질되고 죄로 인하여 무기력해지고 그 열정이 뜨뜻미지근해질 수 있는데, 한 사람이 확신에 차서 견고한 체험적 신앙을 가지고 그 입술에서 믿음의 말을 자꾸 하게 되면, 그 한 사람 때문에 그 집안의 퇴색되던 신앙이 변화되어 새롭게 신앙의 불이 활활 타오르게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가족들이나 친척들 가운데 아직 제대로 된 믿는 자가 없거나 믿다가 실족하여 희미한 신앙을 가진 분들이 있고, 연약하고 믿음을 감히 증거하지 못하는 가족과 친척들 중에 서서 담대하게 확신에 찬 체험적 신앙인이 되어 입술에서 예수님을 담대히 증거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체험적 간증들을 담대하게 자주 언급하는 성도들이 됩시다. 그리할 때 반드시 여러분의 입술을 통하여 신앙의 불이 붙어 변화되는 은혜가 가족과 친척들 가운데 일어날 줄 믿습니다.
셋째로, 요셉은 자기의 성공한 역량을 가족과 친척들의 부양과 안전과 번영을 위하여 기꺼이 사용하였습니다.
요셉은 마침내 천신만고의 고생을 다 이기고 애굽의 국무총리의 높은 관직에 올랐습니다. 그의 말 한 마디면 순식간에 사람들은 감옥에 들어가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는 절대 권력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애굽의 모든 문물들을 그 말 한마디로 다 여기 저기로 옮겨놓을 수 있는 실질적인 재산권을 행사하는 막강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러한 요셉은 자기의 입신 양명을 자기 혼자의 호사로운 삶을 누리는데 다 쓰지 않고, 불법적으로 자기 형제들을 세속적인 출세의 자리에 이끌지도 않으면서, 자기의 모든 성공한 역량을 자기 형제들과 골육들을 돌보고 먹이고 평안하게 살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주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들이 가뭄 중에 먹을거리가 없어 어려움을 겪을까봐 애굽으로 이끌어왔으며, 애굽의 고센 땅이 목축하는 데 좋은 여건을 가졌으므로 바로 왕에게 말하여 그 고센 땅을 형제들이 차지하여 살 수 있게 하였고, 그들의 거처를 라암셋에 주어 어려움 없이 평안하게 살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70여 명이 건네간 이스라엘 후손들이 사백 사십 년이 지난 후에 근 이백만 명이 되는 어마어마한 숫적인 번영을 이룰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이것이 다 요셉이 형제와 골육 친척들을 정성껏 돌보아준 열매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보면, 어떤 사람은 자기가 출세하고 성공하면 여전히 형편이 어려운 자기 형제들과 골육들을 무시하고 그들을 눈꼽만큼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도리어 부끄러워 여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참 악한 것입니다. 부모 없이 자기 없고 형제 없이 현재의 자기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출세하고 성공하면 할 수 있다면 부모는 물론 형제와 친척들을 돌봐줄 수 있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복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형제와 친척들을 돌봐주는 이들을 귀히 여기고 반드시 복을 주실 것입니다.
넷째로, 요셉은 자기 가족과 골육들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격려했습니다.
요셉은 그의 살아 생전에 자기 형제들과 그 후손들을 어버이처럼 돌봐주고 살았지만, 그도 역시 사람인지라 나이 늙고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임종을 앞둔 요셉은 형제들을 불러서 이렇게 당부하였습니다.
“나는 죽을 것이나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창 50:24)
여기서 요셉은 자기와 하나님을 대조시켜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죽으나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들을 돌보실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과 야곱의 후손들은 요셉이 이제 세상을 떠나면 자기들은 이 애굽 땅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나 하는 불안감이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러한 걱정과 염려를 내려놓게 하려고 그들을 격려했습니다.
“나는 죽지만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당신들을 여전히 돌봐주실 것입니다.”
가족과 친척들이 가질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염려를 다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봐주시고 여전히 지켜주실 것을 믿게 하였던 것입니다.
나아가 요셉은 세상을 떠나면서 남아 있는 야곱의 후손들에게 미래의 비전과 사명을 선명하게 부각시켜 주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요셉이 또 이스라엘 자손에게 맹세시켜 이르기를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 하였더라”(창 50:25)
요셉은 이스라엘 자손들이 장차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 가나안에 반드시 돌아가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확고하게 예고해주었습니다. 그들은 애굽 땅에 머물러 계속 살면서 애굽 사람들과 동화하거나 그 땅에서 잠시 우거하는 자로 살다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반드시 다시 조상들의 고향 땅 가나안에 되돌아갈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기업의 땅이라는 것을 환기시킨 것입니다. 그러면서 더 확실하게 이 비전을 인치기 위하여 요셉은 임종할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족속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해 들이실 때 반드시 자기 해골을 메고 가라고 그들에게 맹세로 보증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자기는 땅에 묻지 말고 단지 입관만 하라고 명한 것입니다. 이렇게 입관만 시킨 것 자체가 애굽 땅에 사백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아 있는 동안 늘 장차 그들이 애굽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비전과 사명을 일깨워 상기하는 징표가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영적인 비전을 늘 심어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현실에 안주하지 않게 하였던 것이요 애굽의 우상 숭배와 세속주의에 물들지 않게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요셉은 자기 형제와 골육 동족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미래의 삶에 대하여 격려하며 용기를 심어 주었으며, 장래에 대하여 귀한 언약적 비전을 붙들도록 격려했는데, 우리도 우리 가족과 집안에서 그러한 역할을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미래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그들을 격려하는 자가 됩시다.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자녀들, 우리 다음 세대를 책임져주시고 돌봐주신다는 점을 믿고 항상 믿음으로 격려하시기 바랍니다. 그들에게 장차 우리 앞에 도래할 하늘의 가나안 땅, 천국에 대한 소망을 분명히 가지고 살아가도록 격려합시다. 요셉이 자기 시체를 입관만 하고 장차 반드시 메고 가라고 맹세시킨 대로 훗날 그대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관을 메고 떠난 것처럼, 우리들도 저 천국에 대한 소망과 확신 가지고 이 땅에서 천국을 바라보며 힘써 살아가면, 우리의 자녀들, 우리의 친척 골육, 후손들도 때가 되면 동일한 믿음과 소망 가지고 우리가 앞서 들어간 천국 진주문을 거쳐 들어올 것입니다. 요셉 한 사람의 믿음이 수많은 그의 가족 친족, 그 후손들을 가나안 땅으로 이끈 것처럼, 여러분 한 사람의 영적 확신과 격려가 여러분의 가문을 영원한 나라로 이끌어 들이는 데 놀라운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 한평생 요셉처럼 믿음으로 살게 하시고, 이번 명절 기간 동안에 우리를 통하여 믿음의 복된 은혜가 가문에 임하게 해달라고 통성으로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