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와 거울
세 사람이 아이들하고 한바탕 홍역을 치르는 동안 토마스 그레샴이 사람을 시켜 도자기값을 보내왔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도자기가 마음에 들어 바로 구매를 허락하고 대금을 보냈다. 왕실에 도자기를 판매한 것은 여러 가지로 의미가 있었다.
그동안 집을 사고 공방을 차리고 아이들을 돌보느라 돈이 다 떨어져 가고 있었는데 다시 500파운드라는 거금이 들어오니 마음이 든든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왕실과 거래를 하여, 작은 연줄이 생긴 것이다. 그들이 잉글랜드에 안전하게 정착하려면 이 연줄을 잘 키워서 왕실의 신임을 받아야 할 것이다.
성호는 토마스 그레샴과 리처드 클라우에게 중개료를 지불하려고 돈을 건넸다. 그러나 그들은 왕실의 재정 고문이기 때문에 왕실에서 구매하는 물건에 대해서는 중개료를 받을 수 없다면서 사양했다. 중개료를 받든 안 받든 누가 참견할 사람도 없고 따질 사람도 없을 텐데, 그들은 대대로 신용을 지키면서 살아온 대상인의 풍모를 보여 주었다.
“정말 그 도자기가 우리에게는 생명줄이네. 그게 비행기 화물칸에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정말 불행 중 다행이야.”
“도자기가 없었다면 비행기를 뜯어서 팔아야지. 다소 번거롭기는 하지만 그것도 잘하면 꽤 돈이 될 거야.”
“헉! 비행기를 뜯어서 판다고? 그게 가능한 거야?”
“그 험하고 높은 산에서 비행기를 잘게 뜯어서 운반하려면 힘이 많이 들겠지. 그렇지만 비행기는 고강도 합금 알루미늄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우리 셋이 힘닿는 만큼만 뜯어서 팔아도 웬만큼 돈이 될 거야.”
“그런가? 이 시기에는 알루미늄이 제법 돈이 되는가 보네.”
알루미늄은 자연계에 흔한 물질이지만 다른 광물과는 달리 용광로에서 제련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20세기에 전기분해 생산법이 개발될 때까지 알루미늄은 아주 귀한 대접을 받는 금속이었다. 인류가 알루미늄을 대량생산하면서 가장 긴요하게 사용한 곳은 비행기 제작이었다.
알루미늄은 무게가 철의 3분의 1 정도로 가볍다. 가벼운 대신 강도가 약하지만, 합금하면 강해지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구리, 아연, 마그네슘 등과 합금해 만든 고강도 알루미늄으로 비행기 동체와 날개를 만든다.
* * *
유리 공방의 설비가 갖춰지고 모든 재료가 준비되었다. 세 사람은 새로운 사업이 성공하기를 기원하며 용광로에 불을 지피고 서로를 격려했다.
“우리가 살던 세상이라면 이럴 때 돼지머리를 올려놓고 고사를 지낼 텐데…… 하하하!”
“크크크! 여기서 그랬다가는 마녀 사냥꾼에게 고발당해 잡혀가기 십상일걸.”
유리의 주성분은 규소(硅素)로 지구상에 가장 흔한 모래(규사)나 석영의 형태로 존재하는 흔한 물질이다. 바닷가나 강가에서 고운 모래를 퍼오기만 해도 유리를 만들 재료는 준비가 된다.
그런데 이 규사(硅砂)를 녹여서 유리로 만들려면 1천4백 도가 넘는 고온이 필요하다. 이런 높은 온도의 용광로를 만드는 것은 기술적으로도 어렵고 경제성도 없기 때문에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규사를 녹이려면 고온이 필요하지만, 다행하게도 규사와 함께 다른 재료를 섞으면 녹는 온도가 크게 내려간다. 규사 외에 석회석, 소다회(탄산나트륨)를 섞어서 가열하면 비교적 낮은 온도에서 유리를 가공할 수 있다.
인류는 오래전부터 탄산나트륨을 사용해서 소다석회유리를 만들어 사용했다. 그러나 문제는 자연에서 탄산나트륨이 함유된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운 것이다. 탄산나트륨은 바닷가에서 자라는 해초나 해조류를 태운 재에서 구할 수 있는데, 대략 해조류 1톤을 태우면 1㎏ 정도의 소다회(탄산나트륨)가 생산된다.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의 해안에는 지형 특성상 바다에서 물결을 타고 해안으로 밀려드는 대형 갈조류가 많았다. 그래서 이 지역주민들은 켈프라고 부르는 이 해조류를 태워 탄산나트륨을 생산하는 것이 중요한 생업이었다. 켈프가 현대에는 해안을 더럽히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만, 그 당시는 귀중한 산업자원이었다.
그러나 켈프를 산처럼 많이 쌓아놓고 태워도, 탄산나트륨 생산량은 많지 않아서 늘 비싸고 귀한 재료였다. 그래서 유리는 오랫동안 보석처럼 귀하고 비싼 물건으로 취급되었다. 탄산나트륨이 귀하고 비싸기 때문에, 북유럽에서는 나무를 태운 재에서 산출한 탄산칼륨으로 유리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유리를 포레스트 글라스(forest glass)라고 불렀다. 탄산나트륨 대신 탄산칼륨을 넣고 만든 유리는 녹는 온도가 비교적 높기 때문에 가공성은 떨어지지만, 그 대신 단단한 특성을 가진다.
이 시기에 유리생산 기술이 가장 앞선 곳은 베네치아였다. 베네치아의 무라노 섬에서는 탄산나트륨을 함유한 소다석회유리로, 거울과 부가가치가 높은 유리제품을 만들어 높은 수익을 올렸다. 13세기에 베네치아 지도자들은 유리 길드의 기술자들을 모두 강제로 무라노 섬으로 몰아넣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집중적으로 기술을 발전시켜 선진 유리 공업을 육성했다.
이렇게 무라노 섬에서 유리 기술을 익힌 기술자들은 평생 그 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부득이한 일로 외지로 여행을 떠나야 할 때는 가족을 인질로 잡히고 다녀와야 했다. 이렇게 철저하게 기술 유출을 방지하면서 발전시킨 덕분에, 베네치아는 수백 년 동안 최고의 유리 생산지로 이름을 떨치면서 많은 돈을 벌어들였다.
그에 반해 북유럽에서는 값비싼 탄산나트륨 대신에 그보다 구하기 쉬운 탄산칼륨을 사용한 포레스트 글라스를 주로 만들었다. 베네치아에 비하면 기술 발전이 늦었지만,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와 갖가지 색을 넣은 유리구슬 등의 장식품을 생산했다.
그러나 유리 공업에서 가장 귀하고 비싼 상품은 유리 거울이었다. 현대식 유리 거울 생산 기술이 나타나기 전까지, 몇 단계에 걸쳐 유리 거울 생산 기술이 발전했지만, 19세기까지도 유리 거울은 만들기도 어렵고 비싼 물건이었다.
거울이 귀하고 비싸던 시절에 거울에 홀려 재미있는 이야기를 남긴 여인이 있다. 17세기 후반, 프랑스 귀족 피에스크 백작 부인은 상점에서 세상에서 보기 힘든, 크고 아름다운 유리 거울을 발견했다. 그녀는 그 거울을 사려고 했지만, 가격이 워낙 비싸서 돈이 모자랐다. 그래서 그녀는 그 비싼 유리 거울을 사기 위해 밀 농장을 팔았다.
프랑스인들이 사치를 좋아하는 경향이 있기는 하지만, 농장을 팔아 거울을 산 그녀의 행위는 프랑스인들에게도 커다란 이슈가 되었다. 주변에서 그녀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러자 그녀는 ‘나는 농장을 팔아서 이 거울을 샀다. 농장은 그냥 토지일 뿐이지만, 이 거울은 이렇게 아름답지 않은가?’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그녀가 뚜렷한 주관을 갖고 당당하게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 여인이었는지, 아니면 사치와 허영에 마음을 빼앗긴 대책 없는 여인이었는지는 각자가 판단할 문제일 것이다. 아무튼 피에스크 백작 부인의 이야기는 ‘거울의 역사’라는 책의 첫 페이지를 장식하는 유명한 사건이었다.
피에스크 백작 부인이 거울에 홀린 여인 중에 대표 선수라면, 루이 14세는 거울에 홀려 거금을 쏟아부은 대표적인 군주였다. 1665년,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십만 크라운(1크라운=5실링)을 투자하여, 베네치아 유리기술자를 데려와 세인트 고뱅 공장을 세웠다.
그리고 이 공장에서 생산된 대형 거울로 궁전을 장식하니,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베르사유 궁전의 거울의 방이다. 거울의 방은 1678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684년에 완성했는데, 길이 73m 폭 10m의 커다란 방을, 357개의 거울을 들여 17개의 아치로 장식했다.
거울의 방은 아름답고 화려한 거울 장식으로 지금까지도 프랑스 고전 미술의 걸작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피에스크 백작 부인은 거울을 사려고 밀 농장을 팔아, 사치가 지나치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러나 루이 14세는 아예 거금을 들여 거울 공장을 세우고, 그곳에서 만든 거울로 궁전을 장식했다. 그러니 루이 14세의 사치에 비하면, 피에스크 부인의 거울 사랑은 애교로 봐줘야 할 것이다.
아무튼 유리 거울을 발전시킨 것은 베네치아인들이었지만, 유리 거울을 가장 사랑한 것은 남녀 불문하고 모두 프랑스인들이었다.
* * *
유리 거울을 만들려면 우선 평평한 평판 유리를 만들어야 한다. 이 시기에는 아직 평판 유리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 유리 불기 방식으로 평판 유리를 만들었다.
유리 불기로 만든 거울은, 크기는 기껏해야 쟁반만 하고, 제대로 평면을 만들지 못해 비치는 상이 일그러지기 일쑤였다. 19세기에 롤러 공법이 발전하면서 품질이 향상되기는 했으나, 거울을 만들면 상이 일그러지는 현상은 여전했다.
그러다가 1959년에 영국에서 플로팅 공법(float process)이 발명되어, 제대로 된 평판 유리가 대량 생산되기 시작했다. 영국의 엔지니어 필킹턴이 플로팅 공법을 발명한 덕분에 인류는 상이 일그러지지 않는 품질 좋은 거울을 싼 가격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플로팅 공법이 발명되기 전에는 많은 공을 들여 가공해도, 거울을 크게 만들면 상이 일그러졌다. 거울이 커질수록 상이 더 일그러지기 때문에 대형거울을 만들기가 어렵다. 그래서 20세기 후반까지는 대다수 여인들이 작은 거울에 만족하거나 상이 일그러지는 거울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플로팅 공법이 발명되고 나서야 비로소 모든 인류가 현대와 같은 질 좋은 거울을 싼값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플로팅 공법은 주석을 녹인 후, 용융상태의 주석 위에 녹은 유리를 펼쳐 평면 유리를 만드는 방법이다.
이 제조법은 가공비가 많이 들지 않으면서 거의 완벽하게 평면에 가까운 유리판을 만들 수 있다. 그래서 플로팅 공법을 사용하면, 상이 일그러지지 않는 제대로 된 대형 거울을 만들 수 있다.
“평면 유리를 만들려면 롤러 공법과 플로팅 공법이 있는데, 둘 다 장단점이 있어. 어떤 방법으로 할까?”
“생산량은 많지 않아도 되니까, 가급적이면 설비투자가 적게 들어가고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택해야지.”
“그래, 그러면 유리생산은 플로팅 공법으로 하고, 코팅은 어떤 재료로 할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주석코팅과 은(銀) 코팅 둘 다 가능해.”
거울을 만들려면 유리 뒷면을 금속으로 코팅해야 한다. 베네치아의 무라노 섬에서는 주석과 수은을 사용한 아말감으로 유리를 코팅하여 거울을 만들었다. 베네치아는 이 기술을 독점하기 위해 오랫동안 기밀을 유지했다.
그러나 16세기에는 런던과 암스테르담 등 유럽 여러 곳에 이 기술이 퍼져있었다. 수은을 사용한 아말감 코팅법은 공정이 간편하지만, 작업자가 수은 공해에 노출된다. 그래서 아말감법은 유해성 때문에 피하고 싶은 제조법이었다.
현대에는 알루미늄을 진공상태에서 가열하여 증착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 제조법은 품질도 뛰어나고 생산성도 좋지만, 지금 세 사람이 처한 상황에서는 기반 기술이 없어서 불가능하다.
그래서 그들이 선택한 방법은 19세기 후반에 독일의 베른하르트 토렌스가 개발한 은 도포법(silver mirroring)이다. 개발자의 이름을 따서 토렌스 시약법이라고도 부르는 이 방법은 질산과 암모니아, 설탕, 수산화나트륨을 사용하는 코팅 방법이었다.
질산은 화약의 원료인 질산나트륨(초석)에 황산을 가해서 만들고, 암모니아는 석탄을 건류하면 나오는 석탄가스에서 얻을 수 있다. 수산화나트륨은 탄산나트륨을 수산화칼슘으로 처리하여 만들 수 있다. 여러 단계의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그들에게는 화학 발전에 필수적인 과정이고 꼭 필요한 것들이라 포기할 수 없었다.
암모니아와 수산화나트륨은 대량 생산할 수만 있다면 세계사를 바꿀 만큼 아주 유용한 물질들이다. 하지만 아무런 화학적 기반이 없는 지금으로서는, 실험실 수준의 소량 생산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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