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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회 고운 최치원 문학상 대상 수상자 김동원 시인(문장 21)
김동원 시인 약력
1962년 경북 영덕 출생.
1994년『문학세계』‘시 부문’ 신인상 수상으로 등단
1997년 1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출간
2002년 2시집『구멍』출간
2004년 3시집『처녀와 바다』출간
2007년 동시집『우리 나라 연못 속 친구들』출간
2011년 시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출간
2014년 평론집『시에 미치다』출간
2015년 대구예술상 수상
2016년 4시집『깍지』출간
2017년 매일신문 신춘문예동시당선
2017년 운당 김용득 자서전『동화요변』출간
2018년 동시집『태양 셰프』출간
2018년 편저『저녁의 詩』출간
2018년 대구문학상수상
현재)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대구문인협회 시분과위원장,
한국시인협회원.『텃밭시인학교』운영
〈(왼쪽) 고운 최치원문학상 이문걸 심사위원장 / 수상자 김동원 시인(오른쪽)〉
〈고운 최치원 문학상 심사 총평〉
제10회 고운 최치원 문학상 수상의 영광은, 대상에는 김동원(시인), 본상에는 옥영재(시인), 전흥규(시인), 조혁훈(수필가)에게 돌아갔다. 위 네 분을 심사위원 전원일치 수상자로 결정하였다.
대상 수상자 김동원 시인은《1994년 문학세계》,《대구매일신춘문예동시》로 시인의 길을 들어섰으며 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 외 4권의 시집, 수필집, 평론집 등을 발간하였고, 많은 작품을 각종 지면에 발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대구예술상 수상, 대구문학상 수상, 현) 대구시인협회 부회장, 텃밭시인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본상 수상자 옥영재 시인은《문장21》신인상으로 등단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각종 지면에 작품을 발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본상 수상자 전흥규 시인은《문장21》신인상으로 등단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각종 지면에 작품을 발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본상 수상자 조혁훈 시인은《문장21》신인상으로 등단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각종 지면에 작품을 발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네 분 모두 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의 명성에 부합되는 작가라는 일치된 평가로 수상자로 선정하게 되었음을 밝혀둔다. 이번 수상이 수상자들의 더 높은 문학적 성취를 위한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 심사위원 모두의 바람이다.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심사위원장 : 이문걸(시인, 동의대학교 명예교수)
심 사 위 원: 김천혜(평론가,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선 용(아동문학가, 번역가)
김 철(시인, 번역가)
김 종(시인,화가, 언론중재위 위원)
윤일광(시인, 거제시 예술촌 촌장)
박양근(수필가,부경대학교명예교수)
〈고운 최치원 문학상 수상소감(김동원)∥대상〉
천명의 소리
김동원
고운 최치원 선생(신라, 857년~?)과 저와의 인연은, 그 분의「추야우중秋夜雨中」을 서예로 임서하면서 부터입니다. 오언절구인 이 한시를 수십 번 행서로 써 내려가면서, 그 속에 담긴 ‘쓸쓸한 가을’과 ‘비’의 행간 속에 젖은 적막이 좋았습니다. 열두 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18세에 빈공과에 장원한 천재 고운은, 훗날 신라로 돌아오지만 신분제의 벽에 가로막혀 자신의 뜻을 펼치지 못합니다. 하여,「추야우중秋夜雨中」속엔 갈바람이 부는 깊은 밤 창 밖에 내리는 ‘비’를 통해, 6두품으로써의 현실의 한계와 신라 개혁 사이에서 방황하는 고운의 탄식이 절절합니다. 고운은 ‘창(窓)’을 통해 세상 밖에 눈을 돌리기도 하고, 그 창을 통해 세상과 단절하기도 합니다. 자신의 힘으론 어찌할 수 없는 신라의 이쪽과 저쪽 사이에 초연할 수 없었던 자아의 번민은, 등불에 비쳐 만 리 밖의 시인의 고뇌로 다시 태어납니다.
제게도 시법(詩法)은 늘 무량합니다. 모든 사물의 근본은 하나지만 저마다 생긴 모양이 다르듯, 시법은 한 곳으로 귀착되나 그에 이르는 길은 천만 갈래입니다. 있는 것은 있는 것이 아니요, 없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닌 세계, 그것이 시입니다. 유(有)가 유가 아니며 무(無)가 무가 아니듯, 시는 물질이자 에너지입니다. 제가 생각하는 시란 그저 언어예술의 차원만은 아닙니다. 언어 이전의 사물과 실재의 비밀은 억겁을 통해 모였다 흩어지고 흩어졌다 다시 모이는 생기(生氣, 生起)에 있습니다. 시는 이런 생생한 기운과 일어남, 사건 그 자체입니다. 찰나에 떠오르는 생각의 기미(機微)와 기색, 기척은, 시인이 아니면 잡을 수 없습니다. 하여 시인은 시신(詩神)과 접하거나, 시마(詩魔)에 들리어 귀신도 반할 귀시(鬼詩)를 짓거나 귀경(鬼景)을 펼쳐 나갑니다. 시의 예지가 번뜩이는 광인(狂人)이야말로 다름 아닌 시인입니다. 시구 한 자를 빼면 우주가 무너지고, 시구 한 자를 더하면 한 우주가 생겨나는 묘처가 시입니다. 시는 한바탕 무의식의 꿈이라도 좋습니다. 그 꿈을 깨고 나면 형(形)은 상(象)에 숨고, 상(象)은 다시 형(形)에 숨느니. 형상은 호흡에, 호흡은 형상에, 이것은 저것에, 저것은 다시 이것에 숨는, 중중무진(重重無盡)의 인연이 바로 시입니다.
《최치원 문학상》대상 수상 소식은 저를 한없이 무람하게 합니다. 고운 선생처럼,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조리지도, 창 밖에 내리는 가을비를 바라보며, 만 리 밖의 그리운 것들을 애틋하게 불러내지도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대의 불합리한 제도에 맞서 시대의 불의에 항거하지도 못하였으며,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과 같은 명문도 남기지 못한 제게, 이런 과분한 상은 부끄럽기도 하거니와 자못 분발을 자극합니다. 물론, 지금까지의 시 세계에 덧대 한국현대시사에 독자적 서정의 세계를 열어나갈 것을 채찍 하는 천명의 소리로 듣겠습니다.
〈고운 최치원 문학상 대상 수상 작품∥오십천 외 4편〉
오십천
김동원
어릴 적 난 홀어머니와 함께, 강가 백로 외발로 선 오십천 천변에 핀 복사꽃 꽃구경을 갔다 봄 버들 아래 은어 떼 흰 배를 뒤집고, 물결이 흔들려 뒤척이면 붉은 꽃개울이 생기던, 그 화사한 복사꽃을 처음 보았다 젊은 내 어머니처럼 향기도 곱던 그 복사꽃이 어찌나 좋던지, 그만 깜박 홀려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갓 서른이 넘은 어머닌 울고 계셨다 내 작은 손을 꼭 쥔 채, 부르르 부르르 떨고 계셨다 그 한낮의 막막한 꽃빛의 어지러움, 난 그 후로 꽃을 만지면 손에 확 불길이 붙는 착각이 왔다
어느새 몸은 바뀌고, 그 옛날 쪽빛 하늘 위엔 흰구름덩이만 서서, 과수원 언덕을 내려다본다 새로 벙근 꽃가지 사이로 한껏 신나 뛰어다니는 저 애들과 아내를, 마치 꿈꾸듯 내려다본다
*오십천은 청송 주왕산에서 발원해 영덕읍을 가로질러 강구항으로 흘러듬.
깍지
내 손을 나꿔 챈 그녀에게 아내가 있어 안 된다고 했다. 곁에 벗은 예쁜 속옷은 유채 꽃빛이었다. 등 뒤에서 그녀가 “오늘 밤만이라도 하늘 물속을 헤엄쳐, 저 샛별까지 갈 수 없냐”고 내 허리를 꽉 깍지로 껴안았지만, 나는 두 자식이 있어 진짜, 안 된다고 뿌리쳤다.
돌아보지 말걸, 꿈속 그녀는 알몸으로 초승달 위에 웅크려 울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나는 그 밤부터 꿈만 꾸면, 구름 위로 떠오르는 달에게 올라타는 연습을 한다. 제멋대로 엉켜버린 두 인연이 천년의 허공 속에 헛돌지라도, 미친 듯 미친 듯 그녀를 위해, 나는 밤마다 꿈속에서 달을 타는 연습을 한다.
귓속 물이 차
띠풀은 귀를 허공에 넣고
비가 빗소리 몰고 오는 짓을 다 듣고 있었다
그 아랫도리 벌쭉한 새 무덤 위에서
참 희한도 하지
비가 빗소리 몰고 가는 짓을 다 알고나 있었다는 듯
띠풀은 귓속 물이 차
자꾸 자꾸 왼쪽 귀를 털고 있었다
무중력
―오너라, 내 가슴 속에, 매정하고 귀먹은 사람아
(「망각의 강」중에서―보들레르)
끝내 저렇게 내린 흰 눈 위에 길이 지워지겠구나
아들이 올 텐데
어둠은 자꾸 병원 격자창에 차갑게 들러붙는데
입술로 흘러든 망각은 물이 찼는데
아들은 꼭 온다고 했는데…,
쉴 새 없이 웅얼거리다 졸아 붙은 치매 입술
수북 빠진 머리칼 곁에 헝클어진 늙은 의자 한 개
아들이 올 텐데, 아들은 꼭 온다고 했는데
함몰된 기억 뒤쪽엔
뼈만 앙상한 등 받침만 남은 채
복도 계단 밑 웅크린 여자의 눈 풀린 동공 속엔
밤새 녹아내린 흰 눈이 또 길을 지우겠구나
쥐떼
두 마리인가 싶더니 순식간, 수 십 수 백 수 천 마리로 불어난 쥐떼들이 완장을 차고, 검은 고양이 한 놈을 뜯어먹고 있었다. 한밤중 쉿, 쉬잇, 쉿, 서로서로의 혼을 호리는 소리는, 죽음 직전 갈라터진 쉰 목소리 같기도 했다. 저 먼저 가겠다고 악 쓰는 놈이 있는가 하면, 재빨리 선두 대열에 끼어 또 다른 괭이로 변신하는 놈도 있었다. 벽 쪽에 옮겨 붙는가 싶더니, 주저 없이 흩어졌다 불어났다 종잡을 수 없었다. 목적 앞에 수단은 일사불란했다. 본능적으로 그놈들은 시대를 꿰뚫고 있었다. 뭉친 힘이 얼마나 센지, 결국 그 뒤엎는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쥐덫은 더 이상 그들에겐 악법이 아니었다.
〈김동원 작품론〉
애내(欸乃)와 시의 흐느낌, 그리고 몸의 언어
― 예술은 사물에서 영혼에 이르는 말이다. (W․칸딘스키)
김상환(문학평론가·시인)
김동원 시인은 내가 아끼는 문학 후배이다. 아니, 후생가외(後生可畏)에 속하는 그와의 만남은 내가 대구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198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지금까지 햇수로 치자면 30년이 다 되어 간다. 어지간히 시간이 흐른 셈이다. 시가 전부인 그에게시천(詩天)이나, 시를 즐기고 누리는 시락당(詩樂堂)이라는 아호는 매우 적절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인간과 문학을 좀더 가까이서 들여다 본 것은 무학산(舞鶴山, 203m)을 오르면서부터이다. 무학은 그가 사는 동리에 있는 야트막하지만 아기자기한 산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무학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길을 걸으며 봄․여름․가을․겨울을 맞이했다. 다시 그 길을 걸으며 우리는 문학의 아름다움과 힘, 시의 비밀을 조금씩 더해갔다. 무학의 숲이 아니었다면, 안개에 가려진 소나무와 자주알록제비꽃, 고라니, 좁다랗게 이어진 길과 양지 무덤, 차(茶)와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저녁놀과 푸석한 흙먼지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시의 새로운 길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시의 고유한 색(色)과 공(空)을 보지 못하고, 향기와 빛깔과 소리를 듣지 못했을 것이다. 살아있음의 황홀경이란 시를 향유하는 데에 있다. 향유(享有. jouissance)의 관점에서 보자면, 숲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은 격물(格物)과 치지(致知)의 대상이자 터무니가 아닐 수 없다. 매월당 김시습에게 매화를 배우는 것은 곧 시를 배우는 일이다. 그것은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이치와도 같은 법. 검은 나무 등걸에서 흰 매화꽃이 피는 것과 다르지 않다. 고고한 향기는 매화의, 시의 절정이다. 시의 선(善,禪)이란 차가운 샘물처럼 경계를 당하면 소리를 내다가도 경계를 벗어나면 다시 고요해 지는 것이다.(“客言詩可學 詩法似寒泉 觸石多嗚咽 盈潭靜不喧 ...... 勦斷尋常格 玄關未易言: 객은 시를 배울 수 있다 말을 하지만/시의 법은 차가운 샘물과 같은 거라//돌에 부딪치면 흐느껴 울다가도/연못에 가득차면 고요해 소리 없네//심상한 격조야 끊어 없앤다 해도/묘한 이치 말로는 전하기 어렵다네.”김시습,「學詩」二首) 시를 배우는 일은 대경 관심(對境觀心, 외부 세계를 대할 때 자신의 마음을 관조하는 것)을 배우는 일이다. 동봉(東峰)에 의하면, 시란 말로는 전할 수 없고 단지 묘처를 보는 데에 있다(“余對不能傳。但看其妙處”)고 한다. 우리에게 무학은 시의 묘오한 이치를 영오(領悟)하고, 시심을 일깨우는 더없는 장소다. 현(現, da)의 사건을 경험하는 현관(玄關)이다. 무학은 그야말로 문학 그 자체다.
시천은 말그대로 시가 하늘인 사람이다. 그가 꿈꾸는 공간은 시하늘이다. 1994년『문학세계』로 등단한 이래 지금까지 네 권의 시집(『시가 걸리는 저녁 풍경』,『구멍』,『처녀와 바다』,『깍지』)과 동시집(『우리나라 연못 속 친구들』,『태양 셰프』), 문학 평설과 에세이집(『시, 낭송의 옷을 입다』,『시에 미치다』)을 이미 세상에 내어 놓았고, 그 결과 2015 대구예술상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다. 이후로도 출간할 목록들이 즐비하다. 문학에 대한 그의 집념과 창작 의욕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으며, 내가 취할 바다. 지천명에 들어선 지금은 더 깊고 치열한 데가 있다. 시인의 운명과 선택은 필연적이라 하겠다. 미상불 그의 지나온 삶은 결코 녹록치가 않았다. 바다가 고향인 그에게 슬픈 가족사와 사고로 인한 아픔의 시간들을 취해 듣고 있노라면 내 마음은 한없이 숙연해진다. 생은 비루하면서도 드높은 것. 시가 생사에 깊이 관여한다면 그의 이런 실존과 역사는 문학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문학의 주위엔 그 누구도, 무엇도 없었다. 그는 홀로 읽고, 홀로 쓰고, 홀로 생각하기를 거듭한다. 사물에 대한 그의 직관과 예지력은 이렇게 배양되었으리라. 그 가운데 수성못과 무학은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주된 관심사는 문학에 있지만 서예를 비롯한 회화와 사진, 도자(陶瓷)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서예는 석암 문하에서 배운지 10여년이 다 되어 가 이젠 거의 수준급이다. 부채에 쓴 그의 서체는 가까운 문인들에게 선물용으로 증정되기도 한다.
그의 시세계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자서(『깍지』)“몸속에 흐르는 물을 베개 삼아 시를 들었다. 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한 몸임을 배꼽에서 빠진 바람소리가 일러 주었다. 한밤중 혼자 깨어 들썩이던 시의 흐느낌이여, 하늘의 소리여!”)를 충분히 음미할 필요가 있다. 그에게 시란 쓰는 게 아니라 하나의 화두(話頭)처럼 드는 것이다.(“시를 들었다”) 언어로서 언어를 넘어서는 게 선(禪)이라면, 선 수행은 몸을 기반으로 한다. 김동원의 시 역시 이러한 몸(의 현상학)을 주축으로 한다.“보이는 것도 보이지 않는 것도 한 몸”이다. 몸은 정신과 물질이 함께 거주하는 장소다. 말하자면“정신과 육체는 유일한 그것(Es)에 의해 결정되는 인간 존재의 두 양태다.”(여인석,「몸의 윤리학: 스피노자와 이제마에 있어 몸의 윤리적 의미에 관한 고찰」) 모든 질병이 파생되는 근원으로서‘그것(Es)’은 몸과 우주의 중심인 옴파로스(omphalos, 배꼽)와도 통한다.「오십천」을 살펴보자.
어릴 적 난 홀어머니와 함께, 강가 백로 외발로 선 오십천 천변에 핀 복사꽃 꽃구경을 갔다 봄 버들 아래 은어 떼 흰 배를 뒤집고, 물결이 흔들려 뒤척이면 붉은 꽃개울이 생기던, 그 화사한 복사꽃을 처음 보았다 젊은 내 어머니처럼 향기도 곱던 그 복사꽃이 어찌나 좋던지, 그만 깜박 홀려 버렸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갓 서른이 넘은 어머닌 울고 계셨다 내 작은 손을 꼭 쥔 채, 부르르 부르르 떨고 계셨다 그 한낮의 막막한 꽃빛의 어지러움, 난 그 후로 꽃을 만지면 손에 확 불길이 붙는 착각이 왔다
어느새 몸은 바뀌고, 그 옛날 쪽빛 하늘 위엔 흰구름덩이만 서서, 과수원 언덕을 내려다본다 새로 벙근 꽃가지 사이로 한껏 신나 뛰어다니는 저 애들과 아내를, 마치 꿈꾸듯 내려다본다
-「오십천」전문
제2시집『구멍』(2002, 그루) 속에 수록된 이 시는 그의 내면을 이해하는 중요한 바로메타가 된다. 영덕 오십천(五十川)은 청송 주왕산에서 발원해 영덕읍을 가로질러 강구항으로 흘러드는 하천을 말한다. 맑은 물과 수려한 자연 경관으로 유명한 이곳은 하천의 곡류가 매우 심해 하류에서 상류까지 가려면 물을 오십 번 정도는 건너야 한다. 시인에게 오십천은 하나의 주름이자 흐느낌이며, 문학이란 질병이 파생되는‘그것’이다. 꽃핀 봄날, 시인의 고향(경북 영덕)을 배경으로 한 인용시는 저토록 아름답고 지순하면서도(“봄 버들 아래 은어 떼 흰 배를 뒤집고, 물결이 흔들려 뒤척이면 붉은 꽃개울이 생기던”) 슬픈 구석이 있다. 풍경의 이면에 주어진 상처 때문이리라. 나에게 어머니는‘처음’과‘홀/외’이라는 점에서 더없이 애잔하고 순수한 시간으로 드러나 있다. 그런 감정과 감각이 극단으로 치닫게 되면 어머니의 꽃,“막막한 꽃빛”은 불(길)로 되살아나 내 어질머리와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이는 어머니의 울음과 떨림이 가져다 준 긴 흐느낌이다. 시간의 흐름을 위주로 한 이 시의 후반부에선 다시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진다. 하늘 저편 흰 구름을 배경으로 과원과 복사꽃에 취한 후손들을 바라보는 어머니, 그 그윽한 눈길은 한없이 자애롭고 따뜻하기만 하다. 삶과 죽음, 현실과 환영(幻影)을 매개로 한 복사꽃은 부재한 어머니에게서 발현되는 현존의 빛이자 향기다. 다음은「귓속 물이 차」와「깍지」란 시를 보자.
띠풀은 귀를 허공에 넣고
비가 비 소리 몰고 오는 짓을 다 듣고 있었다
그 아랫도리 벌쭘한 새 무덤 위에서
참 희한도 하지
비가 비 소리 몰고 가는 짓을 다 알고나 있었다는 듯
띠풀은 귓속 물이 차
자꾸 자꾸 왼쪽 귀를 털고 있었다
-「귓속 물이 차」전문 ①
내 손을 나꿔 챈 그녀에게 아내가 있어 안 된다고 했다. 곁에 벗은 예쁜 속옷은 유채 꽃빛이었다. 등 뒤에서 그녀가 “오늘 밤만이라도 하늘 물속을 헤엄쳐, 저 샛별까지 갈 수 없냐”고 내 허리를 꽉 깍지로 껴안았지만, 나는 두 자식이 있어 진짜, 안 된다고 뿌리쳤다.
돌아보지 말걸, 꿈속 그녀는 알몸으로 초승달 위에 웅크려 울고 있었다.
어쩐 일인지 나는 그 밤부터 꿈만 꾸면, 구름 위로 떠오르는 달에게 올라타는 연습을 한다. 제멋대로 엉켜버린 두 인연이 천년의 허공 속에 헛돌지라도, 미친 듯 미친 듯 그녀를 위해, 나는 밤마다 꿈속에서 달을 타는 연습을 한다.
-「깍지」전문 ②
서시에 해당하는 ①의 경우, 하늘의 천사가 온몸이 눈(眼)으로 되어 있다면, 무덤 위에 핀 띠풀(띠꽃)은 온몸이‘귀’로 이루어져 있다. 하여 다른 몸은 비에 다 젖어도 귀(의 속)는 젖지 않도록 털기를 반복한다. 침묵의 언어를 잘 듣기 위해서다.“비가 비 소리(를) 몰고 오(고), ...... 몰고 가는”것을 죄다 듣는 것도 비어 있는 귓속 때문이다. 끊임없이 채우고자 하는 빗물과, 비우고자 하는 몸(귀)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 그것이 이 시의 기본 구도다. 이 경우 귀 또는 (존재의) 들음이라는 현상은 비어있음의 실재로 파악된다. 귀는 가시적이면서도 비가시적이다. 이러한 신체와 영혼이 만나는 지점으로서 귀는, 귓속은 무덤 속 죽음의 말을 엿듣는다. 그렇다면 지금 비를 맞고 있는 띠풀은 띠풀이 아니다. 띠(帶)는 세속의 눈으로는 범접하기 어려운 귀, 또는 금기의 영역으로 거듭나 있다. 이 시의 흐느낌은, 흐느낌의 비밀은 그런 띠와 풀/꽃의 소도(蘇塗)에 끊임없이 위치하려는 비의 음역(音域)과 그 들리는 듯 들리지 않는 소리의 세계를 아는 데에 있다.
시집 표제시이기도 한 ②의 경우, 몸을 가진 인간의 꿈과 허무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나의 꿈은 그녀와의 짧은 만남에서 비롯된다. 그런 순간은 모든 경계를 초월해 있으며,“하늘 물속을 헤엄쳐, 저 샛별까지”닿아 있다. 순간을 영원으로 이어주는 끈이나 몸이 깍지다. 깍지가‘손가락을 하나씩 엇갈리게 하여 바짝 맞추어 잡은 상태’를 말한다면, 마음과 마음의 결속과 분산은 피할 수 없다.(“내 허리를 꽉 깍지로 껴안았지만, 나는 두 자식이 있어 진짜, 안 된다고 뿌리쳤다.”) 비록“제멋대로 엉켜버린 두 인연이(라 하더라도)”그녀에 대한 나의 기억은“(밤이면) 밤마다 꿈속에서 달을 타는 연습을 한다.”밤은 꿈을 낳고 꿈은 사랑을 낳는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은 꿈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것도 등 뒤에서 순간적으로 깍지 낀 사랑의 추억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 깍지를 풀려고 하면 할수록 더 조여드는 느낌이 시의 흐느낌이다. 그것은 나의 금기 위반(“돌아보지 말걸”)이나, 그녀의 웅크린 자세에서 찾아진다. 특히“알몸으로 초승달 위에 웅크려 울고 있”는 그녀는 (허)무라는 빛이다.「깍지」가 꿈속(의 꿈)을 모티프로 하고 있다면,「무중력」은 치매병원에서 치매를 앓던 어떤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씌어진 시로 알려져 있다. 지나간 모든 기억은 다 잃었지만, 자기를 두고 간 아들이 말한 “꼭 다시 온다.”는 기억만은 살아 있는 화자를 통해, 망각의 강을 건너는 인간 실존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그렇다고 김동원의 시가 공(空)의 세계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니다. 다음은 색계 즉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돋보이는 시편이다.
두 마리인가 싶더니 순식간, 수 십 수 백 수 천 마리로 불어난 쥐떼들이 완장을 차고, 검은 고양이 한 놈을 뜯어먹고 있었다. 한밤중 쉿, 쉬잇, 쉿, 서로서로의 혼을 호리는 소리는, 죽음 직전 갈라터진 쉰 목소리 같기도 했다. 저 먼저 가겠다고 악 쓰는 놈이 있는가 하면, 재빨리 선두 대열에 끼어 또 다른 괭이로 변신하는 놈도 있었다. 벽 쪽에 옮겨 붙는가 싶더니, 주저 없이 흩어졌다 불어났다 종잡을 수 없었다. 목적 앞에 수단은 일사불란했다. 본능적으로 그놈들은 시대를 꿰뚫고 있었다. 뭉친 힘이 얼마나 센지, 결국 그 뒤엎는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
쥐덫은 더 이상 그들에겐 악법이 아니었다.
-「쥐떼」전문
「쥐떼」는 메시지가 분명하고 디테일한 묘사가 돋보인다. 무서운 상대 앞에서 한없이 움츠려드는 형세를 두고 흔히‘고양이 앞에 쥐’라는 말을 한다. 하지만 이 시에서는 되레‘쥐 앞에 고양이’가 된 꼴이다. 한밤중 쥐와 고양이 간의 대립과 긴장의 국면은 약육강식의 처절한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한밤중 쉿, 쉬잇, 쉿, 서로서로의 혼을 호리는 소리는, 죽음 직전 갈라터진 쉰 목소리 같기도 했다.”라는 대목은 그야말로 압권이다. 우리가 곤히 잠든 사이 칠흙같은 어둠 속에서 숨죽인 채 벌어지는 동물의 세계, 즉“서로서로의 혼을 노리는 소리”라든가,“죽음 직전의 갈라터진 쉰 목소리”는 매우 실감 있고 실존과 운명의 순간이 감지된다. 이는 정치 사회적 알레고리 성격마저 지니고 있다.“본능적으로 그놈들은 시대를 꿰뚫고 있었다. 뭉친 힘이 얼마나 센지, 결국 그 뒤엎는 힘이 세상을 바꾼다는 것을,”에서 보듯이, 이 시의 미덕은 시대를 통찰하는 힘과 부정과 불의를 전복시키는 데에 있다. 이는 곧 민중의‘반(反)/역(逆)’의 정신에 다름아니다.
지금까지 김동원의 시편들을 관통하면서, 나는 시의 애내(欸乃)와 흐느낌을 듣는다. 그 시어 속 몸의 언어는 시인 것과 시 아닌 것, 죽음과 기억, 생명과 자비, 꿈과 현실의 이미지로 차고 넘쳐나 있다. 그 마음과 소리는 얼마나 깊고 웅숭한 바다 속인지, 슬프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리고 현실 감각에 있어서도 전혀 빛을 바래지 않고 있다. 몸을 가진 우리 인간에게 시와 삶이란 무엇인가? 지천명에 낸 그의 시집『깍지』는 그 답을 알고 있다. 무학을 오른 자는, 그리고 죽도록 아파본 자는 깍지의 비밀을 알리라. 깍지야말로 마음의 빛이자 그늘이다. 사랑과 죽음이다. 참된 시인이라면 영혼의 깊은 늪 속에 잠들어있는‘그것’을 찾아서 깨울 줄 알아야 한다. 나는 오로지 시로만 살고 시로만 일이관지(一以貫之)하는 그에게, 때를 기다리는 남다른 예지와 통찰력을 본다. 영혼의 깊고 어두운 심연인‘두엔데(Duende)’의 가능성을 본다.
첫댓글 아이구, 선생님 정말 좋은상을 수상하셨네요 축하드리며 오늘 글 잘 읽고 나갑니다. 우리시댁이 바로 경주 최씨라서 제가 한껏 부풉니다 다시한번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선냉님 드디어 결실을 걷우어 드리기 시작이군요 날개를 넓고 크게 펼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