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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술서
존경하는 재판장님
저는 50평생을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를 만드는 일을 위해 살아왔습니다. 이를 위해 르완다, 보스니아, 소말리아, 동티모르, 아프가니스탄, 카슈미르 등 이 세계의 여러 분쟁지역을 두루 다니며 전쟁의 참담함과 그 피해자들의 눈물과 고통을 뼈저리게 공감해 왔습니다. 제가 제주 강정 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것을 저지하려는 이유는 이런 전쟁과 폭력의 참화와 그 희생의 끔찍함을 누구보다 더 가깝게 경험해 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우리 정부와 해군이 해군기지 건설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수중 암초인 이어도 인근의 자원 개발과 남방 수송로 확보는 단지 겉으로 내세우는 명분일 뿐 진정한 이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설령 그것이 진정한 이유라고 할지라도 우리 나라가 중국이나 일본을 저항하여 무기와 군사력으로 목적을 달성하려는 시도는 매우 비현실적일 뿐 아니라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해군이 아름다운 강정마을의 자연을 파괴하면서까지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근본 이유는 우리 나라가 당면한 실제적인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어느 사회적 집단이나 추구하려 드는 집단 이기주의적인 자기 몸 불리기 사업이라는 의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장 안전하고 가장 아름답고 가장 평화로운 한 시골 마을 주민들의 땅을 강제로 빼앗아 절대보존지역을 날치기로 해제하고 천혜의 살아 숨쉬는 거대한 너럭 바위 지대, 구럼비를 콘크리트로 덮어서 전쟁을 불러 들이는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발상은 탐욕에 의해 이성을 잃은 집단 광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저도 가끔은 내가 하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반대 운동이 잘못된 것은 아닌가 해군의 입장에 서서 반성해 보곤 합니다. 해군기지 건설 사업단 현관 앞에는 완성된 해군기지의 모습이 그려진 광고 입간판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 곳에 서서 정말 이런 크고 화려한 기지 건물들이 들어서면 이 강정 마을에 발전이 오는 것은 아닐까? 곰곰이 생각해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정작 중덕 앞바다의 구럼비 바위지대에 앉아서 사방을 둘러보면 그런 광고 입간판에 그려진 허구적이고 환상적인 그림의 마취에서 헤어나게 됩니다. 뒤로는 한라산의 우아하고 웅장한 자태가 병풍처럼 둘러 있고 앞으로는 범섬, 문섬, 섶섬이 동양화처럼 바다 위에 떠 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가히 흉내낼 수 없는 각기 제각각 기묘한 모습으로 창조된 구럼비 바위에서는 맑고 깨끗한 용천수들이 솟아 오릅니다. 누구나 타고난 심성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살아 숨쉬는 바위를 시멘트로 덮어 어떠한 인공구조물을 세운다는 것에 본성적인 거부감을 느낄 것입니다. 하물며 이 아름다운 자연을 파괴하여 해군기지를 세운다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현재 강정마을에서 추진되고 있는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그 계획 자체가 주변국가에 불안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그 시행에서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째로는 우리 사회의 근간이 되는 민주적 절차를 무시한 사업이라는 점입니다. 해군과 정부는 처음부터 합법적인 절차를 다 밟았다고 주장하지만 그 근거로 내세우는 2007년 4월 26일 마을회의는 마을 총회의 공고일도 지키지 않고 충분한 고지도 안 된 상태에서 이미 매수된 사람들을 적극적으로 동원하여 날치기로 통과시킨 조작된 회의였습니다. 또 전화 설문 조사를 그해 5월 진행하였다고 하나 그 설문의 내용도 공개하기를 기피하고 그 공정성에 대한 평가도 거부하는 해군의 목적 달성만을 의도했던 조사라고 여겨집니다. 어떻게 현 지역 사회의 천년 운명을 결정할 중대사를 이렇게 졸속으로 처리할 수 있습니까? 만일 해군과 정부가 주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고 정당한 절차를 밟았다면 마을이 이렇게까지 5년이 되도록 생업을 제쳐두고 까지 기지 건설 사업 저지를 위해 투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해군은 이미 천억이 넘는 공사비를 지불하였으니 더 이상 뒤로 물러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우리 나라의 헌법의 기본이며 우리 사회의 밑바탕이 되는 민주주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천억 아니라 1조의 공사비 모두를 물리는 것 조차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평화의 섬 제주도에 해군기지는 국가의 안보를 오히려 해친다는 점입니다. 해군은 오직 국가의 안전 보장이 폭력에 의해서만 지켜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제주 해군기지의 목적은 무엇보다 북한의 침략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을 견제하기 위한 것입니다. 만일 해군이 진정으로 그것이 목적이라면 중국을 대항해서는 제2 함대가 있는 평택에, 또 일본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부산의 제3 함대로 분산하여 해군을 편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주도를 찾는 최대의 관광객은 중국인이고 그 뒤를 일본 관광객들이 잇고 있습니다. 제주도는 중국과 일본을 대항해서 싸움을 준비해야 할 곳이 아니라 이들과 더 끈끈한 친선과 우호의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치 외교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할 곳입니다. 우리가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군사력을 키우자고 하는 것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군사력을 증강하자는 주장처럼 비현실적이고 위험한 군사적 모험주의이고 이는 필경 우리나라의 안보를 심각하게 위협하는 무모한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제주 해군기지야 말로 이런 오만한 군사주의적 만용에서 비롯된 발상입니다 해군이 주장하고 있는 해상에서의 치안은 해경이 수행해야 할 일이고 이어도 인근의 국경 분쟁 가능성은 정치 외교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입니다. 만일 우리가 군사적 시위로 이를 해결하려 든다면 우리나라는 예상치 못한 전쟁의 참화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만일 제주도에 해군기지가 들어선다면 현행 한미 상호 방위 조약에 의해서 미군의 군사적 이욕이 허용되고 미군은 이 해군기지를 대중국 견제를 위해서 사용할 것이 불을 보듯 뻔한 이치입니다. 결국 우리나라는 우리가 지은 해군 기지로 인해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다투고 중국과 미국이라는 두 초대강대국의 패권 다툼에 스스로 끌려들어가 비극적인 역사의 희생자가 될 것입니다. 제주도는 비무장 평화의 섬이어야 합니다. 이것은 역사의 교훈이고 4.3 희생자들의 염원입니다. 4.3은 일본 군국주의와 그에 따른 제주도의 군사 요새화의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군사적 요새화는 전쟁을 부르고 전쟁의 정복자는 이 땅에서 대대적인 살상을 감행합니다. 이것이 4.3이었고 우리가 어리석게도 4.3의 혈흔이 마르기도 전에 또 다시 무모하게 준비하는 비극적인 미래입니다. 1945년의 대일본제국의 군항 히로시마를 기억하십시오. 우리는 그 핵무기의 잔해 속에서 잿더미가 되어 버린 10만의 무고한 시민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제주도 강정에 해군기지기 들어선다면 저는 대략 2025년경 동북아시아의 패권이 미국에서 중국으로 넘어 갈 수 밖에 없는 그 어떤 시점에 우리 제주 강정과 서귀포, 중문이 또 하나의 히로시마가 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을 떨쳐 버릴 수가 없습니다. 지금의 핵무기는 1945년 당시보다 5000배의 위력을 갖고 있다 하니 저는 감히 상상을 못하겠습니다.
저는 80년대 초반 휴전선에서 군복무를 하였습니다. 북한의 젊은이들을 인간으로 보지 말라고 교육 받으며 어떠한 인간애도 애써 지워가며 냉정한 마음으로 그들의 가슴에 총구를 겨누며 젊은 시절의 한 때를 보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이웃나라 중국과 일본과 싸울 준비를 하자는 것입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이 그것 밖에는 없단 말입니까? 왜 먼저 정치 외교적으로 대화로 현안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단 말입니까? 제주 해군기지 건설의 명분이 되고 있는 대양해군의 논리는 우리나라의 경제적 부흥에 따른 소 제국주의적인 만용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대양에까지 나가서 폭력을 행사하려는 오만을 버리고 대양 치안을 위한 국제 사회의 공조와 협력이라는 더 겸허하고 현실적인 길을 찾아야 합니다. 해군의 이러한 팽창주의적 오만과 만용으로 인해 북한과 긴박하게 대처하고 있는 서해안에서 천안함이 폭침 당하고 연평도가 폭격 당하는 위험을 초래했음을 기억하십시오.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이 이 일련의 국가 안보 위협에 책임이 있음을 상기시켜 드립니다.
셋째로 해군기지 건설사업은 자연과 환경을 파괴하여 제주도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재산이요 사업은 아름다운 자연과 청정한 환경입니다. 만일 이것이 없다면 그 누구도 제주도를 찾지도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제주도의 제1의 자산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제주도에서도 절대보존지역으로 규정되어 있는 강정마을의 그 천혜의 지질적 특성들은 모두 무시하고 이를 파괴시키고 군사기지 건설은 이치에 맞지가 않습니다. 강정에서 2.5 Km 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천연 기념물인 범섬이 놓여 있고 이 일대의 바다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물권보호지역입니다. 이는 우리나라가 국제 사회에 이 인류의 자연 유산을 잘 지키고 보존하겠다는 약속을 한 지역이란 뜻입니다. 또한 이전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해양생태계 보호지역이요 멸종위기1급인 나팔고동이나 연산호 군락지처럼 희귀 생물권 보호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런 아름답고 각종 희귀 생물들이 다양하게 서식 생존하는 지역을 준설하고 매립하여 군사시설을 만든다는 것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습니다. 저는 이 자연 생태계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 모든 인간들에게 위임한 인류 공통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해군기지 건설 사업장 내에는 늪지대가 있고 이 곳에는 멸종위기2급 동물인 붉은발말똥게와 맹꽁이가 서식하고 있는데 환경 영향 평가 조사에서 발견조차도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이 사업이 졸속으로 진행되는지를 시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시점에 와서 이를 약천사 등지로 강제 이주시키겠다고 하는데 이 이주 결과에 대한 책임자도 없을 뿐 더러 주무 부처인 영산강 유역 환경청도 이런 이주가 성공적으로 진행된 경우가 없다고 했습니다. 단지 주어진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 오로지 기지 건설에 장애가 되고 동식물들을 합법적으로 제거하고 있을 뿐 누구도 이에 대해 법적인 책임을 맡은 이가 없습니다. 해군기지 건설 사업은 우리 생태계의 한 종에 불과한 인간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환경을 확보하기 위해서 생태계를 사슬처럼 엮고 있는 수 많은 생물종과 동물을 무차별로 살상하는 생물권의 대학살 현장입니다. 누구라도 인간 본연의 생태적 감수성을 훼손 당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우리가 속한 인간이란 한 종이 생태계 안에서 자행하는 횡포와 학살을 막아야 합니다. 함께 해군기지 건설을 저지하는 한 분이 “아주 작은 생물을 존중하고 아끼는 곳에 진정한 평화가 있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 모두가 깊이 새겨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넷째로 해군기지 건설사업은 마을에 분열과 갈등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해군은 강정마을 공동체를 희생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해군기지 건설을 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공사를 강행하고 있습니다. 법을 모르고 오직 땅과 씨름하며 정직하게 살아온 50명이 넘는 순박한 농민들이 범법자가 되어 처벌을 당하고 이들이 물어낸 벌금만도 5000만원이 넘습니다. 저도 이 곳 강정에서 50평생 처음으로 철창 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살벌했던 70년대, 80년대 군부 독재 하에서도 법이 두려워 숨죽이며 지내던 비겁한 청년이었습니다. 이를 속죄라도 하려는 양 온 세상 전쟁 지역과 아체, 아이티 등지의 재난 지역에서 봉사하며 살아 왔습니다. 그러던 제가 이제 신앙과 양심과 신념에 비추어 대한민국의 정의와 동북아시아의 평화 그리고 인류 사회의 약속으로서의 생태계의 보전과 자연 환경의 보호를 위해 이 사악하고 위험하고 광기 어린 해군기지 건설사업을 저지하려고 합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제주도민을 포함해서 우리 국민 대부분은 심지어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하는 사람들 중에도 다수는 먼저 주민들과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 공사의 일시적 중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해군이 이런 국민적 요구를 무시하고 공사를 강행하려는 데에는 국민의 공감과 합의에 대한 불신감과 친군사주의적인 특정 정권에 기대어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려는데 있다고 여겨집니다. 어떤 정책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뀔 정책이라면 이는 근본적으로 다시 숙고되고 검토되어야 할 사안입니다. 해군의 공사 강행이 바로 스스로 제주 해군기지가 그런 재검토가 필요한 사업임을 반증하고 있는 것 입니다. 1000년의 미래를 좌우할 제주 해군기지 건설 사업, 한번도 겪어 보지 않았던 위험과 위협을 가상하여 세우려는 이 사업이 진정 국가 안보에 진정으로 필요한 사업인지 아니면 오히려 국가의 안보에 심각한 피해를 줄 어리석고 위험한 사업인지 재검토해야 할 것이며 마을 국민들과 제주도민 그리고 국민들의 공감과 합의를 도출하여 5년간의 갈등과 분쟁을 그치기 위해서 기지 건설 사업은 즉시 일단 중지되어야 하며 국회의 심도 있는 진상조사를 비롯하여 정부 차원의 갈등 해결 노력이 공사강행에 앞서 반드시 진행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재판장님께 호소하고 싶은 말씀은 제가 신체의 자유를 구속 받지 않은 상태에서 심문과 조사를 받고 재판에 임할 수 있도록 선처를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립고 아름다운 강정 앞바다와 한라산의 푸른 숲이 보고 싶어서입니다. 재판과 조사에 성실히 임하겠습니다. 부디 불구속 수사와 불구속 상태에서의 재판을 요청 드리며 판사님의 권고와 재판 결과를 존중하고 따를 것입니다.
(2011. 7. 17 송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