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22.23.24. 바탐-싱가폴-귀국)
우리는 전신마사지를 마치고 바깥으로 나오면서 마사지를 받는 동안 있었던 일에 대해 서로 거짓말을 보태어 이야기하며 박장대소하였다. 다시 버스를 타고 숙소인 Holiday inn resort hotel에 도착하니 현지 시간으로 밤 10시가 넘어 사방이 캄캄하였다. 방 배정을 받기 위해 벽면이 개방된 응접실에 앉아 있는데 먼저 온 다른 관광객들이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는지 실내에 연기가 자욱하였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 방 배정을 받아 짐을 챙겨 소로를 따라 언덕으로 올라가니 기존의 호텔과는 전혀 다른 전통가옥 형태의 방이 나타났다. 모양은 그럴싸하지만 샤워를 해도 금방 땀이 흘러 말짱 도루묵이 되는데다가 방에 달린 에어컨도 있으나 마나 하여 잠을 자기엔 그다지 좋은 시설이 아니었다. 침대에 모기장 같은 것을 쳐놨는데도 벌레들이 많이 날아들어 잠을 자면서도 불안하였다.
사진 1) 바탐섬에서 숙박한 Holiday inn resort hotel
사진 2) 밤늦게 호텔에 도착하여 응접실에서 방배정을 기다리는 중
사진 3) 호텔 방 안의 모습
밤 12시가 넘어 침대에 누워 잠이 들려는 찰나에 다른 방에 있던 오찬규 사무관으로부터 잠간 바깥으로 나오라는 전갈이 왔다. 교원대에서 유치원 원장 자격연수를 받고 있는 한 팀이 동남아 해외연수 중 우리와 다른 경로를 거쳐 이날 같은 리조트에서 숙박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원 기숙사에서 한번 면담한 적이 있는 유치원 원감들인데 사실은 여기서 만나거든 함께 놀기로 사전에 약속이 되어있었다.
그런데 우리가 전신마사지를 받느라고 숙소에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시간이 엇갈려 버린 것이다. 그녀들은 일찍 와서 자기들끼리 놀다가 방으로 들어가 버렸는데, 그때서야 우리는 도착하여 그녀들이 이미 와있는 줄도 모르고 마냥 기다리다가 전화 연락도 되지 않자 실망을 하고 각자 방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있었던 것이다.
크게 실망하여 한숨을 쉬던 오찬규 사무관의 끈질긴 노력으로 늦었지만 어떻게 연락이 닿은 모양이었다. 눈을 비비며 바깥으로 나가니 오 사무관과 3명의 여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좀 더 이른 시간에 만났으면 이곳에 설치된 바(bar)에서 그동안 동아리 활동으로 갈고 닦았던 춤 실력을 맘껏 뽐내며 그녀들과 재밌게 놀 수 있었을 텐데 웃고 떠들고 놀기에는 너무 늦은 시간이라 아무것도 할 수없는 것이 유감이었다. 조명은 꺼지고 모두들 잠들어 사방은 고요하였다.
그 중 맘에 드는 여인이라도 있으면 용기를 내어 스캔들이라도 한번 만들어 볼 수도 있겠지만 피차 그럴만한 형편은 안 되어서 함께 잠시 해변을 거닐다가 대화의 소재의 빈곤으로 하품하는 모습만 보여주고 어색한 작별을 하고 말았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모두가 잠든 한밤중에 남녀가 한자리에 있었어도 아무런 추억을 만들지 못하였다. 마음이 없었기 때문이다.
열대야 현상으로 몸을 뒤척이며 밤을 지새운 후에 날이 밝아 바깥으로 나가보니 리조트 주변 경관이 환상적이었다. 요리사가 눈앞에서 직접 만들어주는 뷔페식 식사로 아침을 먹고, 멋들어진 리조트 수영장을 지나 지난밤에 거닐었던 해변을 다시 둘러보니 그 경관이 낭만을 느끼기에 충분하였다. 속이 훤히 비치는 푸른 바다는 뛰어들고 싶은 충동을 유발하였고 야자나무 숲 언덕의 아담한 리조트 건물은 푸른 바다와 잘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되었다. 우리 일행 중에는 알몸으로 수영을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사진 4) 다음 날 아침 전통가옥 같은 호텔 방 앞에서
사진 5)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요리사들
사진 6) 리조트 호텔내 수영장
사진 7) 리조트 풍경 1
사진 8) 리조트 풍경 2
사진 9) 리조트 풍경 3
사진 10) 리조트 응접실의 종교적인 석상
리조트에서 상당한 시간 해변풍경을 감상하며 지체하다가 오전 11시경에 그 지역의 원주민 마을을 방문하였다. 마을 입구에서 귀여운 여자어린아이가 내게 달려오더니 나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뭔가를 약속하였다. 나는 영문을 몰랐는데 마을 방문을 마치고 돌아 나올 때 그 아이가 내게 바나나를 들이 미는 것을 보고서야 그 뜻을 알아차렸다. 관광객을 상대로 바나나를 파는 어린아이들의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어린아이에 대한 동정심을 그곳 어른들이 이용하고 있음을 발견하고는 안쓰러움이 느껴졌다.
이곳 원주민 마을에서도 말레이시아 조호바루에서 그랬던 것처럼 민속춤 공연을 보고 함께 춤도 추었다. 공연이 대단한 것이 아니어서 그런지 그곳에서 카카오 열매에 직접 빨대를 대고 원액을 빨아 먹는 대접을 받았던 것 외에는 다른 기억이 머릿속에 떠오르지 않는다. 12시경이 되어 우리는 해안가 물위에 있는 어느 식당에 가서 해산물 요리로 점심을 먹었다. 강인지 바다인지 모르지만 배가 떠다니고 있었다.
사진 11) 원주민 마을에서 바나나를 팔던 어린이와
사진 12) 원주민 마을에서 본 열대 과일
사진 13) 선상 식당
사진 14) 선상 식당에서 먹은 점심
사진 15) 점심 식사후 식당 입구에서 가이드와 함께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40분경에 우리는 이 지역에 있는 불교사원인 천은미륵불원을 관람하였다. 회교국가인 인도네시아에 불교사원이 있다는 점이 특이하긴 하지만 특별한 역사적 의미도 없고 예술적 가치도 없는 그곳을 왜 우리가 가봐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자연과 잘 어우러진 전통사찰의 아름다운 모습만 보다가 이곳에서 황량한 대지위에 현대식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루어진 사찰의 멋없는 모습을 보니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 가까운 곳에는 볼거리가 없었나 보다. 그래도 불상 앞에 꿇어앉아 절하며 기도하는 모녀의 모습은 진지하였다.
사진 16) 천은미륵불원 전경
사진 17) 천은미륵불원 내부 모습
사진 18) 달마 상
사진 19) 대웅전 앞 대형 향로
사진 20) 불상 앞에서 예불한 후 다시 대형 향로 앞에서 절하는 모녀
우리는 천은미륵불원을 나와 바탐섬 여객터미널로 이동하여 배를 타고 오후 5시경에 다시 싱가폴로 돌아왔다. 그리고 터미널 부근에 있는 케이블카 역에서 곧장 케이블카를 타고 센토사섬을 구경하였다. 센토사(Sentosa)섬은 싱가포르의 유명한 휴양지로서 "센토사"는 말레이어로 "평화와 고요함"을 뜻한다고 한다.
이곳에는 싱가포르의 역사와 문화를 밀납 인형과 조형물로 꾸며놓은 싱가포르 이미지관, 식민지배의 흔적인 실로소 요새, 초대형 수족관인 언더워터 월드, 나비공원과 곤충 박물관, 모든 감각을 동원한 4차원 체험이 가능한 센토사 4D 매직스와 110m 높이의 전망대 스카이 타워, 돌고래쇼장 돌핀라군, 스파 보타니카 등 다양한 볼거리와 휴양시설이 밀집되어 있다고 하는데, 시간이 늦었기 때문인지 예매를 안했기 때문인지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런 것을 보지 못하고 단지 케이블카를 타고 센토사 섬에 갔다 왔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센토사 섬에는 많은 관광객들로 붐비었다. 우리는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린 후에 모노레일을 타고 가이드의 안내로 어디론가 이동하였다. 그곳에는 이전에 보았던 머라이언상이 우뚝 서있었다. 센토사섬에 있는 머라이언상은 마리나만(Marina bay)에 있는 머라이언상을 본 떠 만든 것으로 높이 37m이며 전망대로도 쓰인다고 한다. 그 앞쪽으로는 계단식 분수대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 주변에서 부채를 부치며 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사진 21) 배를 타고 싱가폴에 귀환
사진 22) 케 이블카 타는 곳 - 센토사 섬으로
사진 23) 케이블카
사진 24) 케이블카에서 내려다 본 싱가폴 항의 모습
사진 25) 센토사 섬에 있는 머라이언 상
우리는 다시 케이블카를 타고 센토사섬을 빠져나와 오후 7시경에 저녁을 먹은 다음 곧 바로 싱가포르 강에서 소형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감상하였다. 강이라고 부르기에는 조금 부족한 폭이 좁은 하천을 거슬러 오르내리니 강변 곳곳에는 형형색색의 조명불빛으로 환희 빛나고 우둑 쏟은 빌딩에서는 서로 방향을 틀어가며 레이저 빛을 쏟아 부었다. 화려한 불빛을 보면 사람의 마음이 흥분되는가보다, 배에서 내려서도 한참 동안 그 여운을 잊지 못하고 혹시 재미있는 일이 없을까 기대하여 강변 거리를 배회하였다.
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오후 10시경에 귀국을 위해 싱가폴 창이공항으로 이동하였다. 공항 대합실에서 나는 수하물 접수를 기다리는 시간에 아내에게 전화를 하였다. 통화 내용은 앞에서(바탐섬에서 생긴 일) 밝힌 바와 같다. 우리는 10시 35분발 비행기를 타고 하늘을 날아 우리시간 오전 7시경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다시 리무진을 타고 학교로 돌아왔다.
사진 26) 저녁 식사
사진 27) 차창으로 바라본 싱가폴 최초의 불교 사원인 천복궁 사원의 모습
사진 28) 리버스 크루즈 매표소
사진 29) 싱가포르 강의 야경 1
사진 30) 싱가포르 강의 야경 2
사진 31) 싱가포르 강의 야경 3
사진 32) 싱가포르 강의 야경 4
사진 33) 싱가포르 강의 야경 5
사진 34) 싱가포르 강의 야경 6
사진 35) 싱가포르 강의 야경 7
사진 36) 싱가포르 강의 야경 8
사진 37) 싱가포르 강의 야경 9
사진 38) 싱가포르 강변 번화가에서
싱가폴은 법이 엄격하여 사회가 청렴하고 시민들의 질서의식이 매우 높다는 것은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동안 우리는 싱가폴의 이러한 모습을 동경하고 선망의 대상으로 삼아왔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도 이제는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질서는 법으로 강제하는 것보다 시민의식의 성장에 의해 자율적으로 지켜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모든 것을 법으로만 통제한다면 얼마나 갑갑한 일인가?
나는 싱가폴을 돌아보면서 싱가폴에 대한 호감이 오히려 사라져 버렸다. 후텁지근한 날씨도 그렇지만 독재적인 싱가폴의 국가관리 시스템에서 비인간화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가 싱가폴로부터 본받을 점이 있다면 처벌규정이 엄격한 법 자체보다는 그 법의 공평무사한 집행에 있다고 생각한다.
법이 있어도 힘 있는 자에게는 관대하고 힘없는 자에게는 엄격한 고무줄 잣대의 우리나라 사법 현실에 나는 환멸을 느낀다. 일선의 힘없는 공무원들은 명절에 업자로부터 5만 원짜리 와인 한 병을 선물 받아도 징계를 받는 마당에 평소에 수백만 원에서 수천만 원 심지어 억대의 뇌물을 받아 처먹고도 대가성 운운하며 교묘히 법망을 빠져나가는 권력자들의 뻔뻔한 얼굴에 침을 뱉어주고 싶다.
한편 내가 싱가폴의 여러 모양을 보고도 큰 감동을 못 느낀 것은 우리나라가 그 만큼 발전했기 때문일 것이다. 국가 발전을 위해 각자의 위치에서 고생하고 있는 착한 백성들이 때로는 권력을 탐하는 무리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그들을 지지해주는 현실이 매우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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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행문 작성에 참고한 자료
- 여행사 관광 안내자료
- 인터넷 백과 사전
- 앞서 갔다온 분들의 소개글
2. 기행문 사진의 출처
- 필자 카메라
- 충남교육청 김일규 장학관 카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