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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당벧엘교회 구요셉목사님
‘그 놈을 용서하라고요. 어떻게 그런 놈을 용서합니까’ 하는 제목으로 여러분과 함께 은혜 나누고자 합니다. 계속 주기도문에 대해서 말씀드리고 있는데, 주기도문은 굉장히 신비롭습니다.
마태복음 6장 1절부터 4절
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2 그러므로 구제할 때에 외식하는 자가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는 것 같이 너희 앞에 나팔을 불지 말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3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구절입니다. 남을 구제할 때 남에게 모르게 하라고 하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는 너희 아버지가 갚을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대신 준 사람에게 보상해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영어 성경에는 리워드(Reward)로 보상하다, 보답하다는 뜻입니다.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에서 상을 우리는 천국에서 상을 받는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이는데 그 뜻이 아니라 똑같이 리워드입니다. 단어가 같습니다. 그래서 1절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한다는 것은 상급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보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럼 왜 그렇게 말씀하실까요? 이 개념은 아버지라는 개념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도와주는데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 갚으신다고 하십니다. 목사님들이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인이 빛이 되고 소금되라고 하시며 이름을 들어내는 것이 복음 전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반대로 말씀하십니다.
왜 우리 사람의 생각과 반대의 말씀을 하실까요? 구제는 사실 불쌍히 여기는 것,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내 표현해야할 것 같은데, 하나님은 누가 했는지 모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것은 모든 인류 한 명 한 명을 하나님은 내 자녀로 생각하고 사랑하고 계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갚으신다는 것은 내가 그들의 아버지인데, 그들이 고난당하고, 힘들어 할 때 아무도 모르게 도와준다면 내가 보상하겠다, 보답하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갚으신다는 것은 바로 내가 그들의 아버지라는 뜻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왜 모르게 하라고 할까요? 자신을 드러내면 남들이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런 훌륭한 일을 하셨어요?” 하며 사람을 높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 시작에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며’, 심령이 가난하여지지 아니할까 봐 하나님은 두려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 사람들이 칭송하고 그리스도인이라고 사람들이 칭찬하는 것보다 하나님이 더욱 두려운 것은 여러분 한명 한명,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의 집에 오지 못할까 봐 두려우신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뭘 하라는 것입니까? 우리의 마음이 높아져, 천국에 가지 못할 상황이 되지 않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라는 개념 그리고 천국이라는 개념을 도입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몰래 은밀히 도우라는 것에는 다른 사람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라는 의미도 담겨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자비를 베풀고, 사랑을 베풀되, 다만 내가 높아지지는 말아라. 그리고 그 사람도 자존심 상하지 않게 도와주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겐 자존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몰래 도와주어서 그 사람이 자존심 상하지 않도록 내가 높아지지 않도록 그리고 오로지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도록 하라. 그 사람도 내가 구원할 것이며 너도 구원할 것이라 하십니다. 이는 사람과의 관계가 사랑의 관계로 회복될 때에야 아버지의 나라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답한다는 의미는 바로 아버지의 나라를 허락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돌보시고 천국에도 내가 인도할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비밀이 열리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5절부터 8절
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기도할 때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 구제할 때 보이지 말라고 하십니까? 이것이 외식이라는 것입니다. 외식은 나를 높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못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 교회도 장로님들 대표 기도를 없앴습니다. 왜요? 까딱 잘못하면 외식이 됩니다. 다들 보는 앞에 기도하는 것은 성경의 법에 맞지 않습니다. 말씀에는 큰 거리 어귀에서 기도하는 것은 이미 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사람에게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너는 높은데 있지 말라고 거듭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또 갚으시리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보상, 보답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원하는 것이 있어서 기도하는데 거꾸로 하나님이 보답해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바로 보상입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이해가 안갑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주기도문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은밀하게 하는 기도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아니라면 그것은 기도가 아닌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도와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가 다릅니다. 잘못된 기도를 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희가 기도하면 내가 보답해 주겠다, 보상해 주겠다고 하시는 이유는 주기도문에 해답이 나와 있습니다. 말씀에도 나옵니다. 기도를 많이 한다고 들어주시는 것도 아니고, 필요한 것도 이미 아신다고 하십니다. 즉 기도의 내용에 대해 나오는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이것들은 다 이방인이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 우상 숭배의 기도라는 것입니다. 먹고 사는 문제를 기도하는 것 바로 하나님을 못 믿기에 이렇게 기도한다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보다 물질이 중요한 사람들이 하는 기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네 보화를 하늘에 쌓으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소망을 하늘나라를 위해서 투자하고 돈을 헌금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네 마음을 하늘나라에 두라는 것입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고 기도하라. 이 땅에서 먹고사는 문제, 너의 문제를 가지고 내게 오지 말라. 너의 문제를 내가 해결해 줄 것이라 믿고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 기도는 우상에게 하는 기도라 하십니다. 기도할 때 얼마나 주의해야 하는지 모릅니다.
모든 사람은 자신의 소망, 원하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는 자꾸 원하는 것을 달라는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기도를 길게 하면 들어 주리라는 것은 착각입니다. 우리의 의식주 문제, 염려는 하나님이 이미 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런 기도만 하려 하니, 답답하여 말씀하십니다. ‘공중의 나는 새를 보라. 들에 피는 백합을 보라 이것들도 내가 재우고 입히는데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말씀하십니다. 왜 이렇게 말씀하실까요? 은밀한 가운데 기도할 때 보상해 주시기 위해서랍니다.
마태복음 6장 9절부터 15절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14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주기도문에는 우리가 기도하는 목적이 정확히 나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보답하시겠다고 말씀하시는 이유도 나옵니다. 주기도문의 끝에는 용서에 관해 나옵니다.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놀라운 말씀입니다. 기도는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도와 하나님이 하라는 기도는 전혀 다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성도들에게 어떻게 기도할 것인지 제대로 가르쳐 주지 않았기에 그리스도인들이 진짜 기도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방인이 하는 중언부언하는 기도가 되었습니다. 꼭 주문외는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주기도문에 용서에 관한 말씀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위에서는 중요한 키워드로 갚아주신다. 즉 보상, 보답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이때 자비를 베풀고, 몰래 어려운 사람을 돕는 것들은 이웃에 대한 관심입니다. 가난한 자, 힘든 자에 대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TV를 보면 정말 천인공노할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저히 용서가 안 되는 자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주변에는 없습니까? 저도 옛날에 교회를 제대로 안 다닐 때는 원수가 없더니만, 하나님을 일을 한다고 해보니 원수들이 생기게 됐습니다. 참 희한합니다. 교회 안에 시기 질투도 많고 다툼, 모함, 왕따가 있습니다. 그래서 몇 년 동안은 교회를 나가지 못했습니다.
말씀은 용서하기 위해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황당한 일을 당하고, 잠도 제대로 오지 않고, 분합니다. 세상 사람이라면 멱살 잡고 싸우고 때리고 싶지만, 교회에서는 그러면 안 됩니다. 그래서 참으니 더 힘든 것입니다. 그런 일을 당할 때 ‘하나님 저런 사람도 예수 믿습니까? 아니 저런 사람이 장로입니까? 저런 사람이 전도사입니까?’ 그렇게 질문합니다. 그럼에도 그런 일은 반복됩니다. 용서하기 쉬울까요? 내가 직접 당하면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온갖 거짓 소문을 퍼뜨리고, 모함하고, 비하하는 눈빛을 볼 때 그럼에도 하나님은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저는 이 말씀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군대에서의 트라우마로 제대 후 50대까지도 다시 군대 가는 꿈을 꿨습니다. 또 그때 나온 그 교회를 보면 다시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 그런 사람도 천국 갑니까? 그런 사람도 천국 갈 수 있습니까?’ 계속 묻게 됩니다. 너무너무 억울하고 분합니다. 그럴 때 어떻게 용서할지 방법을 아예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어떻게 용서하라고 하시는지 방법을 찾으려고 메시지를 전하는 겁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기도 방법이 나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여기까지는 너무 좋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십니까? 하늘에 계십니다. 우리 소망은 천국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십니다. 이것을 받아들이면 성경이 다 풀립니다. 이어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고백합니다. 우리는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빛과 소금 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세상에서 칭찬받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입니다. 세상에서 칭찬 안 받고, 모함당하고, 남들이 업신여겨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과 너희의 관계에서 내 이름을 거룩히 여겨다오, 말씀 따라 구별된 삶을 살아달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구별된 삶을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죄짓지 않으려 하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구별하고자 내가 인정함으로써 생각과 행동이 점점 거룩한 삶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됩니다. 기도의 능력입니다.
‘나라에 임하옵시며’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마지막 예수님 부활 승천하실 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실 때를 물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것을 사모하며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그분이 이 땅에 곧 임하신다고 믿으면 여러분이 먹고 사는 문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재물을 어떻게 많이 모을까 하는 염려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염려에서 벗어나서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눈동자, 목표에 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나라를 사모하며 기다리라는 것은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며, 이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 차 모든 민족이 모든 족속이 물이 바다를 덮은 같이 온 세상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가득 차는 그때, 그 나라가 오는 것을 우리가 사모하며 기다리겠다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와 연결됩니다. 놀랍게도 이 말씀은 지금까지 교회가 하던 말이 모두 다 틀렸다는 걸 말해줍니다. 예수 믿기만 하면 천국 갑니까? 전혀 아닙니다. 네가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용서하지 않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내가 최선을 다할 때, 즉 외적으로는 구제의 행동, 내적으로는 기도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남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것이 진짜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그런 자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까딱 잘못했다가는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고 있으면서 천국 갈 것이라 착각하게 됩니다. 용서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밤잠을 설치고 분이나고, 나중에 머리도 하얗게 세어버립니다. 그런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습니까? 해답은 말씀에 있습니다.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이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입니다. 양식을 먹을 때 용서할 수 있는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야 시험에 들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 갈 수 있는 것은 일용할 양식을 먹고, 첫 번째는 용서할 때, 그리고 두 번째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주께서 인도해 주실 때, 그래서 악에서 건지시고, 구원하십니다. 그 밑의 구절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는 앞으로 뺄 예정인데 후렴구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주기도문은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로 마칩니다. 왜 그렇게 끊었을까요? 하나님께 영광 돌리다가 내 마음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내 모습이 멋있어 보이게 해서 앞의 기도가 다 없어지게 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이 후렴 부분을 빼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으로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악에서 구하셔서 천국 가게 하시는 게 주님이 주기도문을 주신 목적입니다. 거기만 딱 집중합시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이 말씀에 다른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이유와 방법이 나오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하는 이유, 악에서 구원하신 이유가 나옵니다. 그러면 일용할 양식이 무엇인지 좀 더 살펴봅시다.
마태복음 5장 산상수훈의 전반부에는 이웃 사랑을 후반부에는 용서의 개념이 들어있습니다. 6장에서도 구제와 사랑은 전반부에 용서는 후반부에 나옵니다. 정리하면 기도는 용서를 하기 위한 것이고, 구제는 사랑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산상수훈 5장의 내용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5장 43절부터 48절
43 또 네 이웃을 사랑하고 네 원수를 미워하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4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45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46 너희가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무슨 상이 있으리요 세리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7 또 너희가 너희 형제에게만 문안하면 남보다 더 하는 것이 무엇이냐 이방인들도 이같이 아니하느냐
48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말씀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바로 용서에 관한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결론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그다음에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구제의 영역보다 용서의 영역이 훨씬 중요한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놀랍게도 기도는 나에 대한 기도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향한 기도입니다. 지금까지 나와 하나님과의 독대의 시간이니까 잘 기도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에 기도를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속에서 미워하지 않고 용서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마음 속을 청소하라는 것입니다. 외적 행동도 다른 사람을 구제함으로써, 불쌍히 여김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기도는 중요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회복입니다. 그러나 이웃과 관계가 회복되는 것이 진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부 때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부분을 깊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어떤 분이 착한 사람의 기준을 어디에 두어야 하냐고 물었습니다. 한 사람을 두고 누구는 착하다고 하고, 누구는 착하지 않다고 다른 평가를 내리는데 성경에 답이 있습니다.(마태복음 5: 43-48. 2부 누가 악인인가? 성경을 기준으로 악인을 감별하고 피하라 : 착하다, 안 착하다는 개념은 범위의 개념이다. 악한 자는 범위가 좁다. 나 중심, 내 생각만 하는 사람 악한 사람입니다. 남과 관계를 맺지 않고 혼자 있으려 하는 사람이 악한 사람이다.)
하나님은 이웃, 원수, 핍박하는 자를 위해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우리에게도 미운 사람, 원수가 있습니다. 그런 자를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요, 예수님은 기도하라고 하시는데, 주기도문을 봤더니 용서하기 위해서는 일용할 양식을 먹어야지, 그렇지 않고는 불가능합니다. 어떻게 그 놈을 용서합니까? 안 됩니다. 무엇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까?
신명기 8장 1절부터 10절
1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찌니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로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만나에 대한 말씀입니다. 그런데 만나로 배가 부릅니까? 아니면 배 고플까요? 여전히 배가 고픕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풍족하고 부유하게 살게 하실까요? 아니면 결핍되고 힘들게 살게 하실까요? 말씀에는 결핍되고 힘들게 살게 하신다고 미리 말하고 있습니다. 광야 길을 걷게 하십니다. 이는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 믿으면 복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습니다. 왜 때리십니까?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하십니다. 곤고한 가운데 기도하러 오기 때문입니다. 기도 없이 천국 갈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우리의 소망이 아버지의 나라가 되게 하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만나를 먹이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고난 중에 있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의 소망이 가나안 땅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않으려 했을 때 40년 동안 광야를 헤매게 하고 만나를 주십니다. 왜요? 가나안 땅에 들어갈 소망으로 가득차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광야 인생, 고난과 고통이 있습니까? 천국을 소망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천국의 비유입니다. 우리가 그 길을 갈 때 하나님은 말씀을 지키는지, 곧 나와 맺은 언약을 지키는지 볼 것이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광야에 살지라도 죽지 않습니다. 40년 동안 의복이 헤어지지 않았고, 발이 부르트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먹고 살게 해 줄 것이며, 너를 이끌어 주리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라. 먹고 사는 문제 때문에 내게 나오는 것은 우상숭배니,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고 말씀을 양식 삼아 먹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말씀 곧 일용할 양식을 먹어야 사는 것입니다.
신명기 8장 15절부터 16절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너를 낮추시겠다고 하십니다. 천국 가려면 어떠해야 합니까? 낮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장, 6장, 7장 산상수훈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핵심 키워드가 바로 심령이 가난해져야 천국을 간다는 것입니다. 용서도 심령이 가난해야 가능해집니다. 구제와 기도에서도 모두 심령을 높이는 것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기에 아무도 모르게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심령이 가난해질 때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입니다. 그분 앞에서 어떻게 감히 나를 높이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 앞에 독대하며 너를 낮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낮아질 때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러면서 너희 인생이 괴롭고 시험이 있을 때 내가 그때마다 돌볼 것이니 두려워 말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시험을 허락하실까요? 복을 주려한다는 것입니다. 복은 지금이 아니고 마침내 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에서 복은 무엇일까요? 히브리어 복은 [바라크]로 ‘무릎을 꿇다’는 뜻입니다. 한국말로 복은 내가 받는다고 이해하고 영어도 블레스(bless) 받는 것이지만 히브리어는 복은 나의 행동에 달려있습니다. 내가 무릎을 꿇었을 때, 그리고 두 번째 [바라크]의 뜻인 ‘찬양하다’ 처럼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경배할 때, 하나님을 경외할 때, 축복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무릎을 꿇는 자입니다. 그러니 많이 기도하고, 많이 구제하고 헌금하였다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는 자입니다. 내게 무릎을 꿇고, 나를 경외할 때 내가 너를 축복한다는 뜻입니다. 천국은 하나님을 경외할 때 들어가는 곳입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늘 하나님 앞에 독대하시는 여러분 되길 축원드립니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을 은밀하게 만납시다.
마태복음 18장 1절부터 4절
1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2 예수께서 한 어린 아이를 불러 저희 가운데 세우시고
3 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4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그이가 천국에서 큰 자니라
제자들이 누가 천국에서 높은 자가 되냐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자기들은 천국은 이미 따 놓았는데 거기서 누가 크냐고 물은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지금의 교회에서 하는 말입니다. 천국은 따놓은 당상이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낮아지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십니다. 어린아이들이 거짓말을 안 해서일까요? 아이들이 얼마나 영악한지 슬픈척하기도 하고 떼를 쓰기도 해서 자기들이 원하는 것을 쟁취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은 낮아진 자, 어린아이처럼 무릎은 꿇은 자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천국에서는 무릎을 많이 꿇은 자가 큰 자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26장 26절부터 30절
26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29 그러나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이제부터 내 아버지의 나라에서 새것으로 너희와 함께 마시는 날까지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30 이에 저희가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나아가니라
오늘의 키워드가 용서에 관한 것인데 어떤 떡을 먹어야 용서할 수 있을까요? 흔히 우리는 떡을 말씀으로 생각합니다.(신8:3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 성경은 누구를 가르치는 책입니까? 예수를 가리키는 책입니다. 예수님을 떡을 가지고 축복하고 떼어 주십니다. 다 받아먹습니다. 그것이 몸이라고 하십니다.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입니다.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면서 저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십니다.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유언은 용서입니다. 용서의 복음입니다. 우리는 모두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빚을 탕감받은 사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1만 달란트 빚을 진 자들입니다. 그 빚을 예수님이 대신 갚아 주었으니, 너희도 이웃의 백 데나리온 빚을 탕감해 주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내가 죄인이라고 자백하는 것입니다. 흙 묻은 죄인, 똥 묻은 죄인입니다. 똑같은 죄인입니다. 용서는 내가 죄인임을 자각할 때 용서가 됩니다. 왜 용서가 안 됩니까? 나는 그 사람보다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상대적 개념이 있을 수 없습니다. 내가 죄인임을 알아 무릎 꿇는 때 그놈도 용서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그런 놈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날 용서했으니 너도 용서하라는 말씀입니다.
요한복음 6장 26절부터 27절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세상에는 양심 없는 사람들 많습니다. 아예 작성하고 사기 치려고 달려드는 사람도 있습니다. 겉모습은 선량하고, 불쌍한 사람처럼 다가옵니다. 그런데 사기 치려고 달려들었는데 어쩔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래도 용서하라고 합니다. 왜요? 내 마음에 미움이 있으면 천국에 들어올 수 없으니 그것마저 내려놓으라 합니다. 예수께 나온 자라면 교회 성도입니다. 대부분 떡 먹고 배부르려고, 세상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하려고 나왔습니다. 예수님은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하라고 하십니다. 영생을 위해 나 예수를 먹으라고 하십니다.
요한복음 6장 31절부터 35절
31 기록된바 하늘에서 저희에게 떡을 주어 먹게 하였다 함과 같이 우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나이다
3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에서 내린 떡은 모세가 준것이 아니라 오직 내 아버지가 하늘에서 내린 참 떡을 너희에게 주시나니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게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저희가 가로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누가 생명의 떡입니까? 예수님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의 일용할 양식은 예수님입니다. 레마의 말씀이 아니라 예수를 먹는 것입니다. 말씀도 까딱 잘못하면 자신에게 유리한 것으로 왜곡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6장 47절부터 51절
47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믿는 자는 영생을 가졌나니
48 내가 곧 생명의 떡이로라
49 너희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거니와
50 이는 하늘로서 내려오는 떡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먹고 죽지 아니하게 하는 것이니라
51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나의 줄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로라 하시니라
매일매일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먹읍시다. 그의 십자가 앞에 매일 나오라 하십니다.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읍시다. 그러면 세상에 용서 못할 죄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손양원 목사님이 용서하셨던 방법입니다. 어떻게 자식을 죽인 자, 원수를 양아들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그 능력은 십자가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어떤 것도 용서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그 어떤 것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주님은 그걸 우리에게 주기도문으로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용서하는 자가 용서받습니다. 십자가 앞에 용서받은 죄인답게 그 은혜로 사람을 용서합시다.
요한복음 6장 53절부터 58절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58 이것은 하늘로서 내려온 떡이니 조상들이 먹고도 죽은 그것과 같지 아니하여 이 떡을 먹는 자는 영원히 살리라
예수님이 마태복음 26장에서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이것은 내 살이고, 내 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같은 말씀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신 용서의 사랑, 우리를 용서받을 수 있게 하신 예수님의 생명을 다하신 그 사랑, 이것이 바로 떡입니다. 포도주는 언약입니다. 너희와 나는 혼인할 것이고, 내가 올 때 너희를 살리며, 그날에 너희 육체가 살아난다는 약속입니다. 영만이 천국가는 것이 아닙니다. 육체도 살아서 천국갑니다. 온전한 영육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날에 내가 너희를 다 살리리라 하신 말씀을 붙잡고 늘 생명의 떡이신 예수를 먹읍시다. 십자가의 예수입니다. 이 능력이 마귀를 이깁니다. 시험을 이기게 합니다. 악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60절부터 63절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
61 예수께서 스스로 제자들이 이 말씀에 대하여 수군거리는 줄 아시고 가라사대 이 말이 너희에게 걸림이 되느냐
62 그러면 너희가 인자의 이전 있던 곳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것 같으면 어찌 하려느냐
63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
천국 복음은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우리가 구원받는 것이라고 전하는 것이라 하면 많은 사람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 건 그게 아니라 합니다. 예수님은 살리는 것은 영이라고 하십니다. 왜 육체의 문제, 먹고 사는 문제로 내게 나오냐고 하십니다. 나는 너희 영을 살려 너희가 거룩한 영이 되게 하고 구원받게 하려 한다고 하십니다. 그러니 너희는 천국의 문제로 내게 나오라 하십니다. 구원의 문제로 내게 나오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 66절부터 69절
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67 예수께서 열 두 제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도 가려느냐
68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69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신줄 믿고 알았삽나이다
이러니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함께 다니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12제자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묻습니다. 베드로는 ‘영생의 말씀이 계심에 뉘게로 가겠습니까, 주님이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알았다’고 고백합니다. 베드로의 고백이 여러분 한 분의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이번 주에 예전에 출석하던 교회의 장로님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어떤지 물었는데, 코로나 이전에 삼천명 출석하던 성도가 코로나 이후, 천명 정도로 줄었다고 합니다. 빠져나가서 안오는 분들 그동안 진짜를 먹으러 온 것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딴 것 먹으러 온 것입니다. 고난이 찾아왔더니 예수가 필요 없어진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이 교회에 떡을 먹으러 옵니다. 먹고 사는 문제 해결하려고 옵니다. 이것은 분명히 우상숭배입니다. 예수님이 정확히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육의 문제가 아닌 영의 문제로 나를 찾아오라고 하십니다. 그랬더니 다 도망가 버렸습니다. 환난으로 많은 사람이 떠나고 소수만 남습니다. 베드로처럼 영생의 말씀이 주님께 있다고 한 것처럼 예수와 함께 영원히 관계를 맺고 영원히 사는 데 관심이 있는 자만 남았습니다. 마지막 때에 하나님은 그 일을 하십니다. 광야의 40년처럼, 진짜 믿는 자를 찾으십니다. 영생의 말씀인 예수에게 딱 붙읍시다. 그리고 영원한 천국에 들어갑시다. 영생의 떡을 먹읍시다.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갑시다. 날마다 무릎 꿇는 자 되시길 축원드립니다. 그럴 때 여러분은 용서의 능력을 받습니다. 늘 기도하시면서 십자가 앞에 나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용서의 능력을 받아서 결국 우리도 손양원 목사님 같은 한 분 한 분이 될 줄 믿습니다. 우리 모두 의인이 됩시다.
사랑하는 주님
말씀의 능력은 오직 십자가만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용서의 능력은 오직 예수님이 용서하신 그 십자가 사랑 앞에 나아가는 것 외에는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애통하는 자가 되겠습니다. 그때 주께서 우리를 위로하여 줄 줄 믿습니다. 우리가 원수를 용서할 때, 주님의 위로가 우리 마음에 가득 차게 충만케 역사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주님! 용서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옵소서 십자가의 은혜 안에 들어가서 늘 낮아지고 용서하는 삶을 살고, 구제하는 마음, 불쌍히 여기는 삶을 살게 역사하여 주옵소서. 그때 은밀히 보시는 주님이 우리에게 보상하여 줄 줄 믿습니다. 은혜로 갚아줄 줄 믿습니다. 살아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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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아멘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