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문장 5기 차여경입니다
저는 컴퓨터로 글을 쓰는 것보다 직접 노트에 글을 쓰는 것이 더 익숙하기도 하고 글이 좀 길어진다 싶으면 두서없이 비문이 나오는 저이기에 수기 쓰는 것도 많이 걱정이 됩니다만 그래도 후배님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렇게 수기를 씁니다.
저는 꿈이 무척 높은 사람이었습니다. 고1 때 꿈을 낮춘 대학이 전남대 국어교육과였습니다.(전대 사대는 반에서 3등 안에 들어야 안전하게 들어갈 수 있는 곳이에요) 이런 착각에서 정신을 차리게 된 시기는 고등학교 2학년 여름 방학 때였습니다. 방송부였던 저는 졸업한 선배들을 자주 만나는데 그때 재수한 언니들에게
입시결과를 적나라하게 들었던 일도 있고, 또 점점 떨어지는 내신성적을 보며
처음으로 겁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1,2학년때는 상대적으로 모의고사가 더 잘 나왔기에 ‘난 무조건 수능이다’ 라며 안일하게 생각했습니다. 수학과 더불어 제게 쥐약이었던 역사과목들... 앞으로 어떻게 목표를 정해야 할 지 앞길이 막막했습니다.
그 때 책상 위에서 문장 학원 노트를 보았습니다.
한 장 한 장 노트를 넘겨보고 저는 바로 부모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초등학교 때도 동시를 썼었고 문학이라면 내가 가장 흥미를 가지고 열심히 할 수 있다고. 당시에는 믿지 못하시고 그냥 영어, 수학 과외나 받으라고 하셨지만 저는 그러면 상담이라도 받아보겠다고 설득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8월달 즈음에 저는 처음 상담을 했습니다.
저는 그때 이해도 안되는 수학 과외 선생님을 만나고 바로 학원으로 상담을 간 길이라 물론 표정에도 그게 보였을 겁니다.
아마 의욕 제로의 학생으로 보였겠지요!하하
그런 모습을 보신 최금진 선생님께서 제게 한마디 해주셨습니다.
‘우리 학원을 안 다녀도 상관은 없는데 무슨 일이든 니가 하고 싶은 대로 하라’ 고.
사실 남쌤께선 하도 표정이 안 좋아서 그냥 해보신 말씀이실 수도 있지만
저는 그 말 한마디로 인해 과감히 아버지께 과외를 때려치우고 문학에 전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허락을 받았고 저는 드디어 문장에 입성하게 됩니다.
처음 시/소설 장르를 정하려고 시험을 봤을 때가 기억이 나는데요.
상담을 받은 후 저녁에 테스트를 받으러 갔습니다.
제 기억으론 5개의 시제를 주시고 자유롭게 시 한편, 산문 한 편을 써보라고 하셨습니다. 저의 시는 초등학교 동시 수준으로 머물러 있었기에 ‘창문’이라는 시제로 유치찬란한 시를 썼습니다.
그 때 제 뒷자리에는 이미 학원을 다니고 있던 수빈이와 나엽이가 있었는데
아이들이 나누던 대화가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어요. 게
굉장히 문학적인 대화로 들렸거든요... 수빈이와 나엽이는 이 사실이 기억도 나지 않겠죠 하하하하
테스트가 끝나고 시와 산문을 여쌤께 내미는데, 여쌤께서는 쓱 보시더니 ‘넌 정말 소설은 안되겠구나’ 라며 웃어주셨어요. 제 시를 보시고는 ‘괜찮아, 그래도 넌 맞춤법은 안 틀리네.’ 라며 또 웃어주셨어요. 한마디로 뛰어난 분야가 없었던 , 밑바닥부터 배워야하는 실력이었던 것입니다.
우여곡절 끝에 시를 장르로 정하고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학원에서 본격적으로 글을 쓸 때는 정말 적응이 되지 않았습니다.
처음으로 필사를 했던 시집은 박성우의 ‘거미’. 이게 문학이구나, 새로운 시에 눈을 뜬 것은 좋았지만 그당시 뭘 몰랐던 저는 하염없이 ‘시 베끼기’를 시키시는 쌤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원래 필사는 시를 일단 한번 읽고 다시 한 줄 한 줄 천천히
되새기면서 새로운 표현이나 비유를 익히는 것인데 그런 걸 몰랐던 전 깜지를 쓰는 기분으로 손에게 노동을 시키고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하루 하루가 지나고 점점 자연스레 시집을 읽고 시제에 맞춰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지금 고백하자면, 저는 9월 등록 후 12월달까지 기말고사나 모의고사 등 시험준비를 한다며 학원을 제대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 때부터 열심히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지금도 남아요. 이렇게 12월달까지 글을 제대로 쓰지 않았으니 당연히 초반에 백일장 상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겠지요.
만해 백일장에서 쓴 고배를 맛 본 뒤에야. 아, 상 받는 게 쉬운 게 아니구나, 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후배님들 중에서도 저처럼 꼭 겪어봐야 정신을 차리시는 분이 없었음 좋겠네요. 저는 충격요법이 가장 잘 통하는 아이였거든요....
저는 5월달부터 백일장‘4등’상이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중대, 숙대, 경성대 등 어떤 백일장을 나가도 4등 입상에 그치는 것입니다. 문특 수상실적은 보통 3등까지 인정을 해주기 때문에 걱정이 안 되었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저는 4기 언니, 오빠들의 수기를 보면서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선배 언니들도 처음엔 상이 안 터졌지만 남쌤을 믿고 성실히 글을 쓴다면 언젠가는 큰 상을 받을 날이 꼭 올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에 그 말만 믿은 거지요. 그래서 그런지 실력이나 상이나 운도 모두 늦여름부터 가을 정도에 터진 것 같습니다.
물론 슬럼프도 당연히 왔어요. 칭찬에 목말라 있던 저는 남쌤이 칭찬을 해주시면 바로 표현이 발전되지 않고 정체되어 버렸습니다. 뭐 하는 일마다 제대로 풀리지 않고 스트레스만 받았던 시기였습니다. 저 자신부터 다잡지 못했으니 당연히 시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자기소개서나 면접 때 이런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했냐는 질문을 받으면 틀에 박힌 대답을 했겠지만, 제 경험상으로 이렇게 슬럼프나 어떤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시간이 가장 큰 해결책인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 시키신 일 열심히 하고 감 떨어지지 않게 시집 많이 읽으면 저절로 해결이 되거든요.
그리고 저에게 드디어 대산청소년문학상 캠프가 다가옵니다. 키작은 찌질이(..)였던 제게 가장 큰 상을 안겨준 대회였어요. 대산 캠프는 안양, 고양 아이들 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 문학을 하는 아이들이 모이기 때문에 친목을 쌓을 수도 있고 또 은근히 경쟁을 하기도 하고, 기 싸움을 벌이기도 하는 흥미로운 캠프입니다. 대산 백일장은 ‘계단’ 이라는 시제가 나왔는데 저는 바퀴벌레와 인간의 삶을 교묘하게 이어붙이며 ‘먹이사슬의 계단, 약육강식의 계단’을 나름대로 표현해보았어요. 대산은 예심 때 제출한 5편 점수 50 + 캠프 이튿날 백일장 점수 50을 합산해서 시상을 합니다. 교보생명 교육원에서 하는데 대산캠프 담당자 선생님께서 잘생기셨어요.... 가장 중요한 부분이죠.
고3 여름방학부터 입학사정관제 준비를 하고, 매일 밤을 새며 포트폴리오와 자기 소개서, 면접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학교나 집보다 학원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서 차라리 학원에서 자는 게 효율적이겠다고 우스갯소리를 한 적도 있습니다. 가장 바쁘고 힘들었던 시기였고 입시를 처음 준비해보기 때문에 어디서부터 시작을 해야 하는지 막막했습니다. 아마 이런 경험부족들이 입학사정관제에서 저의 잠재력을 크게 부각시키지 못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낮은 학생부 성적도 있겠지만 해마다 입.사 전형의 서류 제출 양식이나 제출제한 서류 등이 바뀌기 때문이기도 해요. 내년부터는 모든 대학교가 파격적으로 입학사정관제 전형을 확대한다고 하니 후배님들은 제발제발제발제발 미리 알아보시고 준비하세요. 여름방학 길 것 같죠? 그냥 눈 뜨면 바로 원서접수 기간이에요.
저는 총 11개 대학원서 접수를 했는데 턱없이 높은 대학을 써서 1차부터 떨어진 것도 몇 개 있고 대부분은 1차 합격 해놓고도 면접 시간이 겹쳐서 눈물을 머금고 시간이 겹치는 대학들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다른 대학교는 면접이었지만 특이하게 경희대학교는 특기재평가라고 해서 실기시험이 들어가요. 저는 ‘연립주택 203호’ 라는 어디 작품에서 가져온 것 같은 너무나 현실적인 시제에 1시간 만에 시를 완성해야 했습니다. (사실 구상하고 시를 쓰기엔 너무너무 벅찬 시간입니다만은) 사실 경희대학교는 안양예고를 너무나 좋아하는 학교에요. 사실 모두 다 공공연하게 알고 있는 비밀이에요. 경희대 교수님들께서 안양예고나 고양예고 출신 교수님들도 몇 분 계시고. 나중에 남쌤이나 여쌤께 자세히 물어보세요. 히히
결국 저는 경희대를 떨어졌지만 후배님들은 꼭 붙으실 거에요 하하하하하
결국 저는 연세대학교, 동국대학교 국문과 이 두 대학을 합격했습니다. 고작 조대를 갈 성적으로 인서울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내 수준을 모르고 너무 높은 대학들만 쓴 것은 아닌가. 계속 불합격 소식을 받아온 터라 ‘합격’ 이 글자가 처음 떴을 때 손이 덜덜덜 떨렸습니다. 캄캄한 미로에서 드디어 저 멀리 보이는 빛을 조금이라도 발견한 기분이었다고나 할까요.
1년 3개월 정도 학원을 다니면서 제게 따끔하게 혼도 내주시면서 저를 다잡아주시고 ‘시’ 그 자체의 재미를 느끼게 해준 최금진 선생님, 늘 저를 챙겨주시고 걱정해주시던 문지원 선생님, 늦게 만났지만 너무나 예쁘시고 수업도 잘하시는 박경희 선생님.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소한 것이라도 우리를 챙겨주던 슬기언니, 성훈이 언니 , 전여고 앞의 국밥집 맛을 알려준 정빈이 언니에게도 고마워요.
마지막으로 저는 참 굼벵이 같아요. 나쁘게 말하면 좀 게으르죠. 제게 두 개의 과제가 주어진다면 하나만 느릿느릿하게 완성하고 하나를 미완성 한 채 남겨두고 ‘괜찮을거야..’ 라고 자기합리화를 잘했죠. 그런 제가 해냈다면 어떤 사람들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수기가 마무리되니 이제 진짜 끝이구나 라는 생각에 갑자기 그간의 고생이 생각나서 울컥하네요T_T
네이버 웹툰에서 ‘방황하지 않는 청춘은 미래를 창조할 수 없다.’ 라는 말을 보았습니다. 이제 저는 더 넓은 세계에서 방황하는 청춘이 되겠습니다. 그동안 저의 단점이었던 게으름을 버리고 대학에서 올라가서는 열심히 시를 쓰고, 문학을 공부하고, 또 열심히 즐기겠습니다. 그래야 보잘 것 없더라도 제게 부끄럽지 않는 미래를 창조할 수 있을테니까요.
학원을 처음 다니면서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적어보니 총 A4 3장 분량이네요.
정말 사소한 것까지 다 담았으니 꼭 꼼꼼히 읽으시고
후배님들도 내년에 대학 대박나세용!
첫댓글 방황하지 않는 청춘은 미래를 창조할 수 없다 .............. 와 이말 대박... 멋있따 나 댓글 오랜만에 남기는 거얏ㅋㅋㅋㅋㅋ힝힝 축하해! 수고했어! ^_____^...나도 곧 ㅋ.ㅎ.....
후기에진심이느껴져서감동받았구요대산대상정말멋졌어요...ㅠㅠ좋은문창과학생이될것같아요 제점수는요
나 저 웹툰 봤어....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와닿는 말이다
내 이름이 없어서 별로 감동적이지 않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