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초대석(이향란 시인)
엄마가 동시를 쓰고 딸이 그림을 그리다
동시집 <지렁이에게 옷을 입혀줘> 출간한 이향란 시인
-본인 소개
강원도 양양에서 태어나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KBS사업단 출판부 기자로 8년 가량 근무하다가 한국학중앙연구원으로 옮겨 국가사업으로 추진 중이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편찬부에서 일하며 대학 강의를 병행했습니다. 이후 출판사 편집국장 등을 역임하며 잡지를 창간하거나 건축이나 인테리어 관련 단행본을 만들었습니다.
등단은 1994년 계간<자유문학>으로 했으나 취재 등 일 때문에 문학 활동을 전혀 하지 못한 채 지내다가 2002년 첫 시집인 <안개詩>를 출간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시집으로 『슬픔의 속도』 『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 『너라는 간극』 『뮤즈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와 『이별 모르게 안녕』 『사라지는 것들의 지느러미』 라는 전자시집이 있고 올해 1월에 첫 동시집을 냈습니다.
그동안 경기문화재단 창작지원금(2003년, 2007년, 2018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기금(2009년) 수혜.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문학도서(2011년 한 켤레의 즐거운 상상)와 2023년 아르코 문학창작지원금(발표지원)선정이 됐습니다. 제7회 문학청춘 작품상을 수상했으며 2024년 에는 엄마인 제가 쓰고 딸이 그린 동시 컷 만화집 <지렁이에게 옷을 입혀줘>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제작 지원 사업에 선정, 2025년 1월에 출간했습니다.
-동시집 <지렁이에게 옷을 입혀줘>를 소개하면?
엄마인 제가 시를 쓰고 만화를 전공한 둘째 딸이 그림을 그린 협업작품집으로 4부에 걸쳐 총56편의 동시가 담겨있습니다. 일상 속 동물과 자연, 가족 등 친근한 소재를 바탕으로 귀엽고 재기발랄한 이야기에 관련 컷 만화들이 함께 담겨져 있습니다. 획기적인 문학적 시도라기보다 일상에서 느껴지는 평범한 소재들을 제 안에 떠도는 어린 마음으로 표현하는데 초점을 두었습니다. 짧은 시 속에 담긴 리듬감과 감성은 영유아와 초중고생은 물론 어른들도 자연스럽게 동심의 세계로 이끌며 자신도 모르게 웃게 만드는 장점이 있습니다. 아울러 여러 색감과 재치가 축약된 컷 만화를 동시에 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맨몸으로 맨땅을 기는 지렁이에게 옷 한 벌 지어 입히고픈 따뜻한 마음 그대로 누구나 부담 없이 읽으며 순수한 어린이의 마음을 경험하게 하는 시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시집을 내게 된 동기와 에피소드
나이가 들면서 그동안의 사회적 명분을 내려놓고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정말 하고픈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바로 아기를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처음엔 아르바이트로 어린이집 주방 교사로 일하며 남는 시간에 아기들과 어울려 놀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아기들이 잘 따르고 저 역시 아기들과 잘 노는 걸 스스로 느껴 보육교사가 되고 싶었고 그래서 자격증을 취득했습니다. 그리고 어린이집의 4세반 담임까지 했으나 그곳 시스템이 제 성향과 맞지 않아 베이비시터로 방향전환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보육과 함께 젊은 부부들의 삶도 자연스럽게 엿볼 수 있다는 장점이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전에 가족회의를 했는데 남편은 왜 남의 집에까지 가서 일하냐며 결사반대하였고 세 딸들은 엄마가 그동안의 화려한 경력을 접고 새롭게 도전하려는 발상이 멋지다면서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결국 단호한 제 뜻에 남편도 묵묵부답으로 응원을 했습니다.
변호사 엄마, 의사부부, 대기업 간부, CEO엄마, 대학교수 부부 등 전문직에 종사하는 각 가정의 아기들을 일 년 혹은 이 년간 돌보며 일 자체를 즐겼습니다. 아기들과 먹고, 놀고, 산책하고 더러는 낮잠도 자면서 간간이 동시를 썼습니다. 제가 돌보는 아기들이 저로 인해 좋은 감성과 생각을 지녔으면 하는 바람으로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고 아기들은 어린이가 되어 그들에게 뭔가 의미 있는 선물을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썼던 이백여 편의 동시들 중 선별하여 56편을 한 권의 동시집으로 묶고자 했습니다. 마침 대학에서 만화를 전공한 둘째 딸에게 일러스트를 부탁했더니 그것보다는 오히려 컷 만화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아이디어를 제시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컷 만화를 컬러로 작업하다보니 출판비가 만만찮아 용인시 문화예술 지원금에 응모, 선정됐으나 지자체의 여러 절차나 방법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반납한 후 지인의 소개로 출판사를 소개받았습니다. 그게 황금알(대표 김영탁 시인)로 문학계간지 문학청춘을 펴내는 곳이었습니다. 그리고 칼라믹스라는 그곳 자매출판사의 명의로 제 동시집은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 중소출판사 도약부문에 선정, 출간하게 된 것입니다.
-시와 동시에 대한 생각
흔히들 시와 동시에는 경계가 없다 하고 동시는 어린이의 마음으로 쓰면 되니까 간혹 일반 시보다 쉽다고들 하는데 경험해보니 사실은 그렇지가 않았습니다. 어린이의 마음은 인간의 원천적이고 본질적인 것이므로 노력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습니다. 내 안에 잠재적으로 머무르고 있는 순수한 마음을 일깨우고 그 마음을 언어로 묘사한다는 것은 닦여진 기술이 아닌 자연과 같이 지고지순한 순리가 은연중 뒤따라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쉽게 써야 한다는 것이 역으로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도 깨닫게 되었습니다. 동시 역시 일반 시처럼 순간적인 영감(靈感)이 필요했고 처음부터 끝까지 동심의 세계를 이탈하는 법 없이 시 속에 아이의 숨결이 머물러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시가 막히거나 할 때는 잠자는 아기의 얼굴을 보면서 나를 대입시키거나 혼탁한 마음을 일깨우고는 했습니다.
-이번 동시집을 읽으실 분들께 팁이 있다면?
먼저 어른의 경우 온갖 타성으로 내재된 마음을 갈아엎고 누구나 마음 한 구석에 숨어있는 동심을 전등처럼 밝히며 읽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읽기보다 느꼈으면 합니다. 동시는 순정한 마음의 시입니다. 동시는 티 없는 마음을 굴리는 시입니다. 그런 마음으로 접근하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웃음이 흘러나오고 마음도 정화가 되는 순간을 맞이할 것입니다. 의미를 따지지 않고 그냥 물 흐르듯 읽어 내려가는 그 경험을 통해 저처럼 자신 안에 숨어있는 또 하나의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습니다.
영유아의 경우는 시보다 먼저 컷 만화를 통해 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한 후 시 속의 의성어, 의태어, 형용사, 상황 등을 살짝 각색해 읽어주면 흥미를 유발시킬 것입니다. 중고생은 상상력과 함께 시와 그림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비교하면서 읽으면 좋을 듯합니다.
-애착이 가는 동시 한 편 소개
-지렁이에게 옷을-
내가 커서
뜨개질을 할 줄 안다면
맨몸으로 땅을 기는
지렁이에게
따뜻한
옷 한 벌
떠서
줄 거야
-앞으로의 계획
여섯 번째 시집 원고를 다시 꼼꼼히 들여다보며 긴장을 유지하는 것, 그리고 두 번째 동시집에 대한 상상과 설렘, 사진과 시가 매치된 디카시집을 출간하는 일입니다. 더 바랄 것도 없이 지금처럼 아기들과 지내며 더 이상 어른이 되지 않게 매번 저를 낮추고 어루만지면서 하루하루의 일상을 시로 엮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게는 시만큼 재미있는 놀이가 없으며 시만큼 사랑과 충족을 가져다주는 게 없기 때문입니다. 각양각색의 아기들이 신선한 에너지와 숨결을 끊임없이 제게 건네기도 하고요.
-뷰티라이프 독자들께 한 마디
외적으로 얼굴에 화장을 하고 머리는 퍼머를 하듯이 내적으로 마음을 꾸미는 일에도 신경 쓰며 살았으면 합니다. 그게 뭐가 됐든 상관없이 즐거움과 행복이 차오르면 되는 거겠지요. 이번에 첫 동시집을 낸 저로서는 동시 속에서 뛰어노는 제 아이를 뷰티라이프 독자 분들께 보여드리고픈 마음 간절합니다. 어떤 모습의 아이가 떠올려지는지요. 누구나의 마음속에 깃든 그 아이를 보듯이 살아간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 될지를 생각하면서 말입니다.
<뷰티라이프> 2025년 3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