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사자성어(四字成語)
⊙ 언어도단(言語道斷) 문자나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언어도단(言語道斷)은 '선의 세계', '진리의 세계', '깨달음의 세계'는 언어 문자로는 표현할 수 없다는 뜻 이다. 불립문자(不立文字)와 같은 말이기 때문에 흔히 '불립문자(不立文字),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붙여쓰기도 한다.
언어도단의 본래 뜻은 도(道)는 언어 문자로 표현할 수도 없고 전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여기서 도(道) 라는 글자는 진리의 대명사가 아니고 보통 명사인 '길'을 뜻한다.
필자는 강원도 산골 출신인데, 정선, 평창, 진부 등 해발이 높은 고산지대에서 나오는 옥수수는 정말 맛 이 기막히다. 요즘 대학 옥수수 등 여러 가지 신품종이 개발되었지만, 강원도 토종 옥수수와는 비교가 안 된다. 언어문자로는 설명할 수 없고 직접 먹어 봐야만 실감할 수 있다. 언어도단.
그와 같이 깨달음의 세계, 선의 세계도 직접 체험해 봐야 알 수 있다는 뜻이다. 말로는 불가능한 것을 '언어도단이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 일반적으로 쓰이는 언어도단의 뜻은 너무 어이가 없어서 말문이 막혔다' 또는 '말도 안 되 는 소리를 한다' 등 상대방이 황당무계한 말을 할 때 많이 사용한다. 혹은 너무 엄청나서 말로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을 때도 언어도단이라고 한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상대방의 말을 격하시킬 때 많이 사용한 다. 언어도단과 같은 의미로 짝을 이루는 사자성어가 '심행처멸(心行處滅)'이다.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마음 갈 곳이 없다'는 말이다. 부처, 선, 진여의 세계는 인간의 사고나 지능, 생각 등이 닿지 못하는 곳, 접근 불가능한 곳에 있다는 뜻이다. 그 세계는 도저히 언설로는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 언어도단(言語道斷)
言 말씀 언. 혼자서 하는 말. 語 말씀 어. 대화, 둘 이상이 하는 말. 道 길 도. 이치, 진리의 대명사. 斷 끊어질 단. 단절.
출처 : 윤창화 <불교의 사자성어> ---------------------------------------------------------------------------------------------------------------- 본문에 언어도단의 뜻에 대해 잘 설명되었고 비슷한 말로 불립문자(不立文字)와 심행처멸(心行處滅)에 대하여 거론되어 있기에 이 사자성어 법구(法句)에 대하여 '언어도단(言語道斷)'을 중심으로, 함께 쓰이 는 불립문자(不立文字), 심행처멸(心行處滅)을 선학적 · 수행적 관점에서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합니다.
1. 언어도단(言語道斷)
첫째, 본래의 뜻은 "말의 길이 끊어졌다."는 것입니다. 즉, 언어로는 더 이상 표현할 수 없는 경지를 뜻합 니다. 이 표현은 대승 경전, 특히 유마경 등에서 자주 보이며, 진리는 말과 개념을 초월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둘째, 선학적 의미는 선(禪)에서는 깨달음의 자리가 설명될 수 있는 대상이 아니고, 논리로 도달할 수 있 는 개념도 아니며, 언어로 포착되는 어떤 것도 아니라는 뜻입니다. 말하는 순간 이미 둘로 나뉘어 "설명 하는 나"와 "설명되는 진리"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셋째, 수행적 의의는 수행자는 여기서 중요한 통찰을 얻습니다.
"진리는 지식의 축적으로 얻어지지 않는다." "말 이전의 자리, 분별 이전의 자리를 직접 체험해야 한다."
이는 언어를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언어에 집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불립문자(不立文字)
첫째, 본래의 뜻은 "문자에 기대어 세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불도의 깨달음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므로 언어나 문자에 의지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표현은 선종의 종지로 유명합니다. 특히 보리달마(菩提達磨)가 전했다고 알려진 구절입니다.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
둘째, 선학적 의미는 "경전이나 문자에만 의지해서는 본성을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문자는 손가락이 고, 깨달음은 달입니다. 손가락을 연구한다고 달을 보는 것은 아닙니다.
셋째, 수행적 의의는 경전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목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자에 매달리면 분별이 더 정교해질 뿐이기에 결국은 자기 마음을 바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3. 심행처멸(心行處滅)
첫째, 본래의 뜻은 "마음이 작용하는 자리마저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이는 금강경에 등장하는 표현으로, 완전한 공(空)의 경지를 설명할 때 쓰입니다.
둘째, 선학적 의미는 "생각이 멈추었다는 뜻이 아니라 분별 작용의 근거가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즉, 주체와 객체의 구조가 무너진 자리입니다. 생각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붙잡히는 내가 사라 지는 것입니다.
셋째, 수행적 의의는 수행이 깊어질수록 '내가 수행한다'는 생각도 사라집니다. 그때는 앎도 없고, 얻음도 없고, 버림도 없는 자리입니다. 세 표현의 관계 정리해 봅니다.
언어도단은 '언어 초월'을 강조하고, 핵심의미는 '말로는 닿지 못함'이요, 불립문자는 '문자 초월'을 강조하고, 핵심의미는 '글에 의존하지 않음'이고, 심행처멸은 '분별 초월'을 강조하고, 핵심의미는 '마음 작용의 근거가 사라짐'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깨달음은 언어의 길이 끊어지고(언어도단), 문자에 기대지 않고(불립문자), 마음의 분별 자 리마저 사라지는 것(심행처멸)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이 말들은 "말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경전을 읽지 말라"는 뜻도 아닙니다. 오로지 부디 "집착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말은 방편이고 경전은 지도이며 마음의 작용은 도구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도에 매달려 길을 걷 지 못하고, 말에 매달려 실상을 보지 못합니다.
놓아라 내려놔라 분별하지 말라는데
붙잡고 매달리고 분별하는 나를 보네.
이제는 모든 걸 놓고 진의를 봐야 하리.
언어도단은 진리를 말로 붙잡지 말라는 것이고, 불립문자는 경전에 매달리지 말라는 것이며, 심행처멸은 분별하는 나를 내려놓으라는 뜻입니다.
결국 세 말은 "직접 보라!"는 하나의 가르침입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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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말과 생각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궁극의 깨달음의 경지를 가리키는 불교 표현"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