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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KSN Treatment Story 19
Story 19.1
On July 11, I went to see YS KSN at 1:30 pm.
7월 11일에는 오후 1시 30분에 김 권사님을 뵈러 갔습니다.
He was attended by his wife’s niece, who works as an investigator of labor wage issues for the CA State Government I heard.
조카 한 분이 와 간호하고 있었는 데, 그 분은 캘리퐇니와 주 정부에서 노동임금 조사하는 일을 한다고 들었습니다.
Soon after I arrived, he went out of the room for a physical therapy session. I dropped off lunch I made for his wife and went to the Visitor’s Lounge where I treated Ana’s family members including her husband’s back.
도착하자마자 권사님은 물리치료하러 병실 밖으로 나갔습니다. 사모님을 위해 만들어 가져온 점심을 내려놓고 아나 가족과 남편을 치료했던 방문자 대기실로 갔습니다.
I rested there for a while, checking my text messages. My wife sent me to remind me of the 3 pm meeting at Westview for Paulan’s Community Activities they manage.
거기서 문자 쪽지를 보며 잠시 쉬고 있었습니다. 집사람이 오후 3시 보람이 동네 방문 다니는 것을 관장하는 학교 웨스트뷰에서 회의가 있다고 다짐시키려고 쪽지를 보내 왔습니다.
I sent a message to Seong-Hun to see his wife’s availability. He sent me that she will be tied up in her church. Last Monday, she was barely able to stand from a sitting position, or walk. Now I can understand what doctors go through when a client does not listen on a further treatment.
승헌에게 부인이 집에 있는 지 알아보기 위해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는 아내가 교회에서 바쁘다고 답자를 보내왔습니다. 지난 월요일에 그녀는 앉은 자리에서 겨우 일어서거나 어렵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의사들이 환자가 계속 치료해야 한다는 것을 듣지 않을 때의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Came out of the Lounge room, I met Paul Muse, who I offered a treatment at the hospital entrance yesterday. He was doing his voluntary work at this floor. He asked me to see my device, so I put it on his hand to feel the sensation from the pulsed signal.
거기서 나오며 어제 병원 문 앞에서 만나 제가 치료해주겠다고 한 폴 뮤즈를 만났습니다. 이 4층에서 자원자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가 제 기구를 보자고 하여 그의 손에 대고 튀는 전기 감을 맛보게 했습니다.
The Pilipino nurseaid, who I treated her back a few days ago, passed by and greeted me. I opened my hand wide said, “How are you? How’s your pain?” She said she still has some.
몇일 전 제가 등을 치료해준 필리피노 간호보조원이 지나가며 인사했습니다. 양손을 벌리고 “안녕하세요, 통증은 어때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아직 좀 남아 있다고 했습니다.
“You have my phone number, why haven’t you called me?” I asked. She said, “I don’t have money. I am not a RN, you know, I make a little money.” I replied, “No, you do not worry about money. It’s from God, free!” She said, “You told me that it’s $50 an hour.” I replied, “Did I? God’s money is different than the world’s money.” She said, “Oh.”
“제 전화 번호를 가지고 있는 데 왜 걸지 않았어요” 라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돈이 없어요. 아시다 시피 저는 정식간호원이 아녜요. 보수가 적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아니, 돈 걱정하지 말아요. 이것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에요. 무료로” 라고 답했습니다. 그녀가 “당신이 시간당 $50불이라고 말했잖아요?” 라고 물었습니다. “내가 그랬나요? 하나님의 돈은 세상의 돈과 달라요” 라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오호” 라고 말했습니다.
Paul was there witnessed all conversations. I faced him pointing my left index finger up said, “You will be healed. I mean your range of motion will substantially be improved within a couple of months.”
폴이 저희 대화를 듣고 있었습니다. 그를 마주보며 제 검지를 하늘을 가리키며, “당신은 고쳐질 것입니다. 아니 몸의 움직이는 반경이 한 두달 안에 충분히 개선될 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He said, “I will think about it.”
그는 “생각해 보겠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Story 19.2
I went back to YS KSN’s room. He was still on the wheelchair finishing the final therapy exercise. There was another functional therapy session scheduled right after this session. I asked the therapist to tell the next person to have a long break before come in so that I could have more time on him.
김 권사님 병실로 돌아갔습니다. 아직도 바퀴의자에 앉아 마지막 물리치료 연습을 끝내려 하고 있었습니다. 이 연습 바로 뒤에 기능훈련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제가 권사님을 오래 치료하기 위해 그 물리치료사에게 다음에 오는 치료사에게 휴식을 오래 취하고 느긎이 오게 말해 주라고 했습니다.
I treated YS KSN’s neck while I was chatting about my work incidents with his niece. MK KSN told me about her job that she and I thought I could get an advice or a lesson from her.
김 권사님의 목을 치료하면서 조카와 제 직장문제에 대해 얘기 나눴습니다. 민근 권사님께서 그녀 직책에 대해 저에게 말해 주시면서 혹시 당신과 제가 생각하기에 도움이나 교훈이 되는 것을 그녀로부터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입니다.
They heard my brief stories of the so called Tomahawk incident happened in 2004, the reinvestigation request of the incident in 2009, and the current security suspension since June 29 after I was kicked out from the base on June 11, 2012
소위2004년에 일어났던 타마학 사건, 2009년 재수사 요청건, 2012년 6월 11일 직장에서 쫓아내고 못 들어오게 하고 발효된 6월 29일 부, 현 개인보안정지에 대해 제가 간단하게 얘기한 것을 모두가 들었습니다.
He felt some pains as I moved from one spot from another on his neck. He groaned a bit. I said, “Good, sir. No pain No Gain.” I continued, “If you feel pain, something is getting healed.”
권사님은 제가 목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옮길 때마다 통증을 느꼈습니다. 신음을 좀 냈셨습니다. “좋은 거에요. 아픔 없이 나음 없음” 하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계속해서 “혹 통증을 느낀다면 어느 부분이 좀 나아지는 것입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She said she gets involved in investigating labor hourly wages violation by employers if an employee files a complaint but nothing like my case. She suggested that there might be the federal labor department may have a branch dealing with the case I am in.
그녀는 시급으로 일하는 사람이 급여를 제대로 안 준 고용주에 대해 불만을 제기하면 혹시 자기가 관여가 되지만 저 같은 경우는 해당이 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어떠면 연방 노동국에 저 같은 경우에 대한 것을 취급하는 과가 있을 수 있겠다고 제안했습니다.
I told her that I have filed at the Office of Special Counsel, the organization set by the congress to oversee entire Federal Government but they did not see any law violation.
제가 국회에서 제정하여 연방정부를 관장하는 특별 위원회에 제소를 했는 데 아무 법을 위반한 사항이 아니라고 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NAVAIR instructions and guidelines and the command policies are not laws! If managers violate any of them but not punished if no superior pushes for the case but subordinates violates any of them they are vulnerable to be disciplined by their supervisors. I was wrongfully accused of and conspiratorially framed by middle managers.
해공군의 지침서, 안내서, 그리고 기지의 정책은 법이 아니란 것입니다! 중간 층의 경영자들이 이것 중 어느 것이나 지키지 않아도 그들 윗사람들이 그들의 잘못을 처벌하지 않으면 괜찮은 것이고, 그러나 그 문서들을 이용해 아랫사람이 그것을 위반했을 경우 거기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을 수 있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저는 중간 경영진에 의해 모함되어 자기들이 따르지 않은 그 지침서를 이용해 엉뚱한 처벌을 받은 것입니다.
I have been subtle but self-investigating what went on and discovered that they did not even investigate the original incident by the security this time they are using the security to frame me to be a looser.
저는 조용하게 혼자 수사를 했왔는 데, 알고 보니 처음 일어 났던 사건은 보안서에서 수사도 하지 않고 저에게 처벌을 주고 이번에는 보안서을 이용해 저를 모함해 다시 곤경에 빠트리는 것입니다.
I have been telling them bodaciously that “I am the Man of Words, who has a divine code”. This made them more upset but I did not know what other way I could have told them.
“저는 말씀의 사람이며 하늘의 열쇠를 한가지 가지고 있다” 라고그들에게 담대하게 말하기까지 했습니다. 이렇게 한 것이 그들을 더 화나게 했으며 저는 이렇게 말했던 것 외에 다른 무슨 말을 했어야 하는 지 그 방법을 몰랐었습니다.
A collegue, who wanted me to bow my nose down to them, once said, “Yo, let me write a letter for you.” I replied “How?” He said, “I will start like this. ‘I have deeply discussed the matters with my wife….’.” I stared at him for a while and said, “Larry, No is no. Yes is yes.” He replied, “Yo? Do you know how secure and well paying jog we have?”
제가 고개 숙이길 원하는 동료 한 사람이 “요, 내가 대신 써 줄까?” 라고 물었습니다. “어떻게” 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시작하면 돼. ‘이 문제를 놓고 아내와 심각하게 상의 했습니다….’” 제가 한참 그 친구를 바라보고 있다가 “래뤼, 아닌 것은 아니고 예는 예다” 라고 답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가 “요, 너 우리가 얼마나 비싼 철밥통을 갖고 있는 줄 알아?” 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Story 19.3
I left for Westview at 2:45 had meeting till 5:30. A lot of parents who send their special adult kids to this community program attended. I spoke a lot about the program they run.
저는 2시 45분에 병원을 떠나 웨스트뷰에서 5시 30분까지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이 동네 방문활동에 참여하는 지체부자유 생들의 부모들이 많이 와 있었습니다. 그 학교에서 운영하는 이 활동에 대해 제가 많이 얘기 했습니다.
I rather like to see my daughter cleaning park, street, and city library than loaming around malls, shopping plazas, grocery stores, and restaurants. Also, I criticized about coaches, not getting paid well and no coverage for car and health insurances, vacation and sick days are offered by the organization. Some parents did not know about it.
저는 오히려 제 딸이 샆핑 몰이나 플라자, 식품점, 그리고 식당을 서성이며 다니는 것 보다. 공원, 길, 그리고 시 도서관을 청소하길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또한 이 학교가 코치들의 보수를 적게 주고, 차와 의료보험, 휴가, 병가를 주지 않는 것을 지적했습니다. 몇몇의 부모들은 이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Story 19.4
After the meeting, I went to Kimball Park in Ventura to play soccer till 8 pm.
회의 후에 벤튜롸 킴볼 공원에 가 저녁 8시까지 축구를 했습니다.
Right before play, I’ve got a phone call from Blanca to rearrange treatment schedule at her place. She said her Mom, Hortensia could not be home till 830 or 930 and herself has overtime till 7pm. We set the time to 730.
시작하기 전, 블랑카로부터 자기 집에서 치료 약속 전화가 왔습니다. 자기 엄마 오르텐씨아는 저녁 830이나 930분까지 오고 자기는 7시까지 시간외 근무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7시 30분으로 정했습니다.
She mentioned about a call this morning from a family member to gather around her Grandpa’s bed side to be with in his passing bothered her all day long because she decided not to attend. I told her it is Ok to be sad and not attending for the last moment of him passing. I told her your family already have shown the love and affection toward the old man enough as I have witnessed for more than a week.
그녀는 할아버지 임종에 참여하라는 연락을 가족으로부터 받고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 하루 종일 신경 쓰였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녀에게 할아버지 임종에 같이 못해 슬픈 것은 괜찮은 것이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일주일 넘게 봤는 데 그녀의 식구들이 할아버지에게 보여준 사랑과 정성은 충분했다 한 것입니다.
“You have already fair-welled him well,” said I.
“너는 이미 할아버지를 잘 보내드렸다.” 고 말했습니다.
I played soccer beautifully, scoring one from a distance and assisted two goals. But I did not run much because of the field edge we played was in terrible conditions with the drainage in the middle of it because the fields were all closed for the re-growth of the lawn for the coming season.
저는 멋지게 뛰고 두 점을 돕고 한 점을 멀리서 차 점수를 올렸습니다. 그러나 많이 뛰지는 못했는 데 왜냐면 오는 새 경기절기를 위해 잔디를 다시 기르려고 모든 구장을 폐쇄해 그 공원 끝 물 빼는 하수구가 중간에 있는 잔디 끝자락에서 경기했기 때문입니다.
Story 19.5
On the way back from the game, I went to Bu-Sung Hwang JRN’s house to pick up my massage table. JRN’s couple went to New York first time. Monica, the youngest, was home. She said Ok for me to pick it up when I made the call on the way to home.
경기후 돌아오면서 황부성 장로님 댁에 놔 둔 안마탁자를 가지러 갔습니다. 장로님 내외분은 뉴욝에 처음 가셨습니다. 막내 모니카가 집에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오면서 한 전화에 그녀가 "오케이" 라고 답했었습니다.
But when I got to her house, Elisa, the second, and her newly wedded husband were there too. I was surprised to see them together. It was first time after her marriage a year or two ago. She asked me about Miriam’s wedding.
거기 도착해 보니, 둘째 엘리사와 갓 결혼한 신랑이 거기 있었습니다. 그녀 둘을 같이 보는 것에 놀랐습니다. 일 이년 전 결혼하고 둘을 같이 보는 것이 처음이었습니다. 엘리사가 미리 결혼에 대해 물어봤습니다.
Then she asked me, “what kind of therapy are you doing?’ I smiled and said, “Electro-Pulsed-Massage from God.”
그리고 “무슨 치료를 하는 거에요?” 하고 물었습니다. 제가 웃으며 “하나님이 주는 튀는 전기 안마야.” 라고 말해주었습니다.
I told them about my experience, particularly what I did at their place on Sunday night, July 1, because Monica witnessed a bit at the tail end. My story took some times.
지난 7월 1일 주일 저녁 자기 집에서 제가 했던 경험을 특별히 얘기해 주었는 데왜냐면 모니카가 그 끝부분을 목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 얘기는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As I felt Elisa got bored of it, and she kept looking at her husband, I said, “I can heal anything and just about everything.” Elisa could not listen what I siad no more and intervined, “He needs to drive to LA in 5 minutes.” I said, “OK” to her and then I asked him, “Why?” He said he was on a business travel, had a meeting at Santa Barbara today, and early morning he will be flying to Washington DC for another 3 day meeting.
엘리사가 지루해 하면서 자꾸 자기 신랑을 쳐다봤습니다. 제가 “어떤 병이든 모든 병을 치료할수 있어” 라고 말하자 그녀는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지, “신랑이 5분안에 엘에이로 차 몰고 가야해요” 라고 끼어 들었습니다. “그래” 라고 그녀에게 답하고 신랑에게 “왜” 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사업여행 중인 데, 오늘 산타 바바롸에서 회의를 했고, 새벽일찍 워싱톤 디씨로 떠나 3일간 회의 한다고 했습니다.
Story 19.6
He also said, “I have cold and I just took medicine,” pointing to the dining table where a torn box of the medicine he had opened scattered around.
그는 “감기에 걸려 방금 약을 먹었어요” 식탁 위에 흩어진 찟겨진 약봉지를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I told him, “I can relieve your congestion in 5 maybe in 3 minutes.” Unexpectedly, instead of him but Elisa almost shouted, “Really?” If you allow me to try I will help him. He wanted to try.
그에게 “내가 5 아니 3분 안에 코막힌 것을 뚫어 줄 수 있다” 고 말했습니다. 기대 못했는 데, 그 대신 엘리사가 “정말요" 하고 거의 소리치듯 물었습니다. 나보고 하라면 신랑을 도와 준다고 말했습니다. 그도 하길 원했습니다.
So I went out to my car to bring my device. I worked on his neck to his opposite side of the nose for both directions.
차에 가 제 기구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콧등 한 편에서 그 반대편 목을 연결해 두 쪽 다 치료했습니다.
He said within a minute, “I can feel the relief already,” breathing more air through his right nose.
그 신랑이 일분도 안되어 오른 쪽 코구멍으로 숨을 쉬면서 “벌써 시원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He complained headache also. So I touched his forehead for a couple of minutes. When his neck was triggered, Elisa was surprised and asked him, “Are you OK?” A typical woman, who always cares about her man, she had become that woman I felt.
그는 골치도 아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이마를 한 동안 만지고 있었습니다. 그의 목 떨림곳을 찾아 떨리게 하자 엘리사가 깜짝 놀라며 “괜찮아요" 라고 물었습니다. 여느 결혼한 여자처럼 항상 자기 남자를 살피는 그런 여인이 됐구나 라고 느꼈습니다.
I came home by 930 pm and ate dinner and crashed.
밤 9시 30분에 집에 도착하여 저녁을 먹고 무너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