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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유스하라지역대학 원문보기 글쓴이: 윤재군
やまと百景16
特攻・自爆
050618
広島県呉市の大和ミュージアム
人間魚雷「回天」
第二次大戦末期に発明された特攻隊には、潜水艇、高速艇、航空機、戦艦とあらゆる武器が使われた。写真は、魚雷の腹に人間が入り、潜望鏡を覗きながら敵艦を追いかける特攻兵器である。狭い空間に、生きた人間が押し込められ、二度と開かないハッチが閉まる。弱冠22歳の大尉が残した文面は、勇ましく、かつ痛ましい。自爆兵器の前に立ち、遺書の背後にあったであろう物語を空想した。無数の言葉が、群がって、消えた。
050618
二人乗りの有翼特殊潜水艇「海龍」
脇にかかえた2本の魚雷を発射したあとは、600㎏の炸薬と共に突っ込む「特殊」兵器である。潜望鏡の中に敵艦が広がったとき世界は消える。覚醒しつつ死にむかう兵士は何を思うのであろう。遺書からは伺えない個人の歴史が明滅する。
軍隊を志願した若いイギリス人に写真を見せ、つたない英語で、この潜水艇をどう思うかと質問した。「狭い空間に閉じ込められて確実な死を迎えるのは恐ろしい。水中に身を隠し、敵が気づかないうちにドカンとやるのはフェアではない。イギリスには騎士道がある。武士道と似ている」というようなことであった。
ゼロ戦を知っているか?
「オ~イエス。イギリスにはスピットファイアーがある。アメリカにはグラマンが、ドイツにはメッサーシュミットがある。同等の武力をもって空で闘うのはromanticだ」
このような文脈でromanticという言葉が使われるとは思わなかったので妙に感心した。殺し合いとはいえ、青空を背景に、操縦桿を操ってドッグファイトを展開するのは、騎士道にかなっているのだろう。この手の戦闘はスポーツに似ている。
050618
ゼロ戦
バイクに乗って呉まで出かけたのは、本物のゼロ戦を見たかったからである。幼い頃から漫画や写真で散々お目にかかった飛行機だ。肉眼で見、勘に頼って操縦するレシプロ機は、その人間臭さにおいて刀や銃の延長線上にあるように思われる。
ヒトは下に潜るより空を飛びたがる。ジェットエンジンで尻を押されるより、プロペラを回して前から引っ張られる方が、優雅な気分を味わえそうだ。できることなら美しく舞いたい。とすればこれしかないというのがゼロ戦で、太すぎず、細すぎず、ほどよく丸まった形の隅々まで手作りの味が残る。数ある戦闘機の中でもゼロ戦の流線型は美しい。
その戦闘能力は同時代の航空技術から抜きん出ていた。秘密兵器のベールが剥がされた時、ゼロ戦と肩を並べる飛行機は世界になかった、と本に書いてあるから信じよう。テクノナショナリズムは当然のごとく日本にもある。
ぎりぎりまで贅肉を落としたゼロ戦は、運動性能に秀でていたが、人間を守る思想が薄い。燃料タンクは火災に弱く、背中から打てば座席の鋼板を突き抜けて弾丸が人間に届く。一対一の空中戦においては敵なしであったが、いかに旋回性能がよくても速度で劣れば落とされる。不時着したゼロ戦を拾ったアメリカは、その弱点を分析し、力で勝るグラマン戦闘機を生みだした。
誰が買うのか知らないけれど、武器ものの雑誌「丸」はいまでも書店に並ぶ。少年のころ兄が愛読していた雑誌で、書棚に並んだ本を引っ張りだしては眺め、お小遣いをためてプラモデルを作った。ゼロ戦と戦艦大和は「丸」の主役であった。
そのゼロ戦も戦争末期においては特攻兵器とされた。死を覚悟した人間が、250キロ爆弾を抱えて突っ込むという戦法は、戦争好きのアングロサクソンの教科書にもないから不意をついた当初は成功したにちがいないが、想定外の攻撃も一度経験すれば対抗手段を取られる。ゼロ戦が舞い上がるたびに敵艦がどんどん沈んだという話は読んだことがないので、大半は犬死にであったろう。浮かばれない死だ。
切腹
イラクにおける自爆攻撃のルーツは、特攻隊にあるという。みずからを滅ぼしても共同体を守るという日本の発明だ。その背後には、切腹の歴史があるのではないかと私は見ている。ボタンを押せば一瞬で消滅する自動車爆弾とちがい、切腹すなわちハラキリとは、自分の腹に刀を当てるのである。包丁で指を切っても血は流れるが、腹を切ると圧力で腸が飛び出すという。その直後に背後から首を撥ねられる。作法に則って事を進めねばならないが、練習はできない。何という恐ろしい死だろう。しかもその多くは、個人の罪ではなく、共同体の罪ないし名誉のため、自由意志をもって死を決するのである。乃木希典は、(おそらく)死地に赴いた将兵を思って、自刃(じじん)した。三島由紀夫は美学のために切腹した。人間は生きたいと願う存在だが、その遺伝子には死に誘引される感情さえプログラミングされ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さえ思う。私が面識のある一人は、薬でも爆薬でもなく、刃物を腹に当て、死を選んだ。さほど昔のことではない。なんということであろう。合掌
050618
戦艦大和
大和(やまと)の同形艦には、武蔵もあるのだが、漫画、劇画、アニメ、小説、戦争史に登場する主役はいつもヤマトだ。「やまと」という言霊(ことだま)が日本人の郷愁をさそう。
片道燃料でオキナワに出撃した大和は、ゼロ戦と同じ特攻思想で死に向かった。敗戦が確定したにもかかわらず、3000人の将兵を乗せ、あえてヤマトは自爆を選んだ。負けるとわかった戦(いくさ)に出陣するのであるから戦略も戦術もない。個人の生存に対する尊敬さえなく、ただ華々しく散ることが目的であった。西洋の合理主義では説明できない行為であったかと思われる。
日本文学には、死出の旅路に向かう男女を妖艶なる美の世界に昇華した「道行(みちゆき)」がある。恋の末路を描いた近松門左衛門(ちかまつもんざえもん)の浄瑠璃は、津野町高野(たかの)の廻り舞台でも上演された。戦艦ヤマトの最後は、いわば道行の「美学」ではなかったろうか。とはいえ美学の道連れにされた個人の物語について私は知るところがない。
050618
宇宙戦艦ヤマト
ヒロシマの記者に「戦艦大和と宇宙戦艦ヤマトを並べて展示するのはいかがなものか」と苦言を呈したところ、とりたてて反論はなかった。漫画家がヤマトを扱うのは自由だが、夢物語のお遊びと現実の自爆戦を並列したヤマトミュージアムの思想の貧困には寒けがする。いかに外観が美しく、カッコよかろうと大和は殺人兵器である。海底には戦いに破れた英霊が眠る。家族と離れ、恋人と別れ、血を流し、息を止められた遺骨が、今なお深海に積もる。アニメと現実を同じ館に並べてはならない。
050618
戦艦大和の砲弾
砲弾には、厚い装甲を撃ち抜く徹甲弾から、空中で爆裂し、飛行機に向けて鉄の破片をまき散らすものまで様々な種類がある。要するに殺人兵器なのだが、ヤマトミュージアムでは、ペンキが塗られ、血の臭いが消され、オモチャのように展示される。砲弾に色を置き、戦場から血の臭いを抜いたデザイナーは、いったい何を考えたのであろう。戦争を絵空事と捉えたオタクなのであろうか。あるいは悪意の宣伝工作なのであろうか。
050618
海上自衛隊のイージス艦
神の目
正面を向いたイージス艦の背後に、二隻の巡洋艦が絶妙のバランスをもって左右に分かれる。主役の位置を左にずらし、右の空白を背後の脇役が補てんして、重心はきちんと中央に置かれる。左右対称を嫌う日本庭園のようでもあれば、いったんバランスを崩した上で再び統合される数寄屋のようでもある。見事な構図だ。これ以上は考えられない位置と角度から移された巡洋艦は、勇ましく、カッコいい。
だが、写真好きの目でいえば、3つの目が想定されて複雑な気分だ。戦闘艦の内部で働く者の目。カメラマンの目。写真につられて神の如く風景を見る観客の目である。映画の原理だ。ありえない目の位置に引き込まれた観客は、神の視座を獲得する。
このような絵を見て瞳を輝かす小学生は神になる。どう合理化しようとサディズムの変形でしかない戦争ゲームの愛好者も神になる。日帝の御前会議に座った人間、イラク戦争における開戦会議で発言した人間もまた、地べたに張り付けられた人間の目を失い、現実から疎外され、知らず知らず神の目をもって世界を見たのではなかろうか。いかにカッコよく見えようとも、映される私はルーティンワークをこなしているにすぎないのだが……ファインダーを覗くたびにヒトとカミの関係が思われる。神は人間の目をもたない。
060515助村
야마토 백경(16)
특공/자폭
히로시마현 쿠레시의 야마토박물관
인간어뢰「回天」
제2차 세계대전 말기에 발명된 특공대는 잠수정, 고속정, 항공기, 군함 등 갖가지 무기를 사용했다. 위 사진은, 어뢰 속에 인간이 들어가 잠망경을 들여다보면서 적함을 추적하는 특공무기다. 비좁은 공간에 살아있는 인간을 집어넣고 두 번 다시 열리지 않을 해치를 닫는다. 약관 스물두 살의 대위가 남긴 메모는 늠름하면서도 애처롭다. 자폭병기 앞에 서서 유서의 배후가 되었을 모노가타리를 상상해 본다. 수많은 언어들이 모였다 흩어진다.
2인승 특수 잠수정「해룡」
옆구리에 장착된 두 기의 어뢰를 발사한 후 600kg의 폭약과 함께 적함에 돌진하는 「특수」병기다. 잠망경 속에서 적함이 터지는 순간 자신의 세계도 사라진다. 각성 상태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병사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유서에서는 들을 수 없는 개인의 역사가 명멸한다.
군대를 지원했던 젊은 영국인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서투른 영어로 이 잠수함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비좁은 공간에 갇힌 채 확실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은 너무나 두려운 일이다. 물속에 몸을 숨기고 적이 눈치 채기 전에 자폭을 하는 것은 페어플레이가 아니다. 영국에는 기사도가 있는데 무사도와 비슷하다.」는 대답을 했다.
0戰(제로센)을 알고 있는가?
「물론이다. 영국에는 스피드화이어가 있고 미국에는 그라만이, 그리고 독일에는 메사슈미츠가 있다. 동등한 화력으로 하늘에서 싸우는 것은 로맨틱하다.」이런 문맥에서 로맨틱이라는 단어가 사용되리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에 묘하게 감탄스러웠다. 살인이라고는 하지만 창공을 배경으로 조종간을 조종해서 전개하는 공중전은 기사도와 견줄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전투는 스포츠와 닮았다.
제로센
오토바이를 타고 쿠레시까지(히로시마시 서남부의 市까) 갔던 것은 실물의 제로센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만화나 사진을 통해 수없이 봤던 비행기다. 육안으로 적기를 보며 감각에 의지해 조종하는 프로펠러기는 그 인간적인 면에서 칼이나 총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처럼 여겨진다.
인간은 밑으로 파고들기보다 하늘을 날고 싶어 한다. 제트엔진이 뒤에서 미는 것 보다는 앞에서 돌아가는 프로펠러가 당기는 편이 훨씬 우아한 기분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할 수만 있다면 아름답게 날아오르고 싶다. 그렇다면 굵지도 가늘지도 않고 적당하게 둥근 모양의 제로센이 제격이다. 게다가 구석구석까지 수작업의 흔적을 맛 볼 수 있다. 많은 전투기 중에서도 제로선의 유선형은 특히 아름답다.
제로센의 전투능력은 동시대의 어떤 항공기술 보다 출중했다. 비밀 병기의 베일이 벗겨졌을 때, 제로센과 어깨를 견줄 비행기는 이 세상에 없었다고 책에 쓰여 있으니까 일단 믿기로 하자. 테크노내셔널리즘은 당연하게 일본에도 있다.
최대한 군살을 뺀 제로센은 운동기능은 뛰어 났지만 인간을 보호하는 사상은 희박하다. 연료 탱크는 화재에 약하고 등 뒤에서 쏘면 좌석의 동판을 관통한 탄환이 인간에게까지 미친다. 일대일의 공중전에서는 대적할 상대가 없었겠지만 아무리 선회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속도에서 뒤떨어지면 격추당하고 만다. 불시착한 제로센을 회수한 미국은 그 약점을 분석하여 힘으로 이길 수 있는 그라만 전투기를 탄생시켰다.
누가 사는지는 모르지만, 무기전문잡지 「마루」는 지금도 서점을 장식한다. 소년시절 형이 애독하던 잡지인데 책장에 꽂힌 책을 꺼내어 읽고는 용돈을 모아서 플라스틱 모형을 만들었다. 제로센과 전함 야마토는 「마루」의 주인공이었다.
그 제로센도 전쟁 말기에 이르러서는 특공병기로 사용되었다. 죽음을 각오한 인간이 250킬로그램의 폭탄을 끌어안고 돌진하는 전법은 전쟁을 좋아하는 앵글로색슨족의 교과서에도 없던 터라 처음 불의의 일격을 당했을 때는 분명히 성공을 했겠지만, 상상도 못하는 공격도 한 번 경험하고 나면 대항수단이 갖추어지기 마련이다. 제로센이 출격할 때마다 적함이 쉼 없이 침몰했다는 이야기는 읽은 적이 없기에 대부분은 개죽음을 했을 것이다. 부질없는 죽음이었다.
할복
이라크에서 일어나는 자폭공격의 뿌리는 특공대에 있다고 한다. 스스로를 희생해서라도 공동체를 지킨다는 일본의 발명이다. 나는 그 배후에 할복의 역사가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버턴을 누르면 순식간에 소멸하는 자동차 폭탄과는 달리 할복, 즉 배 가르기는 자신의 배에 칼을 대는 일이다. 식칼에 손가락을 베여도 피가 흐르지만, 배를 가르면 압력에 의해 내장이 튀어나온다고 한다. 할복 직후에는 뒤에서 목을 쳐 준다. 절차에 따라 할복을 진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연습은 불가능하다. 이 얼마나 두려운 죽음이었겠는가? 게다가 대부분의 할복은 개인의 죄가 아니라 공동체의 죄 내지는 명예를 위해 스스로 죽음을 결정했다. 노기마레스케(군인, 육군대장)는 (아마도) 사지로 부임하는 장병들을 생각하며 자진했을 것이다. 미시마유키오(소설가, 극작가)는 미학을 위해 할복을 했다. 인간은 살고 싶어 하는 존재이긴 하지만, 그 유전자에는 죽음에 끌리는 감정까지 프로그램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조차 든다. 나와 알고 지내던 지인 중 한 사람은 약도 폭약도 아닌 칼에 의한 죽음을 선택했다. 그다지 오래전의 이야기가 아니다. 도대체 무슨 이유였을까? -합장-
전함 야마토
야마토와 비슷한 무사시도 있는데 만화나 극화, 애니메이션, 소설, 전쟁사에 등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항상 야마토다. 「야마토」라는 언령신앙은 일본인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편도 연료만 싣고 오키나와로 출격했던 야마토는 제로센과 마찬가지의 특공사상으로 죽음을 향했다. 패전이 확정되었음에도 불구하고 3000명의 장병을 싣고 굳이 야마토는 자폭을 선택했다. 패하리라는 사실을 뻔히 알고 출전했기에 전략도 전술도 없었다. 개인의 생존에 대한 존경조차 없이 그저 장렬하게 산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서양식 합리주의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행위였다.
일본문학 중에는 저승길을 떠나는 남녀를 요염한 미의 세계로 승화시킨 道行(미치유키, 사랑의 도피)가 있다. 사랑의 미로를 그린 치카마츠몬자에몽의 죠루리(샤미센 연주에 맞추어 가락을 붙여 엮어 나가는 모노가타리)는 츠노쵸타카의 순회공연에서도 공연되었다. 전함 야마토의 최후는 말하자면 미치유키의 미학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미학의 길동무가 된 개인의 모노가타리에 대해서 나는 아는 바가 없다.
우주전함 야마토
히로시마의 기자에게 「전함 야마토와 우주전함 야마토를 나란히 전시하면 어떨까?」하고 쓴 소리를 했더니 특별히 반론은 없었다. 만화가가 야마토를 다루는 것은 자유지겠지만 유희와 같은 꿈 이야기와 현실의 자폭전쟁을 연결시킨 야마토박물관의 짧은 생각에는 등골이 오싹할 뿐이다. 아무리 외관이 아름답고 멋지다고 해도 야마토는 살인병기다. 해저에는 전쟁에 패한 영령들이 잠들어 있다. 가족과 헤어져 연인과 생이별을 한 채 피를 흘리며 숨져간 유골들이 지금도 해저에 쌓여 있는 것이다. 애니메이션과 현실을 동일선상에 두어서는 안 된다.
050618
전함 야마토의 포탄
포탄의 종류는 두꺼운 장갑을 뚫고 들어가는 철갑탄에서부터 공중에서 폭발, 비행기를 향해 파편을 뿌리는 것까지 다양하다. 결국 살인병기일 뿐인데, 야마토박물관의 포탄에는 페인트가 칠해지고 피 냄새가 지워진 채 마치 장난감처럼 전시되어 있다. 포탄에 색을 입히고 전장에서 피 냄새를 제거한 디자이너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전쟁을 허구쯤으로 생각하는 오타쿠인 것일까? 아니면 악의의 선전공작인 것일까?
해상자위대의 이지스함
신의 눈
정면을 향한 이지함 뒤로 두 척의 순양함이 절묘하게 좌우 균형을 맞추고 있다. 왼쪽으로 살짝 벗어난 주인공의 오른쪽 공백을 뒤쪽의 조연이 보완하며 중심을 정중앙에 두고 있다. 좌우대칭을 싫어하는 일본의 정원 같기도 하고, 일단 균형을 무너뜨린 다음 재차 통합되는 다실(茶室) 같기도 하다. 훌륭한 구도가 아닐 수 없다. 더 이상은 생각할 수 없는 위치와 각도로 옮겨진 순양함이 늠름하고 멋지다.
하지만 사진을 좋아하는 눈으로 보면 세 개의 눈이 설정되어 복잡한 기분이 든다. 전투기 내부에서 움직이는 눈과 카메라맨의 눈, 그리고 사진에 이끌려 신처럼 풍경을 들여다보는 관객의 눈이 그것이다. 영화의 원리와도 같다. 있을 수 없는 눈의 위치로 끌려들어간 관객들은 신의 관점을 획득하게 된다.
이런 그림을 보고 눈동자를 빛내는 초등학생은 신이 된다. 어떻게 합리화시키든 사디즘의 변형이라고 밖에는 볼 수 없는 전쟁게임 애호가도 신이 된다. 일본제국주의 시절 어전회의에 참석했던 인간, 또한 이라크전쟁의 개전회의에서 발언을 했던 인간들은 지면에 붙은 인간의 눈을 상실하고 현실로부터 소외된 채 부지불식간에 신의 눈으로 세계를 봤던 것은 아니었을까? 카메라 파인더를 들여다볼 때마다 신과 인간의 관계가 떠오른다. 신에게는 인간의 눈이 없다.
060515 스케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