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성오가네 당호~!
<큰 채 당호>
修己以敬(수기이경)이란 공자의 ‘논어’ 제14편 ‘헌문(憲問)’에 나오는 말이다.
자로(子路)와 공자가 군자(君子)의 실상에 대해 문답한 내용 중에 나온다.
자로가 군자에 대해 묻자. 공자는 “경(敬)으로써 몸을 닦는다(修己以敬이니라)”라고 하였다.
이에 부족한 듯 자로가 다시 묻자 공자는 “몸을 닦아서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修己以安人이니라)”라고 하였다.
자로는 이에도 부족한 듯 다시 묻자. 공자는 “몸을 닦아서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修己以安百姓이니라)”라고 하였다.
위의 세 구절에 공통으로 나오는
‘이(以)’는 방법 수단을 뜻하는데 ‘~을 가지고’로 풀이한다.
‘경(敬)’은 주자(朱子)를 비롯한 후대 유학자들은 마음을 한 곳에 집중(執中)하여 잡념을 버리는 일 즉, 주일무적(主一無適)을 뜻하며, 윤집궐중(允執闕中)과도 통하는 면이 있다.
유학이 지향하는 도덕적 이상은 수기안인(修己安人)에 있다고 한다. 자기를 수양하여 다른 사람을 편안히 하는 것이다. 자기를 성찰하고 존중하는 것에서부터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싹트는 것이다. 자기를 성찰하고 존중하는 것이 ‘수기이경(修己以敬)’의 뜻이다.
스스로의 삶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아무도 자신을 존중하지 않음을 탓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증삼(曾參)이 말한 공자의 도(道) 즉 충서(忠恕)와 연관된다. 충(忠)은 수기(修己), 서(恕) 안인(安人)과 상통한다.
오늘날 ‘충(忠)’의 의미는 국가나 조직을 위하여 온 정성을 다하는 충성(忠誠)의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충(忠)은 조금의 가식이나 거짓 없이 자기의 온 정성을기울인다는 뜻으로 우선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와 조직을 위해 헌신하라는 이데올로기를 ‘충(忠)’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수기이경(修己以敬)의 자기 성찰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충(忠)임을 알아야 한다. <성호준의 세상을 읽는 고정 중에서>
<아래채 당호>
親愛精誠(친애정성)이란 온 힘으로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라는 것인데 이것은 대만(자유중국)의 장개석 총통이 썼다 한다.
몇 년전부터 집의 어른께서는 연세도 많고 건강이 좋지 않아서인지 자주 명절 날에 훈육을 하시곤 하는데, 이 친애정성을 가훈이라며 간직하라고 하셨다. 이 분(이 분이라고 하자.)은 대만에 여행을 가서 장개석 총통이 쓴 이 글귀를 사가지고 온 것이다.
어떤 큰 정치인이든지 大道無門, 敬天愛人 등의 문구를 가지고 자신의 정치철학 및 국민에 대한 애정을 나타내기도 하는데 이 親愛精誠이 그런 것 아닌가 생각해 봤다.
남을 친애하기를 정성을 다하라는 뜻인 것 같은데 흔히 보는 글귀라서 별 감동이 없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더구나 괘씸한 놈, 천한 놈, 웃기는 놈, 똑똑한 놈, 못 난 놈 많은데 뭘 그렇게 정성을 다하여 사랑할 수 있느냐, 사실은 그것은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장개석이 한 말이라 나는 설 지나고 고향서 떠나오면서 생각해 봤다. 장개석은 중국 모택동의 공산당에 밀려 자유중국으로 도망 온 사람이며 대륙에서 국민사랑에 실패하여 敗者로서 조그만 섬나라를 꾸린 사실에 대하여 매우 뼈아팠을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아마도 이제 대만의 국민들을 끝없이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는 친인척의 부정부패를 총살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요즘 생각하면 ‘잔인하다’, ‘너무하다’가 가능하겠지만 하나도 국민사랑, 둘도 국민사랑, 셋도 국민사랑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장개석의 사랑은 지배논리의 사랑인 것 같은데 똥개도 주인이 사랑하지 않는다 생각하면 가출하게 된다. 지배를 하는 사람이 있으면 지배를 당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인데 그 지배의 논리가 사랑이라면 감당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물게 된다.
학생이 ‘저 사람이 선생이야, 뭐야?’ 한다면 학생으로부터 사랑을 의심당한 거다. 또는 ‘저 사람이 정치인이야, 사깃꾼이야?’, ‘치료는 않고 돈만 아는 돌팔이 의사’, ‘대통령은 무슨 대통령?’ 이런 것은 불신증에 걸린 것을 말한다.
맏형, 맏며느리, 대통령, 가장, 고위관리, 기업회장 등은 유념해야 할진데 끝없이 사랑해야 하는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상당한 어려움이 있어도 사랑하는 모든 노력을 경주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사랑해 주어야만, 즉 정성으로 친밀하고 사랑해야만 사람들은 결국 따른다.
나는 장개석의 친애정성을 해석했던 것이다. (김동길 박사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