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의 박춘근 작 박해성 연출의 유사유감
공연명 유사유감
공연단체 (재) 국립극단
작가 박춘근
연출 박해성
공연기간 2014년 10월 7일~19일
공연장소 국립극단 소극장 판
관람일시 10월 14일 오후 8시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박춘근 작, 박해성 연출의 <유사유감(遺事遺憾)>을 관람했다.
박춘근은 마이애미대학교 대학원 연극학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극작과 겸임교수로 있으며 장래가 기대되는 작가이다. 작품으로는 <내 마음의 안나푸르나> <아내들의 외출> <뮤지컬 사비미르> <캐스팅> <페리클레스> <뮤지컬 야단법석> <무사 마마이> <게이 결혼식> <안녕, 마이 버터플라이> <오페라 로미오 대 줄리엣>을 발표, 공연했다.
<삼국유사>는 <삼국사기>와 더불어 현존하는 우리 고대 사적(史籍)의 쌍벽으로 일컬어진다. 사관(士官)이 쓴 정사(正史)인 <삼국사기>비해 일연이라는 승려 개인이 쓴 야사(野史)인 <삼국유사>는 체재가 정연하지 못하고 일부 잘못 전해져 오는 것을 그대로 실은 면도 있지만, 고구려·신라·백제 외에도 <삼국사기>에는 없는 고조선·기자(箕子) 및 위만조선과 가락 등의 역사가 포함되어 있다. 특히 고조선에 관한 서술은 오늘날 우리로 하여금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자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만약 이 기록이 없었다면 우리는 삼국시대 이전의 우리 역사를 중국의 사료(史料)인 <삼국지>의 <동이전>에 겨우 의존했을 것이다. 일연이 민족의 자부심을 높이고자 쓴 역사서인 만큼 중화사상이 아닌 우리 민족 주체성 위에서 우리 고대사를 바라본 최초의 역사서라는 점 또한 이 책의 가치를 더해 준다. 그리고 <삼국사기>에는 없는 신화와 전설 등이 실려 있어 설화문학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고, 정형시가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향가 14수가 실려 있어 그 문학적 가치는 절대적이다.
연극 유사유감은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과 삼국유사 집필의 이야기다.
일연은 경주(慶州) 김씨. 첫 법명은 견명(見明). 자는 회연(晦然)·일연(一然), 호는 목암(睦庵). 법명은 일연(一然)경상도 경주의 속현이었던 장산군(章山郡: 지금의 경상북도 경산) 출신. 아버지는 언정(彦鼎)이다. 왕에게 법을 설하였으며, 간화선(看話禪)에 주력하면서<삼국유사(三國遺事)> 등을 찬술하였다. 1214년(고종 1) 해양海陽(지금의 전라남도 광주)에 있던 무량사(無量寺)에서 학문을 익혔고, 1219년 설악산 진전사(陳田寺)로 출가하여 대웅(大雄)의 제자가 되어구족계(具足戒)를 받은 뒤, 여러 곳의 선문(禪門)을 방문하면서 수행하였다. 이 때 구산문 사선(九山門四選)의 으뜸이 되었다. 1227년(고종 14) 승과의 선불장(選佛場)에 응시하여 장원에 급제하였다. 그 뒤 비슬산(琵瑟山)의 보당암(寶幢庵)에서 수년 동안 참선에 몰두하였고, 1236년 10월 몽고가 침입하자, 문수의 계시로 보당암의 북쪽 무주암으로 거처를 옮겨 깨달음을 얻었다. 이 해에 삼중대사(三重大師)의 승계(僧階)를 받았고, 1246년 선사(禪師)의 법계(法界)를 받았다. 1249년 남해의정림사(定林寺)에 머물면서 남해의 분사대장도감(分司大藏都監) 작업에 약 3년 동안 참여하였다. 1256년 윤산(輪山)의 길상암(吉祥庵)에 머물면서<중편조동오위(重編曹洞五位)>2권을 지었고, 1259년 대선사(大禪師)의 승계를 제수 받았다. 1261년(원종 2) 원종의 부름을 받고 강화도의 선월사(禪月寺)에 머물면서 설법하고 지눌(知訥)의 법을 계승하였다. 1264년 경상북도 영일군운제산(雲梯山)에 있던 오어사(吾魚寺)로 옮겨갔으며, 비슬산 인홍사(仁弘寺)의 주지가 되어 후학들을 지도하였다. 1268년에는 조정에서 베푼 대장낙성회향법회(大藏落成廻向法會)를 주관하였다. 1274년 그가 인홍사를 중수하자 원종은 ‘인흥(仁興)’으로 이름을 고치고 제액(題額)을 써서 하사하였으며, 비슬산 동쪽 기슭의용천사(湧泉寺)를 중창하고 불일사(佛日寺)로 고친 뒤, <불일결사문(佛日結社文)>을 썼다.1277년(충렬왕 3년)부터 1281년까지청도 운문사(雲門寺)에서 살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다. 이 때 <삼국유사>를 집필하기 시작한 것으로 추정된다. 1281년 경주에 행차한 충렬왕에게로 가서, 불교계의 타락상과 몽고의 병화로 불타 버린 황룡사의 모습을 목격하였다. 1282년 충렬왕에게 선(禪)을 설하고 개경의 광명사(廣明寺)에 머물렀다. 다음 해, 국존(國尊)으로 책봉되어 원경충조(圓經冲照)라는 호를 받았으며, 왕의 거처인 대내(大內)에서 문무백관을 거느린 왕의 구의례(摳衣禮:옷의 뒷자락을 걷어 올리고 절하는 예)를 받았다.그 뒤, 어머니의 봉양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가 1284년에 타계하자, 조정에서는 경상도 군위 화산(華山)의 인각사(麟角寺)를 수리하고 토지 100여 경(頃)을 주어 주재하게 하였다. 인각사에서는 당시의 선문을 전체적으로 망라하는 구산문도회(九山門都會)를 두 번 개최하였다. 1289년 손으로 금강인(金剛印)을 맺고 입적하였다. 대표적인 제자로는 혼구(混丘)와 죽허(竹虛)가 있다. 저서로는 <화록(話錄)> 2권, <게송잡저(偈頌雜著)> 3권, <중편조동오위> 2권, <조파도(祖派圖)> 2권, <대장수지록(大藏須知錄)> 3권, <제승법수(諸乘法數)> 7권, <조정사원(祖庭事苑)> 30권, <선문염송사원(禪門拈頌事苑)> 30권, <삼국유사> 5권 등이 있다.
무대는 세자높이와 여덟 자 폭, 이십 자 길이의 대를 극장 중앙에 가로 설치하고, 그 앞뒤에 책꽂이를 만들어 책과 작은 소품을 잔뜩 얹어놓았다. 가로놓인 대 양쪽에도 서적을 잔뜩 쌓아두었다. 승려의상이나, 지팡이, 목검 같은 소품도 고풍스럽고, 천정에 매어달린 풍경(風磬)도 제구실을 한다. 일연이나, 사학자가 사용하는 타자기는 탁월한 발상이다.
연극에는 일연(一然, 1206~1289)과 그의 본명인 견명(見明), 초기의 법명인 회연(晦然)을 분리시켜 3인의 등장인물로 설정을 했다. 그리고 삼국유사를 연구해 온 사학자와 그를 취재하는 여기자가 연극을 이끌어 가고, 1153년 일연의 제자인 고려 의종 때 인각사 보각국사 탑 및 비(麟角寺普覺國師塔─碑)를 세운 승려 죽허(竹虛)와 역시 고려 말의 승려이자 무극노인(無極老人)이라 불리던 제자 혼구(混丘)를 등장시키고, 이들이 삼국유사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 김유신, 김춘추, 의자왕을 각자 연기한다.
내용은 요즘 세태와 젊은이들의 눈높이에 맞도록 삼국유사의 역사적 진위, 사실성과 타당성을 가려내고 추적해 가며, 극을 흥미롭게 이끌어 가고, 경전의 구절과 향가 몇 수를 첨가하해 정취까지 상승시킨다. 일연의 집필도 붓글씨가 아닌 타자기를 사용하는 등 과거와 현대를 절묘하게 결합시켜 연출력이 감지되는 공연이다.
유승일, 선명균, 신안진, 유영욱, 김훈만, 금정원, 김모은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드라마트루기 우수진, 무대 박상봉, 조명 김형연, 의상 김지연, 음향 정혜수, 소품 이나래, 분장 이지연, 무대제작 빅벨, 무대감독 김병섭, 조연출 강경호 기술감독 신용수, 음향감독 정윤석과 그 외 제작진의 열정이 하나가 되어, (재) 국립극단(예술감독 김윤철)의 박춘근 작, 박해성 연출의 <유사유감(遺事遺憾)>을 성공적인 공연으로 만들어 냈다.
다만 현재 많은 사람들이 의자왕과 삼천궁녀 이야기를 불신하고, 의자왕이 어찌 혼자서 삼천궁녀를 상대하고, 낙화암에서 그 수많은 궁녀들이 백마강으로 뛰어들었으면, 강이 막혀 어찌 되었겠느냐는 이야기를 잡담처럼 하고, 계백장군이 처자를 죽인 후 신라와의 전투에 임했다는 삼국유사의 내용도, 6 25사변이나, 월남전이나, 현대전에 이르기까지 처자를 죽이고 출전한 군인이 없지 않으냐며, 당치않은 행동이라는 듯한, 말을 내뱉는 사람이 있듯이, 이 연극에서도 계백의 행동을 부정적인 시각의 대사로 집어넣고, 김유신이 정략결혼을 시키려고 자신의 누이를 김춘추에게 상납했다는 등의 내용이 관객의 폭소 속에 흥미로운 듯 진행이 되지만, 삼천궁녀 뿐 아니라 삼만 명의 백제여인이 강물에 몸을 던져서라도 정절을 지키려고 한 고귀한 절개와 심성, 그리고 계백장군의 애국충정이 현재 각종 선거에서 백제지역인들의 투표수로 이어져 반영이 되고 있고, 남자를 알지 못하는 순진무구한 어린 처녀가, 오라비의 친구가 운동 중에 옷이 찢어진 것을 꿰매어 주고, 그 모습에 반한 오라비의 친구가 청혼을 한 것을, 정략결혼이니 상납이니 하고 불결한 의미로 각색한 대사라든가, 제주 해군기지까지 싸잡아 비난하며, 비속어와 상욕의 연속과 남발이 과연 삼국유사 시리즈를 기획하고, 제작한 국립극단의 의도에 부합하는지는 고려해볼 문제다. 년 전에 같은 삼국유사 시리즈에서 원효나, 의상 같은 고승을 개그 코메디안처럼 묘사해, 일부 관객의 낯을 찌푸리도록 만든 적도 있었지만, 삼국유사를 발전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비하하는 내용을 포함시킨 연극이 과연 바람직한가는 재고해야 한다.
10월 14일 박정기(朴精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