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오고
나는 학교에 가서 교장 선생님과 담임 선생님들을 뵙고 걸어 올라오는데 최종규 할아버지 논과 총무님 논에 벼를 베고 있었다.
마을 총무 어머님도 계시고 만규 할아버지가 콤바인을 운전하고 계셨다.
할머님과 잠시 이야기하다보니 참도 없이 일하시는 것 같아 냉큼 올라가 빵,우유, 소주 한 병, 매실물을 타서 코알라샘, 짱돌샘이랑 다시왔다.
오늘 낮에 볕이 따가웠다. 얼마나 목마르겠나. 보따리를 풀으니 할머님은
"내 참을 준비 못해 어쩌나 하고 있다니. 근데 고마리 선생님이 다 갖고 오시다니..."
밭할아버지도 계셨다. 마을 총무님도 있고 금세 소주 한 병을 비우고, 빵과 우유도 다 드신다.
시장했나보다. 맛나게 드시니 좋다.
"농약 딱 한 번 쳤다니. 우리는 마이 안쳐, 그니까 베양이 즉어. 소출이 작다고. 아, 참 고마리 원장님 이 배미가 310평인데 이땅 사요. 15 줄게. 집 짓기 좋다니"
"아, 예...저기요. 생각해 보구요. 참, 그저께 정화조 펐는데 15톤 이더라구요. 그분들 하루종일 일했어요. 정말 애썼어요.
비용은 24만원 냈어요. 일단 우리가 냈으니까 알고 계시라고 말씀 드립니다."
"그럼, 마을에서 반은 줘야지."
"아니예요. 우리가 냈으니 됐어요. 올해는 수도도 어떻게 해야하지 않을까요. 어제도 물이 안 나와서..."
잠시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된다. 서로 만날 틈이 없으니 이럴 때 오가는 말도 괜찮다 싶다.
"그리고 모레 학교 운동회 해요. 오전에는 현북초에서 하구 오후엔 현성초에서 하니까 오셔요. 간식은 저희 부모님들이 준비하시니까 꼭 오셔요."
"벼 말려야지 거 갈새가 있나. 우리 손지가 유치원 다니니까 가긴 가얀다니. 참..."
학교가 살아나고 마을에서 나갔던 아들과 손자, 손녀가 다시 들어왔다. 서서히 귀촌 가정도 늘어나고 있다. 교육과 문화가 있어야 마을이 살아난다. 동네는 존재할지 모르지만 교육과 문화가 없는 곳에서는 보이지 않게 숨이 서서히 멎는다. 이런 전달까지는 할 필요는 없지만 마을이 살아나고 있음을 조금씩 인식해 가는 마을 어르신들이 고맙고 다행이다.
다들 벼베고 밭 곡식 추수가 끝나야 한가해 진다.
벼가 담긴 푸대를 보니 내가 다 뿌듯하다.
봄에는 모를 같이 심었는데 벌써 누런 벼라니 시간은 잘도 흐른다.
건너편 논에서는 반장 할아버지가 볏짚을 나르고 계신다, 소를 줄 모양이다.
매실 한 잔 드리고
"쌀 고맙게 잘 먹었습니다."
뭐이 그걸 같고. 원장님은..."
햅쌀이라고 아이들과 먹으라고 엊그제 한 말을 주셨다. 밥샘까지 주셨다.
작년에도 주셨는데 감사하고 고맙고 또 고맙다.
아이들이 서울 집나들이 가면 마을이 허전하고 아이들이 기다려진단다. 그러다 만나면 "우리 손자들 왔네" 하시며 사탕이며 옥수수를 주신다. 우리도 있으면 늘 나눠 먹지만 뭘 바라고 하겠나.
이웃 할배, 할매들과 날마다 얼굴보며 일하고 나누어 먹고 사는 재미가 얼마나 좋은지 남들은 잘 모를 것이다.
오랜만에 학교 샘들도, 마을 어른들도 만나고 추수하는데 잠깐 동참도 하고 기쁜 날이다.
이런 기운이 모두 우리 아이들한테 전해진다.
누련 벼들이 축축 베어져 짚도 갈갈이 찢겨 논에 흩어지는 모습이 허무하기도 하지만 다시 겨우내 밑거름이 될 것이다.
삶은 짧다
가고, 오고, 다시 가고, 또 오고... 그것이 과거요 현재고 미래다.
그래서 늘 오늘처럼 잘 살아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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