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동 중앙동 극장가
1895년 8월 1일 부산이사청 / 극장 및 각종 흥행취체규칙 제정 공표, 상설극장 등장
12월 28일 프랑스에서 루이 뤼미에르 형제가 만든 활동사진 유료 공개
1901년 9월 12일 부산전등(주) 설립 (상용 전기시설 확보로 극장 활동 기반 조성됨)
1903년12월 부산항 시가 및 부근 지도에 남빈정(남포동)에 행좌(幸座),송정좌(松井座)
2개 극장 상존하는 걸로 표시되어 있음.
1904년 부산 최초 극장 행좌에서 활동사진 처음 상영
※ 위 연도별 자료 "부산영화체험박물관"에서 인용함.
그후 남빈정(남포동)에 대형극장들이 연이어 개관하면서
남포동은 극장으로 인해 부산, 경남지역 최대의 번화가로 발전했다.
부산 남포동 극장가는 1990년대까지 대형 개봉관들이 밀집되어 있었으며,
한국영화의 황금기였던 1960년-70년대 그 절정을 이루었다. 이렇게 한 장소에
대형극장들이 밀집되어 있는 곳은 전세계에서 부산이 유일했다고 한다.
남포동(광복동)문화극장1959 (952석 1914개관,1973폐관) 외화전용관이라던데. 한국영화도 상영했네요.
공처가(1958제작,1959상영), 내가 낳은 검둥이(1959제작,상영) 위 문화극장 상영 영화 포스터
1962년 "벤허"
초등학교 3학년때 문화극장에서 영화를 처음 접했다."벤허"였다.
영화사에 다니시는 외삼촌따라 어머님하고 같이 갔었는데
영화 장면 하나하나가 경이의 연속이었고 충격이었으며
이 후에 영화광이 되게한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순간이었다.
남포동 제일극장1960 (1,418석 1957개관,1999폐관) 방화전용관 이었다.
과부(1960)를 상영중인 모습이다. 신영균 이민자 최남현 등이 출연했다.
1963년 "단종애사"
초등4학년 때 쯤 제일극장에서 한국영화릃 처음 봤다.
구정 특선프로 였던가 "단종애사"란 영화 였다.
여기도 영화사에 다니시는 외삼촌따라 어머님하고 같이 갔다.
다른 장면은 기억이 안나는데 어린나이에 강렬하게 느꼈던가?
사람을 인두로 고문하는 장면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남포동 부산극장1968 (1,279석 1934개관,현재) 방화전용관, 여자의 일생(1968)상영중이다.
1963년 "강화도령"
그 해 추석이던가? 아리송한데 외삼촌따라 부산극장에 가서 "강화도령"이란 영화를 봤다.
초딩시절 송도에 있는 외삼촌 집에 꼭 가는 이유가 있다. 영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시골 청년이 갑자기 왕이 되는 게 신기해서 기억에 남아 있었다.
남포동 극장가 녹색 표시한 곳이 개봉관이다(1960년대~1990년대)
위 녹색표시한 8개 개봉관중 동아극장은 1968년도에 일찍 폐관하고 동아데파트가 들어섰다.
남포동에는 총 7개의 대형개봉관이 한 곳에 밀집되어 있으며, 총 좌석수는 9,176석이다.
여기에 같은 중구인 중앙동에 있던 개봉관 현대극장,국제극장2개를 합치면
총 9개의 대형개봉관에 좌석수는 11,594석이다.
11,594석의 좌석이 주말이면 매진사례를 이루던 영화의 황금기가 있었다.
부산 영화사의 최고 황금기였던 1966년부터 69년까지 관객 숫자는 아래와 같다.
1966년 19,703,208명 1967년 21,251,023명
1968년 21,510,433명 1969년 23,229,566명
당시에는 지금처럼 전산 기록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금관계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관객숫자가 많이 축소되었다. 실제 당시 영화관련잡지 등을 보면 부산 관객이
연간 3천만이 넘은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어쨌든 부산 시민 1인당 연간 15편의
영화를 보던 시절이었으니 그야말로 시네마천국을 구가하던 전설의 시대였다.
이 전설의 시대의 이끈 주인공들이 바로 신성일과 트로이카 여배우(윤정희, 문희,
남정임)들 이었으며, 이들은 이 시기에 절정의 인기를 누렸다.
남포동 극장가의 흥행작들은 어떤 영화가 있었을까, 먼저 1920년대 당대의 블록
버스터라 할 만한 무성영화 <벤허>(1925)가 당시 몇 번이나 앵콜상영을 거듭했고,
1930년대 최초의 발성영화 <춘향전>(1935),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첩보멜로물
<마타하리>(1932) 등의 부산 극장가의 대흥행작이다.
이후 해방이 되고 6.25 전쟁 당시에 동아극장(1968년 폐관)에서 개봉되어 한국
최초로 10만명의 관객을 모은 것으로 전해지는 비비안 리 주연의 <애수>(1940),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1956), 신축개관한 현대극장에서 상영된 <로마의 휴일>
(1953), 지각 수입된 대작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 등이 50년대 대흥행작
들이고, 1961년 붙어있는 두 극장인 부산극장에서는 김지미의 <춘향전>, 제일극장
에서는 최은희의 <춘향전>이 개봉되었는데, 최은희의 <춘향전>이 15만여명의 관객을
모으면서 부산 영화관객 기록을 경신했다.
1962년 10월 27일 문화극장에서 개봉관 <벤허>는 당시로써는 가장 비싼 요금이었던
A석 150원, B석 95원, 대학생 70원, 초중고생 50원을 받았지만 연일매진사례를
이루었고, 경남지역 관객들까지 <벤허>를 보기위해 부산으로 와서 여관방을 잡아놓고
영화를 봤다고 한다. 이후 <벤허>는 80년대까지 재수입과 앵콜상영을 거듭하면서
부산에서만 100만명 이상의 관객을 모았다. 1960년대 남포동 극장가를 인파로 들끓게
한 대흥행작들은 다음과 같다.
엘시드, 007 위기일발, 나바론, 맨발의 청춘, 유정,
청춘극장, 황야의 무법자, 팔도강산, 미워도 다시한번,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 007 두 번 산다.
1970년대 각 가정에 TV가 보급되면서 한국영화계에 불황이 덮치면서 남포동 극장에도
먹구름이 밀려온다. 가정 먼저 문화극장이 1973년에 문을 닫았고, 국제극장이 1976년,
현대극장이 1978년, 동명극장이 1984년에 폐관되면서 중앙동과 자갈치에 있는 극장들은
문을 닫았지만, 남포동과 충무동의 경계에 있던 부영극장, 부산극장, 제일극장, 국도극장,
대영극장(불황으로 1973년 3월 재개봉관으로 격하되었다가, 1982년 다시 개봉관으로 승격)
등 5개관은 1990년대말까지 남포동 극장가의 명맥을 이었으며, 1980년대 후반에는
아카데미극장(구 왕자극장,서울극장 체인),혜성극장,연흥극장 등이 새로 문을 열기도 했다.
1970년대 정윤희의 <나는 77번 아가씨>라는 영화가 1,730석의 부영극장에서 평일날
‘매진사례’를 이루었던 기억이 난다. <벤허>(재개봉), <깊은 밤 깊은 곳에>,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챔프> 등의 영화들이 2개월 이상 장기상영되었던 그 시절,
이 영화들은 모두 30여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던 70년대의 대흥행작들이다.
부산에는 남포동 극장가 외에도 서면 극장가(북성극장, 동보극장, 태화극장, 대한극장
총 4,634석), 범일동 극장가 (보림극장, 삼성극장, 삼일극장 총 3,870석) 등의 극장
밀집지역이 있었다.“역사에도 지식재산권이 있다면 영화에 관한 한 대한민국에서 가장
강력하게 이를 주장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부산이다”라는 얼마전 부산 국제신문의 칼럼
에서 누군가가 쓴 글인데 100% 공감한다.
위 곤색 글은 https://blog.naver.com/oldcine "영화는 인생의거울" "록"님의 네이버블로그
에서 가져왔음.
남포동 대영극장1990 (1,095석 1957~1994) 방화전용관이었다. 오른쪽에 혜성극장이 보인다.
영화 "비오는 날의 수채화(1990)" 볼려고 몰려던 관객들 모습이다.
남포동 동명극장1962 (1,037석 1961개관,1984폐관) 외화전용관
남포동 부영극장1993 (1,730석 1969개관,2000폐관) 외화전용관,"서편제(1993)"를 상영하고 있다.
외화전용관 인데 한국영화도 가끔 상영했나 보다.
남포동 국도극장1988 (1,665석 1969개관,2000폐관) 방화전용관
방화전용관인데 월남전 미국영화 "BAT.21(1988)" 상영중인 모습이다. 외화도 가끔 상영했던 모양이다.
중앙동의 현대극장1962 (1,250석 1955개관,1978폐관) 외화전용관
원산만의 사부마린(Submarine Command 1951년 제작, 국내상영1962)6.25전쟁소재 영화와
그늘과 양지(Back Street1961,국내상영1962)멜로영화, 위 극장 간판의 두영화 포스터 입니다.
중앙동의 국제극장1970년대 (1,168석 1956개관,1976폐관) 외화전용관
중구 지역의 극장가
부산최초의 극장인 행좌와 송정좌가 있던 위치를 붉은 글씨로 표시해 보았다.
위 녹색표시글 개봉관들 중에 아직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곳은 4곳이 있다.
부산극장 자리에 "메가박스 부산극장 본관"이 있고 제일극장 자리에는
메가박스 부산극장 신관"이 있으며 대영극장 자리에는 "롯데시네마 대영"이
국도극장 자리에는 "CCV 남포"가 자리 잡고 있다. 모두 대기업들이 운영하고 있는 곳이다.
메가박스는 중앙그룹(중앙일보,JTBC),롯데시네마는 롯데그룹,CGV는 CJ그룹(제일제당,대한통운)이다.
녹색 표시된 개봉관 외에도 극장이 많이 있었다.
좌측상단 부평동 대동극장,좌측하단 왕자극장,남포동 대한극장,연흥극장,남포극장,미화관,
남포동 보림극장,시민관 등이 있었지만 이젠 모두 역사의 뒤안 길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1903년 행좌 모습 (1903?~1915, 남포동 2가 45-1, 남포동 할매회국수 자리 ㅡ>아님)
행관의 주소지는 남포동 2가 14번지로 향촌다방이 있던 블럭이고 할매회국수와 마주보는 쪽임
1926년 행좌 자리에 들어선 행관 모습
공식적인 국내 첫 극장은 1902년 대한제국이 왕립극장으로 서울 정동에 지은"협률사"이다.
행좌와 송정좌가 1903년 부산시가지도에 나와 있는 것을 보면 그전에 지은 것으로 추측이
되는데 1915년 폐관자료는 있는데 최초 설립자료가 없어 1위 자리를 협률사에 념겨 줬다.
부산지역 옛 극장들 모습, 지금은 모두 없어지고 다른 건물들이 들어 서 있다.
대영극장 오른편에 있던 혜성극장
소극장시절의 동아극장 (동아데파트2층)
왕자극장 (뒤에 아카데미극장으로 신축 개관)
부산데파트 왼쪽편 광복로 입구에 있던 시민관
영도 명보극장
영도 대양극장
괴정 신촌극장
초량 중앙극장
사상 괘법동 신영극장
구포 국제극장
광안리 광안극장
첫댓글 학창시절 땡땡이치던 극장..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