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의 매력은 변주입니다 변주라면 다름 아닌 베리에이션Variations이지요 동일한 주제를 바탕으로 리듬과 멜로디와 화성을 달리하면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음악입니다
어느 신혼부부가 밀월Honeymoon여행에서 돌아와 처음으로 음식을 만들었습니다 새신랑은 콩나물을 다듬었고 새색시는 새신랑을 위해 정성껏 콩나물밥을 지었습니다 그녀가 할 줄 아는 게 다만 콩나물밥밖에 없었거든요
공부하느라 신부수업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새색시는 결혼 직전에 친정어머니로부터 콩나물밥 짓는 방법과 아울러 콩나물국 끓이는 법을 배웠습니다 밥 짓는 일과 음식 만드는 게 꼭 여성의 몫이 아닌 줄 알면서도 새로운 인연을 맞으며 새신랑의 첫 음식 만큼은 손수 지어주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처음 짓는 음식이 서투르다는 것은 신랑도 맛에서 바로 느꼈지만 새신랑은 엄지손가락을 치켜 들었지요 "으음 맛있다. 자기 최고야!" 신랑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색시는 그야말로 신이 났습니다 "알았어 여보. 콩나물 음식은 내 평생 책임질게!"
그로부터 아내의 콩나물 사랑은 시작되었습니다 콩나물밥 콩나물국은 물론이거니와 콩나물을 이용하여 만드는 음식은 정말 열심히 만들었습니다
처음 한두 해는 콩나물밥과 콩나물국이 전부이다 싶었는데 그래서 물리기도 했지만 남편은 오로지 칭찬밖에 몰랐습니다 남편의 마음을 이해한 아내는 그 때부터 콩나물 변주를 꿈꾸었지요 그래서 콩나물을 소재로 한 온갖 요리를 계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콩나물을 소재로 하여 변주가 시작된 것입니다 변주곡은 글자 그대로 변주곡일 뿐 바탕이 바뀌지는 않습니다 콩나물을 소재로 하여 다양한 레시피Recipe를 개발해도 결국은 콩나물 요리입니다
콩나물 요리는 비록 작은 양일지라도 콩나물이란 바탕이 바뀌지 않는 한 콩나물 요리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여인의 변신은 무죄라 하던가요 어디 여인뿐이겠습니까 모든 것은 변하는 게 무죄입니다 만약 변하지 않는 게 있다면 변하지 않는 게 오히려 문제지요
때로는 헤어스타일을 바꾸고 때로는 한복을 때로는 양장을 때로는 디자인 자체를 바꾸고 스타킹을 바꾸고 모자와 신발을 바꾸고 코디Coordinate 하며 심지어는 몸에 직접 손을 대어 쌍꺼플 수술을 하고 보톡스를 하고 점을 빼더라도 유전자까지 변하지는 않습니다
변신이란 보기에만 약간 변할 뿐 원형질이 그대로 있음을 뜻합니다 원형질이 바뀌었다면 변신이 아니라 처음부터 다른 사람입니다 비록 일란성 쌍둥이라 하더라도 사람 자체가 다르다면 다른 사람이지 변신은 아니지요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본 주제가 변하지 않는 한 아무리 리듬이 변하고 멜로디가 바뀌고 화성Harmony이 바뀐다 해도 이는 변주곡입니다 아리랑이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 갖가지로 곡을 다시 쓰고 편곡Arrangement 하더라도 아리랑 변주일 뿐입니다
음악은 변주로 인해 더욱 빛을 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변주 없는 음악은 태양으로부터 받은 햇빛을 고스란히 간직할 뿐 광합성작용을 일으키지 않음과 같고 에너지로 바꾸지 않음과 같으며 과일과 곡식을 길러내지 않고 생명을 키우지 않음과 같습니다
태양빛을 받아 작용하지 않고 고스란히 간직하는 것이 꼭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흘린다면 아깝지 않습니까 부처님 말씀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 그대로 간직하는 게 꼭 나쁜 게 아니라 이토록 참된 가르침을 묵힌다는 게 얼마나 아깝습니까
활용해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을 실생활에 맞게 제대로 활용하지 않는다면 광원인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활용하지 않음과 무엇이 다릅니까
부처님의 자비가 무한대입니다 중생들이 활용하기 좋게끔 부처님께서는 금강경을 소재로 새로운 맛을 보여주십니다 앞에서 나온 소재를 이용하여 몇가지 양념만 달리하여 새로운 법미法味를 느끼게 하십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주제로 변주곡을 쓰는 것은 우리 몫이지만 부처님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에 손수 변주곡을 쓰셨습니다 중생들을 위한 사랑의 극치입니다 마치 어미새가 갓 부화한 어린 새끼들을 위해 먹이를 잡아오는 데서 그치잖고 잘게 찢어서 입에 넣어주는 것처럼 우리 서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사랑의 변주곡을 연주하고 계십니다
나는 나의 삶에 있어서 몇 번의 변주곡을 썼습니다 원곡原曲은 출가出家하기 전입니다 그리고 제1의 변주곡은 출가한 이후 해인사 시절입니다 20대 중반과 후반에 스승을 만나고 도반을 만났습니다 공부하는 데 있어서 스승과 도반은 소중한 관계지요
제2의 변주곡은 서울 종로 대각사에서부터 우리절을 창건하기 전까지의 집필의 삶이었습니다 1980년부터 1995년까지 40여권의 책을 내면서 나름대로 많은 활동을 하였지만 그 당시 낸 책들은 단지 앵무새 소리였을 뿐입니다
제3의 변주곡은 곤지암 지역에 우리절을 창건하면서 아프리카에 나가기 전까지입니다 절을 짓고 불상을 모시고 라디오 불교생방송을 진행하고 우담바라 꽃이 핌으로 인해 불자님들이 밀물처럼 밀려 들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 속에서 내 자신의 그릇을 과대평가하였습니다
제4의 변주곡은 아프리카에서의 삶이었습니다 말라리아 환자들을 구제한답시고 52개월 중 30개월 넘도록 탄자니아 전역을 뛰어다녔지만 무주상의 구제가 아닌 티相내기 바빴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제5의 변주곡은 귀국하고 난지 얼마 뒤 부터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입니다 나는 물리학에 깊은 관심을 가지면서 불교가 왜 멋있고 훌륭한가와 함께 인연의 소중함을 깨달았습니다 생각의 지평이 한없이 넓어진 지금 나는 이게 내 삶의 과정에서 얻은 최고의 깨달음이라 여깁니다
반야바라밀 여래유소설 삼천대천세계와 미진의 세계 삼십이상에 관하여 신명보시와 수지공덕 등이 정반합의 법칙을 따라 끊임없이 반복되면서 금강반야의 변주곡이 연주됩니다
어찌 보면 참 지루한 곡인데 지루하지 않게 느껴지는 것은 변주의 법칙을 따르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외부로부터 전해 오는 바깥 경계에 대해 쉽게 싫증을 느끼게 되어 있지요
귀 코 혀 피부 생각 등은 그들 각기 나름대로 반복을 즐기고 있는 편이지만 그가운데서도 특히 눈은 반복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한 번 본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기존의 기억에서 아직 접하지 않았던 그런 영상물을 보려 하고 이왕이면 아직 가보지 않은 나라 경험해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를 더 여행하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귀는 어떻습니까 기존의 익숙한 음악에 더 반가움을 느껴 흥얼대고 코도 이전에 맡았던 익숙한 냄새와 향기를 따르며 혀도 어릴 적 어머니의 손길에서 또는 사랑하는 아내에게서 길들여진 맛을 더욱 즐겨합니다
어쩌면 가르시아 효과Garcia Effect도 익숙하지 않은 음식에서 오는 반감 작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피부를 통한 접촉도 생각을 통한 의식의 세계도 익숙한 세계를 찾아 헤매지요
어쩌면 그래서일까요? 변주곡의 대가이신 우리 서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바로 이 금강경 여법수지분에서 그 진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십니다 따라서 같은 주제가 반복되지만 지루함을 느낄 겨를이 우리에게는 잘 주어지지 않습니다
자, 보십시오 우리가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우리 몸의 생리학적 패턴은 같은 주제 같은 흐름을 정말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습니다 혈액의 흐름이 그렇고 심장의 활동이 그렇고 맥박의 율동이 그렇고 체온의 높낮이가 그렇습니다
변온동물變溫動物인 파충류와 달리 사람은 동일한 체온을 유지하려는 항온동물恒溫動物입니다 그러므로 체온부터 36.5°C라는 같은 주제를 갖고 같은 리듬을 지속하려는 속성이 생리체계에 들어 있습니다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뭔가 변한다고 보지만 하루는 8만6,400초고 1시간은 3,600초며 1찰나는10의 -18승으로서 환산하면 10억×10억 분의 1초입니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 할지라도 흐름이라는 시간의 속성과 접촉이라는 공간의 속성 속에서 동일한 패턴을 유지해 나가려 함을 확연히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금강경》이 주는 동일한 주제의 흐름 속에서 크고 작은 잔잔한 리듬과 멜로디 화성법에서의 강하고 약함과 빠르고 느림과 높고 낮음 등 변주로서의 맛과 정취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으니 금강반야행자들은 행복합니다
다시 한 번 심호흡하고 아름다운《금강경》의 반복되는 선율에 마음을 맡기고 삶의 정서를 맡기고 생활 패턴을 한 번 맡겨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