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야기> 미국의 남북전쟁
2. 미국의 남북전쟁
미국의 남북전쟁은 미국이 북부와 남부로 갈려져 만 4년에 걸쳐 벌인 내전으로, 격전 끝에 결국 북부가 승리한 전쟁이며 수많은 사상자와 엄청난 재산의 피해가 발생하였다.
1860년, 대통령 선거에서 북부를 대표하는 공화당 출신 에이브라햄 링컨(Abraham Lincoln)이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후 노예해방 문제가 남북전쟁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지만 각 지역 간의 이해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그 뿐만 아니라 주정부와 연방정부의 갈등, 남-북은 물론 동-서 지역의 이익이 엇갈리는 등 수많은 갈등이 전쟁의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남북전쟁 / 흑인노예시장 / 스토우부인
<1>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
1850년, 학교 교사이던 스토우(Harriet Beecher Stowe) 부인은 흑인 노예들의 참상을 그린 ‘톰 아저씨의 오두막(Uncle Toms Cabin)’을 반 노예제 신문인 내셔널 에라(National Era)지에 연재하였다.
연재소설에서 흑인노예들의 참상이 부각되어 북부에서는 흑인노예들에 대한 동정심이 커진 반면 남부에서는 스토우 부인의 이름이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노예는 공업이 발달한 북부지방에서는 필요성이 크지 않았지만 목화재배 등 농업이 주된 산업인 남부는 노예가 꼭 필요하였던 것이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연재를 끝내고 단행본으로 나오자 미국 각 지역에서 엄청난 호응을 얻은 것은 물론, 23개 국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 미국 흑인노예들의 참상이 알려지게 되었다.
링컨 대통령이 인도적 차원에서 노예를 해방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어찌 보면 이 책이 남북전쟁의 발단이요, 북군 승리의 열쇠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전쟁이 끝나고 아브라함 링컨은 스토우 부인을 백악관에 초대하여 식사를 나누는 자리에서 스토우부인의 손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가냘픈 손으로 수많은 노예들을 해방시켜 주셨군요!”
<2> 남북전쟁(American Civil War)의 경과
전쟁은 처음 앨라배마, 플로리다, 조지아, 루이지애나, 미시시피, 사우스캐롤라이나, 텍사스 등 7개 주가 링컨이 이끄는 연방정부로부터 떨어져 나올 결의를 굳히고 1861년 2월 버지니아주 리치몬드를 본부로 하는 『미국 남부 연합』을 조직하면서 구체화 되었다.
1861년 4월, 대통령 에이브라햄 링컨은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주도 찰스턴 항구에 있는 『섬터 요새(Fort Sumter)』에 식량을 보내려 하였는데 남부 연합은 연방정부가 남부를 공격하려고 지원하는 것으로 보고 섬터 요새에 공격을 감행함으로써 전쟁이 본격화되었다.
전쟁이 시작되자 중립적 태도를 취하던 아칸소,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버지니아 등 4개 주가 남부 연합에 가담하게 되어 총 11개 주가 되었는데, 버지니아 주는 두 쪽으로 갈라져 서쪽인 웨스트버지니아는 북부편이 되는 등 혼란이 가중되었다.
섬터(Sumter) 요새 / 리(Lee)장군 / 미드(Meade)장군 / 그랜트(Grant)장군
전쟁 초기에는 경제력이 든든하고 유능한 군인인 『리(Robert Edward Lee) 장군』이 버틴 남부가 압도적으로 우세하였다. 위기에 처한 북부의 링컨대통령은 국민 총동원령을 내리는 등 맞대응을 펼쳐 크고 작은 전투가 끊임없이 벌어졌다.
<3> 전쟁의 참상
마지막 최대의 격전지가 된 『게티즈버그(Gettysburg) 전투』가 1863년 7월 1부터 7월 3일까지 펜실베니아 남부 게티즈버그에서 벌어졌는데 7월 4일에는 「리 장군」이 이끄는 남부군이 밀려서 포토맥(Potomac) 강까지 후퇴하였다. 이때 계속 공격하였으면 남부군이 전멸하고 전쟁이 끝났을지도 모르는데 북부군을 이끌던 「미드(George Gordon Meade) 장군」은 평소에 친했던 「리 장군」과의 우정을 생각하여 포토맥 강을 건너갈 수 있도록 공격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북군은 곧 총사령관이 「그랜트(Ulysses S. Grant)장군」으로 바뀐다. 그러나 후일 미드장군은 제18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이 게티즈버그 전투로 남군은 2만 5천명, 북군은 2만 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였다고 하는데 결국 1865년 4월 12일 「그랜트장군」과 「리 장군」이 만나 정식으로 남군이 항복함으로써 결국 북군의 승리로 전쟁은 끝나게 된다. 이 4년간의 전투로 북부는 총동원 200만 명 가운데 36만 명이 사망하였고, 남부는 70만 명 중에서 25만 명이 희생되었다고 한다.
전쟁이 한창이던 1863년 11월, 미국 남북전쟁의 격전지였던 펜실베니아주 게티즈버그에서 링컨 대통령이 한 연설은 약 3분 정도의 짧은 연설이었지만 지금까지 미국에서는 가장 훌륭한 연설로, 가장 완벽한 글로 기억되고 있다. 1865년 불리하던 전쟁을 북부군의 승리로 이끌어 낸 것도 이 연설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링컨의 연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치(For the People, Of the People. By the People)』는 민주주의를 가장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한다. 전쟁의 결과는 너무도 참혹하였다.
엄청난 인명과 재산의 피해 외에도 전쟁이 끝나고 이틀 후인 1865년 4월 14일 링컨 대통령은 암살된다.
남부는 전쟁으로 인하여 대부분 황폐해졌는데 링컨이 약속했던 관대한 남부 재건안도 물거품이 되었으며 남부는 거의 북부의 식민지로 떨어지게 되었다. 특히 자부심이 강한 미국 남부사람들에게는 견딜 수 없는 굴욕이었고, 사사건건 무조건 북부를 반대하는 전통은 지금까지 남아있어 북부 정당인 공화당은 무조건 반대하고 남부 정당인 민주당을 무조건 지지하는 전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