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경(借景)이란 집 밖에서 보이는 먼 산이나 수목 등 기존의 자연을 정원 조성의 배경으로 이용하는 방법을 가리킨다.
즉 집안의 정원을 조성할 때 담장을 낮게 만들어 집 밖의 풍경을 빌려 쓰는 겻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해와 달, 구름과 바람을 삶 속에 불러들일 수 있고, 먼 산의 경치를 끌어다 제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외부경관을 정원 내의 경관과 융합시키는 수법으로 차경은 동양 삼국에서 이용되었는데, 중국이나 일본보다 우리나라에서 활발하게 이용하였다.
전통 정원의 담장은 그것이 방범을 위한 것이 아니라, 안과 밖을 구분하는 선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에 대부분 낮게 만들었고, 정원 내 정자나 건물의 댓돌과 마루 위에서 담장 밖 주위 경관을 충분히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이것도 훌륭한 하나의 차경이다.
주위 경관은 정원의 터를 잡을 때부터 함께 어울리도록 미리 고려하여 그렇게 시각적으로 활용하는 것이다.
차경은 자연스럽게 한국정원에서 가장 많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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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출산방 정원 꾸미기
2년 전 전원주택을 건축하기까지 집터를 고르느라 퍽이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었다.
강진 성전면과 해남 계곡면 일대 등으로 집 터만 물색하러 다닌 기간이 족히 2년은 넘었을 것이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이러한 탐색은 나의 얕은 풍수지리관에 기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정원을 꾸미는 데 있어 차경(借景)의 방법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었다.
좋은 집터의 조건이야 보는 사람의 시각에 따라 조금씩 달라질 수는 있어도, 큰 줄거리야 대개가 같을 것이다.
아름다운 정원에 대한 일반적 관점은 많은 차이를 보이지 않을 것이다.
성전면 대월리 조태남 어르신 댁의 정원을 보면 그 아름다움 에 찬탄하지 않는 이가 없다.
정원에 가득찬 수십년 된 수목들이 기기묘묘한 형태를 뽐내는 그 정원은 누구라도 부러워하지 않는 이가 없다.
내가 처음 그 정원에 들어섰을 때의 감동을 지금도 기억하지만
"세상에나, 이렇게 정성들여 가꾼 정원은 처음이네!"
하며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감탄은 나 뿐만이 아니라 대개의 감상객들이 공통으로 느끼는 바이다.
그래서 그 집의 정원을 구경하려고 날마다 대형관광버스가 몇 대씩 줄을 이을 정도이다.
'가영 민박'이라는 간판이 붙은 그 집의 정원은 차경을 이용하지 않은 자체적으로 잘 꾸며진 정원이다.
가영 민박은 대지 1,800평에 가옥은 기와 한옥 한 채와 부속 건물이 서너채 있을 뿐 나머지는 수목으로 이루어진 정원이다.
주택의 툇마루에서는 담장 밖이 보이지 않을 만큼 수목이 가득차 있으며, 그 수목 한 그루 한그루는 주인장이 수십년 동안 기형으로 가꾸어 오셨다.
그래서 정원 안에 들어서면 각가지 기형의 수목에 눈이 팔려 담장 밖으로 시선을 돌릴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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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월출산방은 가영 민박과는 너무나 차이가 많다.
우선 대지가 850여 평으로 규모의 면에서도 비교가 되지 않는다.
더욱 중요한 차이는 월출산방에는 수목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는 점이다.
기껏해야 대지의 둘레로 울타리 삼아 심은 동백 200여주와 주목 20여 주가 나무 명색이랄 수가 있을 정도인데, 이것들도 키가 1m - 2m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정원의 수목 노릇을 하기에는 아직 턱없이 어린 편이다.
정원 가운데에는 금목서, 은목서 등 화초에 가까운 작은 키의 나무들이 몇 그루 있을 뿐이다.
이런 키 작은 어린 나무들이 정원수 노릇을 하려면 적어도 10년 이상의 세월이 흘러야 할 것이다.
이렇게 어린 나무들을 식재한 데는 경제적 여건이 많이 작용하였다.
내가 선호하는 수종인 잘 가꾸어진 정원수용 소나무의 경우 한 그루당 최소한 수십만원에서 수백 만원을 호가하므로 생각을 고쳐 먹을 수 밖에 없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나의 정원 꾸미기는 어쩔 수 없이 차경(借景)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애초의 의도이기도 하고, 다행히 우리 집 주변의 경치는 근경이나 원경이 무척 아름다운 편이다.
집터의 앞쪽은 어머니가 두팔을 벌려 아기를 품어 안으려는 듯한 형세이고, 뒷쪽인 북쪽은 월출산이 우뚝 솟아 있다.
뒤쪽의 월출산 전경은 가장 빼어나 전경으로 보는 이마다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앞뒤의 경치를 차경하여 정원으로 삼은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