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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문학교실(국군 춘천병원 편)
우 승 순
오래 전 기억이 되살아났다. 사십 여 년 전 의무병으로 국방색 청춘을 보냈다. 당시 의무병이 가장 선호했던 근무처가 국군병원이었다. 후방에 위치해 있어 외출외박이 쉽고 간호장교와 함께 복무할 수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의무병들이 가장 꺼려하는 최전방 DMZ부대에 배치 받았는데 군 생활 내내 국군병원이란 곳이 궁금했다. 올해 강원문협에서 추진하는 ‘찾아가는 문학교실’의 세 번째 행사장이 뜻밖에도 ‘국군 춘천병원’으로 결정되어 망설임 없이 자원했다. 처음 방문해보는 그곳은 4층 건물에 생각보다 규모가 컸고 군인들이 없었다면 일반 대학병원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복도와 병실에는 군무원과 환자들이 우리 일행을 다반사인양 바라보고 있었다. 객지에서 군 생활만으로도 고달플 텐데 병까지 얻어 입원한 병사들이 얼마나 우울할까 걱정했는데 의외로 밝은 표정들이었다. 병영생활도 예전과는 비교가 안될 만큼 많이 진화한 듯했다. 군복이 잘 어울리는 여군 장교의 안내에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4층 강당으로 향했다.
강당은 파란색 의자가 잘 정돈된 100여석 규모의 아담한 곳이었다. 무대중앙에 ‘찾아가는 문학교실’의 홍보현수막을 설치하였고 나머지 준비는 군인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주었다. 앳돼 보이는 그들이었지만 대부분 장교들이었다. 그들이 하는 각진 말투가 어찌나 귀엽던지 자꾸 말을 시켜보곤 했다. 행사시간에 맞추어 장교와 병사들 그리고 입원한 병사들 중 희망자에 한하여 자연스럽게 청중이 구성되었다. 무대에 불이 켜지고 마이크소리가 울리면서 잠자던 강당은 어느새 문학의 기운으로 활짝 깨어나고 있었다. 오후 2시부터 병원장의 환영인사말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사회는 강원문협 전문MC인 박종성사무국장께서 맡았고 박종숙회장의 인사말과 함께 오늘의 강사인 황연옥시인과 이응철수필가가 소개되었다. 이번 문학행사는 시와 수필에 대한 특강으로 진행됐다.
첫 시간은 황연옥시인의 ‘문학이 주는 기쁨’이란 주제로 문을 열었다. 황 시인께서는 휴대폰으로 준비해 온 배경음악을 깔고 ‘바람은 나무숲을 흔들고’라는 자작시를 멋지게 낭송하면서 시운(詩韻)을 떼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시를 접했다는 황시인은 자전적 삶을 소개하면서 장병들을 시의 바다에 풍덩 빠뜨렸다. 특히 어느 초등학교 3학년 담임을 맡았을 때 겪었던 미정이라는 아이 이야기는 감동적이었다. 등이 굽은 척추장애인이었던 어머니가 부끄러워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이 제일 싫었고, 그런 날은 집에 들어가기도 싫다는 미정이었다. 글쓰기 지도를 했던 황연옥선생님의 권우로 어느 날 미정이가 지역 백일장에서 장원을 하게 되면서 성격이 조금씩 밝아지게 되었다. 선생님께서는 “미정아 너는 이 귀한 재능을 부모님께 받은 거란다! 감사하지?” 미정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엄마가 학교에 오는 것을 더 이상 부끄러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잊지 못할 일화가 두 편 더 소개 되었는데 젊은 장병들의 가슴에 울림이 있었을 것이고 그 울림은 치유와 위안이 되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두 번째 시간은 덕전(德田) 이응철수필가의 ‘수필과 인생’이라는 특강이었다. 이분의 강의는 정말 매력적이다. 그 사유가 무량하지만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쉽고 편안한 말로 옮겨진다. 그렇다고 상투적 이론은 아니다.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도록 종횡무진 하지만 그 맥락 속에 일관되게 흐르는 단단한 알맹이가 들어있다. 촌철살인 같은 말씀은 언제나 무릎을 탁 치게 만든다. 만약, 누군가가 “수필이란 뭡니까?”라고 묻는다면 아마도 德田께서는 “당신의 까마귀는 어떻게 웁니까?”라는 화두를 던지며 선문답을 할 것이다. 행사시작 전에 병원입구에서 뵈었을 때 어떤 내용으로 강의해야 할지 두려워 밤새 잠을 설쳤다고 말씀하실 만큼 늘 청중과 독자에 대해 고민하는 진정한 문학인이다. 오늘은 젊은 장병들의 눈높이에 맞춰 특별히 아포리즘수필과 퓨전수필에 대해 열변을 토하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썩는 것은 아름답다’와 ‘약주 드시러 오세요’란 자작수필을 소개하면서 순환의 원리를 꿰뚫는 예리한 철학과 잊혀져가는 시골동네의 훈훈한 삶의 향기를 맡고 싶어 하는 서정성을 설파하기도 했다. 늘 강조하는 말씀으로 끝맺음의 여운을 남겼다. “체험의 중심에서 대상을 새롭게 보라”
첫 방문에 대한 궁금함과 ‘찾아가는 문학교실’을 잘 치러야 한다는 긴장감으로 여념 없이 국군병원에 들어섰었다. 행사를 마치고 나오니 그제야 곱게 물드는 주변의 가을풍광이 눈에 들어왔다. 돌아오는 차안에서는 방금 헤어진 젊은 장병들의 얼굴이 자꾸 눈에 밟혔고 꿈결 같던 청춘이 몹시 그리워졌다. 그들의 가슴에도 문학의 열정이 곱게 물들기를 바라면서 시내로 들어왔다. 후평동 은하수거리도 어느새 노랗게 물들고 있었다. (2019.10.23.) |
德田 이응철수필가님의 열강
황연옥시인의 자작시 낭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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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하셨네요. 逸石님-.한두명으론 턱도 없는 이동식문학교실 좋은 제안입니다.
찾아가는 문학교실을 빛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찾아가는 문학교실 행사 중 '국군병원'이라는 이색적인 장소에서 젊은 장병들과 함께한
미롭게 강의하신 이응철 강원수필문학회장님께 찬사를 보냅니다




풋풋한 추억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내과의사인 병원장과 간호부장, 진료부장, 군수과장,
중대장, 인사장교, 주임원사를 비롯한 간부급들이 대거 참석하여 성황을 이룬 행사였습니다.
아침 일찍 고성에서 서둘러 오신 황연옥 선생님의 열정에 감사드리고
활기 넘치는 음성으로 수필을 쉽고
아울러, 김해숙, 우승순, 김인숙 차장님의 노고에 고마운 마음을 보냅니다
네ㅡ저또한 생소해 걱정이었는데 막상하니새롭고좋더라고요 그중단한명이라도글을쓸때상기하면목적달성이지요수고많으셨어요ㆍ회장단여러분들ㅡㅎ
우승순 차장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회장님, 사무국장님, 세분 차장님, 행사준비하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