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슬부슬 봄비가 내렸다.이 굳은 날씨에 산행길을 떠나려고 하니 전날 마신 과음탓인지 심신이 지쳐, 몸이 천근만근 무거워 걱정이 앞선다.
산행을 즐기는 사람이 우중산행 (雨中山行)이면 어떻고 눈보라면 어떻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지마는,그래도 걱정과 염려가 되는 것은 산행중 휴식과 식사, 그리고 안전,건강이 앞서기 때문이다.
흔히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듯이 비록,산행중 비를 만나면 쏟아지는 빗속을 무심히 걸어 보는것도 낭만과 운치,그리고 나름 멋이 있을 수도 있을것이다.
그래서일까 가끔은 나도 모르게 우중산행을 마다하지 않고 산행을 자처하기도 한다.그런 오늘은 봄의 향기가 그윽한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꾸어,광양 백운산 ( 해발 1,217.8m 전남 제 2봉 )자락에 있는 쫒비산 ( 해발 536.5m )으로 걸음을 옮길까 한다.
흔히 광양하면 섬진강과 재첩이 떠오르고 이맘때쯤이면 광양매화와 벚굴(강굴)이 유명세를 타기도 한 시기이기도 하다.
오전 9시20여분..
남원에서 출발한 우리 일행은 구례를 거쳐 섬진강의 호젖한 물줄기를 바라보며 굽이굽이 돌아 하동 화개장터를 지나온다.가다 보니 문득 섬진강 시인인 김용택님이 떠오른다.
천혜의 자연환경속에서 자연을 벗삼아 노래하듯 시를 읇조린 그의 시상과,삶의애환,희노애락이 베어있는 이곳이 그져 정겹고 정감스럽기까지 한다.집에가면 꼭 김용택님의 시집을 꺼내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는 시점이다.
오전 10시30여분..광양매화마을에 도착을 하니 화창하게 개인 날씨덕분에 출발할때의 걱정은 기우에 지났다.때마침 가는날이 장날이라고 했던가,마침 이곳은 매화축제가 시작을 한탓에 백운산으로 향하는 도로와 주차장은 많은 사람들과 끊임없이 이어지는 차량들로 가다서다 반복속에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간간이 섬진강사이로 불어오는 남녘의 봄바람은 행사때문에 시끌벅적한 소음을 뒤로 한 채, 매화꽃을 피우기 위한 달콤한 향기와도 같은 여유로움이 두 눈을 사로 잡는다.
목월정..
이곳에서 바라보는 섬진강의 물줄기를 벗삼아 술이라도 한 잔 기울인다면 삶에서 우러나오는 근심걱정은 잠시 접어두어도 좋을듯 하다.
홍매, 백매..그 매화꽃을 찾아 나선 나들이객들이 아직 채 피지 못한 봄꽃들에게서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강변을 걷고있다.
강변을 걷다보니 막 피어오른 백매화에 섬진강 수변을 카메라에 담아봤다.
빼곡히 들어선 차량들로 주차장은 벌써부터 만원이다.
드넓게 펼쳐진 섬진강의 하류.이곳에서 흘러간 물줄기는 광양을 지나 바다물과 만나는 지점으로 향해 갈것이다.
저 멀리 시야에 들어오는 마을이 있어 카메라를 당겨봤다. 언듯봐도 풍수지리적으로 背山臨水(배산임수)즉,산과 물을 끼고 있어 마을이 아늑해 보인다.
활짝 핀 홍매화의 아름다움에 잠시 눈을 돌린다.고고한 듯 자태를 뽐내는 홍매화에 사람들이 사진을 담느라 연신 바쁘다.
주차장이 모자라 섬진강변에 주차된 차량들..차량들로 붐비는 탓에 차에서 내려 30여분을 걸어왔다.
홍매(紅梅)가 피니 백매(白梅)가 그냥 있을 수냐..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한 백매가 화사한 봄하늘을 장식해준다.
문득 갑자기 야생 검독수리 (천연기념물 제 243호)가 나타나 강 한가운데 모습을 들어냈다.이런곳에서 야생 검독수리를 본다는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텐데 세마리가 한꺼번에 나타나 주위의 시선을 사로 잡는다.
굽이굽이 흘러 돌아온 물줄기는 히말리야시다를 사이에 두고 그림 한 컷으로 그 맑음을 전한다.
30여분을 걸어와서 이제 막 산행의 초입(初入)에 들어선다.관동마을을 통해 약 6.5km를 올라가야 오늘의 목적지( 쫒비산 )에 다다를 수가 있다
게밭골까진 계속 이어진 경사길이다.산 아래서 여기까지 쉼없이 오르다보면 턱까지 숨이차는 짜릿한 묘미를 느낄 수가 있다.
이 쫒비산은 산행을 하다보니 전형적인 륙산(陸山)의 형태를 지닌 산이다.흙을 밟는 촉감이 부드럽고 산행하기 알맞도록 등산로가 잘 정비 되어있다.
청매실 농원으로 내려가는 길목..산행시간이 늦은 바람에 서둘러 하산을 해야만 했다.
벌써 오후로 접어들었다.산 그림자가 어둑해져온다. 이제 오늘의 산행을 서서히 마무리 해야만 할것 같다.한 눈에 들어오는 섬진강의 변함없는 모습들은 두 눈에서 사라지겠지만 가슴속에선 그때의 경관은 두고두고 남을 것이다.
하산을 할쯤 산기슭에 자리잡은 음식점들이 몇군데가 있다.산행객들의 지친 입맛을 잡기위해 이곳에서 음식을 팔고,집에서 담그고 만든 각종 농산물을 팔기도 한다.
일행중 몇분은 묘목을 사기도 하지만 주문한 음식이 나오는것을 보면,약간의 실망스러움은 감출 수가 없다.한철 장사라고 하지만 비교적 비싼 가격과 소월한 손님접대는 옥에 티처럼 기억에 남는다.
이곳은 어딜보나 눈을 돌려봐도 온통 매화나무가 즐비하다.아직 채 피지못한 매화나무가 지금은 멋은 없지만 약 일주일 뒤면 야산을 덮을 매화꽃들로 인산인해를 이룰지도 모를일이다.
축제를 빗나간 기후지만 그래도 홍매화가 피어 있어 오고가며 산행객들과 나들이객들이 간간이 눈길을 사로 잡는다.
남도는 어딜가나 문학과 예술,시,서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가는곳 보는곳이 한 편의 시가 될 수 있는 배경이 다른지역보다 확연히 다를 수가 있기에 남도의 사람들은 저마다 예술적인 끼가 베어있는지도 모른다.
이곳에서 하동쪽으로 조금만 올라가면 박경리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이있어 우리문학의 큰 획을 그은 선생의 발자취를 엿볼 수가 있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이곳이 매화마을의 시초가 된 배경을 말해주고 있다.
우리에게는 익히 알려진 홍쌍리명인 ..한 개인의 피땀어린 정성과 열정이 만들어 낸 매화농원을 보노라면 그에게서 매화꽃보다 더 아름다운 소박한 삶을 살아온 그에게 존망의 정신을 가다듬게 해준다.
매년 이맘때쯤에나 맛볼 수 있는 벚굴.일명 강굴이라고도 하고 왕벚굴이라고 부리워진다. 자생지가 섬진강하류쪽 민물과 바닷물이 교차되는 곳에서 강바닥에서 서식을 한다고 하는데 잠수부들이 물속에 들어가서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걷어 올려진다고 하니그들의 노고와 수고가 아니면 구경하기가 힘들지도 모를 일이다.
크기는 일반 굴의 비해 5배이상은 크고 맛은 좀더 부드러움맛을 지닌듯하다.예까지 왔으니 이걸 안먹으면 후회가 될것 같아 맛 만 보는데 만족을 해야만 했다.
산행을 마칠쯤 이곳에 차려진 음식점들이 몇군데 있다.한철 장사도 좋지만 행여 여기서 버려지는 물들이 오염되지 않는 산과 강을 지켜 나갈 수 있게끔 해당 관계기관에서는 각별히 신경을 써주어야 할것같다.
수 백개가 넘는 매실이 담긴 항아리를 보면 또 한 번 놀라지 않을 수 없다.이 많은 것들을 준비하고 만드는데 사람들의 노력이 얼마나 더해졌을런지..그 노고와 노력에 찬사를 보내고 쉽다.
이 좋은 그림을 그냥 두고 갈 수는 없어 일행중 몇 분을 모셔 사진을 담아주었다.위에서 내려다보는 항아리 갯수들이 얼마나 되는지 가늠하기 힘들정도다.
그렇다 이런곳에 김용택시인님의 시 하나쯤은 꼭 있어야 운치있고 멋이 있는 것이다.조용히 시 한 편 감상 해보시리라.
오다보니 할미꽃이 화분에서 나풀거린다.주변을 둘러보니 상가에 각종 먹거리들이 넘쳐나고 봄철이라고 어린묘목들도 즐비하게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오가는 산행객과 나들이객들로 여기저기 상가에서는 시끌벅쩍 웃음소리도 피어오르고,삼삼오오 모여서 행복한 담소를 나누는이도 있다.가족과 함께 연인과 함께 연신 웃음꽃이 피어오르고 봄바람에 불어오는 봄의 향기는 어느덧 그들의 가슴속에서 그렇게 봄맞이를 해주고 있었을것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이제 오늘의 산행을 마칠까 한다.산행을 준비해서 이곳까지 찾아왔지만 생각지도 못한 매화축제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봄햇살 봄바람에 시간 가는줄 모르고 즐거운 하루를 보냈다.
이렇듯 봄은 우리들 가슴속에 서서히 스며들 듯 자리를 잡아 가는 것인가 보다.이제 막 촉촉히 물먹은 대지를 껴안은 봄바람이 한고비 한고비 고개를 넘어서 오면 문득,잊고 살았던 봄꽃들에게서 엄동설한에 상처입고 헐벗은 가지들마다 꽃몽올이 돋아오르게 되면 자연은 또 그렇게 스스로 아픔을 치유하면서 찬란한 봄꽃을 피워 낼 것이다.
그래서 봄은 생기가 넘쳐나고 만물의 소생이라고 흔히 말하여 주는것인가 보다.이제 그 봄꽃이 활짝 피어나는 내일을 기약하며
다음산행인 섬 산행을 그렇게 준비 해야겠다.
2012.3.13
산 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