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에서 보는 초록빛 물결은 생소한 만큼이나 신선한 감흥으로 다가온다.
꽃보다 고운 사람 그리고 잔잔한 바람에 일렁이는 초록물결은 너무도 아름답다.
초록빛은 우리에게 있어서 편안함을 주는 것도 맞지만,
희망을 상징하는 것 같기도 하다.
엄정리 마을회관 앞, 보리밭은 초록빛물결 해후처럼
온통 푸르른 마을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정겹다.
회장에서 이장으로 진급(?)한 이기훈 회장(56)의 삶을 만나본다.


■ 엄정리의 유년기
진산면 엄정리 1구 이기훈(56) 회장의 마을 어귀에는 오랜 세월 살아온 흔적의 묵묵한 느티나무가 우뚝하니
마을을 지켜주고 있다. 어슷한 언덕길에 보이는 들판 길 사이, 흙으로 빚은 예쁜 집, 앞뜰에는 오십년 넘게 살고 있는
소나무향이 듬뿍 안겨있는 멋스런 흙집이다. 얕은 뒷산 기슭야산에다 풀어놓고 키우는 닭들이 옹기종기 모여 놀고 있었다.
이기훈 회장의 모습은 다소 시골과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인상으로 그의 삶이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1958년 가난한 형편의 어린 시절,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어렵지만 다복한 가정에서의 형제 애 속에 자랐다. 그는
언제나 밝고 명랑하여 동네에서 선후배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어릴 적 산으로 들판으로 뛰어다니며 놀았던 그때, 짓궂은 우리들의 놀이는 칼싸움에 총싸움, 그리고 계곡에서
수영하고 가재도 잡으며 오돌개까지 따먹고 나면 입가에 까맣게 묻은 얼굴로 깔깔거린다. 여름 방학 때면 온종일
산속에서 살다시피 했던 철없는 유년시절을 친구들과의 추억만 가득 안은 채 만악 초등학교와 진산 중학교를 졸업하였다.
가난한 집에서의 시골생활은 그에게 마냥 원하는 교육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직감을 하게 되면서 집안의
형편을 눈치챈다. 고등학교를 진학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취업전선에 나선다. 읍에서의 생활은 그의 인생에 있어
마음의 시련을 안겨주며 고난과 역경의 시작이 되었다.
■ 청소년기의 위기
사춘기가 시작되면서 반항심이 가슴속 깊이 꾸물대고 결국 방황의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그렇게 방황을 통한
시간 속에서 중학교를 함께 다녔던 동기들은 폼나는 고등학교 뺏지를 달고 학교에 다니는 모습을 볼 때마다
격분의 경쟁 심리와 울먹이는 자아를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날이 많아졌다. 우선 배고픔을 채우기 위해 먹는장사를 하기로 한다. 그러다 우연히 빵장사를 하면 어떨까 고민하던 중
친구 몇 명과 용기를 내어 계획하고 시작하였다.
어렵게 만든 돈으로 터미널 부근에 “거북당”이라는 간판을 걸고 18살 나이에 처음으로 장사를 하였다.
제법 잘 되기 시작했다. 바쁘게 일하고 있으면서도 그는 “친구들은 지금 공부할 시간이지만 나는 돈을 벌어야 한다”라는
굳은 결심으로 정말 열심히 해냈다. 그렇게 간간히 공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틈틈이 많은 책을 보면서
지식과 교양을 쌓기도 했다. 그렇게, 제과점 일에 치중하여 돈을 벌면서도 꿈과 희망을 잃지 않았다. 좀 더 큰 세상에
뛰어들면 또 다른 일거리가 있을 거라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드디어 3년 만에 ‘거북당’ 제과점을 정리하였고, 서울에 있는 인맥을 통하여 서울 상경을 하게 되었다. 언제나 그렇듯,
자만심이 문제이다. 잘못 선택한 인생의 길은 조직 폭력 속에 빠져들면서 그에게는 걷지 말아야 할 부분의 경험도 갖게 된다.
■ ‘광주신문’ 취재기자 생활, 그리고 결혼
서울에서 많은 일들을 겪은 시간 속에서는 배운 것도 있고 후회한 것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좋고 나쁜 경험이 내가 살아가는데 ‘토대’가 되었다”며 그 이후의 생활은 인척의
도움으로 광주에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뜻하지 않은 행운이라고 할까. 틈틈이 많은 책을 보면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었지만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서울생활 속에 시간이 나는대로 글을 쓰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그래도 배우고 싶은 공부는 늘 가슴에 맺혀 있었다. 그러던 중 신문사에서 취재 기자를 뽑는 기사를 보면서 한번쯤
도전해 보고 싶다는 고민에 빠졌다. 큰 용기를 갖고 어렵게 응시를 했으며 며칠 동안 가슴 떨리게 기다리던 중,
드디어 합격의 통지가 날아왔다. 처음으로 대학에 합격한 것처럼 너무나 기뻤고 열심히 일하고 싶었다. 기자의 역할은
교육을 받고 수습기자 생활부터 쌓아 올라가면서 적성에 맞는 걸 느꼈다.
성실하게 사는 동안 지금의 아내(김미영, 54)를 만나 오랜 교재와 뜨거운 사랑을 통해 1986년 결혼을 하였다.
바닷가 근처에 신혼집을 마련하여 아내의 내조에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7년 동안을 취재기자 생활과
결혼을 통하여 또 다른 직업 전환의 기회를 만나게 됐다.

■ 지리산 관광호텔 사장
광주에서의 생활은 또 다른 사업으로 갈 수 있는 기회가 많았다.
이제는 심사숙고(深思熟考)를 해 나가는 버릇이 생겼고, 사업에 열중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천고만고(千古萬古)
끝에 지리산에 관광호텔을 경영하는 행운이 찾아왔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남긴 말 중 성실하게 자존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에게 행운도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즉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라는 뜻으로 험난한 세상을 겪어
나오면서도 타향에서의 어려움이란 이루 말할 수 없는 설움을 이겨내며 살아온 결과인 듯하였다. 사회에서의 꾸준한
삶은 남이 알아주든 아니든 그에 인생은 귀하고 소중한 것, 그렇게 말없이 남편을 내조해 주던 아내에게는 때때로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미안하고 고맙기만 하다고 했다.
그렇게 살면서 큰아들(이우연, 28), 작은아들(이종천, 26)이 생겼다.
지리산 관광호텔을 9년 6개월 동안 운영하였고, 대전에서의 나이트클럽을 함께 운영하면서 시련의 ‘IMF’를 만나게 된다.
결국 IMF의 고비를 넘기지 못한 채 정리에 들어가고 고향으로 내려오게 된다.
■ 그리운 고향은 언제나 따스한 어머니의 품
이기훈 회장은 많은 사업을 하면서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게 됐다.
음지양지(陰地陽地)를 오가며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뚝이 인생의 파란만장(波瀾萬丈)은 강하게 다져진 것 같다.
그렇게 고향에서 잠시 몸과 마음을 쉬게 되면서 그는 시대의 유행인 오락실을 운영하게 된다.
금산에서 많은 사람이 알 수 있는 ‘파라다이스 오락실’이라는 간판을 걸고 제법 큰 규모로 시작하였을 때 도시와 달리
군단위의 사업성으로는 그렇게 크게 각광을 받지는 못했다. 그렇게 시작한 오락실은 전국적인 ‘바다 이야기’ 사건으로
1년 만에 문을 닫았다.
그 후, 이 회장은 금산읍에서 살면서 또 한 번의 사업의 기회가 찾아왔다.
충남 보령에서의 석재 사업을 인수받아 주)삼덕 석재 산업개발 회사에 대표로 있으며 지금도 꾸준히 사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이기훈 회장은 어릴 때 뛰놀던 곳으로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고향 엄정리를 생각한다. 마음이 울적할 때나
친구가 그리울 때 누구라도 마음에 고향을 찾기 마련인 것처럼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삶의 밑거름이 되어 격려해주고
일으켜 주었던 엄정리 마을은 타지생활을 하면서 고달플 때 동심(童心)으로 돌아간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힘을 얻었던
‘어머니의 품’ 엄정리라고 한다. 그래서 부인의 만류에도 낳고 자란 이곳 엄정리에다 집을 짓고 살게 되었다. 예전과
달리 젊은 사람들보다 노인층이 많아 특히 해야 할 일이 많다며 동네 발전을 위해서 경선을 거친 마을의 이장까지 맡게 된
이 회장은 이장으로서의 감회가 새롭고 그 어떤 명예보다 특별하다.
■ 대한 권투연맹 금산군 협회장
2000년 시절, 호텔 사업할 때부터 홍수환 선수를 알고 꾸준한 인연을 유지하며 서로에게 많은 도움을
나누게 되면서 금산군의 복싱연맹 회장을 권유받았다. 평소 복싱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던 중 금산에서
청소년들을 육성하는데 있어 꿈과 희망을 펼칠 수 있도록 봉사하는 마음으로 제3대 회장을 맡게 되어 취임하였다.
임기 4년 동안 학생들에게 대학의 방향 제시와 프로선수로 뛸 수 있는 여건을 잘 만들어 지도하는데 역점을 두겠다고 한다.
앞으로 남은 인생은 고향을 위해 살고 싶다고 말하는 모습에서 진정 애향심을 느낄 수가 있었고 다시 돌아오는
‘연어의 아름다운 이야기’처럼 이기훈 회장은 따스하고 부드러운 엄정리 보금자리에서 살아갈 것이다.
장인순 박사의 글귀가 생각난다. 60이 가까워질 때는 인생을 정리할 때가 아니라 ‘이제부터가 살아가는 것이라고...
’ 이기훈 회장의 삶이 더욱 윤택한 인생길이 될 것이라 믿고 싶다.
촬영/글_박희숙 기자
첫댓글 항상 행복하고 즐거운일들만 가득하길 바라겠습니다.
엄정리 이장님으로 오늘도 체육대회에서 활발하게 다니더군요
언제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