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차, 2004년식 베르나
내가 주인님을 처음 만난 것은 2004년 봄이었습니다. 공장에서 트레일러로 운반된 나를 광화문지점의 딜러가 인수한 후 나를 주인님이 있는 서울지방국세청 건물로 데리고 갔죠. 주인님은 나를 보자 환한 미소를 지어 주었습니다. 내가 주인님에게 매료된 것은 그 환한 미소 때문이었죠. 주인님은 웃을 때 눈이 반달처럼 변했습니다. 그 후 주인님이 나의 속을 썩일 때도 나는 주인님의 반달미소를 생각하며 화를 참곤 했습니다.
“신형이라 트렁크 부분이 곡선으로 마감이 잘되었네요. 그 전 모델은 각이 져서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그렇지요. 이번 모델은 새로운 디자인을 채택한 첫 모델이라 신선하실 거 에요. 차번호 3991도 특별히 신경 써서 뽑은 것입니다. 안 좋은 숫자가 없게.”
카딜러의 말에 다소 과장이 있었겠지만 주인님은 순수하게 받아들이시고는 다시 한 번 저를 쳐다보았죠. 그리고 내 뒤태를 감상하며 쓰다듬는 데 저는 가슴이 쿵쾅거리더라고요. 아마 그 때 저는 처음으로 주인님을 사랑하는 나의 맘을 알게 되었던 것 같아요.
나의 이런 기분을 아는지 모르는지 주인님은 바로 저를 몰고 애인을 만나러 가시더군요. 쌍문동에 있는 H아파트로 차를 운전해서 가며 주인님은 여친과 저의 블루투스이어폰을 이용하여 계속 통화를 하였기에 저는 부득이하게 주인님과 여자친구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습니다.
“오빠, 이번에는 조심해서 운전해. 저번처럼 운전 험하게 해서 사고내지 말고. 우리 결혼하고도 계속 써야하니까. 알았지?”
“알았어. 조심해서 운전할게. 다 왔으니 5분 정도 있다가 아파트 공원으로 나와.”
공원 앞에 저를 주차하고 주인님은 여친이 나오자 여친에게 저를 소개하더군요.
“2004년 신형인데. 어때?”주인님의 자랑스러워하는 말투에 저는 어깨가 으쓱해졌답니다.
“금색이라 고급스럽고 디자인도 세련된 것 같아. 폐차한 프라이드하고는 차원이 다른데.”
주인님은 그날 이후 줄기차게 종로의 서울지방국세청에서 쌍문동까지 매일 출퇴근을 하더니 여름이 가기 전에 여자친구와 결혼식을 올리더군요. 이어진 호주로의 신혼여행 이후 주인님은 저와 함께 부인을 데리고 전국 곳곳으로 여행을 다니셨습니다. 덕분에 저도 대한민국 곳곳 관광을 하게 되죠. 천안의 누나집도 자주 갔는데 그 곳에는 주인님의 어머니가 암으로 투병 중이셨죠.
결혼 이후 주인님의 어머니는 빠른 출산을 주인님과 부인에게 권유하시더군요. 본인의 인생이 얼마 안 남았다고 판단하시고 마지막에 손자, 손녀라도 보고 싶어 하시는 어머니를 위하여 주인님과 부인은 빠른 임신과 출산을 하시더군요. 저도 부지런히 안전하게 부인을 모시고 집 근처 산부인과를 들락거리게 되었습니다.
연서가 태어나고 처음 보던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하겠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예쁜 아이는 처음 본 것 같아요. 입원을 마치고 산부인과를 나와서 산후조리를 위하여 주인님의 처가에 가기 위하여 저는 연서를 처음 태우게 되었지요. 눈도 제대로 못 뜨고 포대기에 쌓여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는 연서를 보고 나는 주인님에 대한 나의 사랑이 연서로 옮겨 가버린 느낌이 들 정도로 첫눈에 반해버렸답니다.
연서가 태어나고 주인님의 어머니는 안전한 운전을 위해 스님을 주인님의 집에 보내 연서의 무사한 출생을 축하하고 저에게도 고사를 지내 안전운전을 기원하셨죠. 주인님의 장모님도 이에 질세라 떡을 맞추어 저에게 고사를 지내는 데 저는 덕분에 몇날 며칠 주차장에서 호의호식하며 지낼 수 있었답니다.
연서가 태어나고 얼마 안 있어 연서 할머니가 오랜 투병 끝에 천안의 대학병원에서 돌아가셨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연서를 외할머니에게 맡기고 부인과 함께 저를 몰고 천안으로 내려가던 주인님의 눈에는 끊임없이 눈물이 흘러내렸죠. 조용히 손을 잡아주던 부인의 손길에 주인님은 애써 눈물을 참으며 안전하게 운전을 하여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고향선산에 어머니를 묻고 바라보는 선산의 노을은 핏빛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49제를 지내고 천도제를 하고 천변에서 어머니의 유품을 모두 태우던 날의 노을빛도 새빨갛게 타오르더군요.
어머니를 여읜 겨울의 차가움도 계절의 변화는 막을 수 없었습니다. 봄이 오고 꽃이 피고 산 자들에게는 또 희망이 생기더군요. 연서가 돌을 지나 걸음마를 하고 집근처를 산책하는 시간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렇게 저와 주인님의 가족은 행복한 동행을 계속 하였습니다.
주인님은 그 사이 승진도 하고 직장에서 자리를 잡아갔습니다. 연서어머니도 연서가 유치원에 들어가자 다시 직장을 잡고 맞벌이를 하게 되었지요. 주말이면 연서와 함께 서울근교와 테마파크를 유람했으며 여름에는 워터파크와 해수욕장, 겨울에는 눈썰매장과 스키장 등 저는 부지런히 가족을 실어 나르고 가족들은 추억을 눈사람처럼 키워가더군요. 행복한 나날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놀이공원의 롤러코스터 같더군요. 행복한 날이 있으면 불행은 또 어김없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왔습니다. 연서 할머니가 돌아가셨던 것처럼 12월의 추운 겨울 무렵이었지요. 연서의 외할머니가 갑작스러운 심근경색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시고 오래지 않아 사망하셨습니다. 장모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던 셋째 딸이었던 연서어머니는 심한 충격을 받으시더군요. 양주의 수목장지에서 장례를 치른 이후 연서어머니는 많이 우울해하시고 힘들어하셨습니다. 그 때문에 가족들도 침울해하고 점점 말을 잃어갔죠.
한밤중에 잠들지 못하고 울먹이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던 주인님도 점점 힘들어하던 즈음 주인님은 용기를 내어 가족여행을 떠나셨죠. 전국의 사찰을 돌며 108배를 하며 이승을 떠난 영혼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가족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주더군요. 그런 시간들이 지나가고 딸인 연서를 바라보며 부부는 힘을 냈습니다. 어머니를 잃고 진정한 어머니가 되어가는 연서어머니의 모습에 저도 많은 감명을 받게 되더군요. 이제는 양주의 수목장지에 가서 잘 자라준 소나무에 장모님이 좋아하는 따뜻한 믹스커피 한잔을 뿌려주고 돌아오는 길이 주기적인 행사가 되었답니다. 오는 길에 주인님 가족은 진흥관이라는 중국집에 들러 짜장면과 탕수육으로 외식을 즐기더군요. 연서는 이집의 탕수육이 최고라며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내가 처음 반한 주인님의 그 반달미소를.
연서를 태우고 주말여행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여보 우리 이제 차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아직 튼튼한데 우리 연서 운전연수까지 시키고 생각해봐요”
연서어머니의 이 말을 듣고 저는 주인님 가족을 위하여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주인님 가족과의 행복한 동행은 그 후에도 계속 되었지요. 여름휴가에는 밤을 세서 부산의 해운대에도 가고 동해안으로 가는 일도 많았습니다. 당일치기로 간 대부도나 제부도, 강화도 서해안 일대는 주인님 가족의 단골 여행지였죠. 연서에게는 갯벌체험도 되고 붉은 석양을 바라보며 먹는 조개구이의 맛도 일품이었습니다. 통영과 여수여행도 기억에 남네요. 오고가며 천 킬로에 가까운 거리를 가느라 몸은 힘들었지만 가족들과 추억여행이 쌓일수록 피로감은 여행의 만족감 속에서 사라져 갔습니다.
하지만 연서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주말여행의 횟수는 점점 줄어들더군요. 연서가 학원에 다니고 수능에 대비하기 위하여 주말에도 스터디를 하면서 바빠지고 주인님과 연서어머니도 직장에서 지위가 높아지면서 점점 일이 많아지더군요. 그래서 저는 점점 지하주차장에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여행을 하면 힘들더라도 시간이 잘 갔는데 혼자 있다 보니 시간이 잘 가지 않더군요. 그리고 여기저기 아픈 데가 생겼습니다. 바퀴도 오래 되서 몇 번을 교환하고 방전이 되는 바람에 밧데리도 수차례 재 설치했지요. 그리고 제 심장이 요즘 좀 이상하답니다. 사람의 심장, 아니 저는 사람이 아니라 엔진이라고 해야겠네요. 저번에 진도에 다녀올 때 엔진이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오랜만의 장기여행이라 그런가보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요즘은 주차장에 혼자 있을 때도 엔진이 힘이 없고 뛰는 소리도 규칙적이지 않은 게 부정맥이 온 것 같아요.
며칠 전 주인님과 연서어머니가 H차판매소에 들르시더군요. 신형 SUV차량을 시승해보시더니 저를 보고 말씀하셨지요.
“여보, 그럼 베르나는 중고로 팔 거야. 아님 폐차시킬 거야.”
“나도 잘 모르겠어. 중고로 팔아봤자 많은 돈은 받지 못할 것 같아.”
저는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덜컥 했죠. 이제 주인님이 나를 다른 사람한테 팔아버리시려 하는구나. 그 동안 내 몸 상하는 것도 모르고 죽도록 충성해서 몸이 아픈데 치료는 못해줄망정 이렇게 생면부지의 남에게 팔아 버리려 하다니 하며 원망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나 차나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 법 나는 좋은 주인 만나 세상구경 잘했으니 무슨 원망이랴 하는 자기 위안도 하게 되더군요.
“아빠, 베르나 앞으로 1년만 더 타면 안돼? 내년에 운전면허 딸 수 있는 나이가 되는 데 예전에 엄마가 새차보다는 베르나가 운전연수하기 좋을 것 같다고 했잖아. 내가 태어나고 여태까지 탄 가족과 같은 차인데. 중고로 팔지 말고 우리 손으로 폐차시키자. 응.”
연서의 말을 듣고 내 눈에서 감사의 눈물이 흐르더군요. 연서가 연서어머니의 그 말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이제 정말 가족으로 인정받은 느낌에 나는 비상등을 깜박이며 눈물을 멈추고 주인님 가족을 바라보고 환하게 웃었답니다.
하지만 내가 연서 운전연수까지 시켜줄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지금도 자꾸 가슴이 조여 오고 눈이 감기려고 하네요. 이러면 안 되지. 연서가 멋지게 운전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