탱고의 황제 카를로스 가르델이 1917년에 '슬픈 나의 밤(Mi noche triste)'을 노래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발전하기 시작한 '탱고 칸시온'은 탱고 곡에 가사를 붙여 노래로 만든 것이다.
1900 년에 태어나 탱고의 역사와 더불어 한 세기를 살아낸 엔리케 카디카모는 평생 3백곡이 넘는 탱고 칸시온의 가사를 썼다. 그중 카를로스 가르델이 음반으로 취입한 노래만 해도 스물세 곡이다.
24 년에 첫 히트곡을 기록한 카디카모는 35년 후안 카를로스 코비안이 작곡한 탱고곡에 가사를 붙여 '그리움(Nostalgias)'을 탄생시켰다. 그런데 카디카모가 이 곡을 유명 악보 출판 업자이자 음반 제작자인 발레리니에게 들고 갔을 때 발레리니는 "곡이 너무 어려워 대중성이 없다"면서 음반 제작을 거절했다. 그래서 카디카모는 무명의 신진 제작자를 찾았고, 그와 함께 만든 이 음반은 탱고 역사상 최고의 히트를 기록해서 발레리니로 하여금 두고두고 땅을 치게 만들었다.
이 무렵의 탱고 칸시온은 대체로 주제가 비슷했는데, 그 주제는 떠나버린 사랑에 대한 회한이다. '슬픈 나의 밤'이나 '그리움'이나 모두 실연당한 남자가 떠난 여자를 그리워하며 그 고통을 못이겨 술로 세월을 보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탱고의 고전으로 유명한 '라 쿰파르시타('가장행렬'이라는 뜻)'에 붙은 가사도 버림받은 남자의 처절한 외로움과 고통을 노래한다. 필리베르토의 '길(Caminito)', 가르델의 '귀향(Volver)' 같은 유명한 노래들도 실연의 고통을 노래하긴 마찬가지다. 그래도 이 노래의 주인공들은 오래 전의 사랑을 어제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며 과거의 연인과의 새로운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인생은 바람결같은 한순간에 지나지 않으며, 내가 간절하게 그대를 그리워하며 그대의 이름을 불러온 지난 20년은 세월이랄 수도 없다').
그래서 '귀향'은 솔라나스의 영화 '가르델의 망명'에도 인상적으로 쓰였다. 정치적인 이유로 프랑스에서 망명생활을 했던 아르헨티나인들에게는 노래 속의 '연인'이 '조국' 또는 '고향'을 뜻하는 여성명사 '파트리아(patria)'와 동일시됐던 것이다. 그런데 아르헨티나에서는 언제나 남자만 버림받는 것일까? 물론 그럴리는 없다. 남미 라틴족의 전통적인 남성우월주의가 버림받은 남자의 고통을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것'으로 강렬하게 묘사하고 있는 것 뿐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 최고의 시인으로 칭송받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끝없이 실연을 그려내는 이런 노래들 속의 나약한 남성상을 거부하면서, 음담패설과 도박과 칼싸움과 말타기에 능하고 확신과 자부심에 가득찬 전형적인 '아르헨티나 스타일'의 마초를 내세워 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탱고 가사들을 썼다.
65 년 아스토르 피아졸라가 곡을 붙인 '니카노르 파레데스를 위해'는 세상을 떠난 이런 류의 실존인물 파레데스에게 헌정한 보르헤스의 '탱고시'였다.
아르헨티나의 비교적 젊은 탱고 음악가들은 과거의 전통을 되살리려 하면서도 이런 남성우월주의적인 탱고의 본질을 바꾸려는 시도를 보여 준다. 여성 탱고 가수 파트리시아 바로네와 탱고 작곡가 하비에르 곤살레스로 대표되는 이들은 정치적 혹은 페미니즘적인 테마를 서슴없이 탱고 칸시온의 소재로 삼는다.
이들이 만든 노래 '폼페이아, 잊지 말아요'는 아르헨티나 군부독재 치하에서 체포된 수많은 임신한 여성들의 비극을 담고 있다. 잡혀가서 낳은 아기들은 즉각 어머니에게서 떨어져 어디론가 입양됐고, 그 어머니들은 가혹하게 죽임을 당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우리 역사의 일부입니다. 우리가 만든 노래가 예술적으로 얼마나 가치가 있느냐보다는 오늘날의 세대가 공유하고 공감하는 노래를 만드는 게 중요하겠죠. 그래야 탱고가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까요"라고 파트리시아와 하비에르는 힘있게 말한다. 그들은 탱고 칸시온의 미래를 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