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발생 경위
○ 북한해군은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에서 완패한 이후 3년 동안 치밀하게 준비하여 전 세계인이 월드컵 열풍에 휩싸여 있던 2002년 6월 29일 도발을 감행
○ 해전 당일 우리 고속정은 꽃게잡이 어선에 대한 조업통제 및 경계 임무를 수행 중이었으며, 오전 09시 54분 북한경비정 2척이 연평도 서북방 7마일 해상의 NLL을 의도적으로 침범하자 일사분란하게 대응 기동
○ 우리의 퇴각 경고방송에도 불구하고 북한 경비정이 계속 남하하자 참수리-357호정이 진로를 차단하기 위해 기동하던 중, 10시 25분 북한 경비정 684호정이 85미리, 37미리 함포와 휴대용 로켓포 등을 이용하여 선제기습공격을 가하고, 우리 함정이 이에 적극 대응함으로써 31분간의 해전 시작
□ 해상 교전
○ 적의 포탄이 참수리-357호정에 명중하여 아수라장이 된 상황에서도 승조원들은 즉각 반격에 나섰으며, 적의 포탄이 쏟아지는 가운데 함교에서 태산같이 버티며 반격을 지휘하던 정장 故 윤영하 소령 전사
○ 포대 안에서 적을 향해 응사하던 21포 사수 故 조천형 중사와 22포 사수 故 황도현 중사는 포대가 적의 포탄에 명중되어 화염에 쌓인 극한 상황에서도 끝까지 응사하다 장렬히 산화하였으며, M-60 기관총 사수였던 故 서후원 중사도 마지막 순간까지 방아쇠를 놓지 않았고, 의무병 故 박동혁 병장은 포탄이 빗발치는 포연탄우 생사 간에 부상자를 보살피다 적 탄환에 오른팔이 관통된 상황에서도 쓰러진 동료를 대신하여 기관총의 방아쇠를 당김
○ 곧이어 같은 편대 참수리-358호정과 인근 고속정 편대, 우리 초계함이 지원사격을 하였으며, 집중포격을 받은 북한경비정은 화염에 휩싸인 채 수십여 명의 인명피해를 입고 10시 56분 NLL 북쪽으로 퇴각함으로써 긴박했던 31분간의 해전 종료
□ 교전 이후
○ 참수리-357호정은 기관실에 지름 20센티미터의 구멍이 뚫려 침수되는 상태로 아군 고속정에 의해 예인 중 생존자들의 결사적인 방수작업에도 불구하고 11시 59분에 침몰하였고, 전사자 및 부상자는 헬기로 국군 수도병원으로 후송
○ 조타장 故 한상국 중사의 시신을 찾지 못하던 중 실종 41일 만인 8월 9일에 침몰된 참수리-357호정에서 타기를 놓지 않은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사체를 발견, 인양하였으며, 참수리-357호정은 계속되는 남북 간 긴장상황 속에서 침몰 53일 만인 8월 21일 인양
○ 국군 수도병원으로 후송되어 생사를 오가며 투병 중이던 의무병 故 박동혁 병장은 교전 후 83일 만인 9월 20일 결국 사망
□ 의의 및 교훈
○ 제2연평해전은 불의의 기습공격으로 故 윤영하 소령 등 6명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지만, 우리의 조국과 바다를 지키겠다는 확고한 전투의지로 모두가 한마음, 한 뜻이 되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NLL을 사수한 승리한 해전임
○ 여섯 영웅들이 보여준 투철한 군인정신과 필승의 신념을 표상으로 삼아 조국의 땅과 바다를 반드시 지키고자 새롭게 건조한 유도탄 고속함을 윤영하함으로 명명하고, 추가로 건조된 2번함부터 6번함까지의 유도탄 고속함에도 다른 다섯 전우들의 이름을 함명으로 명명하여 자랑스러운 영웅들이 장병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쉬도록 함
【 NLL을 지켜낸 6人의 영웅 】
정 장 故 윤영하 소령 조타장 故 한상국 중사
병기사 故 조천형 중사 병기사 故 황도현 중사
내연사 故 서후원 중사 의무병 故 박동혁 병장 |
첫댓글 사후 1계급 특진 대위에서 소령,, 하사에서 중사,, 상병에서 병장,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사망하신 분들에게 국가는 1계급씩 특진 시켜 주엇습니다, 군에서 사후 특진한 군인들에 대한 보상역시 별도로 공훈에 대한 국가는 잔사순직 보상하여야 한다, 상이자 중상이수당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