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삼朴在森 1933. 4. 10 - 1997. 6. 8.
1933년 일본 도쿄[東京]에서 태어나 삼
천포에서 자랐다. 삼천포초등학교를 졸
업한 뒤 가난한 집안 사정으로 중학교
진학을 못하고 삼천포여자중학교 사환
으로 들어가 일하였는데, 이곳에서 교
사이던 시조시인 김상옥을 만나 시를
쓰기로 결심하였다.
그 뒤 삼천포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
하고 고려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해 수
료하였다.
1953년 《문예》에 시조 〈강가에서>
를 추천받았고,
1955년 《현대문학》에 시 〈섭리〉
〈정적〉 등이 추천되어 등단하
였다.
1955 ∼1964년 월간 현대문학사 기자.
1965 ∼1968년 대한일보 기자,
1968년 고혈압으로 쓰러져 반신마비가
된 이후 일정한 직업을 갖지 않았으며
위장병과 당뇨병 등 병치레를 하기도
하였다.
현대문학신인상, 문교부 문예상, 인촌
상, 한국시협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
작가상, 평화문학상, 중앙시조대상, 조
연현문학상, 제6회 올해의 애서가상을
수상하였고, 1997년에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주요 작품으로는 시집 《춘향이 마음》
《천년의 바람》 《뜨거운 달》, 수필집
《아름다운 삶의 무늬》 등이 있다.
시인 박재삼은 생전에 '슬픔의 연금술사'로 불린 시인이다. 詩 <눈물 속의
눈물>에서
꽃잎 속에 새 꽃잎
겹쳐 피듯이
눈물 속에 새로 또
눈물 나던 것이네
라고 노래했듯이 그의 詩들은 눈시울이 촉초근하게 젖어 있다. 박재삼 시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이 詩는 노을이 붉게 번지는, 굽이쳐 흐르는 강을 산등
성이에서 내려다보며 썼을 것이다. '눈물'과 '울음'과 '강'과 '산골 물'과 '바다'
로 연결되는 물의 이미지는 누선(淚腺)을 자극하고, '햇볕'과 '불빛'으로 연결
되는 불의 이미지는 삶의 소진과 소멸을 두드러지게 하는 바, 이 詩는 사랑의
비극과 고독과 생(生)의 무상(無常)을 동뜨게 드러낸다. 마음도 한자리 못 앉
아 있는 마음이라는 표현은
뉘가 알리, 어느 가지에서는 연신 피고
어느 가지에서는 또한 지고들 하는
움직일 줄을 아는 내 마음 꽃나무 (<자연(自然)>)
라는 표현과 쏙 빼닮았다. '눈물나고나'와 '보것네' 등의 종결어미에서는 그의
다른 시편에서도 예사인 전통적인 가락의 활용을 보여준다.
이 詩가 처음 월간지에 발표된 후 박두진 시인은 "노도(怒濤)처럼 세찬 현대
의 휩쓸림 속에서 배추 꽃목처럼 목이 가늘고 애잔한, 실개천처럼 맑고도 잔
잔한 서정"이라고 평해 신예 박재삼을 주목했다.
박재삼 詩의 가옥을 떠받치는 두 기둥인 '한'과 '가락'의 능수능란한 구사는
그가 자라난 생활환경과 관련이 있다. 일본 동경에서 태어나 막노동을 하는
아버지와 생선 장사를 하는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집이 가난해서 낮에는 중
학교 급사로 일하면서 야간반에서 수학을 했다. 집 형편이 옹색해 책을 살 수
없어 '가람시조집'을 빌려다 공책에 베껴 쓰고 늘 외웠고, 중학 시절 김상옥
시인의 작문 지도를 받으면서 전통시의 낭창낭창한 가락에 눈떴다.
병을 얻어 직장을 그만둔 후로는 詩를 쓰고 신문에 바둑 관전평을 써서 생계
를 꾸렸다. '요석자(樂石子)'라는 이름으로 바둑 관전평을 썼는데 바둑계에서
는 그를 '박국수(朴國手)'라고 불렀다. 병을 앓고 난 후, 가난한 시인은 새봄
을 맞는 소회를 썼다.
눈여겨 볼 것이로다, 촉트는 풀잎,
가려운 흙살이 터지면서
약간은 아픈 기(氣)도 있으면서
아, 그러면서 기쁘면서…
모든 살아 있는 것이
형(兄)뻘로 보이는 넉넉함이로다. (<병후(病後)에>)
그러니 우리네 삶이 '햇볕 반(半) 그늘 반(半)'이라 하더라도 오늘 당신은 글
썽임보다 반짝이는 쪽을, 촉트는 생동(生動)을 보아라.
- 문태준(시인)님의 <울음이 타는 가을강> 詩評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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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잘읽고 공부 열ㅆㅁ히 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