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빛 예수 (요12:44-46)
인도의 성자라고 불리는 선다 싱 (PPT그림)
험난한 히말라야 산맥을 넘나들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 선다 싱 그는 어릴 때 어머니가 시크교 사도였기 때문에
철저하게 시크교식 교육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는 선교사들이 싫어 선교사 학교에 돌멩이를 던지고 성경을 불태운 사람입니다.
친구들을 모아 놓고 자기 집에서 성경을 불태우며 "만약 기독교의 신이 참 하나님이라면 성경을 불태우는 자신이
당장 벌을 받을 것이라"고 장담하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가 성경을 불태운 후 학교에 가지 못하고 3일 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 입에서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하나님이 계신다면 보여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죽기로 결심하고 금식하며 기도하던 마지막 날 새벽 5시 그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환한 광채 속에서 어떤 이가 나타났습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하나님께서 이 땅에 보내셨던 아들 예수 그리스도다" 그는 바울처럼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자 그럼 이제 두 눈을 크게 뜨고서 똑똑히 보아라.
십자가에 못 박힌 나의 두 손발과 창에 찔린 옆구리를 말이다."
"내가 이처럼 십자가 형틀 위에서 참혹하게 죽은 것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증거가 될 뿐만 아니라
너를 지극히 사랑하여 구원하기 위한 것이란다."
그는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똑똑히 보고 들었습니다. 선다 싱은 고꾸라지면서 소리쳤습니다.
"오 나의 구주 예수님이여 여태까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부정하고 잘 못된 우상만 섬겨 왔던 저의 큰 죄를
용서하여 주소서. 그리고 이제부터는 저를 대신하여 죽으신 주님만을 위하여 살게 하옵소서"
그는 변하여 맨발의 전도자 인도의 성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어둠은 어둠이 물리칠 수 없습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했던 것은 어둠은 빛이 있으면 물러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빛을 받으면 고통당하던 자에게 흑암이 없어지고 멸시 당하던 자가 영화롭게 되고
사망의 그늘에 갇힌 자들이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 빛을 받으면 생명이 살아납니다. 이 빛을 받으면 어둠이 물러갑니다.
죄의 노예로부터 해방 됩니다. 죽음의 노예로부터 해방 됩니다.
이 빛을 받으면 어두움의 사상, 어두움의 지식, 어두움의 도덕, 어두움의 문화가 달아납니다.
이 빛이 임하면 음란한 밤의 문화가 달아납니다.
이 빛을 받으면 밝게 보게 만듭니다. 이성이 살아납니다. 지성이 새로워집니다.
양심이 살아납니다. 이 빛을 받으면 아름다워집니다.
가정이 아름다워지고 세상이 아름답게 보입니다. 이 빛을 받으면 따뜻해집니다.
가슴이 따뜻해집니다. 표정이 따뜻해집니다. 언어가 따뜻해집니다.
요한복음에 (본문) 요12:46 <빛으로 세상에 왔나니 / 요 3:19 <빛이 세상에 왔으되
요 8:12 <나는 세상에 빛이니 / 요 9: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라
요 12:35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이 말씀은 세상에는 빛이 없다는 전제로 하는 말씀입니다.
세상은 빛이 없습니다. 세상은 온통 어둠뿐입니다.
어둠뿐이란 전혀 소망이 없음을 말합니다. 세상에 있는 소망은 참 소망이 없습니다.
그런데 빛이 세상에 왔습니다. 이 빛 때문에 어둠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이 빛은 희망의 빛입니다. 유일한 희망의 빛입니다. 이 빛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빛 되신 주님께서는 오늘도 어둠에 잠긴 인간의 심령의 문밖에서 문을 두드리십니다.
주님께서는 여러 가지 모양으로 인간의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어떤 때는 양심을 통하여 어떤 때는 이성을 통해, 때로는 경험을 통해서
때로는 슬픔을 통해서 때로는 기쁨을 통해서 때로는 친구의 권면을 통해서
혹은 책을 통해서 방송을 통해서 인간의 마음 문을 두드리십니다.
또 40일 특별새벽기도회와 부흥회를 통하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어둠뿐인 우리의 심령에 빛 되신 주님께서 들어오시면 어둠은 물러갑니다.
세상에 예수님만 빛이십니다.
바울은 과거에 어둠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부족함을 모르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인간 세상에서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심령은 어둠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빛 되신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그래서 빛 되신 예수님을 핍박했습니다.
그가 다메섹 정상에서 빛 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다”
이때 바울은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어두움을 벗고 빛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이때 바울은 사탄의 세력에서 벗어나 성령에 사로잡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만이 세상에 유일한 참 빛이십니다.
오늘부터 대강절입니다. 예수님은 희망의 빛이십니다.
이 희망의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며 성탄을 기다림으로 맞이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악하고, 힘에 지치고, 무섭고, 전혀 희망이 없습니다.
열심히 공부하고, 열심히 돈 벌고, 열심히 죄 짓고, 열심히 쾌락을 즐기고, 열심히 먹고,
열심히 살지만 소망의 주님을 만나지 못한다면 결국 하루살이의 인생일 뿐입니다.
죽기 때문입니다. 가져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심판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연평도 포격 사건 때문에 얼마나 놀랐습니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 하나가 세상에 대한 심판입니다.
연평도 주민들은 이제는 그곳에서 못살겠다고 모두 나왔습니다.
아무리 좋은 집을 지어줘도 이제는 못 들어가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아래 있는 이 세상은 바로 연평도와 같을 것입니다.
때문에 희망이 없는 개인, 가정, 교회, 민족위에 희망의 메시야께서 임하셔야 될 줄로 믿습니다. (할렐루야)
우리 인생에 있어서 만남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특히 희망의 메시야인 예수를 만남은 너무도 중요한 대 사건입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만남을 거치며 살아갑니다.
그 수많은 만남 속에서 나를 변화시키고 내 마음에 희망의 빛을 던져주는 만남은 예수그리스도 밖에는 없습니다.
이 참 빛의 주님을 만난 분들의 아우성 소리를 들어 보십시오.
가치관이 변하고 인생 근본이 변한 이들의 삶을 보십시오.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감사하며 찬양할 수 있는 것은 희망의 주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때문에 이런 만남은 누구에게나 필요합니다.
어린 아이든 청년이든 중년이든 노년이든, 모든 사람에게 필요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늘의 생활이 무료하셔서 관광차 잠깐 다니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만나러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오실 때에 그 안에 생명을 가지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가지고 오신 생명의 빛을 받아야만 합니다. 이 빛을 받은 사람들은 다 새롭게 되었습니다.
①이 빛을 마음에 간직한 사람들은 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②이 빛의 능력을 아는 사람들은 못할 것이 없는 사람들로 살았습니다.
③이 빛을 의지하는 사람들은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④이 빛 속에 사는 사람들은 환난도 곤고도 핍박도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도 이길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역시 이 빛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이 빛을 받은 사람에게는 어떠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까?
1. 죄의 비늘이 벗어지게 됩니다.
문제는 죄입니다.
에덴동산에서도 죄가 문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죄가 문제였습니다. 지금도 죄가 문제입니다.
빛이 오면 죄가 드러나고 죄를 회개하며 죄를 멀리하게 됩니다.
주님 만나면 죄의 문제가 해결됩니다.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깜깜한 방일지라도 촛불 하나만 켜 놓아도 어둠은 이내 사라져버리고 맙니다.
어둠은 절대로 빛의 대적이 될 수 없습니다.
반딧불 하나라 할지라도 그 빛이 역사 하는 반경 안에서 어둠은 힘을 쓸 수가 없습니다.
어둠은 암흑 속에서만 왕 노릇 할 뿐입니다.
여러분, 이 세상에서 가장 어두운 곳은 어디일까요?
빛이 없는 어둠을 자랑하는 곳으로 동굴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동굴 속이란 정말 한 줄기 빛도 스며들지 않는 칠흑 같은 어둠의 세계라서 한치 앞도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가끔 동굴 속에서는 큰 육상동물이나 사람의 시체가 미이라 상태로, 혹은 유골의 형태로 발견되곤 합니다.
멋도 모르고 동굴의 깊은 곳으로 들어갔다가 어둠 속에서 결국은 입구를 찾지 못하고 죽은 증거물입니다.
그러나 동굴보다도 헤아릴 수 없이 깊고 어두운 곳이 있습니다.
‘사람의 심령’입니다. 사람의 심령은 타락한 세월의 길이만큼 깊고,
조상 대대로 하나님을 거역하고 죄를 지은 두께 만큼 어둡습니다.
죄의 때 죄의 옷을 벗어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심령의 눈이 어두워져 분별할 것을 분별하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①중요한 것과 하찮은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②가야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 길을 혼동해서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거짓에 속고 마침내는 껍질만 남는 삶을 살다가 죽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죄악의 어두움이 눈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찬송가 252장 : 나의 죄를 씻기는 예수의 피밖에 없네
나를 정케 하기도 예수의 피밖에 없네
사람은 누구나 이 죄의 어둠을 몰아내야만 살 길로 들어서는 것입니다.
그 길은 오직 하나입니다. 생명의 빛을 품고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시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것입니다.
빛이 오면 어둠은 사라집니다. 죄악의 비늘이 우리의 눈에서 벗겨져야만 합니다.
이 죄의 비늘을 벗는 길, 예수의 빛을 받는 길 밖에 없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 진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우리 인생의 해답은 예수님이십니다. 이것을 알고 믿는 것이 진리입니다.
어둠 속에서는 사물을 분간할 수가 없습니다. 모두가 어둠의 혼돈에 범벅이 되어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급변하는 세상이 그렇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무엇을 부여잡고 살아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과학이 진리입니까? 돈이 진리입니까? 컴퓨터가 진리입니까?
여러분, 어제와 오늘이 전혀 다르게 변화해 가는 이 세상에서 과연 도대체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을 붙들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우주와 역사와 인생의 비밀이 열려지는 곳은 오직 예수의 빛 안 뿐입니다.
그 빛의 비추임을 받을 때에만 우주가 하나님의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①역사는 종말로 향해가고 있고, 또 그 종말은 새 창조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②사람이라는 존재는 죽을 존재이며,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 존재이고,
영생을 얻어야만 하는 존재임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예수의 십자가만이, 새 창조만이, 영원한 생명만이 진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런 진리의 깨달음이 없다면 산다고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은 죄의 댓가로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①배운다고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②안다고 아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 쓸데없는 지식이 되기 때문입니다.
진리와 그 깨달음은 오직 예수의 빛 안에만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빛이 오시면 진리의 길이 보입니다.
3. 자신의 모습이 보입니다.
예수님 오시면 자신의 은사와 사명을 알게 됩니다.
여기에 아름답고 예쁜 꽃이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꽃을 어둠 속에 가져다 놓으면 이 화려한 색깔들은 그 빛을 잃고 무채색이 되어 버리고 맙니다.
빛은 이렇게 형태와 함께 고유의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나게 해 줍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색깔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이어지는 나만의 꿈이 있고, 나에게만 주어진 개성이 있고, 재능이 있고, 성격이 있습니다.
이것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머니의 배내에서 창조되어질 때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만 주어진 이 놀라운 창조의 에너지들을 알지 못합니다.
참 불행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일생을 통해 어떤 일을 훌륭히 해낼 수 있는 모든 것을 심어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것을 찾지 못하고, 그저 다른 이들의 이런 저런 좋게 보이는 모습들을 모방만 하다가는 실패만 거듭합니다. 그러다가는 이윽고 자신에게 스스로 실망을 하고 나자빠져 버립니다.
자신의 색깔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내가 가진 색깔은 나를 만드신 분만이 아십니다.
그 분의 빛이 내게 비추어질 때에만 내 고유의 색깔은 선명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지으신 그 분만이 나만의 색깔을 찾아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물이 그 분의 손에 지어 졌다는 것과, 그리고 우리 또한 그 분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각 사람’이란, 한 사람 한 사람 각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를 지으신 그 분이 나를 만나고 내게 생명의 빛을 주시려고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 분의 빛을 마다하시겠습니까?
우리는 매일의 삶을 말씀 앞에 서서 빛을 받아야 합니다.
또 은혜로 주어지는 예배마다 빠짐없이 나와 내게 예비 된 빛을 아낌없이 받아야 합니다.
빛은 우리의 죄의 비늘을 벗어지게 합니다. 빛은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믿게 합니다.
빛은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다 같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